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은 멀리 날고 싶다』(정영웅 동화집)
정영웅 선생님의 동화집을 펼쳤다. 일상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를 이렇게 아름답게 풀어낼 수 있다니, 돌아보니 온화하고 고요한 목소리로 사람들을 대하던 작가 선생님의 평소 고매한 숨결이 그대로 285쪽 책속에 녹아들어 있었다. 속 깊은 배려심으로, 사람이나 사물이나 무릇 생명들에 대한 애정과 따스한 정으로 살아오신 인격이 이렇게 김장하듯, 동화로 저려져 있다니…‘ 한 편 한 편이 맛깔나고 귀하고 따사롭다. 표제어가 된 『씨앗은 멀리 날고 싶다』 는 유치원 어린이들의 결 고운 마음을 풀어내었지만, 비단 어린이들의 꿈에 머물러 있지 않다. 내가 받은 고운 정과 친절이 더 많은 씨앗으로 날아가 살맛나는 세상을 구축하는데 한몫하며 살고픈 힘과 의욕을 일깨워 주겠다. 이 책의 다정한 내용, 말씨(어투), 섬세한 문장, 우리말 살려 쓰기에 들인 노력까지, 힐링과 정화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동화를 공부하는 나같은 사람들에게는 곁에 두고 정석본으로 여미며 볼 참고서가 될 것들이 너무 많아 공부하는 마음으로 정리해봤다.
1. <작품을 살리는 따스한 말들>
• 양이가 아기를 뱄어요. 아파트에서는 먹이를 주지 못하게 해요. 귀여운 양이네 아기를 보고 싶어요
• 렌즈가 보여주는 네모난 공간에 그분(하얀 민들레)을 앉혔습니다.
• 우리 아파트에 귀한 분이 사네요. 하얀 민들레! 노란 귀화종 민들레만 보다가 오랜만에 마나니 참 반갑네요. 만나고 싶은 분은 제 1 쉽터 옆 살피 꽃밥으로 오세요.-아파트 카페에
• 하는 수 없이 메고 간 가방이 내 짝이 되었지요. 식탁에 앉을 때는 이 빠진 곳을 찾아서 메웠고요.
• 입만 댄 게 아니라 먹은 거로군.”
“그래요? 그래서 고양이 밥 먹듯 한다잖소.”
“에그, 고 조그만 양을 못 채워서….”
• 내 휴대전화기를 두고, 넷의 눈길이 한데 모였지요. 식사가 아직 들어오지 않았지만 우린 일찌감치 한 식구가 되었습니다.
• 무던이는 언덕 가장자리, 잔가지가 다보록한 싸리나무 옆에서 둘레를 살핀다. 보는 이가 없다. 꼬챙이로 구멍을 파고 얼른 도토리를 묻습니다. “어디에 감췄니? ”안 갈쳐줘.“
• 도토리를 안 낸 사람 있나 보네. 누군지 일어서 봐요. 잃었니? 못 찾았나 보구나. 네 탓이 아니란다. 도토리도 씨앗이거든, 숨은 게야. 남 먼저 싹을 틔워서 떡갈나무가 되고 싶은 녀석일 거야.”
• 어지간히 다가가는 정도로는 달아나지 않고, 곁을 지나치는 것쯤은 피하지 않았다. 낌새를 봐가며 현관 앞 계단까지 올라와 도사리기도 했다.
• 산과 산 사이 비좁은 틈을 앞만 보는 딱정벌레처럼 곰실대며 가고 있지.
2. <살려 써야 할 우리 말>
• 너설 : 험한 바위나 돌 따위가 삐죽삐죽 나온 곳.
• 불잉걸 : 불이 이글이글하게 핀 숯덩이
• 방죽: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물을 가두어 놓은 둑이나 작은 저수지.
• 볕뉘: 작은 틈을 통하여 잠시 비치는 볕뉘가 일렁거리는 상수리나무 둥치에 기대어 놓더군요, 젖은 신을 말릴 때처럼, 저질하닥 들킨 개구쟁이처럼 우린 고개를 숙인 채 이리저리 눈알만 굴렸지요. 할아버지는 손에 묵주를 들었고 목둘레에 하얀 로만 칼라가 보였습니다. 신부님이었습니다.
• 비긋기 : 비를 잠시 피하여 그치기를 기다리다.
• 뱃구레: 사람이나 짐승의 배의 통
• 알찐대다: 남의 비위를 마추려고 작은 것이 잇달아 눈앞에 잠깐씩 나타나
• 길 위에 드러난 나무뿌리가 갈비뼈 같다, 정강이뼈처럼 도드라진 것도 있어 조심해야 한다.
3. <뛰어난 표현들-묘사력>
• 억새 씨앗- 솜섬털 날개를 달고 있다.
민들레 씨앗- 깃털 낙하산을 펴고 있다.
단풍나무 씨앗- 프로펠러 날개를 겨드랑이에 끼고 있다
도깨비바늘 씨앗-붙잡으면 놓치지 않는 갈고리를 갖고 있다.
과일 씨앗- 익으면 고운 빛깔과 달콤한 냄새와 맛을 지닌 열매(과일)속에 숨어있다.
•”바람에 날려 봐요. 잡으려 하거나 따라가면 큰일 나요. 어디로 가나 보기만 해요.“
어린이들 눈이 따라갑니다.
•후프가 붙임성 있는 작은 짐승처럼 허리에 매달려서 빙글빙글 돌아갑니다.
4. <캐릭터를 살린 말과 행동 묘사>
• 할머니는 도마소리로 잠을 깨웠어. 똑똑똑똑…. 연속해서 두드리는 노크 소리를 닮은 소리, 아침마다 발딱 일어났지.
• 한참 온 것 같은데 아직 멀었냐?
• 우유는 마시는 게 아니라 씹어 먹는 거란다.
그럼, 은비 봐라 씹어 먹지. 은비는 턱을 치켜들고 보란 듯이 우유를 씹기 시작했어
“맛있어요. 고소하고 달싸해요!”
• “왜 안 깨웠어요?”
“그런데 이 할미는 네가 스스로 일어난 게 더 자랑스럽단다.”
• 할머니 눈에 덜 차는 걸 두고 못 보는 분이라 집 안이 반들거리기 시작했지. 주방, 거실, 화장실이 반들거리고 거울, 문고리, 유리창, 창틀, 문틈, 출입문과 방문, 냉장고, 진열장, 책장, 서랍장. 일주일쯤 되자 베란다에 내놓은 행운목 잎사귀 하나하나에까지 할머니 손이 안 간 데가 없었어.
•“가지 말아요. 여기서 같이 살아요.”
“할배는 어째노?”
“할아버지도 오시라 해요.”
“그럼, 꼬고는 우예고. 멍멍이 밥은 누가 주노?”
•내 딸이 복실이지. 박 서방이 사위지만 박실이라 하면 뭐가 깨지는 것 같아 우린 복실이라 불렀지.
• 억울해도 나대지 말고 눈에 거슬린다고? 참고 기다려라.
• 잔주름처럼 실금이 덮인 양은 접시와 이가 빠진 뚝배기
• 꽃무릇이 시퍼렇다. 누가 주저앉아 엉덩이로 뭉갠 것 같다.
• 노란 조끼. 열 명씩 반별로 둥글게 앉으면 노란 꽃잎이 가지런한 한 송이 꽃 같다. 이런 꽃들이 위령탑 광장과 쉼터 여기저기 피었다.
• 광대뼈가 불거지고 눈이 좀 우묵했지만, 멀쩡한 몸으로 돌아왔어
5. <사물에 대한 자세하고 섬세한 묘사>
• 호박잎을 골라서 밥물이 잦아진 밥솥에 넣고 살짝 삶아 내면 호박잎쌈이 되고, 잎자루 껍질에 붙은 잎맥의 껍질이 벗겨지면 입맥에 붙어 있는 거친 가시랭이가 함께 벗겨진다.
• 애들은 자면서도 크는 게지. 덮어주면 차 던지고 벌겋게 몸뚱이를 드러내놓고 식식 코를 고는 녀석이 잘 크는 애야. 발름거리는 콧방울. 코끝에 송송 맺힌 땀방울! 잠버릇은 자면서 방 네 구석을 휩쓸곤 했지. 등밀이를 한 모야이야. 베개에 목을 걸치고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입을 헤 벌리고
• 북에서 무장 공비를 내려보내자, 향토예비군이 창설되고 적이 침투할 길목에 참호를 팠다. 바위 언덕에 붙여서 파다 보니 돌축을 쌓아야 했고 학산 정상인 바위 언덕과 옹벽으로 둘러싸인 눈썹 모양의 땅이 덤으로 생겼다. 바로 금계국과 솔잎 국화가 이어 피는, 내가 꽃밭이라는 여기!
• 할머니의 반닫이에 있는, 두껍고 마구 두드려 만든 것 같은 장석 위에 화선지를 붙이고 먹손으로 눌러서 무늬를 떴다. 연꽃무늬와 끝이 넓고 짧은 리본을 펼친 것 같은 바탕에 절 표식이 음각된 무늬였다. 내가 찍어 간 것을 골라 들고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전통 무늬인 연꽃 무늬, 쌍곡선 무늬 만자무늬라고 짚어가며 설명해 주셨다. 상할머니가 열여섯 살 때 시집오면서 가지고 오신, 결 좋은 느티나무란다. 장석이 놋쇠가 아닌 무쇠인 대다 대장간에서 두드려서 만든 것이라 더욱 귀하다는 자랑!
• 바짓가랑이 먼지를 터는 공기총을 걸어둔 곳이 눈앞에 있고. 낯익은 것들
• 네모나고 넓찍한 돌이 거실 한쪽에 새워두는 에어컨만 하다.
• 잎진 뒤라 나무들이 맨몸을 내놓고 있다. 두 손을 치켜든 나무 웅크린 나무 곧추선 나무 허리 굽은 나무 서로 기대고 있는 나무…. 마치 길을 비키지 못해 둘레길 품에 안겨 있는 허우대 큰 나무도 몇 그루 있다. 아이들은 맞춤한 나 무를 골라 둥치에 귀를 댄다. 참나무 마을엔 나만 잠자는 게 아니다. 겨울을 맞아 풀씨도 잠자고, 벌레도 잠자고, 다람쥐도 잠자고, 가랑잎을 덮고 아기 바람도 자고 후우 후우 들려요 스르르르르 해요 후루룩 쉬어요. 푸우우 시이익 아이들이 들은 숨소리는 모두 다르다.
•도때비
얜 너희하고는 달라. 버린 애가 아니거든.“
녀석이 똑바로 바라보며 당차게 되받습니다.
”누군 버려서 여기에 있는 거예요? 안 찾아서 있는 게지.“
”갤 놔 줘요.“
”갠 우리하고 가야 해요.“
도때삐는 제쳐놓고 아예 이름까지 지어서 털장갑을 꼬드기는 녀석이다.
”넌 도터리야 도터리! 멋지 이름이지 이리 와, 할배하고 가지 말고.”
“우리하고 모험을 하는 거야. 짝을 찾는 모험!”
도대삐가 참지 못합니다.
이 녀석들 보자 보자 하니깐! 도깨빌 만들려고 앙. 작정했구나. 멀쩡한 애를!“
그러고는 탕탕 발을 구르며 으름장을 놓습니다.
”꼼짝 말고 거기 있어라. 한꺼번에 개골창으로 쓸어버릴까 보다. “도때비의 비밀! 겁 안 내는 도깨비가 없습니다. 어마 뜨거라. 흩어집니다. • 아침- 미화원 아저씨가 쉼터 청소를 합니다. 면장갑 한 짝과 비닐봉지 하나를 찾아냈습니다. 지난밤 소동을 피우다가 미처 몸을 못 감춘 두 놈입니다. 따지기 좋아하는 면장갑은 가랑잎 새에 머리를처쳐박고 있었고, 덩달아 주적대던 비닐봉지는 의자 다리 뒤에서 몸을 떨고 있다가 쓰레기 자루에 담겼습니다. 털장갑은 굴참나무 옹이에 보란 듯이 걸려 있습니다. 어제 못 들은 나무 숨소리를 뒤늦게 듣나 봅니다.
• 고양이는 밤이면 갈그랑거리거나 물어뜯기는 듯 악쓰는 소리가 자주 들렸다. 누런 바탕에 누런 점무늬가 아무렇게나 온몸을 휘감고 있는 고양이, 언뜻 보면 아궁이 앞에 웅크리고 있다가 깃털을 몹시 그을린 것 같다. 초라한 몰골로 껄떡거리려 쓰레기 구덩이를 뒤적이다니!
• 늑대 같은 짐승들은 상대방이 만만하게 보이면 끝까지 갊고, 버겁다 싶으면 슬며시 꼬리를 말아 넣는데 혼을 뺄 때는 키를 타고 넘는다. 키를 타고 넘지 못하게 보란 듯이 난 지게막대기를 높이 치켜들었어! 후유 숨을 크게 내쉬고 허리를 꼿꼿이 폈지.
•가림막이 있는 넓은 공터, 거기에 몸 숨길 골짜기도 있고 빼앗아야 할 고지가 되는 등성이도 있고, 전쟁놀이에 그보다 좋은 곳이 어디 있겠냐, 마분지 계급장을 붙인 아이들이 나무총을 들고 곳집골 기슭을 치올라갔어. 늑대가 얼씬대던 너설에 올라서서 만세를 불렀고 내친김에 등성이까지 짓쳐(세게 몰아오다)올라가곤 했지.
• 라켓만 내밀면 안 돼! 몸이 들어가야 한다니까. 잘못 버릇 들이면 평생 못 고쳐!
팍 팍, 팍 라켓이 가볍고 얇은 금속판 퉁기는 소리를 낸다. 댓살같이 뻗던 셔틀콕이 높이 오르며 포물선을 긋는다. 아버지가 두어 걸음 주춤주춤 물러난다. 됐다. 셔틀콕을 낚아채어 힘껏 내리꽂을 것이다. 아. 그럼 됩니다. 셔틀콕이 라켓에 크게 머리를 들이받을 때, 손목에 감기는 그 저릿저릿함, 아들은 그걸 다시 느끼고 싶다.
(26.9.30. 26매)
정영웅 선생님! 고매한 인품이 묻어나는 책! 동화 쓰기의 정석 본으로 곁에 두고 저 자신을 많이 다듬어가고 싶습니다. 귀한 책 두루 나누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건강 챙기시고 나날이 행복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