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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소식이 뜸했던 강선배의 전화를받았다.
그동안 회사일과 집안일에 정신없이 살다보니 명절이 지나고
해가 바뀌어도 찾아뵙지 못한것이 못내 미안한 마음이들어
수화기를 들고 안부부터물었다. 최근에 만난것이 강선배의
고추농사 수확때 일손을 거들어준다고 내려가서 실컷 물가로
낚시만 다니다 올라온것이 마지막이었으니 벌써 두해가 거의
지나가고 있었다.
강선배는 언제 시간있으면 한번 꼭 들러달라고 하면서 걱정스런
말투로 3년전 우리집에서 데리고간 누렁이에 대해 말을했다.
누렁이는 3년전 봄에 고흥에 낚시를 가서 현지에서 만난
낚시꾼에게서 선물로 받은 강아지의 이름이다.
당시,고흥의 한적한수로의 옆자리에앉아 같이 낚시를하며 우연히
나눈 대화에 서로 호감을느껴 소주를 마시고 의형제를 맺은
그는 다음날 구태여 자기집에가서 식사를하고 가라며 끌고
가서는 푸짐한 시골밥상을 내놓고 넉넉하고 수수한 얼굴로
환대하고는 다음에도 근처에 낚시를 오면 꼭 들려달라고 당부했다.
당시 그의 집뜰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강아지 세마리를 보았는데
그중에 한마리를 데려다 키우라고 하며 보기엔 평범한 잡종개 같지만
어미개가 고흥의 투견대회에서 세번이나 우승한 명견의 새끼라고 했다.
투견꾼들이 가끔씩 찾아와 비싼가격으로 강아지를 팔라고했지만
그럴때마다 거절했다고 했다.
어미개를 끔찍히 좋아했던 그는 한달전에 핏볼(투견)대회에
새끼를 낳은지 보름만에 무리하게 출전시켜 죽게한 죄책감에
새끼는 투견으로 키우지않고 맘씨좋은 주인에게 사랑을 받으며
편한하고 행복하게 살길바란다며 나에게 충분히 그러할 사람
같다며 개를 선뜻내주었다.
얼떨결에 강아지를 데리고 집으로와서 키울생각을 하니 참으로
암담했다. 일반적으로 아파트나 가정집에서 키우는 조그만한
애완견도 아니고 태어난지 두달도 안된 강아지가 벌써 왠만한
애완성견 만큼의 크기를 지녔고,생김새또한 윗입술이 축처진것이
한눈에 보아도 싸움견이나 사냥개의 모양새였다.
아내는 저런 강아지를 어떻게 집안에서 키우냐며 난색을 하고
어서 돌려주라고했지만 혈통만큼은 좋은놈이라며 키우고 싶다고
우겼다. 그렇게 두어달을 집안에서 강아지를 키웠다.
이름은 그놈의 털색깔에 맞게 누렁이라고 지었으며,
아침마다 새벽같이 일어나 아파트단지를 돌며 운동을 시켜야했다.
놈이 좁은집안에 잠시도 가만있지 않으려 하는것이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되었지만 잠시만 한눈을 팔면 신발장의 운동화며
구두,심지어는 침대의 시트까지 죄다 물어뜯어 조각조각 내버리고
마는것이었다.
먹는것또한 커다란 양푼이에 한대접씩 먹고도 항상 아내의뒤를
따라다니며 먹을것을 달라고 칭얼댔다.
당시,나는 시장골목의생선가게나 정육점주인에게 누렁이를 먹일
고기들을 거의동냥하다시피 얻으러 다녔다.
그래도 퇴근하고 집에들어가면 현관부터 달려나와 꼬리를 흔들며
좋아라 펄쩍펄쩍 뛰며 반기는녀석을 보면 항상 흐뭇한감정에 놈을
쓰다듬어주는일은 또다른작은행복으로 나에게 자리잡았다.
그러나 놈은 갈수록 몸집이 커지고 행동또한 힘이 넘쳐 집안
에서 아내혼자 녀석을 감당하기에 벅차기 시작했다.
한참을 고민한끝에 강원도 인제에 계신 강선배에게 누렁이를
보내기로 했다.
아마도 농사일도하고 돼지도 사육하는 강선배에게 누렁이같은 듬직한
충견 한마리쯤은 있어야 되지않을까 하는생각에 연락을하니 흔쾌히
승락하며 좋아라 했다.
놈을 용달차에 실어 강선배집에 데려다 놓고 돌아서려니 괜히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정이 들었던것인가?....
놈도 상황판단을 했는지 낑낑대는 울음소리를 내며 까만 눈가에
물기가 흘러나왔다...
" 여기서 새주인말 잘듣고 있거라..."
"말썽 피우지말고..."
그말을 마지막으로 누렁이와 나와의 인연은 끝이났다.
강선배는 고맙다며 누렁이를 마음에 들어했다.
그렇게 놈을 보내고 2년이넘는 세월이 흐르면서 누렁이에대한
자취와 기억도 조금씩 퇴색되어갔다.
그런데,강선배가 전화를한것이다. 누렁이가 달아났다는것이다.
어떻게보면 그리 커다란일이 아니었지만 강선배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긴장을 하고있는것이 틀림없었다.
"이봐 동생.. 혹시 그 누렁이말이야, 보통개가 아닌것 같은데 말이지..
혹시, 자네 그개의 내력에 대해 아는것이 있는가?.."
나는 누렁이의 혈통에관해 강선배에게 자세히 말해준 적이 없었고
나자신또한 어미개가 투견이라는것 밖에 아는것이 없었다.
무슨일인지 궁금해하는 나에게 강선배는 시간이되면 주말에 한번
내려오라고 말을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주말오후에 친구놈아들 돌잔치가 있었지만 심상치않은 강선배의 부탁에
토요일 오전근무만 마치고 곧바로 인제를 향해 차를 몰았다.
고속도로가 주말에 항상 병목현상을 나타낸것이 어제오늘일이 아니지만
월요일이 삼일절이라 모처럼의 연휴까지 이어지므로 체증또한 더더욱
심할것이 예상되어 46번 국도를 따라 구불구불한길을 달렸다.
차창밖으로 펼쳐지는 강원도의 험준한 산세와 돌밭을 흐르며 구비치는
내천의 차가운 모습에도 어느새 봄의 향기를 맡을수 있다면
조급한 마음에서 일까?....
지난겨울의 길고도 긴 혹독한 추위와 폭설에 움추린마음들이
조금씩 풀어지는것을 느꼈다.
유독 나를 매우따랐던 누렁이에게 무슨일이 있었을까?..
올겨울 맹추위에 집을 나와서 여기저기 헤메고 나닐 누렁이를 생각하니
못내 그를 떠나보낸 죄책감도 떨칠수 없었다..
몇시간을 차를달려 거의 날이 어두워질때쯤 내린천을 지났다..
강선배의 집은 인제시내를 지나 몇번의 산모롱을 넘어 소양강줄기
가 내다뵈는 산골에 위치한 두무리에 있었다. 30여분을 바쁘게
달려 강선배의 집에 도착했을때 벌써 짙은어둠이 마을에 깔려
있었다.
강선배는 반가운 기색으로 고생했다며 안채로 안내해주었고,
내가올줄알았는지 형수님은 부엌의 아궁이에 이미 장작불을 지피고
구수한 닭고기요리를 하고 계셨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들여온 술상앞에서 강선배는 누렁이에 대해
심각한 말을 하고있었다.
"동생,요즘 내가 그놈의 개때문에 골머리를 썩는다네..
그개가 필시 영물임엔 틀림없는거 같어..."
강선배는 누렁이를 데리고 온날부터 지금까지 그놈이 자기한테
한번도 꼬리치며 좋아하는것을 본적이없다고 했다.
지금껏 많은개를 키워봤지만 주인이 바뀌어도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고 낯이익으면 저한테 먹이를주는 사람을 따르는것이
일반적인데,누렁이는 전혀 달랐다고 했다.
묶어놓은 개줄을 물어뜯는데 거의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먹이를 줘도 곁눈질로 한번 쳐다보고는 냄새도 맡지않고 자기집
으로 들어가 꼼짝도 하지않았고,밤이면 목을 길게빼어 우는소리는
어떨땐 섬짓한 느낌마져 들었다고 했다.
두어달이 지나고 거의 먹지를 않아 뼈만남은 그놈이 곧 죽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무슨생각을 했는지 어느날 갑자기 밥그릇을 비우며
무섭게 먹기시작했다고 했다.
강선배는 이제 놈이 환경에 조금씩 적응을 하려나보다 생각하고
기쁜마음에 누렁이와 산책을 하러나갔는데, 마을앞 논두렁을지나
옥수수밭고랑 앞에서 멈춰서버린 누렁이의 눈빛이 심상찮음을
느꼈는데..그건,먼 발치에 나타난 들개의 냄새를 맡은것 같다고
했다.
오래전부터 이마을 앞산엔 주인잃은 떠돌이개들이 십여마리씩
떼지어 다니며 자생하는일이 발생했다.
그러한 이유는 산너머에 개사육을 전문으로 하는 농가가 몇가구있어,
그곳에서 도망치는 개들이 번번히 산속으로 숨어들어 작은
야생동물이나 쥐,또는 새들을 잡아먹으며 야생의 생태계가
형성되었다고 했다.
뿐만아니라 그숫자가 몇년전에는 너무많이 불어,들개들이 마을로
내려와 가축을 잡아먹는일이 빈번해지자 마을사람들은 급기야
들개잡이 전문 사냥꾼을 써서 거의 소탕을했었는데 그래도 살아
남은 놈들이 숫자를 불리고 다시 조직적으로 돌아다닌다고 했다.
그도 그럴것이 이마을의 산형세와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풍부한
수풀과 잡목들은 그들의 먹이가 될수있는 야생동물의 숫자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일게다.
그러한 들개를 발견한 누렁이는 강선배의 손을뿌리치고 엄청난
속도로 놈들의 뒤를 쫒아갔고,산속으로 들어가버린 들개를따라
모습을 감추었다고 했다.
강선배는 누렁이를 부르며 산속을 뒤지기 시작했고 몇시간이
지난후에야 누렁이를 발견했는데...순간, 너무놀라 그자리에
주저앉았다고 했다....
산비탈 아래의 협소한계곡 수풀사이에서 발견한 누렁이의 입가는
온통 피로 물들었고, 주변에 널부러져있는 서너마리의 들개들은
끔찍할 정도로 찢겨져 죽어있었다. 누렁이를 데리고 오면서,
범상치않은 개라는것을 느낄수가 있었다고 했다.
그후로 누렁이에 대한 강선배의 마음은 조금씩 두려움이 생겼고
집안에서 키우기엔 너무도 위험한동물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끝에 결국 두달전에 누렁이를 마을청년들에게 팔았다고 했다.
마을청년들이 개를 사는 이유는 그들의 잔치에 쓰일 식용임을
알았지만 강선배는 어쩔수없는 상황속에서의 결정이었다며 술상
위에 잔을들어 입에 털어넣었다.
"미안허이... 동생.. 잘키우고 싶었는데 ..."
그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더라고... 청년들이 누렁이를 잡아가는날..
순순히 잘따라가더라는거야.."
"나도 이상타 생각했었지... 하지만 결국 일이 터져버렸어..."
마을청년들이 누렁이를 데리고 마을어귀 개울가근처까지 끌고
가는도중 자기를 죽이러 가는것을 눈치챈 놈이 순간적으로 돌변
해서 목에맨 줄을터뜨렸고 청년들은 개를 잡으로 몽둥이를 휘둘
렀지만 오히려 순식간에 청년두명의 팔과 다리를 물어 상처를
입히고는 건너편 산속으로 사라졌다고 했다.
그런일이 있은후 보름만에야 누렁이를 보았는데,마을회관에 갔다
가 집으로 돌아오던 강선배는 집앞 싸리문근처에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으르렁거리는 퍼런 한쌍의 눈빛을보고 기겁을하고 집안
으로 들어왔는데 놈은 집뜰앞을 어슬렁거리다 닭장문을 부수고는
수닭한마리를 물고 가더라는 것이었다.
누렁이는 몇일만에 한번씩 강선배의 집으로 야심을 틈타 내려와
여러번 그러한 행동을 한것같았다.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간 주인의 배신행위에대한 복수심이었을까?
강선배는 그러한 두려움에 누렁이보다는 덩치가 큰 도사견 두마리
를 집안에 키우기도 했는데,밤새 엄청난 싸움이 일어났고 다음날
새벽 나가보니 도사견 두마리 모두 싸늘한 시체로 널부러져 있었
다고 했다.
나는 그러한 강선배의 말을듣고 누렁이의 실체에대해 또한번
놀라움을 금치못했다.
투견의 피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누렁이....
하지만 과거의 나의품에서 자라던모습은 재롱많고 순한 일반개의
모습이었는데... 그것은 아마도 주위의 환경이 놈의 잠재되어있는
야성을 깨운것이라 생각된다.
강선배는 누렁이가 들개의무리속에 들어가 아마도 우두머리가
되었음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전에 들개무리속에 항상 선봉에 서서 돌아다니며 집단을 이끌었던
우두머리 검둥숫개의 모습이 요즘은 보이지않고 누렁이 주변으로
들개들이 몰려다니는것을 마을주민 여러명이 목격했다는 것이다.
들개들의 습성상 강한숫컷이 집단의 우두머리개를 죽이거나 쫓아
내면 다른개들이 새로운 우두머리를 따르는것이 그들의 법칙이라
는 말을 들은적이 있는것 같았다.
어제부터 사냥꾼들과 마을사람들이 누렁이와 들갤르 제거하기위해
대대적으로 산을 수색하기 시작했다고 하면서, 나에게 협조를
해달라고 했다.
나는 내가 무슨도움이 될수있겠느냐며 반문을 했으나,
들개사냥꾼의 말이 아무리 야성에 젖어버린 들개라도 첫주인의
부름엔 반응을 할거라며 누렁이를 유인해달라는것이 아닌가...
나는 마음속에서 내키지않는 부탁에 상당한 갈등을 했다.
결국 놈을버린 내가 누렁이에게 죽음의 미끼를 던져야 하는것일까...
아무튼 강선배에게 정중히 거절을 했다. 벌써 야생개가 되어버린
누렁이가 옛주인을 의식한다는것은 힘들거라며 변병을 둘러댔다.
강선배는 내뜻을 알았는지 씁쓸한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강선배집에서의 첫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느즈막히
일어났다. 벌써 전부 밭으로 일을갔는지 강선배의 집안은 조용
했고 툇마루에 보를 덮은 밥상만 덩그라니 놓여있었다.
대충아침식사를 마치고 마을을 둘러보러 길을나섰다.
산을깍아 텃밭을일구고 산개울물을 막아 자그마한 논자리도
군데군데 만들어놓은이들의 억세고 질긴 삶을 느낄수있었다.
마을어귀엔 모종을 심어놓은 비닐하우스몇동도 눈에 띄었는데,
그근처에 마을사람들이 장작불을 피워놓고 모여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다가 가서보니 모자를 쓴 두명의 사내는 어깨에 기다란총을
메고 있었고, 사냥개 서너마리가 주위를 킁킁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마도 이들이 마을주민들에게 산속의 들개들을 없애달라는
요청을 받은 사냥꾼인것이 분명했다.
그중에 한 사냥꾼은 어제 들개들을 쫓아 건너편 깊은산속까지
추격해서 두마리를 잡았으나 사냥개 세마리를 잃었다며 무척이나
상기된 얼굴로 말을했다.
" 지가 30년 넘게 산속을 다니며 늑대사냥도 했었지만 저렇게
영리한 들개는 처음 봐요..."
" 들개중에 누런개가 우두머리인것 같은데 그놈을 먼저 잡아야
하는데...." 하며 어제 일어났던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냥꾼과 그의 전문사냥개들이 들개들을 포위하며 추격하여 병풍
처럼 둘러쳐진 계곡 끝으로 몰아갔었는데, 그곳에 들개들을
몰아넣으면 거의 꼼짝없이 잡은거나 진배없다고 했다.
그런데포위망이 좁혀지자 들개들은 우왕좌왕 하며 흩어졌고
사냥개들이 덮친 두마리는 그자리에서 사살했으나 그 사이에
누런개와 다른들개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했다.
사냥개들은 뛰어난 후각으로 들개를 쫓아 계곡의 후미진 잡목수풀
속으로 뛰어들었는데 그곳은 커다란암벽과 바위가 무수히 많은데
다가 주위에 가시덤불이 얼기설기 빽빽히 들어차있어서 사람은
도저히 들어갈수 없는곳이었다고 했다.
사냥꾼인 사내는 속수무책으로 덤불속에서 물려죽는 사냥개의
비명소리만 들을수 밖에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놈들은 갈라진 암벽사이를 통과해 벌써 산기슭을 타고
어느덧 사라져 버렸다며 살기도는 눈빛으로 사냥꾼은 오늘은
기필코 그들개들을 없애겠다며 험상굿은 표정을지었다.
나는 내심 그자리를 벗어나 뚝방길을 따라 걸으며 누렁이가 영영
잡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했다.
설령,아무리 포악해졌다 해도 그놈을 이지경으로 만든 책임이
나에게 있었고,누렁이를 키웠던 기간동안 한번도 그의 눈빛을
사납게 느낀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덧 나는 마을을 벗어나
개울가의 자갈밭을 걸었다.
너무도 맑은 개울물은 물속의 조그만한 모래까지 환히 들여다
볼수있었다. 물가에 앉아 흐르는 물을 바라보고 있자니,문뜩
예전에 낚시를 했던 생각이 들었다.
마을을 돌아 산모퉁이 가장자리에 자리잡은 크지않은 둠벙에서
강선배와 나는 얼마나 많은 붕어들의 손맛을 보았던가....
그때도 날씨는 조금 쌀쌀한 늦가을이었으나 둠벙가에 물잠긴
수초사이로 찔러넣은 찌가 참으로 멋지게 올라왔던 기억을 하면서
늦어도 내일오전에는 서울로 올라가야 함으로 여기까지와서
대를 담그지않는다는것이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곧바로 강선배가 일하는 텃밭에가서 낚시를 하고 오겠노라
말하고 차 트렁크속에 낚시장비를 점검하고는 둠벙을 향해 차를
몰았다.
2년만에 다시 찾은 산기슭아래의 작은둠벙엔 별다른변화가 없어보였다.
단지 둠벙가장자리에 마른 억새풀줄기들이 무성하게 자리잡았고
물가엔 삭은 물풀들이 밀집해 있어서 어느정도 낫으로 베어내고
생자라를 다듬고나니 오히려 아늑한느낌이들었다.
초봄의 전령처럼 뚝방의 마른흙엔 쑥이 드문드문 돗아나 있었고
산새들의 맑은소리만 물가에 맴도는 한적한 둠벙에 앉아 나는
마치 소풍을 나온 어린아이처럼 들뜬마음으로 대를 펴서 가지런히
놓고는 낚시가방을 뒤져 반쯤 쓰다남은 떡밥봉지를 찾았다.
어느시기에 어느곳에서 낚시를 할수있는 기회가 생길수있다는
생각에 전에부터 버릇처럼 떡밥의 여분은 항상 가방 깊숙한곳에
보관하고 있었다.
초봄의 수초사이에는 생미끼인 지렁이가 특효라지만 그것까지
바랄처지가 아니였으므로 대충 떡밥을 묽게게어 대추알만하게
달아 두대의 낚시대를 드리웠다.
건너편에 목이 기다란 해오라기 한마리가 꼼짝도 하지않고
물속에 발을담근채 먹이를 낚아챌 채비로 서있었다.
그렇게 나와 그새는 고기를 잡으려는 행위를 서로 하고
있다는것이 우스웠다.
하지만 그놈은 생존을 위한 먹이사냥이지만 나는 순간의 짜릿한
손맛을 즐기려한다는것에 목적이 서로 달랐다.
그만큼 인간의욕구는 다양하고 그로인한 약자의 희생은
가혹할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심코 잡은 하찮은
붕어라지만 그들이 형성하는 오묘한 생태계의 사슬은 상상하는것
보다 훨씬 중요한 존재라는것을 아는이가 얼마나 있겠는가.....
30분이 흘렀다.... 미동도 하지않는 찌를 보면서 아직은 이른날씨
탓이라 생각하며 떡밥에 물을부어 더욱묽게 반죽했다.
담배한대를 꺼내물고 미끼를 새로달아 던졌다.
얼마후 두칸대의 빨간찌톱이 미세한 움직임을 보였으나 바람에
일렁이는 물결에 착시현상같아서 낚시대로 갔던 손을접고는
의자등받이에 기대어 담뱃불을 붙이려는 순간 찌가 서서히
오르기시작했다.
세마디가 넘게 올라오는 타이밍에 맞춰 챔질을 했다.
물속에서앙탈을 부리는 봄붕어의 짜릿한 몸부림은 초릿대를 통해
손바닥까지 전해졌다.
놈의 시커먼 등색깔은 둠벙의 수초색과 비슷했고햇살에 반사된
황금비늘이 눈부셨다.
건져내어 바늘을 빼고보니참으로 빛깔이 이쁜토종붕어의 모습이었다.
아가미에 상처를 입지않도록 조심스레 바늘을 빼고 다시
물가에놓아 주었더니 꼬물거리며 수초사이로 사라지는 모습이
무척이나 정감있게 보였다.
그다지 굵은씨알은 몇 안되었지만 토종특유의 찌올림은 가히 환상
적이었다.
잡아내어 놓아주면 그놈이 얼마있지않아 또 물리어올라오는듯한
고만고만한 6,7치 가량의 붕어들이 찌의 밑둥까지올려주는 힘은
이곳이 손때를 거의 타지않은 낚시터임을 증명해주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손맛을보며 8치이상의 붕어는 강선배에게드릴
심산으로 살림망에 담았고 어느덧 해는 산자락에 걸리더니
주위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심심찮은 입질에 완전히
푹빠져버린 나에겐 찌가 어둠에 묻혀 보이지않을 시간까지
정신없이붕어를 걷어내고 있었다.
결국,캐미가 없던 관계로 대를 거두어야 했다.
라이타불의 희미한빛에 의지하여 대를 걷고 묵직한 살림망을
건져내려 손을 뻗는순간,나는 진흙가장자리를 헛딛어 넘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옆으로 쓰러지면서 발목을 겹질렀는지 꼼짝할수가 없었다.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고통스러워했지만 산골 외진구석에 도움을 청할
만한곳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거의 기다시피 물가에서 둠벙위로 오르려다 미끄러지기를
수십차례 반복하던중 기운이 전부 소진해버렸다.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건너편 산중에 부딫겨 돌아오는 허무한
메아리소리만 들리는 부질없는 노력임을 얼마되지 않아
깨닳았다.
나는 덜컥 두려움이 몰려왔지만 침착해져야 겠다는 생각에 일단
겹질린 발의 신발을 벗고 수건을 찟어 발목 인대부분을 단단히
묶었다.
그리고 주변의 잡목들을 모아 모닥불을 지피고 물에젖어 얼어버린
손발을 녹였다.
산속의 밤기운은 낮의 따스함과는 대조적으로 몹시도 추운한기가
급속하게 몰려왔다.
젖어버린 핸드폰이 불통이어서 완전히 마를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므로 꼼짝없이 이곳에서 밤을 지내야 했다.
차안에만 들어갈수 있어도 이처럼 낯설고 추운밤을 보내기엔
그다지 힘든것이 아니었을텐데 뚝방위에 세워진 차를 그처럼
애처롭게바라본적이 없었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자 모닥불의 온기와 갈대숲속의 아늑한
분위기가 그런데로 낭만적이게 보였다.
나는 한심한 내모습이 우스워 피식웃었다.
담배를 한대 꺼내물고 불가에 누워 하늘을 향해 연기를 내품었다.
싸늘한 반달이 짙은 밤하늘을 가로질러 조금씩 떠오르고 강원도의
산자락에 걸린 은하수의 기다란 별빛이 낯선 이방자의 외로움을
달래려는듯 은빛 커텐처럼 나의 시야에 점점 크게 다가왔다.
그런데 적막을 깨는 산새의 울음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가끔 바람에 쓸리는 마른갈잎의 우수수한 소리도 나의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참으로 이상한 현상이다......
지금껏 수없이 밤낚시를 다니며 인적없는 산골과 심지여는 상여집
이 서있는 물가에서도 몇날밤을 혼자 지샜어도 이러한 바람과
산새들의 소리에 놀라거나 두려워한적이 없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에서의 밤이란 시간은 한시도 견디기 힘든 공포임을
새삼느꼈다.
그만큼 낚시는 정신을 한곳에 집중시키는 매력이 있다
는것을 증명하는것이기도 하다.
나는 두려움을 떨치려 낚시가방속에 보관해두었던 조그만한 노트
를 꺼냈다.
그것은 내가 낚시를 다니며 느낀 감정과 조황,낚시꾼들과의 추억들을
메모해두었던것인데 가끔 들추어보며 마음을 평안하게 했었다.
모닥불옆에 앉아 노트를 보았다.
광혜원에서 금붕어를 잡아올렸던 기억.... 동자개의 날카로운
등지느러미에 찔려 한동안 고생했던일들... 수중좌대위에서 볼일
을 보다가 물에 빠졌던 일 등등... 참으로 세상에 어느 소설책이
이보다 더 재미있고 실감날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몰려오는 졸음을 참지못하고 의자에 기댄채 잠이들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추운한기를 느끼고 들척이다 눈을떴다.
주위엔 아무것도 보이지않는 칠흙같은 어둠이 깔려있고 타다가
꺼져버린 모닥불은 가느다란 불씨만 남겨놓았다.
나는 얼른 나뭇가지와 갈대를 꺽어 불을 부치려 머리를 숙이고
불씨를 입바람으로 불려는 순간, 건너편 뚝방너머 섬뜩한 무언가가
나의 시야에 잡혔다.
순간 머리끝에서 부터 발바닥끝까지 소름끼치는 공포가 엄습했다.
그것은 한쌍의 푸른광채를 발하는 틀림없는 야수의 눈빛이었다.
나는 앉은채로 뒷걸음으로 몇발자국 물러났는데,그러한 광채는
하나둘씩 점점 늘어나더니 적어도 일곱여덟쌍이 넘게 나타났다.
떨리는 손으로 낚시가방을 뒤져 휴대용 나이프를 찾았다. 그리고
마른갈대잎에 라이타불을 붙이여 정신없이 모닥불을 지폈다.
밤이슬에 젖은 갈잎은 쉽게 불이 붙지않고 연기만 매쾌하게 올라
왔다.순간,뚝방위를 어슬렁대는 눈빛속에서 으르렁 거리는 낮은
소리가 들렸다.
" 아.. 그놈들이구나..
사냥꾼들이 쫓고있는 들개의 무리.."
번쩍 그러한 생각이 뇌리를 스치며 절망에 가까운 탄식을 했다.
들개의 습성상 상처입은 동물이나 사람은 본능적으로
공격한다는것을 알기때문에 나는 한손엔 나이프와 다른손엔
낚시 꼿질대를 들고 놈들의 공격에 대비할수 밖에 없었다.
놈들은 거친숨소리를 내며 뚝방위를 분주히 어슬렁거렸다.
나의 뒷쪽 갈숲에서도 놈들의 발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어느새 나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포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중에 한놈은벌써 나와 5~6미터 거리까지 좁혀왔다.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두손에 힘을주었다.
저놈들중에 한놈만 혼을내어 쫓아낸다면 일말의 희망은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때,뚝방위에서 또다른 한마리가 튀어나오더니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내앞에 가장근접하여 공격태세를 갖추고 있던 점박이 들개를
갑자기 나타난 다른놈이 물고 흔들었다.
점박이 들개는 "깽..깽" 대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버리고
다른 들개들도 주춤대며 하나둘 물러나는것이 아닌가?...
나는 속으로 놈들이 자기들끼리 먹이감(?) 쟁탈을 심하게
하는것으로 생각하고 오히려 한마리를 상대하는 것이 나에겐
잘되었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점박이 들개를 물어뜯은 덩치큰 들개는 갑자기 낑낑 대는
소리를 내며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나이프를 쥔 손에 힘을주었다.
모닥불빛 근처까지 다가온 놈의모습을 본순간 나는 내눈을 의심했다.
그놈은 바로 내가 키웠던 누렁이였다.
몸집도 커지고 앞어깨에서 부터 불거져나온 근육과 잘목한 허리,
늘어진 입술등..그동안 많이 변해있었지만 그놈의 눈빛은 틀림
없는 누렁이의 순수함을 고스란히 담고있었다.
누렁이는 주저앉아있는 나에게 다가와 머리를 나의가슴에 쳐박
으며 꼬리를 흔들어댔다.
" 누렁아! 누렁이 맞지..?"
나는 놈의이름을 부르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누렁이는 한동안 나의얼굴과 손을 혀로 핧으며 애정어린
몸짓을 보였다.
나는 예전의 버릇처럼 놈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말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모닥불빛에 문뜩문뜩 들어난 놈의 몸뚱이에는 살아온 힘든삶의
그림자처럼 물리고 찢긴 상처자국이 무수히 남아있었다.
놈을 떠나버린지가 어언 2년이 넘게 흘렀지만 누렁이는 아직도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동안 나의기억속엔 아련하게 지워버렸 다는것이 못내 놈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모닥불을 피워놓은채로 내옆에 누워 누렁이는 예전의 강아지처럼
잠을 청하는듯했다.
나역시 놈의 따스한 등에 기대어 어느새 잠이들었다.
날이 밝았다.........
누군가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나는 벌떡 몸을 세우고 주변을 살폈다.
꺼져버린 모닥불의 재만 남아있고 누렁이는 보이지않았다.
지나가던 마을농부가 나를 발견했던것이다....
" 여기서 뭐 하시요?" "이곳에서 잠을 잔거요?"
농부는 나의 다친발을 발견하고는 부축하여 마을까지
데려다 주었고,나의모습을 본 강선배는 놀라 나를 업고는 병원으로
달려가 치료를 해주었다.
강선배는 내가 낚시를 하다가 밤에 서울로 올라간줄만 알았다며
놀란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게 치료를 받고 그날 저녁쯤에나 서울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날밤 보았던 누렁이의 모습이 몇일동안 잊혀지지않았다.
짧은 시간동안의 재회였지만 그놈의 모습은 인상깊게 나의가슴속
에 남아있었다...아내는 나의말을 듣고 무척이나 놀랐고 누렁이
를 걱정했다.
그렇게 한달가까이 시간이 흘렀다....
사무실에서 업무회의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와 커피한잔을 마실쯤
전화한통이 걸려왔다.
"네.. 업무과 박대리입니다"
"응.. 동생 나야!"
강선배의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흘러나왔다.
"네..강선배님 그간 별일없으시죠?"
한참을 강선배와 통화했다. 그러다 나는 힘없이 수화기를
내려놓고는 사무실 휴게실로 나가 담배한대를 피워물었다.
방금 통화를 마친 강선배의 목소리가 수십번 반복하여 귓가에
맴돌았다.
" 그누렁이 말야, 어제밤에 잡았네..
일주일전에 새로온 사냥꾼세명이 산속에 잠복해 있다가
사살했다는 거야.."
" 다른들개도 8마리 모두 잡았어"
" 그런데 말이야...그 누렁이는 총탄을 세발을 맞고도 죽지않고
없어졌다가 오늘아침 발견했는데,
자네가 낚시하던 그 둠벙자리에 죽어있다는 거야.."
" 참 이상한 일이지....쯧쯧...."
나도 모르게 눈가를 적시는 눈물을 감추려 창밖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에서 마치 누렁이를 닮은 형상의 구름한점이 회색빛
건물뒤로 사라지고 있었다.....
( 끝 )
첫댓글 누렁아 흑흑 좋은곳으로 가렴 ......
좋은곳에서 팔자좋게 살거예요.
길기는하지만 좋은내용입니다
개를 좋아하는일인
애견인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버리는 위인덜도 많은것 같아요.
마음 한켠이 조금은 아파오네요
누렁아 ~ 좋은곳으로 가라
사람과 가장 친숙한 동물이지만 야생성도 어느정도는 있는것 같아요.
집에 키우는 풍산개가 집에 들어온 들고양이를 말릴틈도 없이 단 일격에 숨통을 ㅠ
좋은 명견을 잃어서 맴이 아파도명견은 좋은곳으로 가서 주인을 생각 하며서꿈을꾸고있겟지?????
이번 풍산개가 저런어미 밑에서 난 녀석이라 맘이 쓰여요. 도저히 포획이 안돼어 총으로 잡았더랩니다.
아름다운 소설 한편을 읽은듯 합니다 ~ 누렁이가 불쌍해요 ~ ^^
강아지의 충성심만큼 주인이 잘대해줘야 하죠.
단편소설 같은 실화 내요.좋은글 감사합니다!
논픽션입니다 .소설 ㅠ
가슴이 멍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심심해서 올려봤어요.
누렁이는 그런 운명으로 태어난것 같습니다.다음 생엔 멋진 운명으로 태어나길 바래봅니다
진도개종류들은 한번 주인한테 맞거나 해꼬지 당해 도망가면 거의 잡을수가 없답니다.
근데 주인주위에서 맴돌지 아예 다른곳으로 가지는 않는것 같아요.
단편소설입니다. 논픽션이구요. 지금키우는 풍산개 어미도 저런 상황이었기에 공감가는 부분이 있어서 글을 올렸답니다.
사실 저소설이 작가가 누군지도 몰라요.
누렁이를 그날 저녁에 다시 대려왔더라면...
강아지는 함부로 입양하지 말고 한번 키우면 절대 딴곳으로 입양보내면 안돼요.
@여울 저도 강아지를 너무 좋아 하는데 그놈의 책임감 때문에 선득 입양을 못하고 있습니다.
주변에 보이는 강아지를 보면 한 두번 쓰다듬는 정도로 위안 삼고 있어요.
잘읽었어 감동이오내
너무 감동하진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