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여 안녕 / 프랑수아즈 사강 / 김남주 / 아르테
제목을 듣고 슬픔과 헤어지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Bonjour"는 만날 때 하는 인사라고 한다.
Bonjour Tristesse
나에게는 "슬픔이여 안녕"이 마치 헤어질 때의 인사처럼 들린다. 처음 인사하는 것처럼 번역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세실은 "줄곧 떠나지 않는 갑갑함과 아릿함"을 슬픔이라 부른다.
소설은 과거를 회상하는 듯 시작하는 것이니, 아마도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뭔가를 느낄 수 있는 나이가 되어 세실은 "슬픔"을 만난다. 이야기의 첫 문단을 다시 읽어본다.
나를 줄곧 떠나지 않는 갑갑함과 아릿함, 이 낯선 감정에 나는 망설이다가 슬픔이라는 아름답고도 묵직한 이름을 붙인다. 이 감정이 어찌나 압도적이고 자기중심적인지 내가 줄곧 슬픔을 괜찮은 것으로 여겨왔다는 사실이 부끄럽게까지 느껴진다. 슬픔, 그것은 전에는 모르던 감정이다. 권태와 후회, 그보다 더 드물게 가책을 경험한 적은 있다. 하지만 오늘 무엇인가가 비단 망처럼 보드랍고 미묘하게 나를 덮어 다른 사람들과 분리시킨다.
소설은 위 한 문단으로 정리된다. 그리고 첫 문장이 나오게 된 마지막 문장...
다만 파리 시내를 달리는 자동차의 소음만이 들려오는 새벽녘 침대에 누워 있을 때면 때때로 내 기억이 나를 배신한다. 그해 여름과 그때의 추억이 고스란히 다시 떠오르는 것이다. 안, 안! 나는 어둠 속에서 아주 나직하게 아주 오랫동안 그 이름을 부른다. 그러면 내 안에서 무엇인가가 솟아오른다. 나는 두 눈을 감은 채 이름을 불러 그것을 맞으며 인사를 건넨다. 슬픔이여 안녕.
마지막 문장의 "안녕"이 헤어질 때의 인사라면 마음이 편하겠다. "안녕"이란 인사말, 처음 만날 때에 사용하는 인사말을 슬픔을 상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인가.
Bonjour Tristesse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슬픔"의 정의는 어떨까.
슬픔
- 슬픈 마음이나 느낌
슬프다
- 원통한 일을 겪거나 불쌍한 일을 보고 마음이 아프고 괴롭다.
"아릿하다"는 두가지 뜻이 있다.
1.조금 아린 느낌이 있다.
2.눈앞에 어려 오는 것이 아렴풋하다.
세 명의 여자가 등장한다. 그리고 두 명의 남자.
그냥 덮으면 그냥 그런 이야기이겠지만 한 번 곱씹어 보고자 한다면 소재가 많은 작품이다.
책 커버가 인상 깊다. 마치 가면을 쓴 듯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