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5U-IcKHaHqA
골 3:12, 하나님께 사랑받는 사람. 20230416
하나님의 속성 자체가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사람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해서, 사람들은 그 사랑에 함부로 대처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죄를 지어도 하나님은 여전히 사랑의 하나님이실 것이라고 막말을 하는 것입니다.
어떤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봄이 되면서 자연이 푸르름으로 가득 차갑니다. 그런데 사람만 여전히 더럽다’고 말하길래, 그래서 ‘사람은 회개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더니, ‘회개요, 죄 짓는 사람은 더 죄를 저지릅니다. 사람은 더 큰 죄인이 될 뿐입니다’.
사람은 회개하고 변화되어 새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회개를 해도, 죄를 용서받아도, 죄는 더 많이 저지른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이 죄를 저 지르면, 하나님이 미워하신다. 심판하신다. 천국에 갈 수 없다. 이런 사실을 망각하기 때문에, 회개와 용서를 악용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죄를 저질러도 하나님이 사랑합니까? 하나님은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그 사람은 심판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요? 더 큰 죄를 저지를까봐, 그래서 더 큰 심판에 이르게 될까봐. 그래서 죄인은 더 빨리 심판하는 것이 본인에게는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죄인이였던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고, 이제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부활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전혀 다른 삶입니다. 죄인의 삶은 죽고, 새 생명으로 다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골로새서 3: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골로새서 3:5–6,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예수 믿고서 용서받은 성도가 땅에 것만 찾다가는,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는 엄중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사랑받는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으로 옷 입어야 합니다.
골로새서 3: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구원받은 성도들은 모름지기 겸손하고, 따뜻하고 참을 줄 알아야 합니다. 또 구원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첫째, 누군가에게 불만이 있을 때, 용서하는 사람입니다.
너무나도 자주 사용하는 말입니다. ‘불평, 불만은 마귀가 가장 좋아한다. 마귀가 가져다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택함을 받고, 하나님께 사랑받는 성도들은 절대로 불평불만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그냥 용서하라’고 말합니다. 옛말에도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미운 놈이 아닌데도, 그냥 밉고 불평불만이 생기는 마귀마음을 가진 성도들이 생겨납니다. 불만 자체가 마귀마음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절대로 불만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불만이 생길 일이 있을 때, 그 사람을 용서해야 합니다.
왜요? 주 하나님께서도 충분히 여러분에게 불만족스러웠습니다. 그냥 심판하사 지옥불덩어리로 던져 넣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하셨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용서받았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주께서 용서하신 것처럼 너희도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용서는 구원받은 성도의 첫 번째 덕목입니다.
골로새서 3: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불만’(몸페)는 ‘특히 책임을 떠넘기는 표현’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용납’(아네코마이)는 참다, 견디다. ‘불쾌함이나 어려움을 견디다’는 뜻입니다. ‘용서’(카리조마이)는 ‘탕감하다’, ‘사람에 대한 선의 때문에 누군가를 용서하다’는 뜻입니다. 성도는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여용서한 것처럼, 용서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게 성도입니다.
둘째, 사랑하고 평강하는 사람입니다.
그냥 용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사랑까지 해야 합니다’. 앞에서부터 성도는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용서에 사랑을 더해야 완벽한 성도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축복이 임합니다.
골로새서 3: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성도는 언제든지 평강을 이뤄야 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절대로 다투지 않습니다. 교회의 분쟁이나 다툼이, 나라에 전쟁이나 싸움이 일어나는 바로 그 곳에는 구원이, 축복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사랑받는 성도들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그리스도의 평강으로’조화롭게 살아야 합니다. 분쟁이나 전쟁이나 다툼이 있는 곳에는 그리스도가 역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택함받고, 하나님께 사랑받는 성도들은 어떻게든지 간에 평화를 이루면서 살아갑니다.
골로새서 3: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여러분이 왜 성도가 되었습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평강을 위해서’라고 말입니다. 성도가 있는 곳에 전쟁이 사라져야 합니다. 직장에서도 성도들은 평강을 위해서, 평화를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평강을 가져오셨습니까? 하나님과 원수가 된 여러분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면 여러분도 평강을 위해서 살 수가 있습니다. 모든 차별은 사라지고,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이 되고, 종과 주인이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같이 아파하고, 같이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불가능한 일이 오직 예수님 때문에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11,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오직 예수님이 만유(각각, 모두)이시고, 만유 안에 계십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이 다투려고 하는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그러니 평강을 이뤄야 합니다. 만약 주인이 종을 때리려고 하면, 그 종 안에 예수님이 계시니, 어떻게 예수믿는 주인이 종을 때릴 수 있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믿는 야만인 안에도 계십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다 한 몸이 된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셋째, 말이나 행실에서도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사랑받는 성도들은, 단지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는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사랑을 받았으니, 다 감사가 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어떻게 감사하는 자가 될 수가 있습니까? 먼저는 말씀이 풍성해져야 감사하며, 노래하며, 찬양할 수가 있습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간에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골로새서 3:16–17,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내 생각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가르치고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고 찬양해야 합니다. ‘말이나 일’(말하기, 행위)이나 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하여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니 구원받은 성도들은 말이 달라집니다. 행실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