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숙소를 나와 마지막밤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지냅니다.
3명이 공동대표로 투어와 게스트하우스 2개를 운영하는 ‘불곰나라’
100년전 지어진 벽돌건물은 계단과 벽이 낡고 오래된 모습이었으나, 내부는 널찍하고 깨끗하고 리모델링을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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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불곰나라 대표중 한분이 안내하는 도보투어를 하기로 합니다.
일제 강점기 일제의 수탈을 피해 우리민족이 이주해와서 터를 잡고 산 곳.
이후 애국지사들이 망명하여 피와 목숨으로 독립운동을 한 땅.
블라디보스톡과 우리나라와의 관계, 독립군 이야기들.. 벌써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우리가 늘 오고가던 길에 있는 철대문이 굳게 닫힌 집.
바로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이 살던집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일제강점기때 많은 조선인들이 블라디보스톡으로 이주해 왔는데
최재형 선생도 노비의 아들로 태어나서 아버지를 따라 블라디보스톡에 왔다가 이곳 선장의 양아들로 들어가서
세계여행을 두번 하면서 견문을 넓히고 사업을 해서 많은 부를 쌓았다고 합니다.
이후 조선인을 위한 신문을 만들고 학교를 세우고,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안중근의사의 의거를 모의하고, 평생모은 전재산을 모두 독립자금으로 지원했으나
안중근의거후 일본의 악랄한 수색으로 잡혀 총살당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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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한-러 수교 150주년 기념비,
1864년부터 시작한 한인 이주 150년의 역사를 말해줍니다.
블라디보스톡이 자매결연을 맺은 도시들을 표시한 공원.. 부산과 인천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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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변은 처음 한인들이 이주해와서 만든 집단거주지여서 거리이름도 ‘개척로’라 불렸었으나
이후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하는 고초를 겪었던 곳입니다.
강제 이주 당했던 당시 예닐곱살아었던 어느 할머니의 증언입니다.
영문도 모른채 옷은 입은채로 3일간의 도시락만 준비해서 기차역 광장에 모이라는 통지서를 받고 모인 사람이 17여만명.
50명이 정원인 기차한칸에 200명을 태우고 3일간 먹을 떡만 싸가지고 출발한 기차는 50여일을 달려갔다고 합니다.
기차안에서 죽은 어린아이, 노인, 자신의 부모이고 자신의 아들딸을 창밖으로 던지며 달리고 달려서..
허허벌판 중앙아시아에 내리게 됩니다.
새옷을 입고 명절에나 먹을수 있는 떡을 싸들고 부모님 손잡고 소풍가듯 처음 기차를 탔던 설레임..
생애 가장 행복한 날이었던 그 아침을 아직도 기억한다는 할머니..
기차안에서 이해할수 없는 장면을 보고 당황했던 기억, 불안감.. 우리가 상상한 이상으로 가슴아픈 현실이었습니다.
얼마되지 않은 우리의 과거..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야기..
우리 모두 가슴이 먹먹하여 말을 하지 못합니다.
한인정착촌이었던 길건너에 공설운동장인 디나오스타디움이 있습니다.
이 역사적 장소에서 2004년 ‘발해를 꿈꾸며’를 노래한 서태지가 공연을 하고 한인회에 수익금을 모두 후원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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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로의 100년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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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개척로 모습.
곳곳에 우리 민족의 항일운동과 관련된 건물이 아직도 그자리에 그대로 서 있습니다.
분하고 억울한 민족의 한많은 사연을 아는듯 모르는듯..
일제때 은행이었다가 지금은 연해주 주정부 검찰청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이 있습니다.
고종의 충복인 우덕순열사가 황실망명정부를 준비하면서, 이 은행 지하에 고종의 황금을 보관했었는데 아무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직도 러시아는 그 황금을 찾고 있다고 합니다.
황실망명정부는 계획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지요.
안중근 의사가 권총을 산 굼백화점으로 갑니다.
하얼삔으로 가기전 거사에 사용할 벨기에산 리볼브 권총 2자루를 산 곳.
지금은 패션브랜드 ‘ZARA'가 사용하고 있습니다.
건물 곳곳에 아직도 일본의 흔적이 남아있고, 일본은 옛날 일본이 차지했던 건물에 일본말로 옛이름을 새겨놓는다고 합니다. 우리도 우리말 옛이름을 새기려고 하는데 일본이 러시아 정부에 압력을 넣어 방해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불곰나라'는 블라디보스톡에 항일운동과 한민족의 기록을 남기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고 합니다.
여기는 아직도 독립운동 중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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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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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후..
영화 '왕과 나'로 유명해진 할리우드 배우 율부리너의 생가로 갑니다.
‘사운드 오브 뮤직’과 같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모았던 뮤지컬이지요..
스위스계 러시아인 할아버지가 두만강가 체벌권을 따내 사업을 하여 큰부를 쌓았습니다.
그가 태어난 집도 할아버지가 직접 지은 거대한 대저택입니다.
볼세비키 혁명후 귀족의 몰락으로 프랑스로 갔다가 미국으로 건너간 배우.
항상 어린시절 여름휴가를 갔던 함경도와 고향인 블라디보스톡을 그리워했으나 끝내 가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의 영화를 볼때마다 화면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던 불타는 눈매, 화려한 여성편력을 자랑했지만,
지금 그는 잿빛얼굴로 꼼짝못하고 서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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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탈리아 건축가가 지은 율브리너집 올라가는 계단.
투어를 마치고 그저께 찾다가 찾지못한 독립운동가 조명희 선생 시비를 찾아갑니다.
불곰나라 대표께서 알려준대로 독수리전망대 육교건너 붉고 흰 건물의 뒷마당에 있습니다.
문을 잠궈놔서 들어가 볼수는 없었지만 담밖에서도 우리글씨로 쓰인 시비가 보입니다.
'포석 조명희'
이국만리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44세의 젊은 나이에 총살을 당한 시인.
아무도 돌보지 않아 뒷마당에 외롭게 서 있는 시비.. 한번 쓰다듬어 주고 싶었는데..
그나마 선생의 시비를 멀리서라도 보고 갈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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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을 지배하라’라는 뜻을 가진 블라디보스톡
우리나라와도 가까워 그리 낯설지 않은 곳,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 이야기가 살아있는 곳,
블라디보스톡은 1864년부터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가난과 굶주림을 피해 이주해와 터를 잡고 살았고
일제탄압이 심해지며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대일항쟁의 의지를 불태우며 피와 목숨으로 대한민국만세를 외쳤던 곳,
아직도 그 삶의 흔적과 그 후손들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올해, 20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과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의
블라디보스톡 여행은 이렇게 마칩니다.
경이(驚異)
어머니 좀 들어주서요
손잡고 귀 기울여 주서요
저 담 아래 밤나무에
알밤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뚝'하고 땅으로 떨어집니다.
우주가 새 '아들'낳았다고 기별합니다.
등불을 켜가지고 오서요.
새 손님 맞으러 공손히 걸어 가십시다.
- 조 명희 -
첫댓글 와 정말 좋네요 ㅜ 특히 100년전 사진이 인상깊네요 ㅋㅋㅋㅋ
아이들 사진만 보다가, 못지않게 귀염넘치는 선생님들 사진을보니 이것또한 재미가 쏠쏠하네요ㅎㅎ 실감나는 여행이야기 잘보았습니다~
걍제이주 할머니의 이야기에 가슴이 메여집니다.. 잊혀지지 않아야 하는데 뒤돌아서면 잊혀지는 소중한 분들을 여울각시글과 행보를 통해 다시한번 마음에 새겨보려 노력합니다. 건강하고 소중한 자극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