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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은 카비르가 꿈에서도 읽힌다. 때로는 길게 때로는 짧게. 물론 깨고 나면 거의 기억에 없다. 방금 낮잠에서 읽은 그의 노래는 이런 내용이다. 누가 자기는 삼 대째 염색을 한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카비르가 말한다. 너는 삼 대째 염색을 하느냐? 나는 삼 대가 비단을 짠다. 너는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이 염색을 하느냐? 나는 무수한 할아버지들과 무수한 손자들이 하나인 내 안에서 비단을 짠다. 너는 몇 대까지 염색을 하려느냐? 나는 영원히 비단을 짜고 있다. 꿈 깨고 나와 책을 펴고 카비르를 읽는다. 묘하다, 하필 이런 구절이다.
그는 사람도 아니고
신(神)도 아니다.
순결한 고행자도 아니고
시바 숭배자도 아니다.
요기도 아니고
은수자도 아니다.
그에게는 어미가 없다.
그는 누구의 자식도 아니다.
누구인가, 여기 이 집에 살고 있는,
아무도 헤아려 알 수 없는,
그는 누구인가?
가장(家長)도 아니고 탁발승도 아니다.
왕도 아니고 거지도 아니다.
몸도 없고 피도 없다.
브라아민도 아니고 크샤트리아도 아니다.
엄숙한 현자도 아니고 촌장도 아니다.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는다.
그의 죽음을 슬피 우는 자들은
괜한 짓을 하고 있는 거다.
구루의 은혜로, 나는 그 길을 찾았다.
나의 태어남과 죽음이 지워졌다.
무료라기에 인터넷으로 영화 한 편 봤다. 흉악범들이 탈옥해서 농아학교 학생들과 교사를 인질로 삼고 버티다가 끝에 가서 모두 사살된다는 스토리다. 물론 인질들은 무사히(?) 전원 구출된다. 많은 돈 들여 왜 이런 영화를 만드는지 모르겠다. 그보다 더 알 수 없는 건 아무리 무료라지만 어떻게 이런 영화를 두 시간 가까이 보고 앉았느냐는 거다. (2017. 2. 16)
⎈ 오늘 옮긴 타라 브라크의 글, 이 대목에서 끝내 눈물을 찔끔 짰다. 가슴이 애잔하다.
―이틀 뒤, 샘이 자기가 겪은 일을 털어놓았다. “제니를 생각할 때마다 두 번째 화살이 나를 찔러대는 것 같았어요.” 그가 몇 번 심호흡을 하고 나서 말을 이었다. “두 주 전 아내에게 유방암 증세가 있어서 병원엘 갔지요. 화요일에 검사를 받았는데 결과가 금요일에 나온다고 했어요. 금요일 저녁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맨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제니에게 발송을 부탁한 우편물이었지요. 나는 꼭지가 돌아 길길이 소리치며 욕을 퍼부었어요. 그녀의 검사결과 같은 건 까맣게 잊고서…” 그가 말을 멈추었다.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순간 잔뜩 일그러진 그녀의 얼굴 표정은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겁니다.” 샘이 흐느끼면서 목 메인 음성으로 말을 계속하였다. “다행히 조기에 발견돼서 제니는 괜찮을 거예요. 그런데, 타라, 그 마음은? 그 마음은 어떻게 하지요? 어쩌면 사람이 그럴 수 있는 겁니까?”
샘은 명상 홀에 앉아 있다가도 제니 생각이 나면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고 싶었다. “내 방에 들어가 베개를 적시며 펑펑 울었어요. 울면서 말했지요. ‘난 안 돼! 대책이 없는 놈이야. 난 절대 안 돼!’ 그러면서도 제니에게 나를 이해해달라고 나를 용서해달라고 속으로 빌었어요. 바로 그 때 갑자기 엄마한테 화를 내고 나서 용서를 빌던 아버지 음성이 들려왔지요. 그날 아버지는 와인 잔 다섯 개를 하나씩 하나씩 부엌 바닥에 던져 박살을 냈어요. 나는 열한 살이었는데 문 뒤에 숨어서 그 장면을 모두 지켜봤지요. 아버지는 내가 거기 있는 줄 몰랐을 겁니다. 그 뒤로도 아버지는 자주 나한테 형한테 그리고 엄마한테 화를 폭발시켰고 통화하던 전화기를 내던지기도 하셨어요. 그래서 뭐가 어찌 되었는지, 타라, 당신은 모를 거요.” 샘이 숨을 깊이 들여 마시며 고개를 저었다. “예, 그랬어요. 난 자라면서 아버지를 미워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던 해 아버지한테 긴 편지를 썼지요. 하지만 아버지는 당신을 통제할 수 없었고 결국 마약까지 하다가 당신 분노의 희생물이 되고 말았어요. 그리고 그런 자기를 누구보다도 더 경멸했지요.” 샘이 말을 그치고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한참 그러고 있다가 다시 말했다. 음성이 좀 부드러워져 있었다. “아버지 음성이 생각나면서, 나도 아버지처럼… 안 되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타라, 나는 내가 달라질 수 있고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어디까지나 생각일 뿐, 도무지 나를 도울 무슨 방법이 없는 겁니다.”
잠시 그의 가슴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가 내가 말했다. “샘… 당신이 아버지와 당신에 대하여 본 것은 모두 진실입니다. 하지만… 통제-되지-않는 분노는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반복했다. “통제-되지-않는 분노는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요!” 샘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고 나는 말을 계속했다. “…책임지는(responsible) 법을, 다르게 반응하는(to respond differently) 법을, 당신은 배워야 해요. 하지만 그건 당신이 비난받을 대상이 아니라는 걸 스스로 알고 인정해야만 가능합니다.”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독자들은 별 것 아닌 일에 툭하면 화를 내는 자기 자신한테 절망했던 샘이 어떻게 그 수렁에서 벗어나는지를 보게 된다. 그렇다, 세상은 아프다. 그리고 슬프다. 그러므로 다시 아름다울 수 있고 따뜻해질 수 있는 것이다. (2017. 2. 17)
⎈ 광주 마리아가 유곡(幽谷) 내외와 함께 왔다. 많이 아팠다더니 몸이 수척해 보인다. 와온 바다를 내려다보는 나훔 카페에서 차를 마셨다. 나훔이 위로의 선지자인데 이곳을 다녀간 것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밤늦도록 학부모 수련모임에서 이야기 나눔. 몸은 고단해도 마음은 가볍다. (2017. 2. 18)
⎈ 다슬기가 왕산하고 이웃집 수리 공사를 사흘째 한다. 어제는 수련모임에 온 아버지들이 함께 작업을 돕고 어머니들도 이리저리 다니며 학교 살림살이를 손보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이 학교에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가호(加護)가 이어지기를… (2017. 2. 19)
⎈ 카비르가 오늘도 나를 위로한다, 너 잘못 살지 않았다고, 모든 것이 괜찮다고.
빗방울이 바다에 스며들어 하나 되듯이,
잔물결이 개울에 섞여들어 하나 되듯이,
나의 침묵이 무한하신 그분에 흡수되었다.
아무도 우리를 떨어졌다고 말할 수 없다.
바야흐로 나는 허공이 되었다.
왜 내가 돌아가야 하는가?
우리가 오고 가는 건 그분의 법이다.
그 법의 임자를 내가 찾았다.
그리고 그분께 녹아들었다.
다섯 요소로 이루어진
이 피조물이 끝에 이르렀을 때
그때 나의 모든 의심도 끝날 것이다.
나는 온갖 다름을 버렸다.
내 눈엔 모두가 같은 것이다.
그분의 이름을 끊임없이 명상한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그 일만 나는 한다.
그리하여 비로소 선한 행실이 나한테서 이루어진다.
하리는 자비로우신 분,
내가 구루의 은혜로 그분과 하나 되리라.
만일 네가 살아서 죽는다면
네가 죽을 때 너는 살 것이다.
두 번 다시 환생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그 일만 나는 한다. 그리하여 비로소 선한 행실이 나한테서 이루어진다. …네가 만일 살아서 죽는다면…” (2017. 2. 20)
⎈ 망태와 목우당이 공작실에서 작업하는데, 나는 타라 브라크의 글을 옮기며 눈물 찔끔.
―1989년, 젊은 베트남 남자와 어린 소녀의 낡은 사진 한 장이 다음 편지와 함께 워싱턴디씨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기념관 벽에 붙었다.
친애하는 당신에게.
22년 전 나는 당신 사진을 내 지갑에 넣어 가지고 왔습니다. 당시 나는 열여덟 살이었고 베트남 추 레이에서 당신과 마주쳤지요. 그날 왜 당신이 내 생명을 가져가지 않았는지, 나는 영원히 모를 것입니다. …그저 훈련받은 대로 움직였을 뿐이지만, 당신의 생명을 앗아간 나를 용서해주십시오. 참으로 오랜 세월 나는 당신과 당신 딸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살았고, 그럴 때마다 가슴과 아랫배가 죄의식으로 불타는 걸 느껴야 했지요. 나에게는 지금 두 딸이 있습니다. 예, 당신은 고국을 지키는 용감한 군인이었어요. 다른 무엇보다도 나는 당신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존엄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 때문에 내가 오늘 여기서 살아갈 수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지금은 나에게 주어진 삶을 계속하면서 아픔과 죄의식을 씻어내기 위한 시간입니다. 부디, 나를 용서해주십시오.
이 편지의 주인공 리처드 러트렐은 사람 목숨을 빼앗는 것이 얼마나 큰 범죄인지, 그리고 인간 모두에게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경험을 통해서 실감하였다. 자기 안에 있는 죄책감을 인정하고 그로 인해서 괴로워하는 자신을, 사람 죽이는 훈련을 받은 가련한 인간을 보고 또 봄으로써 리처드는 자신의 인간적 나약함을 직면하였다. 그렇게 자기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용서를 구하여 스스로 해방의 길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많은 학생들과 나누었다. 그러다가 2009년, 리처드의 인생여정이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동안 기념관 벽에 붙어있던 사진이 그에게 반환되었고 그는 한 가지 결심을 한다. 사진 속의 소녀를 찾아서 사진을 돌려주기로 한 것이다. 리처드는 베트남으로 갔고 그녀와 그녀 오빠를 만났다. 통역을 시켜 그가 말했다. “이건 내가 죽인 당신 아버지 지갑에서 꺼낸 사진입니다. 이것을 당신에게 돌려주려고 왔습니다.” 그리고 갈라진 음성으로 용서를 빌었다. 젊은 여인이 눈물을 쏟으며 리처드 품에 안겨 흐느꼈다. 나중에 오빠가 말했다, 아버지 영혼이 리처드 안에 살아있음을 자기와 누이가 믿게 되었다고. 그날, 그들은 아버지 사진을 돌려받았다. (2017. 2. 21)
⎈ 한참 번역에 열중하고 있는데 뜬금없이 아내가 샤워를 하란다. “어?” 딱 한 마디만 하고 바로 일어나서 군소리 없이 옷을 벗었다. 기억해둘 만한 날이다. (2017. 2. 22)
⎈ 달라이 라마 번역. 그렇다, 내가 나를 미워하는 자를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사랑하고자 하는 것은 어느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나 자신을 위해서다. (2017. 2. 23)
⎈ 지금여기교회 성서순례. 이번이 아홉 번째란다. 개인면담 시간, 사람들은 다양한데 주고받는 이야기 내용들은 무슨 약속이나 한 것처럼 비슷하다. 기리에 엘레이송! (2017. 2. 25)
⎈ 예배 마치고 효선이 광명역까지 데려다주다. 열차에서 자다 깨다 하는데 마음이 자꾸 짠해진다. 아픈 세상이 나를 슬프게 한다. 가느다란 슬픔이 나를 위로한다. 괜찮다고. 저녁으로 공양 간에서 떡국 먹다. 아이들이 반갑게 인사한다. 그래, 천천히 가자. (2017. 2. 26)
⎈ 효선이 자동차 사고를 냈단다. 천사가 지켜주어서 간발의 차로 사람을 다치진 않았지만 마음을 크게 다쳤다. 돌아오는 길에는 저도 모르게 천사 노릇을 했다고. 지금여기교회에서 얻은 신발과 목도리가 그것을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전달된 것이다. 아, 주님. (2017. 2. 27)
⎈ 서울 장명기 목사가 중앙교회 홍인식 목사를 소개하여 만남. 중앙교회 목사관에서 낯선 십자가를 보았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두 팔이 보이지 않는다. 왼팔은 십자가의 왼쪽 가로대 나무로 바뀌었고 예수의 몸을 휘감고 올라간 뱀의 몸통이 오른팔을 대신하여 오른쪽 가로대 나무로 되었다. 사탄과 예수가 한 몸으로 십자가를 이루고 있다.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에 나타난 십자가를 형상화한 것이란다. 예술가의 직관이란 참으로 대단한 물건이다. 홍 목사가 소형으로 복제된 같은 십자가를 선물한다. (2017. 2. 28)
⎈ 두더지가 백일 순례 마치고 돌아왔다. 효선이 말하기를 한 사람이 왔는데 학교가 꽉 찬 느낌이란다. 사랑어린스콜레 예비 모임에 온 식구들과 함께 삼일절 기념행사도 하고 저녁에는 효선이 빚은 맥주로 두더지 환영 파티도 조촐하게 가졌다. 감사 또 감사! (2017. 3. 1)
⎈ 풍경소리 발송 작업. 봉투에서 아는 사람 이름을 보면 반갑다. 은결이 엄마가 자장면을 사주어 맛있게 먹었다. 맞다, 발송하는 날은 자장면을 먹는 게 원칙이다. (2017. 3. 2)
⎈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기대하는 바도 없이 눈앞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관광객처럼 한 세상 지낼 수 없는 것일까? 절망하기 싫어서 희망하지 않는다면 인생을 욕되게 하는 것일까? 살아서 죽는다는 말이 그렇게 산다는 뜻 아닐까? 그렇다, 자유인의 삶이란 모든 것에 무책임한 삶이다. 이런 생각이 내 머리를 떠나지 않은 하루였다. (2017. 3. 3)
⎈ 토요명상 시간. 천지인 부모들이 함께 하다. 우리 모두 시작도 끝도 모를 대하드라마 속의 짧은 이야기들이라고, 이왕이면 아름답고 영양가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보자고, 이 학교도 시방 그런 이야기를,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어울려 성장하는 학교가 그 시절 전라도 순천 어디에 있었다는 이야기를 만들고 있는 거라고…
효선도 아이들과 함께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음식도 만들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는 모양이다. 그렇다, 모두가 그분과 우리의 합작품이다. 오늘 번역한 글에서 로어 신부도 말한다.
“수년 전 나는 짐 월리스와 함께 독일에 있었습니다. 그는 당시 평화운동에 크게 활약 중이었고, 우리는 미국에서 그랬듯이 독일의 여러 지방으로 순회강연을 다니며 항의시위에 참석도 하고 기도도 하고 전쟁과 평화에 대한 공부도 했지요. 그렇게 모든 일정을 마칠 무렵 갑자기 고르바초프가 등장하더니 낡고 단단한 전선(前線)이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그것은 마치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처럼 보였지요. 우리가 한 일이 그런 결과를 가져왔다고는 물론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어쨌든 간에 우리의 노력도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하느님은 초대받지 않은 곳에는 결코 오시지 않아요. 내 눈에는 우리의 작은 프로젝트가 하느님의 마지막 행위를 초대하고 환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원치 않는 무엇을 왜 하느님이 주시겠어요? 그것으로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일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무엇을 하느님이 왜 주시겠습니까? 우리가 기도는 열심히 하지만 조금도 애쓰지 않는 무엇을 하느님이 왜 주시겠어요? 하느님이 믿어주시는 것은 우리의 ‘기도들’이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일을 하고 항의시위도 하고 그러면서 동시에 순간순간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기를 기다리는 겁니다. 나는 이것이 인간과 하느님이 함께 이루는 ‘공동창조’(co-creation)의 위대한 신비라고 믿어요.”
목포 창해 목사가 와서 글 한 줄 써달란다. 一月普現一切水 一切水月一月攝. (2017. 3. 4)
⎈ 준서네 집 신축 기공식에 참석. 일지암 주지 스님 일행과 사랑어린배움터 식구들이 함께 모여 축하한다. 사람만 인연으로 얽히고 풀어지는 게 아니라 집도 그러하니 아무쪼록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행복하게 잘 살라고 빌어주었다. 모두모두 고마운 사람들. (2017. 3. 5)
⎈ 바람빛이 말하기를 요즘 생각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단다. 왜냐고 물으니, 그냥 생각만 하고 말았는데 그대로 이루어지는 걸 자주 경험한단다. 옳다고, 그러니 생각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고, 노자 말씀처럼 겨울 냇물 건너듯 조심하라고, 하지만 그 단계를 넘어서면 어떤 일도 생각대로 되지 않는 다음 단계로 접어들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곁에 있던 효선이, 그렇다고, 지금 자기가 그러고 있다고, 맞장구친다. 하지 않아도 될 말을 괜히 했나?
이명(耳鳴)이 심해졌다. 이 시끄러운 말매미와 평생을 함께 지내야 한다. (2017. 3. 6)
⎈ 오랜만에 4, 5, 6학년 마음공부. 마음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니 대부분이 가슴을 가리키고 서넛은 머리를 가리키고 건영이 혼자서 모르겠단다. 마음엔 생각하는 마음이 있고 느끼는 마음이 있는데, 몸이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 건강하게 자라듯이 마음도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 건강하게 자란다고, 몸은 입으로 음식을 먹지만 마음은 눈과 귀로 먹는다고, 뭐 이런 종류의 얘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다 되었다. 다음엔 아이들 얘기를 더 많이 들어야겠다. 나중에 건영에게 네 말이 맞았다고, 마음은 코나 눈처럼 어디에 따로 있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네 몸 바깥 어디에 있는 것도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알아듣는 눈치다. (2017. 3. 7)
⎈ 서울에서 금란이 내려왔다. 일이 계획한 대로 진행되었으면 지금이 가장 바쁠 텐데 갑자기 틀어지는 바람에 바람도 쐴 겸 예정에 없는 길을 떠났단다. 인생이 원래 그런 것 아니겠냐고… 그래도 몸이 많이 건강해진 것 같아 반가웠다. (2017. 3. 8)
⎈ 8학년 마음공부 시간. 생각 없이 자동으로 반응하는 기계 같은 사람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 것인가? (2017. 3. 9)
⎈ 9학년 마음공부. 만인에 통하는 아홉 글자 법칙을 소개함. “너는 네가 하루 종일 그에 대하여 생각하는 그것으로 된다.”(You become what you think about all day long.)
효선과 함께 버스로 목포행. 저녁, 몬테소리유치원 교사들과 이야기. (2017. 3.10)
⎈ 어제 국회가 요청한 대로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이 파면되었다. 철모르는 늙은이들이 굳어진 완력과 고함으로 시대의 변화에 저항하여 버티는 모양인데 부드럽고 천진스러운 젊음의 힘을 꺾을 순 없는 일이다. 대통령하겠다는 친구들이 시끄럽게 되었다. 이번에는 정책이고 뭐고 다 관두고 말하는 걸 들어봐서 침착하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힘주지 않고 말하는 친구가 있으면 그를 찍겠다. 말하다가 저도 모르게 아이처럼 웃는 친구가 있으면 무조건이다. 대통령이야 되든 말든 난 그 친구다. 고함을 지르거나 톤을 높이거나 목울대를 세우는 친구는 어림도 없다. 남을 헐뜯는 친구도 비아냥대는 친구도 마찬가지다. 이번에는 아메리카 인디언의 충고대로 말을 듣지 않고 말소리를 들을 것이다. 말보다는 말소리가 거짓말을 덜하니까. 대중들이야 나처럼 생각하지 않겠지만 평생토록 세상 중심이 아니라 변두리에서 살아왔으니 내 마지막 인생도 대중의 흐름에 반대쪽으로 가보겠다. (2017. 3. 11)
⎈ 창해 부탁으로 오랜만에 주일설교. 날씨만 분별하지 말고 시대의 징조를 읽자고 했다. 이번 대통령 파면 사건은 지금 전 세계에서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시대의 변혁을 촛불과 태극기로 상징하고 있다. 한반도 남쪽의 태극기는 북쪽의 인공기와 함께 지구상에서 없어져야 할 국기다. 이념을 앞세운 정치가들의 탐욕과 대중의 무지에 의하여 한 민족이 갈라져 싸우는 비극의 현장에서 나부낀 깃발이기 때문이다. 이미 시작된 인류 평화와 합동의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낡은 시대의 유물이다. 태극기가 휘날리는 한, 우리는 이 땅의 평화통일을 축하할 수 없다. 그것이 바람 앞에 가물거리는 촛불에 의하여 뒤로 물러났다. 이런 복음이 어디 있으랴? 촛불은 어느 민족의 것도 아니고 어느 인종의 것도 아니고 어느 계급의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인류의 유산이다. 태극기는 국경을 견고하게 세우고 촛불은 아예 국경이 없다. 이제는 인류가 지구인으로 더불어 살든지 아니면 서로 싸우다가 함께 멸종되든지 선택해야 할 시점이다. 아니, 선택은 이미 이루어졌다. 그것을 서울의 광화문과 시청광장에서 태극기와 촛불이 사이좋게 보여주었다. 이 기적 같은 사건에 가장 공이 많은 사람을 가려낸다면 누구일까? 누가 촛불을 광화문으로 집결시켰던가? 국회의원? 아니다. 판검사? 아니다. 방송국 앵커? 개그맨 김 아무개? 아니다. 그들은 아니다. 그들이 협력자는 될 수 있지만 촛불의 주동자는 될 수 없다. 주동자(어떤 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뒤에서 공작한 사람)는 대통령과 최 아무개라는 한 여인이다. 그들이 그러지 않았으면 촛불이 광화문을 밝힐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미워하여 없애버릴 상대가 아니다. 그들이 빼돌린 나라 재산이 있다면 국민들에게 돌려주는 게 옳지만 죄인을 미워하여 없애는 건, 태극기와 마찬가지로, 낡은 시대의 유물이다. 죄인은 마땅히 죽여야 하고 그래서 예수가 우리를 대신하여 죽었다는, 예수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충돌되는, 그리스도교 중심교리도 이제는 청산되어야 한다. 그분은 우리의 죄 값으로 죽으신 게 아니라 원수까지도, 그런 존재가 있다면, 용서하자는 말을 했다가 그 말 때문에 원수를 용서할 수 없는 인간들에 의하여 죽임 당하신 분이다. 그러고 나서 2천 년 세월이 흘렀다. 이제쯤 인류는 그의 말에 귀 기울일 때가 되지 않았는가? 도대체 이 땅에서 누가 누구를 정죄한단 말인가? (2017. 3. 12)
⎈ 종일 카비르 번역. 아무래도 이 늙은이와의 만남은 하나에서 출발하여 다수(多數)로 나아갔다가 다시 하나로 돌아가는 내 말년에 하늘이 내리신 선물이다. (2017. 3. 13)
⎈ 원주 사람 유하(流下) 잠시 다녀감. 천지인 아이들 순례 길 떠남. …내가 속해 있는 그림 밖으로 나와서 그림 속의 나를 본다면? 사람들이 자기를 그렇게 본다면? (2017. 3. 14)
⎈ 오랜만에 바닷가 산책 나갔다가 중간에 찔레나무 만나 십자가 만들 가지들 주머니에 잔뜩 넣고서 돌아온다. 새싹들이 잎으로 피어나려 하고 있다. 그렇다. 어김없는 봄이 벌써 와 있다. 나는 왜 요즘 이렇게 자꾸 아련히 슬픈 걸까? 순간마다 허공인 하느님을 느끼며 산다는 게 이다지도 어려운 일인가? 창밖에 목련이 괜찮다며 환하게 웃는다. (2017. 3.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