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그러나 우리는
달랐다
일본의 신간센은 도쿄를 중심으로
해서 서쪽으로는 하카타까지 가는 노선을 동해도 산양 신간센(東海道 山購新幹線)이라 하고, 니이카타에는 상월(上越)신간센, 동북쪽 모리까지는 동북(東北)신간센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하카타까지 운행되는 신간센은 왜 동해도 산양신간센이라 부르느냐고
한 사장이 의문을 표시했다.
아닌 게 아니라 나도 막연하게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그거 말고도
알아볼게 하도 많았는지라 그 때까지 뚜렷하게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한 사장은 혼자 속으로 추리를 계속했던 모양인지 내게 설명했다. 『최초 신간센은 오사카까지 건설되었는데, 그건 동해도 신간센이라
불렀다. 그 후 하카타까지 연장되었는데 그쪽 철도는 산양선이었다. 그래서
두 개의 철도를 합해서 같이 부를 때는 동해도 산양 신간센이라 부른다』는 것이었다.
그 말은 정확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신간센 이전부터 있는 재래식 본선은 분명히 동해도 본선과 산양 본선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우리는 기차여행 하는 동안 의심 나는 점을 우리끼리 경쟁적으로 추리해 보는 즐거움을 하나의 낙으로 삼았다.
교토에서는 관광버스를 타고 처음 들른 곳이 니조성이었다. 이 성은 1603년 세워졌으며 도쿠가와 쇼오군 (德川将軍)이
교토에 올라올 때의 거소였다고 한다. 그리고 신라에서 건너온 일본의 국보 1호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을 소장하고 있는 고류지(廣降寺)를
둘러 보고, 마지막으로 들린 곳이 기요미즈테라였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미 소개한 바 있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우리는 교토 관광을 마치고 히카리 편으로 신 요코하마에 도착해서 1박했다. 도시마다 신간센역사는 새로 지어져 이름도 새로 붙여졌다. 우리는 이튿날 후지산 관광에 나섰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우리가
찾아간 곳이 겨우 후지산 기슭에 불과한데 실망했기 때문이었는지 그곳 일정기록 외에는 아무런 메모가 남아 있지 않았다.
우리는 신후지역에서 고타마 신간센(자유석)을 타고 도쿄에 도착해서 우에노로 이동하여 사우나(댄디사우나 앤드
캡술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우리는 하카타에서 토쿄까지 가는데는 히카리를 이용하면서 도쿄까지
들어가는 과정을 ‘진출’이라 불렀다. 우리는 일인들이 과거 우리나라에 침략해 들어온 것을 ‘진출’이라고 표현 한데 대한 반작용의 뜻으로 그렇게 이죽거렸던 것이다.
히카리의 전자식 안내판에는 그때그때 다가오는 정차역과 다음 정차역에
대한 정보와 간단한 뉴스가 나왔다. 그런데 수시로 전기가 차단되는 듯 안내판의 글자들이 순간적으로 꺼졌다
켜졌다 하였다.
전선으로부터 동력을 전달받는
받침대가 고속주행으로 인하여 순간적으로 전선에서 이탈되는 헌상이 반복되는 듯 했다. 문득 고속으로 달리면서
전선과의 마찰을 어떻게 해결하는지가 궁금해졌다. 한
사장과 나는 한참 토의해 보았지만 그 문제는 역시 전문적인 문제라 시원한 결론을 얻지 못했다.
신간센이 평균 4~5분
간격으로 계속 출발하는데, 이 모두 컴퓨터에 의해서 관리되고 제어될 것이 아닌가? 하카타에서 도쿄까지는 1,176km의 거리이다. 이 거리를 신간센은 약 6시간 내지 6시간 30분 만에 주파한다. 4~5분
간격으로 열차가 출발한다면 이 철도상에는 동시에 약 80여대의 열차가 운행되고 있는 셈이다.
동해도산양신간센에서만 해도 동시에
80여대의 열차를 통제하려면 수퍼 컴퓨터에 의해서 정확하고 정밀하게 통제가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신간센이 도쿄를 중심으로 해서 3개 철도로 분리 운영되고 있는 것은
역시 일본의 기술로도 통제관리의 한계가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일본이 자랑하는 고속전철의
핵심기술이 바로 이 전자식 제어장치라고 한다. 고속철도는 고속주행 시 야기될 수 있는 철도안전성 문제, 열차의 진동 및 소음감소대책, 그리고 안락한 승차감 등이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겠지만, 뭐니뭐니해도 시속 200km 정도의
고속으로 달리는 많은 열차를 동시에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컴퓨터 기술을 제일로 꼽아야 할 것이다.
만일 컴퓨터에 고장이라도 나서 제어 불능상태에 들어간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 지는 것일까? 예비수단은 강구되어 있는가? 모든 기능이
작동 중지될 가능성은 없는가? 수동으로 작동해서 추돌을 막을 수 있는 것인가? 사고가 난다면 대형사고가 나는 것 아닌가?
우리는 갑자기 사지가 와르르 떨려왔다. 물론 비전문가의 어처구니 없는 기우였기를 바란다. 그러나 실제로는
신간센도 그 동안 원인을 알 수 없는 사고가 두세 번 있었다. 우리가 닛코로 떠나려고 도쿄역으로 나갔던
날 저녁에도 모리오카 방면으로 떠나는 동북신간센에 무언가 고장이 있었다. 열차가 계속 연착 연발하는
통에 도쿄역 플랫폼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도쿄역은 개찰시간이 따로 없었다. 기차가
계속 출발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계속 개찰을 받고 홈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열차가 연발을 하다 보니
플랫폼이 그만 만원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신간센은 도쿄에 도착해서 승객이 내리고 청소를 끝내면 몇 분 후에는
다시 왔던 방향으로 되돌아 가는 것이었다. 청소부를 비롯해서 모든 직원들이 바쁘게 뛰었다.
모리오카쪽 열차 시각표, 전자식
디스필레이도 모두 꺼져 있었다. 우리는 바쁜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날 일정을 취소하고 우에노의 캡슐
호텔로 돌아와 버렸다. 우리는 우에노의 캡슐 호텔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던 터였는데, 마침 여기서 하루 더 쉴 수
있는 좋은 구실이 생겼던 것이다.
우리는
이튿날 도쿄역에 나와 야마비꼬를 타고 우쯔노미야로 향했다. 그런데 이 야마비꼬는 어쩐 일인지 동해도산양신간센을
달리는 히카리에 비해서 좌석이 불편했다. 앞 좌석과의 거리가 비좁아서 무릎이 아팠다. 창문도 히카리처럼 크지 않고 작은 창문들이었다. 전자식 안내판도
없었다. 오사카나 하카타 쪽으로 달리는 열차에 비해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지역적으로도 오사카쪽이 훨씬 발전되어 있었고, 모든 우선권이 그 쪽에 주어져 있는 듯했다. 우리는 일본에도 지역차별이 있는
것으로 단정해 버렸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와서 보면 한국에 돌아가 할 말이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몇 일 전에 당시 일본
여행을 같이 했던 한사장을 만나 그 때 일을 회상해 보았다. 우리는 일본에서, 특히 음식점에서 겪은 일들을 기억해봤다. 우동 먹을 때 두 세조각 뿐인
무장아치라든가, 종지 같이 작은 그릇에 담겨져 나오는 반찬 등 그들의 검소하기 이를 데 없는 절약정신을
우리는 그들의 가장 으뜸가는 특장으로 꼽았다. 그리고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이라는데 서로 의견이 일치했다.
그러나 무언가 석연치
않은 게 한가지 있었다. 우리나라는 지난 반세기 조금 넘는 동안, 비교적
짧은 기간에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다. 우리는 속도전을 벌였고, 그것은
이른바 ‘빨리빨리’ 문화라고 이름 지어져 약간의 문제도 노출
되었고, 폄하의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많은 낭비도
뒤 따랐다. 일본 사람들이 보면 기겁을 할 정도로 우리가 고쳐야 할 나쁜 습관이었지만, 그러나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어쩌면 그 낭비와 많은 쓰리기가 오히려 우리의 고속 성장의 밑거름이 되어 주지 않았는가 하고 되돌아 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 같은 구세대들은 어렵게 살던 시대와 상황적인 배경 때문에 무엇 하나 함부로
버리지 못했다. 예를 들어 상품이나 우편물을 받아도 포장지나 포장 끈 마저도 함부로 버리지 못했다.
웨인 다이어는 그의 저서 ‘오래된 나를 떠나라’에서 공황기를 거치며 자신도 그 때 절약하던 습관
때문에 그 후 상황이 호전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의 버릇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썼다. 그는 아이들이
쓰다 버린 치약마저 주어다 마지막까지 짜냈다고 했다. 우리는 그보다 더했다.
그러나 우리의 신세대는 생각이 달랐다. 그런
건 즉시 쓰레기 통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들은 다음 번에는 새 포장지 새 끈을 쓰면 되는 것이었다.
쓰레기를 양산했지만, 그
대신 종이와 끈 등은 폭발적인 수요를 낳았고,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공장들은 쉴새 없이 돌아가야 했다.
직장과 일자리가 생겨 나고 고용이 늘어 났다. 그것은 곧 경제발전으로 이어지고, 우리는 고속성장을 이루었다. 낭비를 무시하고도 남을만한 이익을 창출했다. 비록 검소하게 살지
못한 점이 있기는 했지만 우리가 일본인들처럼 너무 절약에만 치중했다면 과연 오늘과 같은 번영을 기대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인위적으로 속도를 늦출 필요가 없다. 오히려 불가항력적인 속도둔화가 문제다. 순환장애가 일어나면 부정적인
영향이 뒤 따른다. 아마도 지금이 그런 때가 아닌가 싶다. 소비는
미덕이다. 좀 낭비해도 된다.
전 세계가 열광하는 케이 팝의 위력을 보라! 일본에 비해 우리는 생동감 넘치는 젊은이들이 있다.
나는 일본과
다른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이런 기질과 성향이 엄청난 발전의 모멘텀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