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사회적 기능
일찍이 시와 노래가 분리되지 않았던 시절에는 시가 종교적 기능을 대신했었고, 모든 공동체 사회의 질병과 재앙을 달래거나 그 사회의 소원 성취를 노래라는 형식을 빌어서 그 제의적 기능을 다했던 것이다. 또한 시는 새로운 지식과 삶의 지혜를 창조하고, 그 지식과 지혜를 보존하는 기능과 함께, 모든 떠돌이--나그네들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선사해 주는 기능을 떠맡아 했었다. 문자가 성립되어 있지 않거나 보편화되어 있지 않았던 시절에는 일정한 운율과 리듬을 지닌 시의 형식이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고 보존하는 교육적 기능에 가장 알맞았으며, 그 시가 전달할 수 있었던 삶의 지혜와 그 독특한 가락 때문에, 매우 흥겨운 정취를 자아내는 축제적, 혹은 카니발적 기능을 간직하게 되었던 것이다. 어떠한 종교적(제의적) 의식 행위일지라도, 그것은 반드시 시라는 양식----예를들면 찬송가나 주문과도 같은----을 필요로 하게 되어 있다. 호머의 일리어드와 오딧세우스와도 같은 대단한 삶의 지혜마저도 구비문학의 전통 아래서 그것에 적절한 운율과 리듬을 부여할 수가 없었다면, 그 대단한 삶의 지혜마저도 아무런 쓸모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의 종교적 기능이나 교육적 기능에 즐거움이라는 요소가 없게 되면, 그 기능들의 사용가치가 아무리 유용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박제화되거나 모든 사람들의 기피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모든 의식이나 삶의 지혜마저도 즐거움의 산물이어야지, 고통의 산물이어서는 아니 되기 때문이다. 고통의 산물은 기피의 대상이지만, 즐거움의 산물은 축제(혹은 참여)의 대상이다. 시의 축제적 기능은 현실원칙 위에 쾌락원칙이 있다는 것을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말해준다.
----반경환, [행복의 깊이]({행복의 깊이 1})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