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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가오카오의 규모와 커닝논란
7일과 8일 중국에서 가장 큰 일은 한국의 수능과 비슷한 가오카오(高考, 普通高等学校招生全国统一考试보통고틍학교학생모집전국통일고시의 준말)였다. 참가자 975만 명 참가로 근년의 새 기록을 세웠는데, 이는 18년 전 2000년이 길한 해라면서 아이를 많이 낳았기 때문이라 한다.
스마트폰에 들어온 소식들은 엄격한 커닝방지 조치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수험생이 시험장에 들어가다가 금속탐지기에 걸렸는데, 화근은 바지의 지퍼. 식구들이 달라붙어 손으로 뜯고 손톱깍이로 뽑고 난리를 친 끝에 남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제 시간에 시험을 치게 되었다 등등...
전자수단이 발달하면서 정보전달이 너무나도 쉬워지고 위조방식 또한 다양해진 결과 여러 해 전부터 대학에서 불만의 소리들이 흘러나왔다. 높은 점수를 따고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이 실력이 떨어진다는 것. 조사결과 집단 커닝의 혜택을 받은 애들이었다나. 간첩들이나 사용했을 법한 특제안경으로 정답을 전해 받아 써넣는 건 어느덧 고전적인 시대에 뒤떨어진 수법이고, 특제연필 혹은 특제 볼펜으로 정답 받기도 폭로된 방식이며, 금이빨에 미니수신기를 넣어 답을 받았다는 것도 널리 알려진 바이다. 하여 가오카오에 앞서 예비수험생들은 금속단추나 금속고리가 있는 옷을 입지 않고 금속테나 금속나사가 있는 안경을 바꿔야 했고 콘택트렌즈도 미리 검사를 거쳐야 했으며 틀니에 금속물질이 있으면 몽땅 뽑아야 됐으며, 심지어 골절된 자리를 이어붙인 쇠못도 뽑아야 했다. 중점고등중학교들에서는 모의고사를 치르면서 민감물질 빼기, 금속탐지기 지나기 등등도 모두 진행하는데, 그런 여건을 갖추지 못한 비중점학교 학생들은 준비를 잘하지 못하다나니 금속물질이 있는 옷을 입고 갔다가 금속탐지기에 걸리는 등 불미스러운 일을 당하는 것이다. 일단 금속물질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정보전달에 쓰일 수 있다는 게 커닝방지론자들의 논리다. 하긴 현대기술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하기에 시험장 부근의 전자파 차단은 기본적인 조치로 되었건만 그래도 외국의 모종 첨단기술이 커닝에 쓰일까봐 검사를 공항보다 더 엄하게 진행하니, 홍채인식장치까지 동원되는 곳도 있다. 생김새가 비슷한 사람들이 대신 시험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가오카오시험장 부근에서 학부모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차량통행이나 경적 울리기를 막는 정도가 기사거리로 되었는데, 이제는 지방 정부들이 미리미리 차량통행조절조치를 취하고, 또 위에 쓰다시피 전자파도 차단되기에 시험장 부근은 굉장히 조용하다.
가오카오 합격률과 영향력의 변화
수십 년 전에는 고등중학생의 대학시험 합격률이 10% 미만이어서 “천군만마가 외나무 다리를 건는다(千军万马过独木桥)“라는 말이 나왔고 대학을 졸업하면 안정된 직장과 괜찮은 월급이 보장되었기에 대학에 가려고 애를 쓰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2017년에는 대학입시율이 81%를 윗돌아 대다수 입시생들이 대학에 가게 되고 현실적으로 대학졸업생은 물론 석사학위를 얻은 사람들도 직업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대학졸업증은 예전처럼 신분과 지위를 보장하는 만능증서가 아니라 남들보다 별로 떨어지지 않는 정도의 수준임을 말해주는 증명서로 변했으니, 이는 운전면허증이 오랜 기간 확실한 밥통의 보장이었으나 근년에는 생활필수품(?)정도로 인식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도 왜 가오카오는 그처럼 매력을 가져 엄격한 커닝방지조치들이 취해짐에도 불구하고 갖은 커닝수단이 동원되니 외인들이 보기에는 비이성적이다.
그러나 아무리 대학생들이 늘어나더라도 대학들 사이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하기에 어느 중점대학에 붙었느냐는 본인과 부모들의 자랑거리일 뿐 아니라 경력소개에 학력과 졸업학교가 따라다니는 중국의 특성상 평생 영향을 끼치게 된다. 간단히 이번(一本1본), 얼번(二本2본), 산번(三本3본) 등으로 나누는 대학등급은 수험생들과 부모들 그리고 학교와 지방들의 1류대학 진입의욕을 북돋운다.
고등학교들이 중점대학합격률을 자랑하고 지방 교육당국들도 1류 대학에 보낸 학생들이 많은 걸 자랑거리로 삼는 현상이 수십 년 지속되었는데, 이제 와서는 중점대학합격률 선전, 각 지방 언론들의 가아카오장원(수석) 선전 등을 정부가 금지시켰다.
하기는 현급 장원, 시급 장원들은 물론, 성급 장원들도 가오카오에서 소문냈을 뿐, 뒷날 별 볼일 없음이 수십 년째 거듭 증명되므로 그런 금지는 가오카오의 비정상적인 과열현상을 막는데 좀이나마 도움은 된다. 허나 예전처럼 공개적으로 광고나 선전자료에서 자랑하지 못하더라도 각 지방마다 어느 학교 졸업생들이 거의 모두 중점대학에 가느냐는 널리 알려진 바이고 암암리 선전 예컨대 모바일 위챗(중국판 카카오톡) 등을 통한 선전도 진행되기 마련이므로 1류대학을 향한 열은 이후에도 지속될 것이다.
다행스러운 건 “한 번 시험으로 평생이 결정된다(一考定终身)”는 현상이 차차 변해 금년에 가오카오에 참가한 “00후(2000년 이후의 세대)”들에 대해서는 가오카오가 아버지 세대들만큼 중요하지는 않다고 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한다.
또한 출생율 변화에 따라 가오카오 참가자수가 변하게 되고 대학들도 학과를 설치하거나 취소하게 되므로 가오카오가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도 달라지게 된다.
그리고 예전에는 올림픽수학경기성적이나 체육, 예술 등 특기(중국어로는 터창썽特长生특장생)를 가산점에 많이 넣어주었는데, 이제는 가산점이 줄었다. 정부의 개혁조치로 특기 학원들이 상당수 문을 닫게 되었다.
가오카오에 대한 비판과 불만
가오카오의 폐단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현재 제도로는 “한먼쉐즈(寒门学子가난한 집의 학생)”이 시험으로 신세를 고치는 현상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었다면서 중점학교로 가고 유명학원에 다니면서 죽기내기로 공부하여 중점대학에 가는 게 결국에는 중산층 이상 가정 자녀들이라고 지적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그런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고, 계층고착은 중국 사회의 근간을 흔들 위험이 다분한 폭탄이라는 것이다.
전국통일시험제도와 합격방식에 대한 불만도 많다. 시험은 통일적으로 치르지만 각지의 합격선(중국어로 录取线녹취선)은 다르다.
우선 교육이 발달한 고장의 녹취선은 높고 교육수준이 낮은 고장의 녹취선은 낮은데, 이는 워낙 각 지방의 학생들이 대학교육을 받을 기회를 대체로 균등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이나, 악용된지 오래다. 예컨대 허난성(河南省하남성)과 안후이성(安徽省안휘성)은 잇닿은 성인데 허난성의 녹취선이 훨씬 높으니, 처음에는 허난성의 재수생들이 안후이로 옮겨가 가짜 호적을 만들어서 시험치는 현상이 생겼고 뒤에는 아예 허난성에서 대학에 갈 가망이 적은 학생들이 고1이나 52시기에 안후이로 옮겨가 공부하는 바람이 불었다. 안후이의 학교들은 돈을 버는 동시에 대학합격률을 올리게 되니 반겼지만, 안후이 본토 학생들은 자신들과 어울리지 않고 공부만 잘하는 외지 애들이 자기들의 대학공부기회를 빼앗아간다고 적개심을 드러냈다. 가오카오를 위한 이적현상은 심지어 민족 바꾸기마저 만들어낸다. 소수민족지역의 교육수준이 보편적으로 낮으므로 그 점을 이용하려는 것이다. 단 조선족은 워낙 교육열과 교육수준으로 소문났기에 조선족 집거지역으로 들어와서 괜히 골탕 먹는 애들은 없다.
다음으로 대도시 중점대학들의 지방보호조치들도 녹취선의 특수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예컨대 베이징 학생들은 현지 대학 녹취선이 상당히 낮고 외지 학생들은 상당히 높아 베이징대학 동기생들의 점수차이가 수십 점인 경우도 드물지 않다. 하여 베이징의 중견간부가 중학생 아들의 숙제를 풀어주지 못해 쩔쩔 맬 때 가사도우미가 쉽게 풀더니, 내가 쟝수성(江苏省강소성)사람이 아니었더라면 베이징대학에 다녔을 텐데라고 탄식했다는 따위 유머도 생겨났다.
이밖에 대학에서 배운 게 뭐냐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산먼간부(三门干部3문간부)”라는 말이 있는데 집문(家门), 교문(校门)을 거쳐 단위 문(单位门)에 들어와 공부경력만 있을 뿐 사회실천이 없는 공무원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공무원제도가 없을 때에도 “산먼(3문)”현상은 공장과 회사들에서 웃음거리로 되었다. 십여 년 공부만 하다나니 시험만 잘 칠 뿐 다른 능력이 없다고 말이다. 오히려 일찍이 사회생활을 한 사람들이 종합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데, 그렇다 해서 대학에 갈 기회를 포기하라고 사람들에게 요구할 수도 없으니, 이래저래 모순이 많다.
청년들의 발전방향
한국에서는 시진핑(습근평) 중국 주석의 경력을 소개할 때 늘 청년시절에 산시성(陕西省섬서성)의 농촌으로 하방(下放)되었다고 쓰는데, 정확한 표현이라 할 수 없다. 하방(중국어로 샤팡)은 당년에 간부들에게 해당되는 말이었고, 청년 시진핑은 하향지식청년(下乡知识青年)이었다. 조선(북한)에서는 도시사람이 농촌으로 가는 걸 “농촌 진출”이라고 표현하고, 중국에서는 :“쌰샹(下乡 시골로 내려가다)” 혹은 “쌍싼쌰샹(上山下乡상산하향, 산으로 올라가고 시골로 내려가다)”이라고 표현했다. 워낙 일정한 교육을 받은 청년들이 농촌으로 가는 현상은 1950년대부터 소규모로 있었으니 고향에 돌아간 사람은 “꾸이썅즈스칭녠(归乡知识青年귀향지식청년)”, 연고가 없는 농촌으로 간 사람은 “쌰썅즈스칭녠(하향지식청년)”이라고 불렀으며 전국적으로 이름난 모범인물들이 나왔다.
하향이 한동안은 자발적인 행동이었다가 1966년에 시작된 문화대혁명 기간에 전국적인 운동으로 발전했다. 이에 대해 찬반양론이 극명한바 반대론자들은 “한 세대 청년들의 청춘을 낭비했다”고 비판한다. 허나 그 운동은 마오쩌둥(모택동) 주석이 내놓은 “광활한 천지에는 할 일이 많다(广阔天地,大有可为)”와 “지식청년들은 농민들의 재교육을 받아야 한다(知识青年应该接受农民的再教育)”” 등 이유를 내놓고도 인구와 직장의 심각한 모순이라는 원인이 존재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기 전의 수십 년 지어 근 백 년 동안 중국의 인구는 4억 명 선에서 오르내렸다. 전란과 천재지변들이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력한 중앙정권의 출현과 안정된 사회환경, 의료수준의 제고 등으로 하여 10여 년 사이에 중국인구는 급속히 늘어났으니 몇 해 사이에 5억을 넘기고 1960년대 초반에 6억을 넘겼으며 1960년대 후반에는 7억으로 육박했다. 당연히 건국초기부터 태어난 사람들 때문에 늘어났는데, 2억 명 이상 새 인구 가운데서 도시 청소년들이 수천만을 헤아렸다. 헌데 그 시기 중국의 도시들에는 공장, 기업들의 수자가 제한되었기에 그 많은 청년들을 받아들일 일자리가 부족했다. 1960년대 말에 대규모 하향운동이 벌어진 건 바로 건국 이후 태어나서 교육을 받은 청년들이 대규모로 사회에 나오게 되었는데 보낼 데가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 중국의 80~ 90%를 차지하는 농촌은 문화, 기술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일손도 모자랐으니, 기초교육을 받은 청년들이 얼마든지 필요했다.
원래 계획에 의하면 전국 인구와 도시 기업들의 변화에 따라 일정한 수량의 하향지식청년들을 도시에 재흡수시키면서 10여 년 뒤에는 하향운동 규모를 줄이고 나아가서는 운동을 중지하기로 했다. 허나 1970년대에 지도자들의 서거를 비롯한 여러 가지 변수가 생기면서 결국 청년들의 자발적인 대규모 귀환이 생겨났고 비정상적으로 운동이 끝났다.
1977년 대학입시제도의 부활로 중국 청년들의 제1진출목표는 대학이 됐고 낙방하면 군대 가기가 목표로 되었으며(물론 처음부터 군대에 가고 싶어 고등중학교 시절에 군대신체검사를 마치고 군에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군대가기 싫거나 군대에 가지 못하면 공장에 들어가는 게 꿈으로 되었다. 1980년대에는 “딩티(顶替대체)”라는 말이 유행되었는데, 이는 정년이 되지 않은 부모가 퇴직하여 생겨난 직장의 빈 자리를 자녀가 차지하는 현상을 가리켰다. 이것도 청년인구와 일자리의 모순이 만들어낸 현상이었다.
차차 연해지구의 외자기업 같은데 들어가 일하는 게 유행으로 되었고 나아가서는 자체창업도 생겨나면서 청년들의 진로는 다양해졌다. 그러나 청년인구수와 일자리수의 모순이 항상 존재하므로 그 해결책의 하나로 내놓은 게 대학교육의 보급이니 일단 4년 쯤 모순을 뒤로 미루는 효과를 거둔다. 그리고 근년에는 대학들의 종합대학화가 추진되어 예전에는 아무아무 이공대학 하면 순전히 이공과 인재들만 배양했는데, 지금은 이공대학, 석탄대학에도 중문학과, 신문학과 등이 설치되어 인문학과 졸업생들을 배출하기에, 어느 대학 졸업생이라면 즉시 대체로 어떤 일에 종사한다고 판단하던 옛 경험이 소용없게 되었다.
대학교육 즉 고등교육은 세계적으로 대개 두 가지 유형이 존재한다. 하나는 엄격한 입시제도로 우수한 인재들을 뽑아 특화교육을 시켜 엘리트로 배양하는 유형이고, 하나는 입시제도가 느슨하거나 아예 무시험합격으로 희망하는 청년들을 100% 대학에 받아들이나 졸업자격시험은 엄격히 치러서 대학의 명예를 지키는 유형이다. 중국의 경우는 전에 첫 유형이다가 근년에 두 번째 유형으로 변해가는 과정에 처한 듯하면서도 졸업은 쉬우니 꼭 어느 유형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북의 경우
조선의 경우를 살펴보면 전에는 첫 유형이 분명했는데, 요즘에는 종합대학들이 늘어난다니까 이러다가는 두 번째 유형으로 접근하지 않겠나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전에는 중학교를 졸업하면 학급의 남학생들 전체가 “조국보위초소”로 떠나가는 게 당연한 일로 되었다는데 이제 반도의 평화체제가 굳혀지면 군대수도 대폭 줄이게 된다. 그러면 군에 꼭 가고 싶더라도 가지 못할 청년들이 생겨나기 마련이고, 군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야 되는 청년들이 많아진다. 전에 중학교 졸업 이후 직접 대학에 붙으면 “직통생”이라고 불렸는데, 이후에는 직통생들이 늘어나고 군복무를 마친 뒤 대학에 추천받은 “제대군인대학생”들의 비례가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된다.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는 전락적 노선의 채택으로 시험을 잘 치는 사람들이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가 늘어나고 출세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건 단순히 반기기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시험과 교육에서 조선이 중국의 경험과 교훈을 참조하여 좋은 건 받아들이고 나쁜 건 미리미리 경계하기를 바란다. 특히 대학시험의 커닝과 방지에서 중국이 걸었던 굽은 길을 피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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