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1일 (화) : 계족산 두꺼비 보러갔다가 두꺼비 대신 계족산 무제이야기만 잔뜩 만나고는 맑은 봄날 점심 겸 화암사(완주) 가는길에 국방대학교 있는 연산으로 달립니다. 깃대봉 아래 황산벌에 있는 국방대학교 후문 뒤에는 맛갈스런 수제비집이 있다고 해서 갑니다. 국립대전현충원 옆을 지나 삽재 고개를 지납니다.
동학사 삼거리 박정자를 지나 밀목재로해서 연산 황산벌로 갑니다. 왕건의 개태사도 지나고 황산성도 힐끗 지나칩니다.
세월의 파노라마가 회상의 무대위에서 펼쳐집니다.
맛있는 점심과 한담을 즐긴 뒤 찾아간 곳 전북 완주군 경천면에 있는 화암사입니다.
들꽃을 볼겸 해서 갑니다.
요동 삼거리에서 느티나무 노거수가 장승처럼 지키고 서서, 교통정리하는 순경아저씨처럼 우리를 반깁니다.
싱그랭이 마을 이름속에 옛이야기가 다 들어있읍니다.
금산-전주 간의 중요 교통로라는 말, 역 원이 있었고,, 아 그래서 금산 백령성서부터 용계산성, 불명산 봉수대,로 이어지는 길 요지에 자리한 요동 싱그랭이 마을입니다. 화암사 역시 이 길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슴이 짐작할만합니다.
신라가 통일하고 나서 변두리 민심을 다독이고 등등, 다목적용 기능을 하였을 화암사...
싱그랭이 요동마을의 지명유래도 재미있습니다. 먼 길 가다가 잠시 쉬었다가 가는 곳
고속도로 휴게소 같은 곳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기왓장과 역원터를 뜻하는 원터라는 지명이 남아있다니. 잘 어울립니다.
화암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주변의 안내판을 들여다 봅니다.
극락전이 국보로 승격되었는데 보물 시절(---호, 살짝 지워져 있음)의 이야기가 적혀있읍니다.
관(官)의 일이란 으레 늦는다고 세익스피어는 일갈했지만,
화암사에 얽힌 전설도 오징어 씹는 맛보다는 낫지 않은가. 곰곰히 곱씹어 볼 만합니다.
꽃 화花자에 바위 암巖자의 화암사.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수도했다는 전설을 가진 곳,.신라의 흔적을 느낄 수 있습니다.
불명산(佛明山) 부처님의 지혜가 밝혀주시는 산이겠지.. 봉수기능보다는 감시기능이 더 컸으리라는 말이 와 닿습니다.
대둔산 줄기, 크게는 계룡산 줄기 이남의 형세를 잘 볼 수 있는 곳, 그곳이 길목일 수 밖에.
건너에는 천등산이 있고, 동북쪽에는 용계산성이 장선천을 끼고 있고..
주차장을 벗어나 호젓한 산길로 들어섭니다.
봄을 맞이하는 새싹들과 봄꽃들로 생명 가득한 산입니다.
얼레지꽃이 요염합니다.
왜 얼레지라는 이름을 가졌을까?
살짝 의문을 가져 봅니다. 치마를 뒤집어 쓴듯한 꽃잎들.
봄의 전령사처럼 눈속에서도 노란 꽃을 드러내는 복수초 복과 장수를 뜻한다해서 얻은 이름인가?
자세히 들여다 봅니다.
어느 시인의 싯귀처럼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다고 ....
겨우 대엿새 필려고 삼백예순날 인고의 세월을 보냈을 꽃.
그러나 아름다움은 순간이어도 영원한 생명을 전하려는 그 절절함을 느껴봅니다.
속세에서 화암사 가는 길은 녹록치 않습니다.
새로 난 철제 난간을 따라 옛 벼랑길 아래로 지나 올라갑니다.
위대한 것은 항상 위험하고 높은 곳, 손에 닿을듯 말듯한 곳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위 점선 부분은 옛길입니다.
철제 난간에는 화암사와 관련된 시들이 있습니다.
빛바랜 것이 세월을 먹은 표시인듯, 한번 읽어보고 지나 갑니다.
108계단이나 되는지 돌계단까지 지나면 마주하는 우화루 앞얼굴이 우리를 반깁니다.
무슨 인연이 닿았는지 이 봄에 다시 와봅니다.
불명산 화암사(佛明山花巖寺) 우측에서부터 읽습니다.
화암사 우화루(雨花樓) 안내판도 들여다 보고, 보물로 지정된 건물입니다.
엉덩하게 쌓은 듯한 돌담도 정겹습니다.
왼쪽 계단을 디디고 올라서면 동종과 목어 사진이 안내되고 ,
오른쪽 우화루 강당 안에는 목어(目魚)가 덩그렇게 허공에 매달려 있습니다.\
허공이 아니라, 창해속의 목어.
하긴 우주가 하나의 바다처럼 항해하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내비게이션. 반야용선을 타고 저승을 가듯.
부처님의 가르침이 불밝혀 주시길 염원하는 . 삼라만물에게.. 그것이 물속이든, 창공이든...
국보로 승격된 극락전(極樂殿)의 특징도 찾아봅니다.
세월을 먹음은 듯한 단청과 목조건축물이 주는 따스한 친근감을 느껴봅니다.
소의 혓바닥 닮은 쇠서도 음미하고,
무엄하게 극락전 안의 보처님도 문밖에서 친견합니다.
닫집도 불화 탱화도 감상 못하고 그냥 지나칩니다.
화장실(解憂所)도 들여다 보고 옛날 뒷간 생각도 해보고,
그 옆 바위 골짜기 냇물에다 손을 씻다 보니 개구리 알과 올앙졸망한 올챙이들이 보입니다..
봄이 왔음을 알고 세월의 시계를 들여다 봅니다. 춘하추동 .원형리정..
우화루 옆 요사채 앞마당에는 수선화가 한창 피어났습니다.
정호승의 수선화에게 도 좋고, 영시로 된 Daffodil도 생각해보고, 아니면 그리스 신화 나르키수스의 꽃말도 생각해봅니다.\
내 고향 동산의 수선화도 떠올려보고... 잠시 감회에 젖어봅니다.
우연히 만난 법사(法師인지, 불목한인지), .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많은 것을 배웁니다. ( 金 ㅌ ㅇ) 이름을 들어도 이제는 가물가물..
화암사의 살아있는 전설, 아니 해설서 같은 말씀을 듣게 되는 망외의 기쁨을 누립니다.
뜰앞의 모란이 피면 다시 오라고 하는 정감있는 말도 들으면서.
기회 포착해서 한 컷 찍어주는 일행의 사진 센스가 고맙습니다.
서쪽 해우소 윗편에 있는 화암사중창비석군도 찾아봅니다.
마모가 심한 탓도 있고 시력도, 실력도 부족해서인지 제대로 읽어보지도 못하고 그냥 찍어봅니다.
화암사 중창비석 보기(앞 뒷면)
육안으로 읽기가 힘든 비석 안내문의 해설에 의지할 수 밖에.
다시 만난 金법사님(내가 붙인 존칭)은 우화루에 얽힌 전설이며, 기둥의 홈이며, 이것저것 많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화암사 건립연대에 대해서 신라시대가 맞는지, 물증은 없지만, 원효대사 의상대사 수도처이었다는 전해오는 이야기를 예로 들어 신라시대로 생각한다고, 아마도 금산 백령성과 용계산성, 불명산 봉수, 싱그랭이 원터와 연결시켜보면 화암사의 의미가 더욱 와 닿습니다. 이 험한 곳에 절을 지은 정성이 대단하다는 물음에 옛날 이야기들을 들려줍니다.
초등(국민)학교 시절 전교생이소풍을 와 꽃바위(花巖) 위에 모여서 교장선생님의 설명을 들었던 추억이야기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우화루 기둥의 홈이야기도 들려줍니다.
다듬지 않은 자연산 주춧(덤벙주추)돌 위에 세운 기둥의 수평잡기를 위한 홈이라고.. 이리저리 돌리기 위한 손잡이 막대를 꽃던 자리라니,, 마치 맷돌의 어처구니 같이
우화루(雨花樓) 누각 이름 작명에 얽힌 이야기도 들려줍니다.
누각이름으로 고심하는데 마침
비가 몰아치는 데 마치 꽃비처럼 같다고 해서 얻어진 누각 이름.. 무처님의 설법중에 나오는 꽃비를
신선이 되어 올라간다는 우화(羽化)가 아닌 이유를 알게됩니다.
우화루 앞마당에는 버려진 맷돌이 두개나 되는데 둘다 암맷돌 짝이 없는 숫맷돌뿐입니다.
다른 것들은 없어지고 숫돌좇도, 어처구니가 있었을 암맷돌도 다 어데로 가고 .
(김법사가 어린 시절 소풍왔을 적에 꽃바위는 이제는 대부분이 돌담으로 덮여지고 가려져 버렸답니다.)
<꽃바위 > 그위에 지어진 절, 화암사. 절의 유래가 이 바위에서 유래했슴을 알게됩니다.
비닐하우스 창고 옆에 차가 주차되어있읍니다. 어떻게 이곳까지 올라 왔을까?
절딧쪽 장선리쪽의 임도로 올라오는 길이 있음을 우리는 한 번 와본 경험이 있어서 얼른 이해를 합니다.
그 아래는 해우소이고 그 사이 언덕에 중창비석이 있고요.
이 험하고 외전 곳에 절을 짓다니 어떻게 기와를 옮겨왔을까?
주차장 아래에 기와 구운 터가 지금도 남아있다고 하는 말을 끝으로 김법사와 헤어집니다.
아름다운 만남, 뜻밖의 만남으로 해서 화암사의 둘러보기는 한층 맛깔스러워집니다..
계족산무제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화암사에서 날이 저뭅니다.
오늘은 좋은 날, 봄철 나드리입니다
(2023.04.13일에 자부리)
첫댓글 저의 외가가 완주군 화산면인데요 그옆에 경천면 화암사가 있지요 대적광전이 국보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