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러드 베이>
A Bay of Blood / 감독 마리오 바바 / 1971년
<중경삼림>
重慶森林 / 감독 왕가위 / 1994년
홍콩 곳곳을 누비는 도시 남녀의 러브 스토리인 <중경삼림>은 왕가위 감독 고유의 스타일을 대표하는 영화로서 당대는 물론 최근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실연에 빠진 경찰들과 위기에 처한 마약밀매업자 등 적극적으로 사랑을 갈구하는 네남녀의 사연이 얽히고설키는 이야기. 당대 문화의 아이콘이면서 세기말의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영화의 영향은 아시아를 넘어 여러 나라의 영화들에서 장르를 가리지 않고 찾을 수 있다. 사부 감독의 <포스트맨 블루스>(1997)에서는 임청하가 연기한 금발의 레인코트를 입은 밀매업자의 이미지와 <레옹>(1994)의 캐릭터를 뒤섞어 패러디하기도 했고, 장 피에르 주네 감독의 <아멜리에>(2001)에서 페이가 경찰663의 집에 몰래 들어가 우렁각시처럼 집안일을 하며 집에 머무르는 등의 장면도 아멜리에가 이웃집 남자 콜리뇽의 아파트에 몰래 들어가는 장면으로 변주된다.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만년으로 하고 싶다”는 금성무의 대사는 영화의 제작에 참여했던 유진위 감독이 연출한 <서유기> 시리즈에서 차용해 쓰기도 했다. 제임스 맨골드 감독은 <더 울버린>(2013)을 만들면서 많은 서부극과 <중경삼림>에서 영향받았음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리고 <문라이트>(2016)의 배리 젠킨스 감독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왕가위 감독이 <중경삼림>이나 <화양연화>(2000)에서 대담한 표현과 풍부한 색채, 감정적인 편집 스타일을 보여주는 것을 보고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영화와 담고 싶은 이야기를 굳이 할리우드의 전통적인 방법으로 묘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명>
Notorious / 감독 앨프리드 히치콕 / 1946년
“당신이 날 사랑하지 않는, 아주 이상한 연애군요.” 정부 요원 데블린(케리 그랜트)은 나치에 부역한 아버지를 둔 앨리샤(잉그리드 버그먼)와 브라질에서 첩보 활동을 벌이다가 깊은 관계에 빠진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첩보 활동을 벌이는 두 사람은 사랑하지만 서로를 오해할 수밖에 없다. 히치콕 감독의 작품 중에서 가장 테크니컬한 영화로 꼽힌다. 단순한 촬영 기법으로 서스펜스를 극대화하는 방법의 사례로 거론되는 이유다. 일례로 2층 계단 위에서 1층을 카메라가 따라 내려오며 열쇠를 쥔 앨리샤의 손을 클로즈업으로 비추는 긴 호흡의 장면은 가장 인상적인 카메라워크를 보여준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아름다운 키스 신의 영화로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그 또한 3초 이상 진행할 수 없는 규정을 재미있게 비틀어 만든 장면이다. 그가 냉전시대에 만들었던 <찢어진 커튼>(1966), <토파즈>(1969) 같은 첩보영화와 비교하면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수많은 감독들이 사랑에 빠진 스파이들의 러브 스토리에 매료됐다. 이 영화의 서스펜스 축조 방식은 장르와 시대를 넘나들며 많은 연출가들이 앞다투어 차용했는데 <007카지노 로얄>(2006)에서는 마지막 자동차 장면을, 최근의 <클로버필드 10번지>(2016)에서는 열쇠를 훔치는 장면을 차용했다. 드니 빌뇌브의 <에너미>(2013)와 기예르모 델 토로의 <크림슨피크>(2005)에서도 영화의 중요한 소품인 ‘UNICA’ 열쇠를 등장시켰고, 로버트 알트먼의 <플레이어>(1992), 어윈 윙클러의 <네트>(1995) 등도 영화의 캐릭터를 차용해서 만들었다.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와 폴 토머스 앤더슨의 <팬텀 스레드>(2018)는 나치 스파이 세바스찬과 엄마의 관계에서 영향을 받았다.
<북극의 제왕>
Emperor of the North / 감독 로버트 알드리치 / 1973년
국내에서는 <지옥의 라이벌>이라는 제목으로 vHS가 출시됐던 <북극의 제왕>은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 달리는 기관차에 뛰어올라 무임승차를 해서 먹을 걸 훔치려는 부랑자들과 이들을 막기 위한 승무원간의 싸움을 다룬다. 질주하는 기관차 위에서 벌어지는 하드보일드 액션이 영화를 관통하는 정서를 지배한다. 거기에 더해 승무원 샤크(어네스트 보그나인)와 부랑자 넘버원(리 마빈)이 서로를 향한 살의를 품은 모습은 탈출구 없이 사지로 내몰리는 서민들의 삶을 대변해주는 듯하다. 당대의 현실에 비추어보면 목숨을 내걸고 달리는 기차로 뛰어드는 부랑자들과 매몰차게 망치를 휘두르며 기차를 지켜내고자 하는 승무원의 관계는 단순한 액션 이상의 주제와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도 느낄 수 있다. 당시 미국 사회를 보여주는 영화라는 면에서 즉각적으로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2013)와 같은 이른바 기차 영화의 계보를 만들어낸 영화다.
<악질경찰>
Bad Lieutenant / 감독 아벨 페라라 / 1992년
지독한 악역에 가까운 마약중독자 형사(하비 카이텔)의 일상은 꼬일 대로 꼬였다. 야구 경기 내기에 거액의 돈을 걸었다가 동료들 돈까지 다 잃게 생겼으니까. 내기 판돈이 모자란 형사는 수사 중인 범죄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마약밀매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그는 당장 내일 죽을 것처럼 있는 돈 없는 돈을 몽땅 끌어모아 천문학적인 액수를 덜컥 또 걸고 만다. 이 영화의 파괴적인 매력은 대부분 하비 카이텔의 신들린 연기를 통해 전달된다. 갑갑하고 우울한 마약중독 형사의 일거수일투족을 좇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섹스와 폭력과 마약에 찌들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형사가 서서히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체험하는 기분마저 든다. 폭력과 구원에 관한 아벨 페라라의 영화 세계는 <악질경찰> 이후 <어딕션>(1995), <퓨너럴>(1996) 등의 영화로 이어지며 견고해진다.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스탠리 큐브릭 감독 등을 자신의 스승으로 모시는 그는 네오누아르를 표방하는 <악질경찰>을 통해 하비 카이텔이라는 배우를 비로소 명배우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하비 카이텔은 드디어 이 영화로 마틴 스코시즈 감독과 로버트 드니로의 그늘에서 벗어나게 된다. 물론 <비열한 거리>(1973)나 <택시 드라이버>(1976) 속 영화 세계에서 영향을 받긴 했지만 종교를 향한 도전적인 묘사, 폭력과 구원이라는 양립불가의 감정을 담아내는 <악질경찰>의 지독한 묘사는 마피아의 비열한 세계와는 또 다른 흉포한 세계의 정서를 보여준다. 베르너 헤어초크 감독은 <악질경찰>이 지닌 캐릭터의 뼈대를 이어받아 전혀 다른 자신만의 색깔로 재해석하기도 했다.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 / 감독 리들리 스콧 / 1982년
어두운 미래 사회의 디스토피아를 시각적으로 구현해낸 리들리 스콧 감독의 대표 영화 <블레이드 러너>는 1982년 이후 만들어진 SF영화들에 가장 진한 족적을 남겼다. 영화는 2019년 LA를 배경으로 타이렐이라는 로봇 공학회사가 만들어낸 복제인간, 레플리컨트와 그들이 얽힌 사건을 수사하는 은퇴담당관 ‘블레이드 러너’ 릭 데커드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 감독이 추구했던 일종의 하드보일드 형사 영화 스타일에는 화려하고 정제된 비주얼과 액션보다는 불균질적인 비주얼이 어울렸다. 일러스트레이터 시드 미드가 디자인한 미래 도시 LA의 풍경 그리고 조던 크로넨웨스 촬영감독의 지휘 아래 특수효과 촬영 세트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눈속임 대신 썼던 스모그 효과 등이 영화의 그로테스크한 스타일로 자리 잡아 사이버펑크룩의 전형을 제시한 영화로 기록되고 있다. <아키라>(1988), <백 투 더 퓨처>(1985), <터미네이터>(1984), <저지 드레드>(1995), <로보캅> 시리즈의 미래 풍경, <블랙팬서>의 와칸다, <레디 플레이어 원> 등의 영화 배경뿐만 아니라 수많은 SF 비디오게임에도 영향을 끼쳤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배트맨 비긴즈>(2005)를 연출할 당시, <블레이드 러너>의 프로덕션 디자인과 촬영을 연구하듯 뜯어보며 공부했고 또 모방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블레이드 러너> 자체가 이미 <메트로폴리스>(1927), <시민 케인>(1941), <밀드레드 피어스>(1945), <로건의 탈출>(1976), <에이리언>(1979) 같은 영화들의 테크닉과 캐릭터 아이디어를 차용해서 만들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영화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영화 레퍼런스 공장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숏컷>
Short Cuts / 감독 로버트 알트먼 / 1993년
소설가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 9편을 바탕으로 22명이나 되는 도시인들의 삶을 얼기설기 엮어낸 영화다. 주류영화계와 거리를 두고 개성 강한 작품을 만들었던 로버트 알트먼 감독이 1980년대 이후 한동안 주춤했던 슬럼프를 딛고 재기에 성공하는 계기를 마련해준 작품이 바로 <플레이어>와 <숏컷>이었다. 알트먼 감독 스스로 상업 주류 시장의 편입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듯, <숏컷>의 세상 속 인물들은 다가올 미래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 파국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간다. 도시 안에서 위안을 찾는 사람들의 관계가 뒤엉켜서 종국에는 상처의 치유든 예고된 파국이든 어떤 식으로든 결말을 맞이하는 이 영화의 방식은 ‘알트먼 영화’라는 고유한 성질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숏컷>은 바로 그런 알트먼 영화의 핵심인 관계로 묶인 영화다. 중산층의 상처입은 일상을 다루는 많은 감독들의 영화를 비롯해서 형식과 주제 면에서 거의 직접적으로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매그놀리아>(1999)와도 닮은꼴 영화로 묶일 수 있다.
<협녀>
俠女 / 감독 호금전 / 1969년
1960년대 중국의 무협영화는 장철과 호금전의 시대였다. 당시 여성 협객이 활약하는 영화가 드문 만큼 주목을 받기도 쉽지 않았는데 <협녀>는 1975년 칸국제영화제에 진출해 기술부문 대상까지 받았다. 3시간이 넘는 온전한 상영 편집본이 가위질 당하지 않고 제대로 갖춰져 관객과 만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국내에서도 뒤늦게 조명받은 비운의 작품이다. 서극 감독의 <촉산>(1983)이나 리안 감독의 <와호장룡>(2000) 등에서 보여주는 대숲 와이어 액션도 사실상 <협녀>가 원조다. 뿐만 아니라 최근 지아장커 감독은 <협녀>의 영어 원제를 그대로 가져와 자신의 영화 <천주정>의 원제로 썼다. 중국의 폭력적인 현실의 영화적인 돌파구로서 무협영화의 형식과 효과를 빌려온다. 그것은 호금전 감독이 <협녀>에서 보여줬던 협객의 이미지를 통해 현실을 부숴버리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영화의 결은 조금 달라도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자객 섭은낭> 역시 <협녀>를 스승으로 모시는 영화다.
<48시간>
48 Hrs. / 감독 월터 힐 / 1982년
1980년대 할리우드는 형사영화의 시절이었다. <리쎌 웨폰>(1987)에서 멜 깁슨과 대니 글로버가 찰떡 콤비를 이뤘고 <베벌리힐스 캅>(1984)을 통해 디트로이트 형사 액셀 폴리, 즉 스탠드업 코미디언 출신 배우 에디 머피의 존재감을 알게 됐다. 그런데 이보다 한발 앞섰던 영화가 있었으니, 바로 월터 힐 감독의 1982년작 <48시간>이다. 강력계 형사 잭(닉 놀테)이 거대한 컨버터블 캐딜락을 몰고 에디 머피가 연기하는 탈옥범 일당의 끄나풀 레지와 범인들을 추격한다. 닉 놀테의 베테랑 형사 연기도 일품이고 에디 머피의 앳된 모습이 활력을 불어넣는다. <베벌리힐스 캅>, 척 노리스의 <사이렌스>(1985),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레드 히트>(1988) 등이 이 영화의 컨셉과 스타일을 차용했다. 멀게는 <러시아워>(1998)에서 성룡과 크리스 터커가 보여주는 코미디의 합도 이 영화가 원조다. <주토피아>에서 주디와 닉도 실종사건을 48시간 안에 해결해야 한다는 설정을 넣어 이 영화에 오마주를 바쳤다.
<콘택트>
Contact /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 / 1997년
“인간이 우주의 유일한 생명체라면, 그건 너무 끔찍한 공간 낭비일 것이다.”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한 유명한 말은, 자신이 1985년에 쓴 동명의 소설과 이를 원작으로 세이건이 직접 각본을 쓰고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이 연출한 <콘택트>를 관통하는 중요한 메시지다. 종교와 과학을 뛰어넘어 우주 어딘가에 나와 다른 어떤 존재가 살고 있을 거라는 믿음에 기반한 상상력은 영화감독들을 오랫동안 자극해왔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역시 한참 전에 <미지와의 조우>(1977)를 통해 인류와 외계 생명체와의 만남을 다룬 바 있다. 굳이 분류하자면, <콘택트>는 외계 생명체와의 어떤 만남의 스펙터클보다는 현실에서 채워지지 못하는 무언가를 찾아나서는 주인공 애로웨이(조디 포스터)의 내면 그리고 인간의 시야에 포착되는 우주 공간의 아름다움에 집중한다. 외계 생명체와 음악으로 조우하는 <미지와의 조우>를 비롯해 드니 빌뇌브 감독의 <컨택트>(2016), 제프 니콜스 감독의 <미드나잇 스페셜>(2016)류의 영화들이 보여줬던 공감각을 자극하는 비주얼보다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2014)와 궤를 같이한다. 매튜 매커너헤이가 두 영화 모두에 등장한다는 사실은 차치하고서라도 두 영화를 관통하는 딸과 아버지의 시공을 뛰어넘는 러브 스토리, 웜홀을 통해 우주 속 미지의 공간을 다녀온다는 상상의 실현 역시 <인터스텔라>가 담고자 했던 내용과 거의 유사하다. <콘택트>의 원작 소설은 외계 지적생명체의 전파신호를 연구하는 실제 프로젝트인 ‘SETI’에 착안해 쓰인 소설이며 <인터스텔라>는 물리학자 킵손이 1987년에 우주여행 등에 관해 발표한 웜홀 이론 논문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세븐 챈스>
Seven Chances / 감독 버스터 키튼 / 1925년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저서 <위대한 영화>에서 무성영화 시절을 대표하는 3명의 감독을 가리켜 “해럴드 로이드는 우리를 엄청나게 웃기고, 찰리 채플린은 우리를 깊이 감동시키지만, 버스터 키튼보다 더 용감한 사람은 없었다”고 했다. 위대한 스톤 페이스, 버스터 키튼은 말 그대로 위험천만한 액션을 대역 없이 직접 선보이면서 감동과 웃음을 자아내는 영화를 만들었다. 슬랩스틱 코미디와 스턴트의 장인 버스터 키튼의 여러 대표작 중에서 <세븐 챈스>는 첫 번째 대표작은 아니다. <제너럴>(1926)이나 <스팀보트 빌 주니어>(1928), <카메라맨>(1928), <항해자>(1924) 같은 영화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덜 회자되는 영화에 속한다. 또한 버스터 키튼의 위험천만한 스턴트 액션은 항상 기관차, 자동차, 자전거, 배와 보트 등의 기계들과 연관이 있는데 <세븐 챈스>에서 보여주는 놀라운 액션의 대부분은 말 그대로 자연경관을 배경 삼아 몸으로 때우는 장면들로 이뤄져 있다. 산 절벽을 나무를 타고 내려온다든가, 언덕 아래로 구르는 바위들 사이를 피해 질주하는 모습이 일절 컷 없이 롱테이크로 담겨 있다. 저렇게 찍다가 죽는 것 아닌가 하는 아슬아슬한 스릴 뒤에는 사실 사랑과 결혼, 돈과 성공 사이에서 묘한 양가적 감정이 뒤섞인 주인공 셰넌(버스터 키튼)의 욕망이 숨겨져 있다. 찰리 채플린에게 <시티 라이트>(1931)가 있다면 버스터 키튼에게는 <세븐 챈스>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무성영화로는 드물게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도 됐다. 1억달러의 상속을 받기 위해 24시간 안에 결혼해야만 하는 연애 3년차 커플의 이야기로 리메이크된 영화 <청혼>(1999)은 크리스 오도넬, 르네 젤위거가 주연을 맡았다.
<들개>
野良犬 /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 / 1949년
‘반드시 잡는다’고 말하며 범죄자의 뒤를 끝까지 쫓는 형사 혹은 추격자의 영화들 가운데 어떤 지리멸렬한 시대의 공기를 머금고 있는 영화가 있다면 <들개>를 염두에 두지 않고서는 어떤 기획 방향도 쉬이 잡을 수 없을 것 같다. 1949년,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여러 걸작들이 아직 세상에 빛을 보기 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잃어버린 권총 한 자루를 소재로 한 추격극이면서 동시에 패전국의 낙인이 찍힌 채 살아가던 도시 빈민들의 생활상을 관통하는 시대극이다. 루추안 감독의 <사라진 총>(2003)은 이야기 전체에서 <들개>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고, 잃어버린 권총을 찾기 위한 경찰의 고군분투 설정은 테드 포스트 감독의 <더티 해리2: 이것이 법이다>(1973), 최근에는 두기봉, 위가휘 감독의 <매드 디텍티브>(2007)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시대의 공기를 꿰뚫고 범죄자와 대면하게 되는 수많은 형사영화들은 <들개>의 영향 아래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