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불영사와 불영계곡에서
송하 전 명 수
울진 불영사와 불영계곡에는 이번이 세 번째로 찾아 나서게 되었다. 이 계곡은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에서 서면 하원리에 소재한 불영사를 거쳐 봉화군으로 넘어가는 고개 아래의 계곡까지 약 15km에 이른다. 계곡을 따라 펼쳐지는 수많은 명소들이 그림 같은 경치를 보여주는 곳이다. 기묘하게 생긴 바위와 낭떠러지가 많아 붙여진 이름도 가지가지이다. 구룡폭포, 광대코바위, 주절이바위, 창옥벽, 명경대, 의상대, 산태극, 수태극, 사랑바위 등 30여 곳의 명소가 눈길을 끌게 한다. 절벽은 흰빛을 띠는 화강암이 풍화되어 기이한 모습을 보여주며 맑은 계곡물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치를 자아내고 있다. 그리고 이 계곡 일대에는 아름드리 금강소나무가 붉은 색을 띠며 준수한 모습으로 자라고 있어 보기에도 좋거니와 궁궐과 같은 고건축물의 재료로 사용되기 때문에 그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불영계곡을 따라 굽이굽이 돌아 올라가다가 사랑바위 식당에서 산채비빔밥으로 이른 점심을 해결하고 바로 옆에 위치한 사랑바위로 향하였다. 도로변 낭떠러지 중간에 준수한 금강소나무 아래에 서있는 사랑바위는 높이가 약 4m 정도인데 흡사 하나의 몸통에 두 개의 얼굴이 마주보고 있어 남녀가 포옹하며 입맞춤하는 모습이다. 깎아지른 절벽에 늠름하게 자라는 아름드리 금강송과 아래에 내려다보이는 맑고 깨끗한 계곡물은 참으로 절경을 자아내고 있다. 그런데 이 사랑바위에는 가슴 아픈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오랜 옛날 호환(虎患)으로 부모를 잃고 천애 고아로 자란 오누이가 서로 의지하며 약초를 캐는 일로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꿈속에서 산신령이 나타나 하늘에 계신 옥황상제께서 병이 나시어 불영계곡에서 자생하는 삼지구엽초를 구하고자 하나 산양들이 뜯어먹어 높은 절벽 위에서만 자라고 있으니 이 약초를 구해오면 큰상을 내리겠노라 하고는 사라져 버렸다. 사흘 동안 정성을 다하여 기도를 하고 계곡의 높은 절벽을 오르기를 반복하다가 이레 만에 천신만고 끝에 벼랑에 늘어진 삼지구엽초를 발견하고 너무나 기쁜 나머지 팔을 뻗다가 오라비는 실수로 벼랑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누이는 사흘 밤낮을 울며 통곡하다가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그 후 이 계곡에서 울리는 누이동생의 애절한 통곡소리가 하늘에 닿아 두 남녀를 바위로 변하게 하여 평생 떨어지지 않게 포옹하도록 하였다. 그래서 이곳에서 통곡소리가 들리던 산을 통고산이라 하였고 사랑하는 오누이가 떨어져 죽을 때 흘린 피가 묻은 소나무는 껍질과 속까지 붉은 색을 띠어 적송(赤松) 또는 금강송이 되었다는 이야기 이다. 이 마을에는 별도의 성황당이 없으며 사랑바위를 마을의 수호신으로 믿고 있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소원을 빌면 사랑이 반드시 이루어지고 이곳의 삼지구엽초를 다려 먹으면 귀한 자식을 얻게 되며 부부간의 금슬도 좋아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참으로 마음을 아리게 하는 사랑바위의 전설을 간직하고 발길을 돌려 불영사로 향하였다. 계곡의 다리를 건너 불영사로 들어가는 길이 많이도 달라져 있었다. 옛날에 왔을 때는 오솔길이었는데 지금은 두 대의 차량이 교행할 수 있을 만큼 넓은 신작로를 걷는 마음은 더욱 푸근해진다. 천축산 불영사(天竺山 佛影寺)라는 현판이 걸린 일주문을 지나 길가에 활짝 핀 조팝나무 꽃과 준수한 금강송, 그리고 맑은 계곡물과 산정의 기암괴석위에서 자라는 소나무가 어우러진 절경을 바라보며 오르락내리락 길을 걷는다. 불영사는 울진군 서면 불영사길 48에 위치하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불국사의 말사이다. 신라 진덕여왕 5년(651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서편의 산 능선 위에 서있는 부처바위가 이곳 연못에 비춰주고 있어 불영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연못가에 자리 잡은 불교사물의 전각인 법영루(法影樓)를 지나 대웅보전을 돌아보았다.
대웅보전은 조선 후기의 건물로 전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에 다포계 양식이고 싸리나무로 된 배흘림기둥이며 보물 제1201호로 지정되어 있다. 내부에 봉안되어 있는 후불탱화도 1735년에 제작된 작품으로 보물 제1272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건물 축대 아래에 몸통이 없는 돌 거북이 머리상을 비치해 두었고 법당내부 대들보위에는 머리가 없는 목제 거북이상을 올려놓아 화재를 예방케 하였다고 한다. 법당에는 석가여래부처를 중심으로 좌우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협시하고 있는데 삼존불은 이곳 마당에 서있던 600년 묵은 은행나무가 부러져 그 나무로 조성하였다고 한다.
조선후기에 건축한 응진전은 불영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보물 제730호로 지정되어 있다. 의상전에는 창건주 의상대사를 중심으로 좌우에 16나한을 봉안하고 있으며 조선 제19대 임금 숙종의 비인 인현왕후의 초상화 2점이 걸려있다. 2001년도에 건물을 보수하다가 발견된 상량문에 인현왕후와 관련된 기록을 발견하였다는 것이다. 이 전각은 1867년에 인현왕후의 원당으로 지어졌다는데 장희빈의 계략으로 폐위되어 자결을 기도하였던 왕후는 꿈속에서 불영사스님이 현몽하여 목숨을 구하였고 그 후에 복위되어 불은(佛恩)에 보답하고자 불영사의 사방 10리 땅을 하사하였는데 1867년 인현왕후 사후에 이 원당을 지어 극락왕생을 빌었다고 전한다. 이곳에는 명부전, 극락전, 천축선원, 청풍당, 희운당, 청납당, 반야당, 법운당, 향운당 등 수많은 전각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불패(不牌)와 불연(佛輦)은 쉽게 접할 수 없는 불구(佛具)이며 마당에 세워져 있는 삼층 석탑에도 눈길이 끌린다.
불영사는 주변의 계곡이 너무나 깨끗하고 아름다우며 금강송으로 둘러싸여 있다. 사방에 둘러쳐진 산 아래의 그 중앙에 살포시 자리 잡고 있어 심심유곡의 명당이라 느껴진다. 이곳에는 젊은 비구니들이 수행하는 도량이다. 공양간에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 나오는 비구니들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운 자태이며 얼굴 또한 청초하고 예쁘다. 그리고 순수해 보인다.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정진한다면 틀림없이 극락왕생할 것이라 믿어진다. 아직도 산벚나무 꽃이 만발한 불영사 연못가를 지나 폼을 잡고 우뚝우뚝 서있는 멋쟁이 금강송 숲길을 따라 걸었다. 너무나 아름답고 깨끗한 골짜기라 못내 아쉬운 마음 한 자락 남겨두고 바른걸음으로 일주문을 나서야 하였다.
(2013.4.26,금)
첫댓글 울진 불영사와의 불영계곡에 다녀 오셨군요.불영사와 불영계곡을 이렇게 생생하게 필력하여 주시니 새삼 불영사의 정경이 한눈에 그려지네요 저도 불영계곡에 몇번 가 보앗습니다 만 선생님의 체험을 수필로서 다양하게 건필 하시어서 감사하게 잘 일고 가슴애 담아갑니다.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요.
불영계곡의 아름다운 풍광이 생각 나네요. 작년에 부부 모임에서 단녀온 곳이라 더욱 반가운 글 입니다. 불영사의 고즈넉한 연못, 우뚝우뚝 폼을 잡고 서있는 금강송이 눈에 선 합니다. 금강송 그 속에서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비구니 스님의 자태 또한 참신함을 더해 주네요.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늘 행복하세요...
불영사를 더많이 알게되어 유익하였습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