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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이국땅 인도에서 보낸 자나키지의 따끈따끈한 통신을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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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인도 주재 통신원, 자나키입니다.^_^
요즘 저는 아침마다 신문을 보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신문을 고대하며 기다려 본적도 없었고, 열심히 본적도 없습니다.
일단 영어로 써 있으니까 걸리는 게 많아서 재미가 더 없잔아요.
그런데 요즘은 아주 열심히 봅니다.
세상 돌아가는 것에 무척이나 둔감한 저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큰 사건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공산당 정부가 비옥한 지역의 엄청 많은 토지(여러 마을)를 거대한 기업인 Tata 자동차 회사에 팔려고 했습니다. 그에 반대하는 농부들과 정부와의 싸움이 벌어진 것입니다. 작년 서부터 옥신 각신 싸우다 드디어는 올 3월에는 경찰이(경찰이 했다는 것은 현 공산당 정부에서 시키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죠) 14명의 농부를 사살하고 많은 사람들을 중상을 입혔습니다. 폭탄도 터트렸고, 집도 불 태우고 사람들도 두드려 패고 등등등...농부들은 대대로 내려오는 땅에서 농사를 짓다가 아주 적은 보상급을 받으며 고향을 떠나면 거지가 되는 길 밖에 없으니까, 목숨을 걸고 반대 투쟁에 나섰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다시 11월에 공산당 당원들이 압승을 거두어 모든 지역을 장악했습니다.
어느 날 텔레비에서 본 그 곳의 모습은 그야말로 전쟁이었습니다.
여러분, 이해가 되세요?
하긴 우리도 광주 시민 항쟁 때 정부가 사람들을 막 죽였었죠
지금 집이 타버려서 아니면 공산당 요원의 보복이 두려워서 자기 집에도 못 들어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난민수용소가 운영되고 잇습니다(반대파에서 운영)
막시즘을 표방하며 가난한 사랍들의 편인 척 변장해온 그들이
드디어는 벵갈의 산업화와 지식층 젊은이들을 위한 기회창출이라는 명목을 들며 그 동안 자기들이 표방해온 것에 정반대 되는 일을 너무나 잔인한 방법을 동원하여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그 지역을 장악한 바로 다음날, 주지사의 발언이 있었습니다. 정치적인 발언을 못 하게 되있는 주지사였지만, 너무나 참을 수 없었던 그는 “illegal, unaccepatble" 이라는 강한 발언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공산당 정부에서는 주지사가 정치적인 발언을 했다고 사직하라고 나섰습니다. 그러고 연이어서 캘커타 고등법원에서도 공산당의 짓거리는 ”illegal, unaccepatable" 이라고 판정을 했습니다 .
이지음해서 11월 14일 캘커타 지식인들이 일어섰습니다.
이제껏 대부분의 캘커타 지식인 들은
막시즘에 동화되어서 공산당 정부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도 일어섰습니다
예술가 작가 영화인 등등의 유명인사들이 중심가에서 행진을 시작하자 많은 행인들이 동참하여 무려 십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참가했습니다.
그때 한 유명인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I don't think we have done much. We were not only silent for 11 months, but for 30 years. We should have been more vocal."( 여기서 30년은 공산당이 이 벵갈 지역을 다스리고 있었던 30년 역사를 말합니다)
이 날의 기사를 읽으며 무척 저는 기뻤습니다.
공산당을 사랑하던 많은 지식인들이 이젠 정부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 쯤에서 저는 과거의 스토리들을 기억해냈습니다
거짓말일리는 없는데 정말 믿기 힘든 것들...
공산당 요원들이 아슈람에 들어와 몽둥이로 두드려 패서 머리가 터졌어서 났던 상처를 보여주던 다다의 이야기, 이마가 다쳤다는 디디의 이야기...
또 발리강지라고 하는 곳에서 대낮에 18명의 다다들이 살해 되었다는 이야기...
또 우리가 다 들어서 알고 있는 바바의 투옥(바바가 사람을 살해했다는 누명으로)...
물론 사실이겠지만 믿기 어려웠던 것들이,
이 쯤서 감잡히기 시작했습니다
즉, 제 마음에 그들이 이런 일을 하다가도 남을 존재라는 것이
어렵지 않게 실감이 되었던 것입니다.
자기가 잘못해 놓고도 거짓말을 해서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드는 일을
그들은 너무나 잘 하고 있더라구요 (요즘 신문 보며 감잡았습니다)
그러면서 중앙 정부와 CBI(인도의 FBI)가 나서서 사태 파악에 나섰습니다. 지금 과거의 모든 사건들을 조사 중입니다.
며칠 전 CBI 캠프가 동네에 세워졌습니다. 공산당요원의 보복이 두려워서(죽이고 집 불태우고 등등 하니까요) 동네사람들의 투고가 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농부들이 스스로 찿아와서 사건의 진상을 말하고 있답니다
지금 중앙 정부의 군대가 주둔하며 동네를 지키고 있는데
그 와중에도 십여명의 공산당 반대파였던 주민들이 공산당 요원들에게 유괴되어서 어덴지도 모른 곳에 불들려가 가서 두드려 받는일이 발생했습니다.
그 중 한명이 도망쳐 나와서 이일도 알려졌습니다.
그러자 공산당 측에선 “우린 그런일 없다, 누명씌우지 말라”
이렇게 나섰습니다.
이렇게 정신 없이 큰일이 벌어나고 있을 때
한 청년이 타살인지 자살인지 모르는 미스터리로 죽었습니다.
아주 부자집 딸이 서민층의 남자를 사랑해서,
법적으로 결혼 한 그 날, 남자집으로 들어 가고,
친정 부모에게 그 사실을 알렸습니다.(8월)
결국 그 남자는 9월 21일에
기차 선로에 죽어있는 모습으로 발견되었고,
경찰은 자살이다고 밝혔지만, 시민들이 여러 요인으로 자살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던 점들이 있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시민들이 발칵 일어섰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이름도 없는 한 청년의 죽음의 이유를 밝히기 위해 중앙정부 요원인 CBI 가 파견 되었습니다.
CBI는
이런 일이 일어나기까지는 법을 지켜야 할 경찰이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법을 어기는 일에 돈을 받고 나서서 두 사람의 합법적인 결혼을 방해하고저 했던 썩을 대로 썩어있는 경찰이 있었다는 것을 밟혀냈습니다.
이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계속 행해지고 있었던 일인데 이제 많이 깨쳐져가는 시민들의 양심이 이 썩은 부위가 나타나게 도왔던 것 뿐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부패가 만연되고 있음에도
아무런 조치도 못 취해온 정부의 무능을 탓하는 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또 하나, 11월 21일에 커다란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모슬렘들이 또 몇 대의 경찰차를 태우고 폭탄을 터뜨리는 일들이 일어낫습니다
그들이 데모하는 이유
1)방글라데쉬 작가인 Taslima 를 추방하라
2)Nandigram(농부들 의 땅 )을 돌려주라
3)Riawanur 의 죽음 밝혀라....
그들이 내건 10가지 리스트 중에 이 3가지가 커다란 이슈였고,
그 중 1번이 그 날의 모슬렘들에게 가장 큰 이슈었습니다.
왜냐면 Taslima 가 쓴 소설에 모슬렘을 비방하는 글이 있는 모양임니다.그래서 모슬렘 극단 주의자들이 이렇게 그녀에게 비자 주지말라고 주장을 하고 나섰습니다. 이에 정부는 즉각, Taslima에게 압력을 가했고, 생명의 위협을 느낀 그녀는 라자스탄으로 도망을 갔고 다시 델리로 가서 중앙 정부의 철통같은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작가는 자신의 집이 있는 캘커타로 오고 싶은데 못 오고 있습니다.
이 것에 대해서도 많은 캘커타인들이 부끄러워하고 있고 자신의 정부에 불신을 갖게 되는 요인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최근에 신문을 보는 재미를 맛보고 있습니다
30년 동안 벵갈을 다스리며
별짓을 다해온 그들의 정체가 발각되는 게 너무 신나서요.
제가 니르말라를 데리고 무작정 캘커타로 온 것은
다솜이가, 인도 언어와 문화와 철학을 철저히 배워서
바바의 가르침이 무언지 확실히 알 수 있는
배경을 만들어 주고 싶어서였기 때문에
12 학년까지 아무런 사고 없이,
즉 마기라는 것이알려져서 추방당한다거나,
또는 동네 공산당 요원들에게 마기라는 것이 알려져서
다솜이 공부 마치는 데에 지장이 생긴다거나 하는 것이
안 발생하도록
동네 달마차크라도 못 가고
(제가 참가하면 저희 동네에 저희가 마기라는 것이 다 퍼질 거거든요, 그러면 공산당 을 따르는 직원들, 선생들도 알게 될거구, 그들은 마기를 적으로 알고 있으니, 얼마나 살기가 힘들겠어요, 공부를 다 마치지도 못하고 쫓겨날지도 모르죠),
킬탄도 아주 크게 아주 편하게도 못하고 살아온 지 오래 됬는데, (너무 답답해서 몇 년 전부터는 나도 모르겠다하고 킬탄의 볼륨을 좀 더 올렸었어요^_^)
우리를 괴롭히고 우리가 마치 이상한 단체인 것처럼 루머를 만들어 왔던 못 된 공산당 정부를 사람들이 무조건적으로 믿더니만, 이제 드디어 전환점의 시점이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기쁜 상황을 마기들에게 알려야지 하고 있었는지 꽤 며칠 되었는데 미적 미적 게으름 피우고 있다가
아! 오늘 아침의 신문을 좀 전사 보았어요
그 기사의 가운데에 있는 흑백 사진이 아무리 봐도 다다들 복장인 거에요. 그래서 그 기사를 읽기 시작했어요
좀 따분하시더라도 인도의 간략한 역사 공부 하신다 생각하시고 끝까지 봐주세용~~~
“ 인도에 3가지,
언급하기에는 너무나 큰 사건이 있었다
1)1943의 대기근
2)1946의 힌두 - 모슬렘 의 싸움
3)2007의 난디그람-농부와 공산당 정부의 혈전
그리고 5개의 부끄러운 사건이 더 있다,
그 것들은 많이 쓰여지고 논의 되지는 않았지만 게속해서 벵갈 사람들의 양심을 쑤시고 마음의 고통을 주게 할 것이다.
1)1968- Communist Party of India의 창립.
이 CPI가 창립됨으로써 벵갈지역의 테러화가 시작되었다.
2)1979년 1월말-마리츠잠피 대학살-마리츠잠피에서 CPI(M)이 벵글라데쉬 난민들을 사살한일, 아직도 몇 명을 굶겨 죽이고 총으로 쏘아 죽었는지 숫자 파악이 안 되고 있다.
3)1982년 4월 30일, 대낮, 캘커타 발리강지에서 18명의 아난다마기(아차리야들이셨습니다)들이 불에 태워 사살되었다. 누가 이일을 시켰는지 아직도 미스터리이지만, 그당시 신문에 알려진 바로는 그 동네의 어린 아이들이 유괴되었었고 그 것이 아난다마기들이 했다는 루머가(지금사 생각나는데요, 옛날에 제가 인도에 첨 왔을 즈음, 어떤 한국인에게서 들었는데, 그녀가 라마크리슈나의 회원에게 들은 이야긴데, 아난다마기들이 아이들을 유괴한다고 해서, 정말 말도 안되는 소리라서 잊었는데, 이제보니 정말 이런 루머를 만들어서 돌렸었다는 게 사실이군요)있어서 그 동네 사람들이 화가 나서 그들을 죽였다고 하는데, 아난다마기들은 CPI(M)들이 이 잔인한 짓을 했다고 너무 확실하게 단언해오고 있다.
4)2007년, 9월 21일-Rizwanur의 죽음.
단순한 한 청년의 죽음 같지만, 이것 뒤에는,
스스로 법을 지킬 줄 모르고 돈에 약한 경찰의 모습이 있었고
오래동안 누적되어온 이러한 문제들에 속수 무책인
정부의 무능함이 있다.
5)Taslima의 추방-2007년 11월 21일의 폭동 뒤에 서둘러서 작가를 추방한 일, 현 정부가 국민들에게 언론의 자유와 안전 보호를 보장하는 건지에 대한 의문. 모든 사람들이 이구 동성으로 벵갈의 수치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 이 글 쓰신 분이 덧 붙여서 말합니다.
2번의 마리츠잠피 대학살과 3번의 아난다마기 사살은 나머지 것들과는 구분되어져야 한다
왜냐면 그 두 사건이 놀랄 만큼 극악무도한 잔인성을 보였다는 사실과
엄청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침묵으로 반응 했다는
놀랄 만한 일에서 일치하기 때문이다.
지식인들은 난디그람 학살에는 입을 모아서 공산당을 비난하였다.그러나, 난민들을 처참하게 굶기고 총살 해서 죽인 것에 대해서나, 한 단체의 수도승들을 대낮에 길 한 복판에서 불에 태워 죽인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공산당을 비난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기억에서조차 지워버렸다.
지금 우리는 양심적이고, 스스로 돌이켜 보며 반성할 줄 알고,
책임감이 있고, 개방된 시민 사회의 출현을 보고 있는가?“
이런 식으로 컬럼을 끝냈습니다.
아난다마기가 아닌 사람들은 정부가 우리를 괴롭히던 말던 관심이 없었죠. 오히려 권력을 갖고 있는 정부의 편이었겠죠.
그리고 자국 사람이 아닌 방글라 데쉬 사람들이 굶어주거나 말거나 총살을 당하거나 말거나 무슨 관심이 있었겠어요?
지금은 지구촌 시대라서 인도인 들도 많이 깨우쳐져가고 있고
정부의 잘못에도 양심의 눈을 더 떠가고 있나봅니다.
그것도 아직은 자기랑 연관이 되있는 것들에서부터 시작해서 즉...
경찰, 중요하죠
언론의 자유 중요하죠
난디그람은 직접 관련은 없지만, 수많은 농부들을 총칼로 내쫏아서
거지로 내 몬 뒤에 부자들을 위해 그 땅과 직업의 기회를 준다는 것은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으면 가만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그리고 특히 컬럼 쓰신 분이 아나다마가의 사진 하나만을 신문에 실었어요. 장작더미가, 쌓여 있는 것들이 다다들의 시체입니다. 많이 보이죠?
제가 인도에 처음 온 해, 4월 30일에
다섯 살 짜리 다솜이를 데리고 그 발리강지라고 하는 곳에서 열리는 제사를 보러 갔었어요.
그것도 마기라는 게 알려지까봐 여행자처럼 하고 지나가면서 보았습니다. 많은 캘커타 마기들이 줄지어서 아슈람에서 거기까지 걸어서 갔습니다. 18분의 사진들을 다리에 놓고 (유명한 발리강지 다리에서 사살했던 것입니다) 제사를 지냈는데,
사실은 사실일 터인데 설마? 하며 정말 그런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실감이 안되었었습니다.
근데 지금 난디그람의 농부들을 죽이고 때리고 하는 미친 짓을 하는 걸 보니, 하다가도 남겠다는 것이 너무 너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우리는 숫자도 적어
옛날엔 시민들의 수준도 더 낮고
통신도 덜 발달이 되 있는 시대였으니,
무슨 미친 망나니 짓인들 못 하겠어요?
지 맘대로 우리단체를 몰살하려고 벼라 별 짓을 다 헸겠죠
이제 벵갈 사람들도
자기랑 직접 연관이 없는 일도 결국엔 자기랑 연관이 지워진 다는 것을 알고 약자들에게 가해지는 부정당한 것들에도 눈을 돌기 시작했나봅니다.
14년 동안 이 곳에서 숨을 죽이고 살아온 저로서는 12월 2일의 컬럼이 저에게 환희스럽기까지한 무진장한 기쁨을 주었습니다.
옛날엔 마기들이 캘커타 공항의 입국심사대를 통과 할 때 엄청 긴장하곤 했습니다. 프라티끄도 있어선 안되고 주황색되는 것도 조심해야고 우리 책도 있어선 안되고....
아난다마기에 대한 엄청난 루머를 만들어 논 곳에서 조심스럽게 15년을 살아서 다솜이의 준비를 무사히 끝내야 하는 저에겐
바바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가능한 일이아니었던 만큼 여러 어려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참! 이렇게 세상이 갑자기 돌변할 때가 오는군요.
그렇다고 해서 아직, 공산당이 물러나는 것도 아니고
킬커타 입국 심사대에서 아난다마기라고 말 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 도 아니지만,
30년 동안 확고한 위치를 자리하고 있던 공산당에 대한 시믿들의 신뢰가 떨어지는 걸 보니 저는 그저 살 맛이 납니다.
이렇게 긴 지루한 이야기를 끝까지 다 읽어 주신 여러 분께 감사드립니다.
나마스카!
퍼람삐따 바바끼! 저이!

첫댓글 아.. 이런일들이 있었군요...제가 아난다마가의 아주 작은 일부분만을 보고 있었다는걸 새삼 느낍니다....다다디디들을 보며, 그냥 아차리야려니라고만 했는데 정말 다르게 다가오네요...특히 인도아차리야들....자나키도 존경스럽고... 이제껏 자리를 지켜주시는 올드마르기들도 모두 고맙구요...맘대로 킬탄불러제껴도 상관없는 우리집이 고맙고... .. 자꾸.. 눈물이 흐르네...
아름다운 상기따님! 저도자꾸 눈물이 납니다...
나마스까 쟈나키지... 오랜 만에 인사드립니다. 자주들어 와 수행을 하는 마음으로 글을 남겨야지 하는데....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삶의 나누어 주시는 쟈나키지 모습에 다시금 가슴이 뭉클해 집니다. 또 지나간 다다지들의 희생을 생각하면서, 많은 것들이 교차합니다. 지금의 저희가 있기까지 많은 분의들의 사랑과 헌신이 있었음을 깊이 느낍니다....
마노자야님!나마스카!그간 수다마님이랑, 왕자님이랑 다 잘 계셨지요? 간간히 서산의 소식을 들으며 그곳의 마기님들의 미소를 떠올리곤 했습니다.거기 그렇게 계시는 마기들 얼굴 만 떠올려도 행복해요. 고맙습니다...
히마드리지! 나마스카! 이번엔 혼자 하셨어요? ㅋㅋ, 저기요, 제목을 제가 잘못 써서 보냈거든요, 좀 고쳐주실래요? " 캘커타 CPI(M)공산당" 으로요? 노친네를 귀찬게 해서 죄쏭합니다요~ㅋㅋ
마치 80년 민주항쟁 시대를 다시금 느끼게 하네요. 그보다 더하지만.... 그런 생활을 14년이나 하셨다는게... 정말 대한 하십니다. 그러한 신념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그대의 신에대한 헌신과 감사와 믿음과 애착이 얼마나 강한지 알고도 남음직 합니다. 특히 바바지와의 마음적 연결의 강한 끈이 없었다면... 신에 의지해서 이길을 오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그 수많은 난관앞에서 좌절하지 않고 꿋꿋이 올수 있겠어요? 정말 대단 하십니다. 마치 이라크에서 막 도착한 외신기자들... 종군기자들의 기사처럼 생생한 현장이 그대로 전달 되어진것같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조금은 낳아 진다니 더욱 안심이구요... 아마 자나키지가 원하는바
자나키지가 원하는 바 꼬~~~~옥! 이루실 거에요... 그게 신의 뜻이라면....
신의 소리님! 그렇게 큰 어려움들이 있었던 건 아니예요, 그냥 떳떳이 마기라고 말 못하는 것이 너무 답답했어요. 마치 적진에 살며 비밀을 캐오는 심정으로 저의 삶의 중심을 숨기고 마기가 아닌 척하며 벵갈지역의 언어와 문화를 다솜이가 섭렵하기만을 기다렸으니까요.그리고 저, 부끄럽네용, 갑자기 너무--막 고생한 사람같아서요...ㅎㅎ, 그리고 염원 진짜 진짜 감사드립니다...
자나키지의 인도생활이 이럴것이라 상상조차 못했는데... 정말 대단하시고 존경의 마음만 나네여. 인도정부의 아난다마르가탄압이 전세계로 이어졌다는 사랄라지의 얘기도 들었는데, 인드라간디정부가 아난다마르가가 테러단체라는 공문을 보내서 우리나라서도 오렌지복장을 못입고 다니시고, 안기부에서 미행도 하고, 다다숙소도 감시했다죠. 정말 어려운 역경의 시간을 지켜오신 자나키지를 비롯한 모든 올드마르기분들과 다다디디지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자나키지 글에서 새로운 변화에 대한 흥분이 그대로 전해져서인지 앞날에 대한 희망과 힘이 솟네요. 감사합니다^^*
난디따님! 제가 입문 받던 86년과 20여년이 지난 지금의 한국의 상황을 보면, 20년전에 생각하면 마치 기적 같은 일들이 지금 벌어지고 있어요, ㅋㅋ 왜냐구요? 그시대엔 길에서 나마스카도 못했거든요, 근데 지금 우린 당당히 사단법인이잔아요? ㅎㅎ 지금 우리가 여러 어려움에 처해 있다해도 기적 같은 일들이 ㄸㅒ가 되면 또 다 이루어질 같 예요. 역울하게 당한 우리의 다다들 이야기가 이렇게 시간이 흐른 뒤에 대문짝 같은 기사로 큰 신문에 실린다는 것도 그 당시엔 생각도 못해볼 이야기였거든요. 글고 자꾸 칭찬 받으면 부끄러워용~~~ㅋㅋ, 저 여기서 호강하잔아요? 두천사 거느리면서요 ㅋㅋ
나도 자나키처럼 오롯한 마음을 지니면 얼마나 좋을까? 자나키는 늘 신을 향한 마음이 먼저인데 나는 나를 보는 마음이 앞서곤 해. 요사이 또'나,나'하고 있었는데 자나키의 글을 보고 부끄러워지네. 정성과 헌신의 그 마음, 오직 고마울 뿐.
아이 참! 언니! 눈물나게 만드지 마세요 .....전 언니가 거기 그렇게 계시는 게 너무 좋아요..막 소리 높여 부르는 언니의 킬탄과 아름다운 정서가 흥분처럼 섞인 언니의 프라바트 상기뜨 생각만해도 기쁘걸랑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