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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의 믿음과 헌신
230806낮 (행18:1-4)
<1)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4)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아멘
우리는 성경에 등장하는 가정 가운데 이보다 더 신실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부부가 있을까?할 정도의 생각이 드는 믿음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입니다.
아굴라(Aquila)는 원래 본도(지금 터키 중부지방)에 살고 있는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었는데 로마에 와서 브리스길라( Priscilla)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굴라의 아내 브리스길라는 본명이 브리스가이고 브리스길라는 애칭입니다. 브리스길라는 로마의 유명한 브리스가 가문 츨신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추정하기는, 아굴라가 로마에서 살다가 신앙생활을 하던 중에 교회에서 두 사람이 만나 신앙과 사랑을 키우고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들은 로마(이탈리아, 아달리야)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로마제국의 4대 황제 글라우디오(Claudius)가 A.D. 50년경에 로마에 있는 유대인 추방령을 내렸습니다. 글라우디오 황제의 유대인 추방령이 내리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로마를 떠나 고린도(그리이스, 아가야)로 이사를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로마에서 살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고린도에 와 살고 있을 때 바울이 그들을 찾아갔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로마에서 이미 기독교 신앙을 가진 상태에서 추방을 받아 고린도로 내려왔다가 바울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천막을 만드는 수공업자였기 때문에 고린도에서도 천막을 만들어 파는 일을 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온 것은 2차 전도여행 때 였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으로서 다소(터어키, 길리기아)에서 자랐습니다. 길리기아 다소는 짐승 가죽으로 피혁을 만드는 곳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바울은 그 곳에서 자식에게 생업을 가질 수 있는 기술을 한 가지씩 가르치는 유대인의 관습에 따라 천막 만드는 기술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찾아가 천막 만드는 일을 함께 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로 같은 업종인 천막 만드는 일과 동시에 같은 동족 유대인이자 또 같은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로마에서 내려온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만났습니다. 아마 바울은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기쁘고 힘이 났을 것입니다.
그렇게 1년 6개월을 함께 천막도 만들면서 복음을 함께 전하다 보니 고린도 교회가 크게 부흥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보게 됩니다. 바울은 철학의 도시 아덴에서 복음을 전하지만, 아무런 열매를 거두지 못하고 고린도로 가게 됩니다. 당시 바울은 고린도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도시였습니다. 아덴에서 별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바울이기에 고린도에서는 그만큼 부담이 배가 되었을 뿐 아니라, 바울의 생명을 위협하는 무리들로 바울이 심히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행18:9-10)
근데 마침 로마에서 추방당한 믿음 좋은 부리스가와 아굴라 부부가 고린도로 오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에서 좋은 동역자를 만나 복음 전하는데 큰 힘이 되고 많은 복음의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우연히 그렇게 되었겠지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믿음의 눈으로 볼 때 하나님의 기가 막힌 섭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 두 부부는 바울이 평생 복음을 전하는 곳마다 함께 하며 바울에게 큰 힘이 되어 줍니다. 이런 만남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만남도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서로에게 큰 힘이 되어 함께 하나님 잘 섬기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바로 세워 나가도록 사명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19세기 미국의 부흥운동을 이끌었던 무디 목사님은 어렸을 때, 어느 집회에 참석했다가 거기서 ‘헤네스 발렐'이라는 영국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다고 합니다. 그때 헤네스 발렐 목사님은 이런 설교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께 전적으로, 온전히 헌신한 사람과 함께 하시며, 그 사람을 통하여, 그 사람 안에서 역사 하신다” 그런데 이 말씀이 어린 무디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그때 무디는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이란 학식 있는 사람, 혹은 부자나 달변가나 명석한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온전히, 그리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이라면, 나도 그와 같은 사람이 되겠다’고 결단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무디는 겨우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못한 사람이었지만, 그가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온전히 헌신하자 하나님은 그를 사용하셔서 전 미국과 영국 땅에 놀라운 부흥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된 한 그리스도인 부부를 만날 수 있습니다. 바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입니다. 이들의 헌신은 사도 바울이 유럽과 소아시아 그리고 로마에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들 부부는 어떻게 자신들을 하나님께 헌신했을까요? 오늘 본문에 보면 이들 부부의 믿음과 헌신은 크게 세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큰 은혜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 부부가 함께 믿음생활하며 하나님께 헌신 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고난과 어려움도 함께 헤쳐 나가면서 부부가 함께 헌신했습니다.
본문 1-2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1)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여기에 보면 바울이 고린도에 갔을 때 처음 만난 사람들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였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글라우디오는 황제가 되고 난 이후 로마에 폭동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하여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추방했습니다. 부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부인 부리스길라는 로마인 귀족출신이지만, 아굴라는 유대인이라 추방을 당합니다. 부부라 할지라도 로마인이 로마에 남는다면 많은 대우를 주겠다고 했으나 두 부부는 고난을 함께 하며 고린도 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의 이름이 여섯 번 언급되는데, 이 부부의 이름은 항상 같이 등장합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따로 불리어지지 않았습니다. 또 흥미 있는 것은, 여섯 번 나오는 기록에서, 네 번은 아내 브리스길라의 이름이 먼저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보통의 경우는 남편의 이름이 먼저 나옵니다. 그런데 이들의 경우 아내의 이름이 먼저 나온다는 것은 아마 브리스길라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두드러질 정도로 활동적이었고 헌신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고, 또 한 가지는 브리스길라가 워낙 로마의 유력한 귀족집안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보여 집니다. 중요한 것은 이 때 남편 아굴라는 넒은 마음을 가지고 아내 브리스길라가 마음껏 헌신하도록 도와주고 함께 했다는 것입니다. 참 아름다운 부부의 헌신의 모습입니다.
여러분의 가정도 부부가 함께 믿음생활하고, 온 가족이 함께 헌신하는 아름다운 가정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이들 부부는 하나님의 말씀에 바로 선 믿음을 소유 했습니다.
행18:5절입니다.
<5)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여기에 보면,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것은 바울이 고린도에 와서 복음을 전할 때 그냥 대강 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서 철저하게 복음을 전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에서 철저하게 복음에 입각하여 말씀을 전했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하나님 말씀 배우는 일에 헌신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바로 선 믿음으로 양육 받았던 것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고린도에 와서 철저히 복음적인 말씀을 전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사실 바울은 철학의 도시 아덴에서 고린도로 갈 때에 극도의 실패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아덴에서 그가 유창하고 철학적인 설교를 했지만 그곳에서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철학과 새로운 학문을 좋아하는 아덴사람들 구미에 맞게 수준 높은 설교를 했지만, 그런 설교가 결코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고린도로 건너가면서 아주 중요한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결심이 고전2:1-5에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바울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1)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3)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4)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5)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여기에 보면, 그는 아덴에서 고린도로 가면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만 전하겠다’고 굳게 결심했다는 것입니다. 말씀의 능력은 해박한 지식과 철학적인 설교가 아니라 십자가의 복음과 성령의 역사로 나타난다는 것을 바울이 뼈저리게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오직 십자가 복음만 전하게 되었습니다. 이 복음을 전해 듣고 고린도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복음적인 말씀에 굳게 서게 되는 믿음을 소유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이들에게 일 년 반 동안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바울에게서 말씀으로 양육 받으면서 그들의 가슴은 예수 그리스도로 가득 찼고, 십자가 복음으로 가슴이 뜨거워 졌습니다.
이들 부부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헌신했고, 얼마나 정확하게 하나님의 말씀의 핵심을 알았는지, 사도행전 18장 후반부에 보면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바울과 함께 에베소로 와서, 그곳에서 아볼로라는 한 청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으로 당시 학문과 성경에 능한 자였고, 언변도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아볼로의 설교를 듣게 되었는데, 그의 설교는 아주 논리적이었고 성경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설교를 들으면서 이들 부부는 아볼로의 설교에서 뭔가 빠진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분명히 성경을 가지고 멋있게 설교를 하고 있는데, 이상합니다. 뭔가 빠진 것입니다. 아볼로의 설교는 세례요한의 세례만을 아는, 윤리적인 설교에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설교에는 성경의 핵심인 십자가 복음과 성령이 빠져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아볼로를 데려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가르쳐 줍니다. 물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자기들의 성경 실력으로 남을 부끄럽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은밀하게 아볼로를 불렀습니다.
행18:26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26)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이들 부부는 청년 아볼로를 불러 함께 말씀을 나누면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그리고 성경의 핵심이 바로 십자가 복음이라는 것을 차근차근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청년 아볼로는 이들 부부의 영향으로 나중에 고린도 교회의 좋은 설교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일, 그 말씀을 바르게 전하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일에, 하나님의 말씀이 이 땅에 바르게 선포되는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말씀에 바로 서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군이 될 수 없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말씀으로 훈련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직분을 부여한 일이 없습니다. 말씀으로 훈련받고 말씀으로 무장된 사람들이 세상에 영향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공부시간이 있다면 적극 참석하여 말씀에 헌신해야 합니다. 주일 아침에 교회 와서 드리는 예배 외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가기 위해, 또 살아 계신 하나님을 좀 더 깊이 체험하기 위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처럼 말씀에 바로 선 믿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영적지도자인 바울 곁에서 평생 헌신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바울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면서 '교회에 헌신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에 헌신하는 것이고, 영적 지도자들에게 헌신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에게 헌신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명령대로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과 우상이 만연한 고린도에 복음이 뿌리 내리게 하기 위해서 사도바울에게 전적으로 헌신합니다.
이들이 어느 정도 헌신했는지는 성경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18:18 이하에 보면, 바울이 고린도를 떠나 에베소로 가게 되는데, 이 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함께 동행 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단순한 동행이 아니었습니다. 아예 이사 가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한다고 했을 때, 이들 부부가 자청해서 고린도에서의 사업을 정리하고 따라 나선 것입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도착하여 3년 동안 복음을 전파하는 중에 쓴 편지가 고린도전서입니다.
고전16:19절입니다.
<19)아시아에 있는 교회들이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모이는 교회가 다 함께, 주님 안에서 진심으로 문안합니다>(새번역)
에베소에서 쓴 이 편지에 보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에베소의 자기 집을 성도들의 예배 모임 장소인 교회로 사용하도록 내어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 16장 5절에도 보면,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고 썼는데,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바울이 로마로 가서 복음 전할 때, 바울을 따라 에베소에서 떠나 로마로 이사를 갔는데, 거기서도 자기 집을 기독교 신자들의 예배 장소인 교회로 내놓았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자기의 집을 기꺼이 성도들의 모임 장소, 예배 장소, 회합 장소로 내어주었습니다. 당시 예배드릴 장소가 별로 없는 그 때에 평신도 사역자인 이들은 자기들의 사적인 생활도 기쁨으로 희생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적 진보를 위하여 자기들의 소유도 아낌없이 함께 공유하였습니다. 이러한 헌신적인 희생 때문에, 그 부부가 가는 곳마다 복음의 진보가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사역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는 단순히 바울을 따라다닌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집을 교회로 내놓아서 교회가 세워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도록 헌신하고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사도 바울을 위해 자신들의 목까지도 내놓은 부부였습니다.
롬16:3-4절입니다.
<3)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4)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에베소에서 바울과 함께 있는 동안 그의 사역을 돕고 그를 대적자들에게서 보호했습니다.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4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사형집행자의 도끼 밑에 자기들의 목을 내어 놓았다는 표현입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자기들에게 위험이 닥칠지라도 자기들의 생명까지 아끼지 않고 바울을 도왔습니다.
*낙원교회// 이년춘목사님
영국의 캠브리지 대학에 C. T. 스터드라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학교에서 수석을 할 정도로 우수한 학생이었고, 또 탁월한 크리켓 선수였습니다. 그는 크리켓으로 영국 전체 시합에서 금메달을 따기도 했습니다. 그에게는 보장된 출세의 길이 열려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캠퍼스 집회에 참여했다가 복음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선교사가 되어 중국으로 가겠노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열정 때문에 그는 부와 명예를 모두 버리고 중국 땅으로 갔습니다. 중국에서 10여 년을 섬긴 후에 그의 육신은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쇠약해졌습니다. 영국으로 돌아와 투병 생활을 하던 중 그는 다시 아프리카에 가기로 결심합니다. 주위의 모든 사람이 제정신이 아닌 결정이라며 그를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이때 스터드는 모든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의미 있는 말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날 위해, 날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참으로 사실이라면, 그것이 참으로 사실이라면 내가 그를 위해 바치는 희생은 그 어떤 것도 지나친 희생일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헌신의 정신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은 것이 사실로 믿는다면 우리는 그 주님을 위해 우리의 삶을 기꺼이 드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가치 있고 행복한 일이겠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부부가 함께 살면서 잘 먹고 잘살았다..이것도 좋은 삶이지만, 더욱 가치 있고 귀한 삶은 부부가 함께 주의 복음 사역을 위해 헌신하는 삶이 더욱 값진 삶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헌신하는 사람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주님은 자신의 삶에 얽매이지 않고 주님과 복음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저는 우리 중문한사랑교회 성도들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부부처럼 부부가 함께 헌신하여 아름다운 믿음의 가정을 이루고, 하나님의 말씀에 헌신하여 말씀의 능력과 그 깊이를 체험하고, 그리고 교회와 영적 지도자들에게 순종하고, 헌신하여 하나님의 나라의 사역에 귀하게 쓰임 받는 사람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