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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8월 23일 주일
[(녹) 연중 제21주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오늘은 연중 제21주일입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지혜의 샘이신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베드로 사도의 겸손한 증언으로 우리 믿음의 기초를 놓으셨습니다. 모든 이에게 성령의 빛을 비추시어, 나자렛 예수님을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알아 뵙고 살아 있는 돌이 되어 교회를 이루게 하시는 하느님을 찬양합시다.
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께서 궁궐의 시종장 세브나를 내쫓으시고 힐키야의 아들 엘야킴에게 그의 권력을 넘겨주시리라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풍요와 지혜와 지식은 정녕 깊다며,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와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나아간다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고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나는 다윗 집안의 열쇠를 그의 어깨 위에 메어 주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22,19-23
주님께서 궁궐의 시종장 세브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19 “나는 너를 네 자리에서 내쫓고, 너를 네 관직에서 끌어내리리라.
20 그날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리라.
나는 힐키야의 아들인 나의 종 엘야킴을 불러
21 그에게 너의 관복을 입히고
그에게 너의 띠를 매어 주며 그의 손에 너의 권력을 넘겨주리라.
그러면 그는 예루살렘 주민들과 유다 집안의 아버지가 되리라.
22 나는 다윗 집안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메어 주리니
그가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그가 닫으면 열 사람이 없으리라.
23 나는 그를 말뚝처럼 단단한 곳에 박으리니
그는 자기 집안에 영광의 왕좌가 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와,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11,33-36
33 오! 하느님의 풍요와 지혜와 지식은 정녕 깊습니다.
그분의 판단은 얼마나 헤아리기 어렵고
그분의 길은 얼마나 알아내기 어렵습니까?
34 “누가 주님의 생각을 안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누가 그분의 조언자가 된 적이 있습니까?
35 아니면 누가 그분께 무엇을 드린 적이 있어
그분의 보답을 받을 일이 있겠습니까?”
36 과연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와,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그분께 영원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3-20
1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18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20 그런 다음 제자들에게,
당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열쇠는 무엇인가를 열기 위한 도구입니다. 어떤 열쇠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열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있고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해결할 때에도 ‘열쇠를 쥐고 있다.’라는 표현이 있듯이 열쇠는 중요한 도구이며, 더 나아가 권한과 힘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성경에서도 이렇게 열고 닫는 중요한 권한을 받은 사람들이 나옵니다. 모세는 바다를 열어 갈라지게 하고(탈출 14,15-31 참조), 엘리야는 가뭄에 하늘을 열어 비를 내리게 합니다(1열왕 17-18장 참조). 엘리사는 죽은 아이를 살립니다(2열왕 4,8-37 참조). 그러나 이 권한은 하느님에게서 잠시 받은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 나오는 “다윗 집안의 열쇠”(이사 22,22)는 요한 묵시록에 나오는 “다윗의 열쇠”(3,7)와 같은 것입니다. 이 열쇠는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죽음과 저승의 열쇠”(1,18)도 가지고 계십니다. 이는 삶과 죽음 사이의 열쇠로 성부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가 영원히 함께 지니시는 열쇠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마태 16,19)를 주시는데, 이는 고해성사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죄 때문에 모든 것이 막히게 되었지만,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것이 다시 열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열쇠와 권한을 보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누구라고 고백하는지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를 용서해 주시어 닫힌 것을 열어 주시고, 죽음으로 어둠에 갇히지 않도록 하늘 나라 문을 열어 주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을 생각하며 우리의 믿음을 되짚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유청 안셀모 신부)
든든한 반석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오늘도 예수님의 복음 선포 여정은 계속됩니다. 벳사이다를 떠나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도착하신 예수님께서는, 생각만 해도 마음 든든한 수제자, 언제나 듬직한 반석 같고 큰 바위 같은 제자 베드로를 축복하십니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막중한 임무, 엄청난 역할을 수여하십니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에게 주신 것이 무엇인지? 정말이지 엄청난 권한을 부여하셨습니다. ‘하늘나라의 열쇠!’ 하늘나라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것은, 세상 전부를 쥐고 있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갑자기 큰일났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간 이런저런 기회에, 틈만 나면 베드로 사도의 약점이나 흑역사에 대해, 과장되게 부풀려 강의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는데 ^^ 언젠가 하늘 문 앞에서 베드로 사도를 마주칠 생각을 하니 벌써 다리가 후들후들 ^^
사실 베드로 사도는 존재 자체로 우리 후배 신앙인들에게 큰 위로와 희망을 선물로 주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하늘나라의 열쇠를 손에 쥔 분으로, 그 어떤 시련과 박해의 칼날 앞에서도 눈 한번 까딱하지 않았던 분, 넓직한 반석같이 든든한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 사도에게도 한때 치명적인 과오, 치욕적인 흑역사가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참 만남과 더불어 참 제자가 되기 전, 그는 여러 측면에서 미성숙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베도로 사도의 성격은 과격했고 불같았으며, 마치 럭비공 같아 어디로 튈줄 몰랐습니다. 때로 조용히 있었으면 50점이라도 딸텐데, 괜히 먼저 나서다가 스승님으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은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마침내 수난의 시기, 그는 스승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며 배반하는, 결정적 과오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재 양성의 귀재이신 예수님의 탁월하고 예술적이며 인내로운 단련에 힘입어, 베드로 사도는 그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참 제자로 거듭납니다. 작은 바람에도 쉼없이 흔들리던 나약한 갈대같았던 베드로는 그 어떤 시련과 고초 앞에서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 큰 바위로 재탄생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베드로 사도는 매일 새벽 닭이 울면 일어나 ‘수제자 배반 사건’을 떠올리며 크게 울었답니다. 낮 동안에도 틈만 나면 송구한 마음에 울고 다녔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의 눈자위 주변은 늘 붉게 물들어있었으며, 짓물러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그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반석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베드로 사도는 오늘 우리에게 알려주고 계십니다. 우리도 이왕이면 작은 모난 돌맹이가 아니라, 크고 든든한 반석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주님께서 보시고 기뻐하시고 흡족해하실 반석, 세파에 지친 사람들이 편히 앉아 쉬고 갈 수 있는 그런 반석이 되기 위해, 뾰쪽하고 모난 부분들을 갈고 또 갈아야겠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한국에서는 사제가 서품받으면 ‘전국 교구 사제 공통 권한’을 받습니다. 한국의 어느 교구에 가더라도 따로 허락받지 않고 미사를 봉헌하고, 성사를 집전할 수 있는 권한입니다. 한국의 모든 교구가 함께 동의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사정이 조금 다릅니다. 제가 다른 교구에 가서 성사를 집전하려면 미리 해당 교구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을 영어로 ‘faculty’라고 하고, 한국 신부님들 사이에서는 흔히 ‘파쿨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저도 알래스카에서 미사를 집전할 때 이런 절차가 필요했습니다. 사제라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라, 그 교구 안에서 성사를 집전할 수 있는 권한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런 절차를 보면서 한 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 권한은 마음대로 행사하는 힘이 아닙니다. 권한은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권한은 사제를 높이기 위한 특권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을 잘 섬기기 위한 책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특별한 권한을 맡겨 주십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맡겨 주신 권한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교회를 맡겨 주셨습니다. 베드로의 자리는 인간적인 능력으로 얻은 자리가 아닙니다. 인기가 많아서 얻은 자리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맡겨 주신 공적인 자리입니다. 그 자리는 명예를 위한 자리가 아니라, 하느님의 백성을 돌보는 자리입니다. 베드로의 자리는 오늘날 교황님을 통해 이어지고 있습니다. 교황의 권한도 세상 권력처럼 지배하는 힘이 아니라, 교회를 하나로 모으고 믿음을 굳게 하는 섬김의 책임입니다.
둘째는 하늘나라의 열쇠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도 열쇠에 관한 말씀이 나옵니다. “나는 다윗 집안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메어 주리니, 그가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그가 닫으면 열 사람이 없으리라.” 열쇠는 권한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책임을 상징합니다. 문을 열어야 할 때 열고, 닫아야 할 때 닫는 책임입니다. 교회를 신축하고 축성할 때 주교님께서 본당 신부에게 성당의 열쇠를 맡겨 주는 예식이 있습니다. 저도 본당을 신축한 뒤에 교구장님으로부터 본당의 열쇠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열쇠는 단순히 건물 문을 여는 열쇠가 아닙니다. 본당 공동체를 돌보고, 신자들이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책임의 상징입니다.
셋째는 맺고 푸는 권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이 말씀은 교회가 받은 용서와 화해의 권한을 보여 줍니다. 특별히 고해성사의 근거가 되는 말씀입니다. 사제가 고해성사에서 죄를 용서할 때, 자기 마음대로 용서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제가 개인의 능력으로 죄를 없애는 것도 아닙니다. 사제는 교회가 맡긴 권한 안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합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권한은 두려운 책임입니다. 권한을 받았다고 해서 높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낮아져야 합니다. 더 조심해야 합니다. 더 기도해야 합니다. 권한을 가진 사람은 자기 뜻을 앞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먼저 찾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얼마 전 후배 신부님과 함께 알래스카에서 빙하를 보고 왔습니다. 사진으로만 보던 빙하를 직접 보니 마음이 숙연해졌습니다. 빙하는 말없이 서 있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오랜 시간이 담겨 있었습니다.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눈이 내리고, 쌓이고, 눌리고, 다시 얼어붙는 시간이 수없이 반복되면서 거대한 빙하가 됩니다. 빙하를 보면서 신앙도 이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하루아침에 깊어지지 않습니다. 매일 드리는 기도, 매주 봉헌하는 미사, 작은 희생과 봉사, 용서하려는 마음, 다시 시작하려는 결심이 조금씩 쌓이면서 믿음의 깊이가 생깁니다. 눈 한 송이는 작습니다. 손에 닿으면 금세 녹아 없어집니다. 그러나 그 눈송이가 오랜 시간 쌓이고, 눌리고, 얼어붙으면 거대한 빙하가 됩니다. 우리의 작은 기도도 그렇습니다. 오늘 드리는 묵주기도 한 단, 오늘 바치는 짧은 화살기도, 오늘 참아 낸 말 한마디, 오늘 베푼 작은 친절은 보잘것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앞에서는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 영혼 안에 은총으로 쌓입니다.
빙하는 조용히 서 있지만, 그 안에 거대한 힘을 품고 있습니다. 신앙인의 삶도 그래야 합니다. 큰 소리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도, 세상의 박수를 받지 않아도, 하느님 앞에서 차곡차곡 쌓인 믿음은 큰 힘을 냅니다. 진짜 신앙은 요란하지 않습니다. 진짜 섬김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진짜 권한은 다른 사람을 누르는 힘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살리는 힘입니다. 그런 신앙인의 모범을 보여 주신 분이 성모님입니다. 성모님은 큰 소리를 내지 않으셨지만, 하느님의 구원 역사 안에서 누구보다 깊은 자리를 차지하셨습니다. 성모님은 앞에 나서지 않으셨지만,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 계셨습니다. 성모님은 세상의 박수를 받으려 하지 않으셨지만, 하늘의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성모님은 권한을 요구하지 않으셨지만,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우리 본당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섬기는 분들이 많습니다. 성전 문을 여닫는 분들, 제대를 준비하는 분들, 청소하는 분들, 주방에서 봉사하는 분들, 성가로 기도하는 분들, 아이들을 가르치는 분들, 아픈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의 작은 봉사가 쌓여 본당이라는 믿음의 빙하가 됩니다. 오늘 우리는 베드로 사도에게 주어진 권한을 묵상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각자에게 맡겨진 책임도 생각해야 합니다. 부모에게는 가정을 돌볼 책임이 있습니다. 봉사자에게는 공동체를 섬길 책임이 있습니다. 사제에게는 하느님 백성을 성사와 말씀으로 돌볼 책임이 있습니다. 신앙인 모두에게는 세상 안에서 복음을 증언할 책임이 있습니다. 권한은 특권이 아닙니다. 권한은 책임입니다. 권한은 지배가 아닙니다. 권한은 섬김입니다. 권한은 자신을 높이는 도구가 아닙니다. 권한은 다른 사람을 하느님께 가까이 이끌어 주는 길입니다.
빙하가 오랜 시간 눈을 품어 장엄한 모습이 되듯이, 우리도 매일의 기도와 희생과 사랑을 품어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제가 사제서품 받은 지 35년이 되는 날입니다.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오늘 점심은 제가 대접하도록 하겠습니다. 많이 드시고 가세요.
<당신이 물으시거든>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당신이 물으시거든
당신을 따라 당신처럼 살고 죽음으로써
오직 당신께서 원하시는 대답을 하게 하소서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당신이 물으시거든
벗들을 위해 제 목숨을 내어놓음으로써
당신은 사랑이라고 응답하게 하소서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당신이 물으시거든
빼앗음과 빼앗김 없는 세상 일굼으로써
당신은 정의라고 응답하게 하소서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당신이 물으시거든
갈라져 싸우는 세상 이음으로써
당신은 화해라고 응답하게 하소서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당신이 물으시거든
사랑과 정의와 화해를 삶으로써
당신은 평화라고 응답하게 하소서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당신이 물으시거든
착한 벗들에게 밝은 웃음 지음으로써
당신은 기쁨이라고 응답하게 하소서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당신이 물으시거든
슬픔에 젖은 벗들의 눈물 닦아줌으로써
당신은 위로라고 응답하게 하소서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당신이 물으시거든
억눌린 벗들을 일으켜 세움으로써
당신은 해방이라고 응답하게 하소서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당신이 물으시거든
갇힌 벗들의 사슬을 끊음으로써
당신은 자유라고 응답하게 하소서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당신이 물으시거든
외로움에 지친 벗을 품음으로써
당신은 연대라고 응답하게 하소서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당신이 물으시거든
어둠을 사르는 작은 불쏘시개 됨으로써
당신은 빛이라고 응답하게 하소서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당신이 물으시거든
죽어가는 작은 벗들을 돌봄으로써
당신은 생명이라고 응답하게 하소서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당신이 물으시거든
벗을 살리기 위해 나를 내어놓음으로써
당신은 아름다운 죽음이라고 응답하게 하소서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당신이 물으시거든
죽음의 세력에 당당히 맞섬으로써
당신은 죽음을 이긴 부활이라고 응답하게 하소서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당신이 물으시거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어줌으로써
당신은 하느님이라고 응답하게 하소서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당신이 물으시거든
당신을 따라 당신처럼 살고 죽음으로써
오직 당신께서 원하시는 대답을 하게 하소서
오늘의 성인
성녀 로사(Rose)
신분 : 은수자, 3회원
활동지역 : 리마(Lima)
활동연도 : 1586-1617년
같은이름 : 로싸, 로즈
1586년 4월 20일 페루 리마의 에스파냐 가문에서 태어나 이사벨 데 플로레스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성녀는 14살 때에 로사(Rosa)라는 이름으로 견진을 받았다. 용모가 빼어나게 아름다웠던 그녀는 양친의 결혼 계획을 끝내 반대하고는, 어릴 때부터 자신의 모델 성녀로 모시던 시에나(Siena)의 성녀 카타리나(Catharina)를 본받기 위하여 엄격한 생활을 하기 시작하였다. 로사는 도미니코회 3회원이 되었는데, 그녀가 부모를 도와야 할 입장이므로 정원의 통나무 집 속에서 은수생활을 하였다.
이때부터 여러 가지 신비적인 특은을 비롯하여 환시를 보았는데, 초자연적인 일들이 자주 일어나게 되자, 사제와 전문가들로 구성된 조사위원회가 그녀를 심사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들은 로사 주변의 모든 일들이 초자연적인 사실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자 로사의 성덕 이야기가 퍼져나가기 시작하여 자기의 집 정원은 영성 센터로 변하였다.
건강이 나빴던 관계로 로사는 돈 곤잘로 데 마사와 그 아내의 제안을 받아들여 3년 동안 리마에 있는 그들의 집에서 지내다가 운명하였다.
그녀는 교황 클레멘스 10세(Clemens X)에 의하여 1671년 4월 12일 신세계의 첫 번째 성인으로 시성되었으며, 페루와 남아메리카, 서인도 제도, 필리핀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성 플라비아노 (Flavian)
활동년도 : +7세기
신분 : 주교
지역 : 오툉(Autun)
같은 이름 : 플라비아누스, 플라비안, 플라비오, 플라비우스
성 플라비아누스(Flavianus, 또는 플라비아노)는 프랑스 오툉의 제21대 주교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플라비우스(Flavius)로도 불린다.
성 필립보 베니시오(Philip Benitius)
활동년도 : 1233-1285년
신분 : 총장
지역 :
같은 이름 : 베니시우스, 베니티오, 베니티우스, 비리버, 필리뽀, 필리뿌스, 필리포, 필리포스, 필리푸스, 필립, 필립부스, 필립뽀, 필립뿌스, 필립포, 필립푸스
이탈리아 중부 피렌체(Firenze)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성 필리푸스 베니티우스(Philippus Benitius, 또는 필립보 베니시오)는 프랑스 파리(Paris)와 이탈리아의 파도바(Padova)에서 의학을 공부하여 의학과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이때 그의 나이는 불과 19세였다. 그는 즉시 피렌체에서 의원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만 일년을 일한 후 몬테 세나리오에 있는 마리아의 종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그는 1259년에 사제가 되었다. 그 후 그는 설교로 더욱 유명해졌고 나중에는 총장까지 되었다. 그는 수도회의 회칙을 제정하였고, 오토부오니(Ottobuoni) 추기경이 그를 교황 후보자로 추천하였을 때 새 교황이 선출될 때까지 어느 동굴에 숨어 살았다. 그는 리옹(Lyon) 공의회에 참석하여 큰 영향을 미쳤으며, 코르닐롱산(Mount Cornillon)의 성녀 율리아나(Juliana, 4월 5일)를 도와서 마리아의 종 수도회 3회를 설립토록 적극 지원하였음은 물론, 회원들을 극동의 선교사로 파견하였다. 1285년 그는 총장직을 사임하고 토디(Todi) 수도원에서 은거하다가 운명하였다. 그는 1645년 8월 8일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Innocentius X)에 의해 시복되었고, 1671년 4월 12일 교황 클레멘스 10세(Clemens X)에 의해 시성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