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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 하느님의 어린양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참 안식일
1 그때에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기 시작하였다.
2 바리사이들이 그것을 보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선생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 너희는 읽어 본 적이 없느냐?
4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그도 그의 일행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지 않았느냐?
5 또 안식일에 사제들이 성전에서 안식일을 어겨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율법에서 읽어 본 적이 없느냐?
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7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8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마태오 12,1-8
연중 제15주간 금요일
내면이 텅 빈 사람들, 자기 성찰이나 영성이 결핍된 사람들이 보이는 한 가지 특징이 있으니, 가장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에 대한 식별력의 부족입니다. 가장 핵심적인 것과 부차적인 것의 혼돈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지닌 특기가 있는데, 상대방을 얕보기, 꼬투리 잡기, 하대하고 무시하기, 잘난 체 하기 등입니다.
오늘 안식일 규정을 들이대며 예수님을 공격하는 바리사이들이 가장 대표적인 부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머릿속은 정말이지 별것 아닌 규칙, 지나가는 개도 웃을 안식일 규정으로 가득 차있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눈에 불을 켜고 누가 안식일 규정을 어기는가?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안식일 규정을 어기는 것이 눈에 띄면 가차 없이 비판하고 칼날을 들이댔습니다.
예수님 시대 유다 사회 안에 ‘바리사이’라는 특별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리사이’라는 말은 ‘분리되다’라는 의미를 지녔습니다. 그들은 죄인들이나 나환우들이나 그릇된 신앙인들과는 분리되고 차별화된 정통 신앙인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원래 바리사이들은 모세오경만을 유일무이한 계시라고 강조하는 사제들에 반대하던 평신도 개혁자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모세오경뿐만 아니라 예언서들과 시편 등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모든 삶을 통해 하느님께 영광과 제사를 드리려했습니다.
이토록 좋은 의도와는 달리 그들의 신앙생활은 점점 복잡해지고 부담스럽게 되었습니다. 철저하고 빈틈없는 신앙생활을 추구하던 그들이었기에 613개나 되는 율법 조항에 대한 준수뿐만 아니라 구전을 통해 내려오던 실천사항까지 세밀하게 지키려고 애를 썼습니다.
하느님 사랑에 대한 순수한 응답으로 시작되었던 그들의 신앙행위는 점점 반드시 해치워야만 하는 의무사항이자 무거운 짐, 족쇄로 전락해버렸습니다.
자연히 그들의 신앙은 정신보다 제사행위 자체에 치중하게 되었습니다. 내면보다는 겉치레에 더 신경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유달리 강조한 것 규정 가운데 정말 웃기는 규정들이 있었는데, 정결 예식이요, 안식일 규정이었습니다. 외출했다가 귀가했을 때 물이 떨어져서 손이나 발을 못 씻을 수도 있고 씻을 수도 있는데, 씻지 않으면 완전 중죄인 취급을 했습니다.
안식일만 되면 누가 규정을 어기나 눈에 불을 켜고 서로를 바라봤습니다. 안식일에는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어도 요리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제자들이 너무 배가 고파서 밀 이삭 몇 가닥 뜯어먹는 것조차 용납을 못하고 태클을 걸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시선이 무서워서 누군가 죽어가도 안식일에는 치료행위조차 함부로 할 수 없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종교의 힘을 통한 영적 학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일종의 종교 중독으로 인한 이상행동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을 꽤 뚫고 계시던 예수님, 부자연스럽고, 비인간적인 삶의 방식,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행동 양식을 죽어도 참아내지 못하셨던 예수님이셨습니다. 바리사이들이 눈에 불을 켜고 바라보고 있는 중인데도 불구하고 법 같지도 않은 법, ‘웃기는 짬뽕’같은 안식일 규정을 사정없이 짓뭉개십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마태오 복음 12장 7~8절)
보란 듯이 안식일 규정을 산산조각내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묵상하면서 오늘 우리 발밑을 내려다봅니다. 우리 역시 제도나 규정의 틀에 사로잡혀 이웃을 단죄하거나 고통으로 몰고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가장 중요한 사람은 뒷전이고 일이나 구조에 함몰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봅니다.
(양승국 신부님 「우리 역시 제도나 규정의 틀에 사로잡혀 이웃을 단죄하거나 고통으로 몰고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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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 신부님 글 드립니다~~~
「어린이와 어른의 차이」
어린이와 어른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변화를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가장 큰 차이를 찾을 수 있습니다. 어른일수록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기주장만 힘주어 이야기하는 편견으로 가득 찰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다릅니다. 무엇이든 받아들입니다. 특히 새로운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언젠가 어느 동화작가가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어른은 책 백 권을 읽어도 변할까 말까인데, 아이는 책 한 권으로도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어른의 생각으로 아이의 변화를 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다양한 변화로 주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을 더 아름답고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는데, 그저 물질적인 기준만을 갖게 하는 것이 아닐까요?
아이와 같은 순수함과 포용의 마음이 이 세상을 더 아름답게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세상에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겨우살이 준비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톨스토이).>
연중 제15주간 금요일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마태오 12,1-8)
『わたしが求めるのは憐れみであって、
いけにえではない』
人の子は安息日の主なのである。
(マタイ12・1-8)
I desire mercy,
not sacrifice.
For the Son of Man is Lord of the sabbath.
(Matthew 12:1-8)
年間第15金曜日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ネガ バラヌン コスン ヒセン ゼムリ アニラ
자비다.’
ザビダ。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サシル サラメ アドレ アンシギレ ジュインイダ。
(마태오 12,1-8)
『わたしが求めるのは憐れみであって、
와타시가 모토메루노와 아와레미데 앗테
いけにえではない』
이케니에데와 나이
人の子は安息日の主なのである。
히토노 코와 안소쿠비노 오모나노데 아루
(マタイ12・1-8)
I desire mercy,
not sacrifice.
For the Son of Man is Lord of the sabbath.
(Matthew 12:1-8)
Friday of the Fifteenth Week in Ordinary Time
Matthew 12:1-8
Jesus was going through a field of grain on the sabbath.
His disciples were hungry
and began to pick the heads of grain and eat them.
When the Pharisees saw this, they said to him,
"See, your disciples are doing what is unlawful to do on the sabbath."
He said to them, "Have you not read what David did
when he and his companions were hungry,
how he went into the house of God and ate the bread of offering,
which neither he nor his companions
but only the priests could lawfully eat?
Or have you not read in the law that on the sabbath
the priests serving in the temple violate the sabbath
and are innocent?
I say to you, something greater than the temple is here.
If you knew what this meant,
I desire mercy, not sacrifice,
you would not have condemned these innocent men.
For the Son of Man is Lord of the sabbath."
2026-07-17「人の子は安息日の主なのである。」
+神をたたえよう。神は偉大、すべては神に造られた。
おはようございます。
今日は 年間第15金曜日です。
御心の主・イエス・キリストと御心の聖母マリア、聖母の配偶者聖ヨゼフ、諸聖人の大いなる祝福がありますように!
また、大天使とすべての天使、私たちの守護の天使が今日も皆さまを見守り平和でありますようお祈り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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マタイによる福音
<人の子は安息日の主なのである。>
そのころ、12・1ある安息日にイエスは麦畑を通られた。弟子たちは空腹になったので、麦の穂を摘んで食べ始めた。2ファリサイ派の人々がこれを見て、イエスに、「御覧なさい。あなたの弟子たちは、安息日にしてはならないことをしている」と言った。3そこで、イエスは言われた。「ダビデが自分も供の者たちも空腹だったときに何をしたか、読んだことがないのか。4神の家に入り、ただ祭司のほかには、自分も供の者たちも食べてはならない供えのパンを食べたではないか。5安息日に神殿にいる祭司は、安息日の掟を破っても罪にならない、と律法にあるのを読んだことがないのか。6言っておくが、神殿よりも偉大なものがここにある。7もし、『わたしが求めるのは憐れみであって、いけにえではない』という言葉の意味を知っていれば、あなたたちは罪もない人たちをとがめなかったであろう。8人の子は安息日の主なのである。」(マタイ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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ヤン・スングク神父さまの「私たちも制度や規則の枠にとらわれ、隣人を裁いたり、苦しみに追いやったりしてはいないでしょうか」です。
内面が空虚で、自己省察や霊性に欠けている人には、一つの特徴があります。それは、本質的なことと本質的でないことを見分ける力に乏しいことです。最も大切なことと、二次的なことを混同してしまいます。
そのような人々には、人を見下したり、揚げ足を取ったり、相手を軽んじたり、無視したり、自分を誇ったりする傾向があります。
今日、安息日の規定を持ち出してイエス様を攻撃するファリサイ派の人々は、その代表的な存在でした。彼らの頭の中は、取るに足りない細かな規則や、思わず首をかしげたくなるような安息日の規定でいっぱいでした。
彼らはいつも目を光らせながら、誰が安息日の規定を破るのかを見張っていました。そして、誰かが規定に違反するのを見つけると、容赦なく非難し、厳しく裁きました。
イエス様の時代のユダヤ社会には、「ファリサイ派」と呼ばれる特別な人々がいました。「ファリサイ」という言葉には、「分離された者」という意味があります。彼らは、罪人や重い皮膚病を患う人々、誤った信仰を持つ人々とは区別された、正統な信仰者であるという強い自負を持っていました。
もともとファリサイ派は、モーセ五書だけを唯一の啓示として重んじる祭司たちに反対した、在俗の改革者たちから始まりました。彼らは、モーセ五書だけでなく、預言書や詩編などの重要性も強調し、生活のすべてを通して神様に栄光を帰し、礼拝をささげようとしました。
しかし、その善い意図とは裏腹に、彼らの信仰生活は次第に複雑で重苦しいものになっていきました。徹底して隙のない信仰生活を求めたため、613にも及ぶ律法の条項だけでなく、口伝によって伝えられた細かな実践規定まで守ろうと努めました。
神様への愛に対する純粋な応答として始まった信仰の実践は、次第に必ず果たさなければならない義務となり、重荷となり、ついには人を縛る鎖へと変わってしまいました。
そのため、彼らの信仰は精神よりも祭儀そのものを重んじるようになり、内面よりも外面的な形式を重視するようになりました。彼らが特に強調した規定の中には、清めの儀式や安息日の規定がありました。
外出から帰ってきたとき、水がなくて手や足を洗えないこともあれば、洗えることもあります。しかし、手足を洗わなければ、まるで重大な罪を犯した者のように扱われました。
安息日になると、人々は誰が規定を破るのかと互いに目を光らせました。たとえ空腹で倒れそうになっても、自由に料理をすることすらできませんでした。
今日の福音でも、弟子たちがあまりにも空腹だったため、麦の穂を少し摘んで食べただけで、ファリサイ派の人々が非難している姿を見ることができます。
また、人が死にかけていても、安息日には治療行為さえ自由に行うことができませんでした。よく考えてみれば、それは宗教の力を利用した霊的な虐待とも言えるでしょう。信仰が本来の目的を失い、宗教的な規則への執着に変わってしまった姿です。
人の心を深く見抜いておられたイエス様は、不自然で非人間的な生き方や、二重的で偽善的な態度を決して受け入れられませんでした。
ファリサイ派の人々が目を光らせて見ている前で、イエス様は、人を生かすことのできない不条理な安息日の規定を、ためらうことなく打ち破られます。
「もし、『わたしが求めるのは憐れみであって、いけにえではない』という言葉の意味を知っていれば、あなたたちは罪もない人たちをとがめなかったであろう。人の子は安息日の主なのである。」
(マタイ12・7-8)
安息日の規定を堂々と乗り越えていかれるイエス様のお姿を黙想しながら、今日、私たちは自分自身の足元を見つめ直します。
私たちもまた、制度や規則の枠にとらわれ、隣人を裁いたり、苦しみに追いやったりしてはいないでしょうか。最も大切な人を後回しにし、仕事や組織、制度そのものに心を奪われてはいないでしょうか。
信仰とは、人を縛るためのものではなく、人を生かすためのものです。掟とは、人を裁くためのものではなく、神様の愛と憐れみへと導くためのもの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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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日の福音を読み、私たちも制度や規則にとらわれることなく、神様が何よりも望んでおられる憐れみと愛を大切にすることができますように。聖霊、来てくださ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