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측정된 의식 척도는 가치 판단이나 장점을 암시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500 수준은 400보다 나은 것이 아닌가요?
의식 척도는 에고의 프로그림인 '~보다 낫다'를 나타내지 않습니다.
의식 척도는 그저 위치나 소재를 가리킬 뿐이며 그러한 것을 차례로 관련된 특성을 가리키지요,
큰 나무는 작은 나무'보다 낫지 ' 않습니다.
그래서 의식 수준은 학습 곡선상의 한 지점과 의식 진화의 한 단계를 표시하지요,
삶의 기쁨은 어떠한 수준에서든 그 수준의 잠재성을 실현하는 데서 옵니다.
매 수준마다 그 수준에 따른 보상이 있으며, 그러한 보상은 각 개인에게 사실상 동일하게 느겨지지요,
수행자의 목표가 방향의 하나라면, 목표 달성은 그 자체로 보상이 됩니다.
게다가 신에게 봉헌된 삶은 무한한 충족감을 가져다 주는 반면,
이득을 얻는데 골몰한 삶에는 함정과 괴로움이 가득합니다.
전 역사에 걸쳐 인간 의식은 매우 느리게 발전했습니다.
이제 그 속도는 분명 빨라질 것이고 영성이 보다 일반적으로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기업의 세계조차 영적 가치를 포하미키는 것이 보다 건실한 손익 계산서로 반영되는 것처럼
크게 수지가 맞는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번영은 달러만이 아니라 참여의 기쁨으로도 측정됩니다.
영적 가치는 비종파적이며 그저 자명한 것의 긍정일 뿐이지요,
예를 들면 우리은 작업자들을 보호해야 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그들을 배려하기 때문이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위법이고 또 산업안전보건청(OSHA)에서 벌금을 물리기 때문은 아닙니다.
많은 기업과 정부 관료가 202로 측정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측정치에 비추어, 그들이 온전한 것은 일차적으로 법의 강제를 받기 때문이라고 의심할 수도 있지요,
우리사회의 기관들은 자비심과 용서로, 혹은 친절함으로 주목받지 못합니다.
많은 기관이 차가운 기능성의 수준에서 돌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 곳들은 특징적으로 유머가 없고 직원과 대중에게 고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향이 높지요,
비인간성은 이 시대의 스타일인 듯합니다.
그예를 들어 800번으로 전화하면 '여보세요.'라는 따뜻한 목소리 대신에
자동 응답기가 단조롭고 실망스러우며 기를 꺾는 메시지로 응답합니다.
기업의 세계는 인간적 온기, 인간의 존재, 따뜻함, 배려가 필요합니다.
수억 달러짜리 기업에서 시급 10달러의 전화받는 직원을 두지 못한다는 건 이상해 보입니다.
역사적으로 인류는 신권정치(神權政治)에 대해,
그리고 정부나 시장에 종교의 신들을 불러내는 일에 대해 고통스러운 경계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미국 헌법은 아주 정교하게 영성과 종교를 뚜렷이 구별하고 있지요,
여기서 영성이란 단순하게 말하면 기왕의 모든 인간적 미덕을 이루는 것이고,
종교는 분파적이며 따하서 비민주주의적입니다.
역설적으로 종교로부터의 자유가 종교의 자유를 가능하게 합니다.
영적 미덕에 영적이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지 않다면,
사회의 모든 수준은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고 그것은 분명히 유익합니다.
신성(Divinity)이 익명으로 남아 있는 한,
신은 사회적 삶, 사회 기관, 대기업의 뒷문으로 조용히 스며드어 올 수 있지요.
이렇게 될 때, 대립의 해소와 더불어 재맥락화가 일어나고, 대립하는 분파들 사이의 반목은 줄어듭니다.
그리하여 대기업은 악마로 몰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에게 일자리를 주고, 사회의 전 구조를 지탱하는 수입은 물론,
일상 생활의 기초를 제공해 준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친절함, 그리고 타인과 타인의 복지에 대한 관심은 최상의 기업 활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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