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의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나 헤어짐과 같은 내 삶에 커다란 변화와 시련이 닥쳤을 때, 내 자신을 잃을 것만 같은 지독한 슬픔에 휩싸인다 하더라도 하늘은 높고 세상은 여전하며 나 자신 또한 그러하다...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밥을 먹고.. 똑같은 일상을 살아간다..
S#1. 학교 안.
운동장에는 사람들이 뛰어다닌다. 드문드문 깔깔대며 발걸음을 재촉하는 학생들이 보인다. 비둘기는 먹이를 찾아
날아다니고 나뭇가지는 앙상하다. 그리고 시린 겨울하늘..
S#2. 하영의 집. 거실 화장실
하영은 거실 쇼파에 길게 누워 TV를 본다. 뱃속이 불편한지 연신 배를 움켜쥔다. 결국 안되겠는지 화장실로 뛰
어간다. 부엌에서 상을 차리던 엄마가 하영을 보며 말한다.
엄마: 또 변비야?
하영: (약간 지르듯이)어
급히 화장실로 들어가 앉는다. 그러나 막상 들어가자 아무리 힘을 줘도 통하지 않는다.
한동안 애써보던 하영은 이내 포기한 듯(시간이 해결해주겠지..) 편안히 앉아 화장실 이곳저곳을 바라본다. 한쪽
벽 위쪽(눈에 잘 띄지 않는 타일과 타일 사이에 조그만한 글씨)에 시선이 멎는다.
하영: 저게 뭐야..
물을 내리고 옷을 추스리고 일어선다. 일어서서 그곳에 쓰여있는 것을 읽는다.
"승재"
엄마: 하영아! 밥먹어.
하영: (외친다.) 알았어.
식탁을 향해 걷는다.
S#3. 하영의 집. 부엌
엄마, 아빠는 이미 식사를 시작했다. 먹는데 집중하는 모습. 우물우물 씹으며 끊어지듯 말을 이어간다. (대화는
대체로 서로를 바라보지 않은 채 이루어진다. 바라보는 곳을 정하자.)
엄마: (하영을 흘낏 바라보며)성공했어?
하영: (수저를 들며)아니.
엄마: 며칠이나 됐는데?
하영: 몰라. 한..5일 됐나봐.
엄마: (밥 한숟갈을 떠먹으며)밥먹고 변비약 먹어.
아빠: 그런거 말고 (김치찌게를 한수저 떠 입에 넣으며)한약 한첩 지어봐.
엄마: 그럴까. 그..저번에 결혼한 희숙이(또 한숟갈 입에 넣는다.)
아빠: 그그.. 방이동 사는 당신 친구 딸 ?
엄마: (우물거리며)응. 희숙이 신랑이 한약방 한대.
아빠: 잘됐네. (나물 한젓가락 집는다.)
엄마: 이참에 당신도 한첩 먹을래?
아빠: 좋지.
엄마: 아참, 아까 연락왔는데( 포기김치를 쭉 ??어 입어 넣으며 말한다.)
지은이네 고모 결국 뇌사 판정 받았대.
아빠: (김을 싸서 입어 넣고 우물거리며 말한다.)의식 찾았다고 하지 않았어?
엄마: (찌게 국물 한 숟갈 먹고) 원래 그런거래. 왜 죽기전에 정신 또렷해진다잖아.
하영은 말없이 국만 퍼다 먹는다.
(insert)
7년 전. 20살의 하영과 승재. 하영의 집 거실.
쇼파에 하영이 검은 띠로 눈을 가리고 앉아있다.
하영: 뭐하는 건데?
하영에게서 멀어지며
승재: 흔적남기기.
엄마: 그 집 진짜 안됐네. 응. (밥그릇을 깨끗이 비워내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막내가 아직 중학생인가 그럴걸. (
밥 한그릇 더 퍼온다.)
아빠: (엄마를 쳐다보며) 또 먹게? 엊그제도 바지 안 맞는다고 하지 않았어?
(insert)
하영의 방. 하영은 침대 위에 무릎대고 앉아 벽을 양손으로 짚고 쓰여있는 글씨를 본다.
승재는 침대에 살짝 걸터앉아있는 모습.
벽에는 "승재1"라고 적혀있다.
하영: (승재를 바라보며)이게 뭐야~
승재: 4개 더 있어.
아빠: 그 양반이 그 철강 쪽에서는 아주 잘나가던 양반이었어.
(아내에게 밥그릇을 내밀며) 나도. 밥이 잘됐다.
엄마: 그치? 나도 계속 먹히네. 저번에 왜 아산 갔다가 사온.. 그 쌀이야.
아빠: 아 이게 그거야?
(insert)
거실 바닥을 기다가
하영: 진짜 못찾겠어. 다 찾은거 아냐?
승재: (바닥에 앉아서 하영을 바라보며)하나 더 있다니까.
엄마: 요즘은 토..익인가 그거 시험 쳐야 한다면서. 너네 회산 필요없대?
하영: 그렇잖아도 새벽에 학원 다닐려고.
(페이드 아웃)
(페이드 인)
S#4. 회상씬. 조촐한 상갓집
조촐한 상이 차려져있고 영정이 놓여있다. 20대 초반의 남자아이의 얼굴.
친구로 보이는 젊은이들 5~6명이 차례로 향을 피운다. 하영은 쓰러질 듯 친구 두명의 부축을 받으며 간신히 서있
다. 승재의 어머니는 한쪽 끝에서 오열한다. (역시 누군가의 부축을 받고 서있는 모습.) 하영은 승재의 어머니께
다가간다.
하영: (손을 잡으려 한다.)어머니..
그러나 승재의 어머니는 손을 매정하게 뿌리치고 하영을 원망스런 눈빛으로 쳐다보다 이내 돌아선다. 친구 둘은
승재 어머니를 안아드리며 위로하고 나머지는 하영에게 간다.
친구1(여): (하영을 안으며)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잖아.
하영은 울지 않으려 입술을 깨문다.
(디졸브)
한쪽 구석 친구 두명(친구1,친구2)과 함께 쭈그려 앉아있는 하영이 보인다.
한 친구의 어깨에 몸을 기댄 채 멍하니 사람들을 바라본다. 한참을 울었는지 수척한 얼굴.
친구1(여): (하영을 돌아보며) 뭣 좀 먹을래?
하영, 고개를 가로젓는다.
친구2(여): 너 며칠째 굶었잖아. 뭣 좀 먹어.
친구3(남),4(남),5(여): 같이 가자. 요기라도 해야지.
하영: (고개를 가로 저으며)너희들이나 갔다와.
친구들이 하영을 데려가려고 실랑이를 피는 장면을 먼 발치에서 잡는다.
결국 포기한 듯 하영을 두고 모두 나간다.
두런두런 사람들의 소리가 들린다.
남자1: 승재 녀석 어쩌다 이리 됐대? 젊은 녀석이..
남자2: 교통사고지 뭐. 여자친구 만나러 가다 이리 됐다는데..
하영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쏟아져 내린다.
꼬르륵.
하영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될 정도의 크기.
사람들은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본다.
하영은 당황한 듯 일어서서 눈물을 닦고 허겁지겁 뛰쳐 나간다.
S#5. 이어지는 회상씬.
문을 열고 집으로 돌아온 하영. 허겁지겁 부엌으로 뛰어 들어온다.
전기 밥통을 껴안고 급하게 주걱으로 밥을 퍼 입안에 넣는다.
어느 정도 허기가 채워지자 이번에는 밥그릇에 밥을 담고 수저를 꺼내 식탁으로 간다.
찌개도 데피고 냉장고에서 이것저것 빠짐없이 꺼내 상을 차린다.
밥 한 공기를 다 비워낸 하영은 이내 허탈하게 웃는다.
(페이드 아웃)
(페이드 인)
S#6. 씬2의 하영의 집. 저녁식사.
아빠: 어. 오늘 잘 먹었다.
엄마: 그러게. 반찬도 없는데. 잘 먹네.. 좀 더 드실래?
아빠: 아니 더는 못 먹겠어.
하영: 엄마. 나도 한 그릇 더 줘.
엄마: (기쁜 듯이) 그래. 밥 참 맛있지?
하영: 응 너무너무 맛있어.
S#7. 씬 1과 동일.
다시 사람들의 모습과 주위 풍경, 그리고 하늘을 보여주며 끝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