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Phnom Penh Post 2012-10-25 (번역) 크메르의 세계
머나먼 귀향 : 히말라야에서 사망한 캄보디아 산악인 림 삐셋
A complicated journey home
![](https://t1.daumcdn.net/cfile/cafe/020E2E38508ED52E06)
|
(제보사진) 캄보디아 산악인 림 삐셋이 이달 초 네팔에서 캄보디아 국기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
기사작성 : Seth Kimseoun 및 Joe Freeman
캄보디아 산악인 림 삐셋(Lim Pisith)은 네팔에 있어야 했는지도 모르지만, 고국에 대한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었다. 그는 지난주 에베레스트 산 등정길에서 사망했다.
그와 함께 등반을 했던 4명의 동료 중 한명의 증언에 따르면, 삐셋은 10월15일 카투만두에 도착한 후 자신이 등정길에서 캄보디아인들을 만나게 될 수 있을지에 관해 궁금해했다고 한다.
등정이 시작되자 그는 '캄보디아 국기'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사진 참조). 10월17일, 남체 바자르(Namche Bazaar)라는 거점을 향해 나아가던 중, 그는 자신이 이 지역을 통과하는 최초의 캄보디아인이란 점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리고는 캄보디아인 중 누군가가 이 지역을 통과했었는지를 묻고 돌아다녔다.
그는 이틀 후 에베레스트 산 등정 베이스캠프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한 호텔에서 사망했다. 사인은 명백하게도 고산병 때문이었다. 향년 29세였다.
삐셋의 머리 속에 있던 조국은 결코 멀지 않았건만, 그의 유해를 고국으로 운구하는 비용은 터무니없게 과도했다. 친구들과 유족들, 그리고 동료들은 이후 며칠 동안 해법을 찾기 위해 고심했다. 그의 형인 림 삐살(Lim Pisal) 씨는 본지와의 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 처남과 스님 한 분이 시신을 송환하기 위해 카투만두에 도착했다. 하지만 운구 비용에 대해서는 아직도 협의 중이다." |
1만 달러에 달하는 비용을 맞추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의 형에 따르면, 어려운 선택지 앞에서 유족들은 그의 시신을 현지에서 화장하는 길을 선택했다. 함께 간 스님이 집전한 화장 의식은 어제(10.24) 밤 네팔에서 진행됐다. 히말라야를 사랑했던 삐셋의 뜻을 기려, 스님이 그의 재 일부를 네팔에 뿌린 후 나머지를 단지에 담아 고국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하지만 그의 유해를 운구하는 일을 막는 것이 비단 재정적인 문제만 있지는 않다. 현재 네팔이 공휴일이기 때문에, 행정적인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 또한 네팔에는 캄보디아 대사관도 없어서, 공조 업무는 이웃국가인 인도 주재 캄보디아 대사관을 통해서 진행하고 있다.
삐셋이 생전에 행정간사로 일했던 비영리기업 '국제개발기업 캄보디아 지사'(International Development Enterprises Cambodia: iDE)의 마이클 로버츠(Michael Roberts) 지사장은 "서류절차가 대단히 어렵고 정보에 접근하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국제개발기업 캄보디아 지사' 직원들은 삐셋의 '페이스북'(Facebook) 페이지를 통해 유해송환 기금 마련에 나섰었다. 이제 이 모금은 불필요해졌지만, 성원은 줄을 이었다. 홈페이지를 방문한 한 네티즌은 다음과 같이 문의했다.
"그렇다면 내가 우리 가족 중 한명을 '국제개발기업' 사무소로 보내서 기부하게 하면 되는건가요? 그런 건가요?" |
하지만 그러한 기부는 로버츠 지사장에게는 의미있는 것이었다. 그는 삐셋이 박봉을 아끼고 쪼개서 최소한 10여개 국가들을 여행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모든 곳에 친구를 갖고 있었다고 했다. 삐셋은 타인들의 사기를 북돋아주는 존재였고, 동료들에게 영감을 주는 이-메일들을 보내곤 했던 사내다. 로버츠 지사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매우 예외적으로 외향적인 사람 중 한명이었다. 고도의 에너지를 지녔고, 극도로 긍정적인 태도의 삶을 살았다. 그에게는 모든 이들을 긍정적이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인생의 사명이었다. 그는 그러한 밝은 별들 중 하나였다." |
|
첫댓글 왠지 가슴이 시리군요..
명복을 빕니다.
사람이 사는 세상 캄보디아에 비전을 가진 사람,
꿈이 히말라야에 묻히다.
또다른 캄보디아인들이 그 꿈을 이루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