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 8:16~29)
'아하시야가 아합의 집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그는 아합의 집의 사위가 되었음이러라.'(27절)
암흑의 시대이다.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 공히 왕들이 왕이어
하나님의 뜻을 져버리고 악을 행한다.
하나님의 '진노'가 작동할 만한데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지 않으신다.
다윗 왕때의 약속 때문이다.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이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기다려 주시는 분이시다.
아마도 기다림의 길이나 깊이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어느 지점에 있을 것이다.
그것을 알게 되는 어느 때에 우리는 아마도 엄청 충격에
휩싸이게 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우리의 얕은 인식이나 인지 기능으로
하나님의 때로는 선을 주시기도
때로는 진노하시기도 하시는 분이라고 단순히 생각할 수 있다.
어쩌면 극과 극의 행동을 오가는 '불안(?)'한 분으로
인식할 수도 있다.
그것은 우리의 인식 기능 안에서 해석했기 때문이지
하나님의 본질과는 분명 거리가 멀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나중에
어쩔 수 없는 어떤 절대적, 그러나 선량한 이유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본질은 그저 '사랑'이다.
자신의 독생자를 죽음으로 내 몰기까지 우리를
보호하시고 한 없는 용서를 베푸시는 그런 사랑이다.
그 사랑의 테두리를 벗어났을 때
그 곳으로 다시 들어오게끔 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진노하신다.
온전한 징계는 사랑의 일부이다!
오늘 묵상에세이에서 조정민 목사님의 글.
'우리의 모든 실수와 허물, 좌절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신실하신 하나님이 그분의 이름을 위해 우리를 의의 길,
생명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비다. 마지막 순간에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지 않는 한.'
하나님은 끝까지 우리에게 Knocking하시고
끝까지 참고 기다리신다.
결정적으로 일이 틀어지는 유일한 한 가지는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는 것이다.
온전히 우리 몫이다.
"하나님, 새로운 하루 그리고 새로운 한 주를 주셨습니다.
더럽고 추악한 모습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으로 다시 와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 앞에 굴복하는 일이 되게 하시되
뻔뻔함, 악에 무뎌진 자이기 때문이 아니길 원합니다.
0.1mm라도 삶에 진보가 있게 해 주십시오.
진보란 은혜 없이 의지로만 안간힘 쓰는 것이 아니라
은혜에 감동해서 그 에너지로 변화되는 삶이기를 더욱 바랍니다.
양정환, 큰 수술을 하고 나서 회복을 위해 애를 쓰고 있습니다.
시간 시간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어려운 이 시간들을 잘 극복하고
바라옵기는, 이 어려운 시간들이 은혜의 간증이 되게 해 주십시오.
완전히 회복되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 시간 지난 주 갑상선 수술을 받은 이항주 집사님을
기억해 주실 줄 믿습니다.
완쾌되게 해 주시고 건강을 되찾게 해 주십시오.
건강한 목으로 하나님을 노래로 찬양하게 해 주십시오.
감사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