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첨(諸葛瞻, 227~263)**과 **제갈상(諸葛尙, ?~263)**은 촉한의 마지막을 지킨 비운의 부자(父子)이자, 제갈량의 아들과 손자입니다. 두 사람은 등애의 기습으로 촉한이 위기에 처했을 때, 마지막 남은 전력을 이끌고 면죽관에서 전사하며 그 가문의 명예를 지켰습니다.
### 1. 제갈첨: 아버지의 그림자와 마지막 책임
* **촉한의 기대주:** 제갈량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촉한 백성들과 유선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젊은 나이에 군사중서(軍師中書)를 거쳐 행군호군(行軍護軍)에 오르는 등 고속 승진을 했습니다.
* **전략적 판단의 미스:** 등애가 음평도를 넘어 침입했을 때, 제갈첨은 성도를 방어하기 위해 군을 이끌고 나갔습니다. 이때 황숭(黃崇) 등은 "빨리 험준한 곳을 선점해야 한다"고 조언했으나, 제갈첨은 이를 주저하다가 시기를 놓쳤습니다. 결국 등애군과 면죽관에서 정면 승부를 벌이게 되었습니다.
* **최후:** 등애의 군대에 포위되어 격렬하게 싸웠으나, 결국 군사들과 함께 전사했습니다.
### 2. 제갈상: 아버지와 함께한 죽음
* **용감한 청년:** 제갈상의 행적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면죽관 전투에서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아버지 제갈첨이 위기에 처하고 전세가 완전히 기울자, 제갈상은 **"내 아버지께서 이미 돌아가셨으니, 살아남아 무엇하겠는가!"**라고 외치며 홀로 적진 깊숙이 뛰어들어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 **절개와 충의:** 비록 젊은 나이였지만, 조부인 제갈량의 명성을 더럽히지 않고 끝까지 촉한을 위해 목숨을 바친 충절은 많은 이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 3. 역사적 평가
* **제갈량에 대한 평가와의 괴리:** 역사학자 진수는 제갈첨에 대해 "명성은 실질보다 과했고, 재능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다소 박하게 평가했습니다. 제갈량이라는 거인의 아들이었기에 그만큼 대중과 조정의 기대치가 너무 높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 **충절의 아이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멸망하는 위기 상황에서 도망치거나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성도를 지키려다 전사했다는 점 때문에, 후대에는 **"끝까지 촉한의 신하로서 도리를 다한 인물"**로 추앙받습니다.
### 요약
제갈첨과 제갈상은 **"거대한 영웅 제갈량의 그늘 속에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국가의 운명을 함께한 충성스러운 부자"**였습니다. 이들의 죽음은 단순한 패배가 아니라, 촉한이라는 나라가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