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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강원도 산골짝에서 금곡초등학교에 다니는 5학년 송예분이라고 해요. 보통 어른들은 분이라고도 부르시고, 예쁜이라고도 부르시는데 결코 듣기 싫지는 않아요.
저희 마을에는 얼굴이 거무스레하게 그을린 제 친구인 미지도 있고, 귀염둥이 코 찔찔이 희철이도 있어요. 얼굴에 서리가 하얗게 내린 수염을 기르시는 무서운 배씨 할아버지도 계시고, 아주 착하신 개성 집 할머니도 계신답니다. 그밖에 다섯 가구 정도가 띄엄띄엄 떨어져 사는데, 밤이 되면 인적이 끊겨서 굉장히 무섭죠. 바람이 조금이라도 불라치면 꼭 도깨비가 나타날 것만 같아 밖에는 절대로 안 나간답니다. 여러분도 한 번쯤은 이런 무서운 경험이 있었을 거예요.
강을 건너 조금만 더 가면 비포장도로이긴 하지만, 하루에 네 번 정도 버스가 들어오죠. 그 버스는 굉장히 낡아서 그런지 쿨럭쿨럭 기침을 하면서 다녀요. 그 때마다 꽁무니에선 검은 연기가 많이 나죠. 그렇지만 5일마다 읍내에 장이 서는 날, 물건들을 팔려면 들고 가야하기 때문에 그 버스 없이는 도저히 다닐 수 없죠.
그리고 가끔 서울에서 아저씨들과 아줌마들이 저희 산골마을로 놀러 오는데, 바로 그 버스를 타고 옵니다. 하지만 비가 많이 오거나, 눈이 많이 내린 날은 이곳까지 버스가 오지를 않아서, 그런 날 꼭 볼일이 있다면 어쩔 수 없이 두 시간 정도를 걸어서 읍내에 가야 해요.
저희 산골마을은 경치가 매우 아름답답니다.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까만 밤이 일찍 찾아와요. 산자락 밑엔 맑은 초록빛 강물이 흐르죠. 위쪽으로 고개를 뒤로 젖히면 보이는 높은 산도 있어요. 산신령님이 잘 드는 칼로 힘차게 싹둑 벤 것 같은 깎아지른 가파른 절벽입니다. 돌로 된 그 절벽엔 군데군데 소나무가 하늘을 향해 턱걸이하듯 매달려 아슬아슬하게 자라고 있답니다. 서울에서 온 아저씨들은 그런 모습들을 보고, ‘과연 절경이군!’이라고 하죠. 그래서 저는 ‘절경’이 무슨 말인가 국어사전을 찾아보니까 ‘뛰어난 경치’라고 씌어 있더군요. 저희 산골마을이 정말 아름답긴 아름다운가 봐요.
더군다나 소쩍새의 구슬픈 노래 소리와 뻐꾹뻐꾹 뻐꾸기의 신나는 노랫소리 때문에 더욱 운치가 흐르죠. 저희 산골마을에 한 번 찾아왔던 분들은 나중에라도 거의 다른 분들과 동행하여 또다시 찾아오곤 하십니다.
제 놀이터는 바로 그 강가이고, 매일 거기서 왕 발을 자랑하는 가재도 잡고, 물에 삶아 먹으면 맛있는 다슬기도 잡고, 날이 좀 후텁지근하다 싶으면 강물에 뛰어들어 멱도 감고는 하지요. 어때요, 부럽죠?
또, 나룻배가 한 척 있는데 저희들이 학교에 갈 때나 어른들이 읍내에 나가실 때는 강을 반드시 건너야 하기 때문에 꼭 필요하답니다. 그 배는 사공이 노를 저어서 가는 게 아니라, 거기에 오른 사람이 줄을 끌어당기면 나가는 그런 배랍니다. 재미가 있지만, 제가 혼자서 타려면 약간 무섭기도 해요.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어른들과 함께 가려고 기다리는 때가 많이 있답니다.
저는 지금 집에서 내려다보이는 그 강 가장자리 물속에 들어가 있답니다. 작은 물고기들이 제 발을 톡톡 간지럼 태우며 놀자고 보채지만, 돌을 들추어 가재를 잡고 있어요. 그 가재는 저희 집 닭들이 먹을 거랍니다.
저희 집엔 닭이 서른 마리쯤 되는데, 그 닭들이 낳은 달걀을 매일매일 모았다가 볏짚으로 만든 꾸러미에 넣어 두죠. 장날이 되면 읍내에 내다 팔기도 하고, 가끔 반찬으로 먹기도 한답니다. 그 맛은 아주 일품이어서 밥 한 그릇 정도는 가볍게 뚝딱 해치울 수 있는 밥도둑이랍니다.
그리고 집 옆에는 옆구리에 긴 칼을 찬 장군같이 커다란 감나무가 다섯 그루 있는데, 더운 여름에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줘 나무 밑에서 공기놀이와 소꿉놀이를 하며 놀죠. 저희 산골마을에서 놀 수 있는 유일한 곳이랍니다.
“예분아, 저녁 먹어라!”
“예, 엄마. 곧 갈게요.”
엄마가 저를 부르시는 거예요. 참 저희 집 식구 소개를 안 했군요. 아빠는 주로 깊은 산 속에서 산삼과 약초, 산나물 등을 캐러 다니시는 심마니시죠. 새벽에 나갔다가 저녁 늦게 들어오십니다. 어떤 때는 산 속에 들어가서 여러 날을 돌아다니다 오기도 하십니다.
아빠는 제가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분이랍니다. 엄마가 들으면 좀 섭섭하겠죠? 나중에 제가 어른이 되면 아빠 같은 분하고 꼭 결혼할 거예요. 그리고 저희 엄마는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십니다. 눈이 왕방울만 해서 밤에 보면 별님보다 더 반짝반짝 빛나죠. 산기슭 조그만 텃밭을 일구어 감자나 옥수수, 배추 등을 키우며 항상 저희를 돌봐주십니다. 저의 엄마의 모습은 땡볕에 그을려 피부가 까무잡잡하지요.
그리고 저희 집 왕자님인 제 동생은 이름이 귀동이고, 이제 겨우 다섯 살이에요. 아빠, 엄마의 사랑을 받아먹으면 먹은 만큼 자라는 저희 남매는 무척 사이좋게 지내죠. 가끔 저와 싸우기도 하지만, 엄마가 텃밭에서 일하느라 바쁘시면 동생을 돌보며 데리고 놀지요.
저녁을 간단히 먹고 남폿불 밑에서 일기 쓰려고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았어요. 저희 산골마을엔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지요. 요즘 그 흔한 냉장고나 선풍기는 고사하고, 텔레비전도 볼 수 없기 때문에 답답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답니다. 그렇지 않아도 학교에선 컴퓨터게임도 하고, 교실마다 텔레비전이 있어서 가끔 비디오와 컴퓨터를 통해 공부도 하고 영화도 보는데…… .
‘2013년 7월 4일, 목요일, 날씨 흐림.
어제 내린 비로 강물이 불어나 학교에 못 갔다. 요즘처럼 달나라까지 왔다 갔다 하는 세상에 그깟 비 때문에 학교를 못 가다니, 너무 어이가 없다. 이런 산골마을이 이젠 지겹다. 더군다나 전기도 안 들어오는 이곳을 당장 떠나고 싶다. 아, 누가 내 소원을 들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만약 내 소원을 들어준다면 그 자리에서 당장 절을 백 번이라도 할 텐데…… .’
다음 날은 날씨가 매우 좋아서 엄청 불어났던 강물이 눈에 띄게 바짝 줄어들어 학교에 갈 수 있었어요. 그나마 이렇게라도 학교에 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것인지 새삼 느꼈답니다.
학교는 나룻배로 건너간 다음, 밥 반 공기정도 빨리 먹을 만큼 언덕에 올라가고 나서 계속 걸어갑니다. 걸어가는 동안 제 친구 미지와 신나게 떠들며 가곤 하죠. 요즘 이야기꺼리로는 컴퓨터게임과 앞으로 다가올 여름방학 얘기인데, 할 얘기가 얼마나 많은지 조잘조잘 끊이지 않고 계속 침 튀긴답니다. 약 30분 정도를 걸어야 되며, 그렇게 가다보면 어느 새 학교에 도착하지요.
오늘도 그렇게 떠들며 왔는데, 교실에 들어가니 애들이 시끌시끌하던 다른 날과는 달리 한 곳에 모여 조용조용 얘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무슨 얘기들을 그렇게 열심히 하는지 자세히 들어보니, 아 글쎄 제 마을 얘기를 하는 게 아니겠어요?
“예분아, 너 무슨 소식 못 들었니?”
“으응, 무슨 소식 말이니? 밑도 끝도 없이!”
“내가 어제 우리 아빠한테 들었는데 너희 마을이 ‘수몰 지구’가 된다는 거야!”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저는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어요. 그래서 교실에 있는 국어사전에서 ‘수몰’이란 낱말을 찾아보았답니다. 그랬더니 ‘물에 묻힘, 지상에 있던 것, 특히 건조물이 물속에 잠김’이라 하지 않겠어요? 저는 하마터면 깜짝 놀라 뒤로 넘어질 뻔했어요.
‘우리 집과 우리 마을이 물에 잠겨? 그렇다면 어차피 이사를 가야겠네!’
그렇게도 이사를 가고 싶었지만, 막상 저희 집과 온 마을이 물에 잠긴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참 묘했습니다.
‘이건 바로 내가 바라던 일이 아냐? 그런데 내가 왜 이런 이상한 생각이 들까?’
그 날은 공부를 하는 둥 마는 둥, 겨우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달려 왔어요.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어요.
‘엄마가 텃밭에 일 가셨나?’
몹시 궁금하여 밖으로 뛰어나갔어요. 그런데 그곳엔 아무도 없었지요. 할 수 없이 방에 들어와 숙제를 먼저 시작했어요. 잠시 후, 아빠와 엄마가 들어오셨어요. 읍내에 다녀오셨는데 아빠는 잘 안 드시는 술을 드셨는지, 얼굴은 잘 익은 고추처럼 매우 불그스름했습니다.
“분이야, 우린 이제 어쩌면 좋으냐? 앞으로 이 산골마을을 떠나야 한다고 하는구나!”
“아니, 왜 우리가 이 마을을 떠나야 해요? 그럼 어차피 잘 됐잖아요? 큰 읍내나 도시로 이사 가면 되니까…… .”
“분이야, 그렇지 않단다. 이곳은 조상대대로 내려온 땅이고, 우리가 이사를 가면 어디서 무얼 해야 할 지 앞을 알 수 없단다. 그러니 이 일을 어쩌면 좋으니?”
아빠는 말씀을 하시면서 속으로는 우시는 것 같았어요. 양쪽 어깨가 들썩들썩 했어요. 이 세상에서 제가 제일 사랑하는 아빠의 그런 모습을 보니, 저도 코끝이 찡해지지 않겠어요? 하마터면 ‘왕왕’ 소리 내 울 뻔 했더랍니다. 옆에 앉아 계시던 엄마도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내고 계셨어요. 그런데도 저희 왕자님은 엄마 등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콜콜’ 잘도 자고 있더라고요.
“형님, 저 왔습니다.”
코 찔찔이 희철 아빠였어요. 나이가 저희 아빠보다 다섯 살이나 어리기 때문에 형님이라고 부른답니다.
“형님, 우리 마을이 수몰 지구가 된다는데, 앞으로 우린 어떻게 해야 하나요?”
희철 아빠도 저희 아빠처럼 산 속을 다니며 근근이 살아가는 심마니예요.
“우리들 모두가 힘을 합쳐 싸워야 하지 않겠어?”
“하지만 그런다고 별 뾰족한 수가 생기겠어요?”
희철 아빠도 답답한지 한숨을 푹푹 내쉬었어요. 저도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밖으로 나왔지요. 멀리서 무서운 배씨 할아버지 올라오시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희 집에 가까이 오시자, 단번에 할아버지 두 어깨에 힘이 쭉 빠진 것을 느꼈어요. 할아버지도 술을 드셨는지 얼굴이 불그스름했어요.
“…… 할아버지, 아, 안녕하세요?”
“ …… .”
저는 가끔 할아버지가 무서웠지만, 용기를 내어 인사를 했어요. 그러나 할아버지는 힐끗 쳐다보더니 그냥 지나치셨어요. 다만 ‘큰일 났다’고만 중얼중얼 거리시면서…… .
저는 집 위에 있는 조그만 산에 올라갔어요. 산은 야트막해서 오르기가 좋지요. 거기에 피어 있는 보랏빛 도라지꽃과 어여쁜 꽃들이 더위에 지쳤는지 시들시들하고, 또르륵 다람쥐는 나무 위에서 꼼짝 않고 저를 지켜보고 있지 않겠어요? 저는 다른 날과 달리 관심은 없고, 나무 밑에 앉아 곰곰이 생각했지요.
‘우리 집이 이사 가면 더 좋지 않아? 그러면 전기도 들어오는 곳에서 살고, 냄새나는 뒷간을 사용하지 않아도 될 텐데…… .’
그렇지만 온 마을 분들이 저렇게 슬퍼하고, 아빠, 엄마의 슬퍼하시는 모습을 보니 무슨 사정이 있는 걸 느꼈답니다. 그래서 저는 두 손 모아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교회는 다니지 않지만, 제 기도를 들어주세요. 아빠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니까 저도 굉장히 슬퍼집니다. 다시는 제가 사는 집이 싫다는 말을 하지 않을 테니, 제발 저희 마을이 ‘수몰 지구’가 되지 않도록 해 주세요. 하나님, 그러면 저도 교회에 열심히 다니며 마을을 사랑하는 예분이가 될게요. 꼭 들어주세요, 하나님!’
그렇게 기도를 마치고 나니까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어요. 참 이상한 일이지요? 코끝도 찡하고, 가슴에서 뭔가가 치밀어 올라오는 것 같았어요. 그런 기분은 태어나서 처음이었거든요. 그런 기분을 느끼며 천천히 집으로 내려왔어요. 집안은 닭들한테서 ‘꼬꼬’소리가 좀 났지만 조용했고, 아무도 없었어요. 마을 쪽을 쳐다보니까 마을 분들이 모여 있는 게 보여서 한 달음에 달려갔어요. 아빠, 엄마도 계셨고, 다른 분들도 전부 모여 계셨어요. 슬쩍 아빠 뒤에 가서 아빠 손을 꼭 잡았어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의논들을 하고 계셨어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날이 밝는 대로 읍내에 가서 군수에게 항의하자는 것이었죠. 하지만 몇 분은 나라에서 하는 일이니 그냥 따라하자는 분도 계시더라고요.
‘2013년 7월 5일, 금요일, 날씨 맑음.
우리 마을이 ‘수몰 지구’가 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처음엔 우리 집이 이사를 가게 되어 좋아했지만, 갑자기 슬픈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그냥 마을이 그대로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서다. 하나님께서는 과연 내 기도를 들어 주실까? 우리 마을이 아무런 일없이 그대로 있게 된다면 나는 더 착한 어린이가 될 텐데…… .’
다음 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마을 곳곳에 수몰선이 보였어요. 저희 집과 키를 맞춰보니 아 글쎄, 저희 집이 그 선보다 더 아래에 있더랍니다. 저는 너무나 깜짝 놀랐어요.
‘아, 우리 집이 완전히 물에 잠기고 마는구나!’
다시 한 번 어찌할 바를 몰랐답니다. 마을 어른들은 그날 당장 읍내에 가서 항의를 했지요. 그렇지만 군청에서도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완강했고, 저희 마을 분들의 말을 조금도 들어주지 않았답니다.
아빠는 제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산삼을 세 뿌리 캔 이후로 아직까지 한 뿌리도 캐지 못해 근근이 살아가는 살림이었지만, 기죽지 않고 마을 분들과 열심히 반대 운동을 하셨답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나 싶을 정도로 대단하셨지요. 나라에서 보상을 충분히 해 준다고 해도 아빠나 마을 분들 앞에선 어림도 없었지요.
특히, 무서운 배씨 할아버지도 사무실에 들어가셔서 ‘너희들은 조상도 없냐?’라며 막 화를 내고 책상을 쾅쾅 치셨대요. 하지만 나라에서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어서 배씨 할아버지도 쫓겨 나, 눈물을 흘릴 수밖에 도리가 없었더랍니다.
그로부터 보름 정도가 흘렀습니다. 그 동안 저도 열심히 하나님께 매일 기도를 드렸고, 마을 분들도 대통령께 진정서도 보냈고, 서울에서 기자 아저씨들을 모셔와 저희가 사는 산골마을의 아름다움을 전국에 알리기도 했답니다.
마침 방학 때여서 전국에서 피서 겸 가족들끼리 많이 놀러 왔었답니다. 모두들 저희 산골마을이 ‘수몰 지구’가 된다면 너무 안타까운 일이라고 혀를 차며 돌아갔지요. 어느 분들은 마을을 살리자고 신문에 사연을 기사로 내는가 하면, 인터넷에서 동호회원들을 모집해 서명운동도 벌였답니다. 그래도 나라에선 끄덕도 하지 않았지요.
저는 또다시 산으로 올라갔어요. 그리고 매일 하는 것처럼 열심히 기도를 시작했어요.
‘하나님, 예분이에요. 오늘도 하나님께 부탁드리러 왔어요. 하나님, 제 기도를 꼭 들어주세요. 저희 마을이 제발 ‘수몰 지구’가 되지 않게 해 주세요. 하나님, 앞으로 저는 마을을 지키는 그런 어른이 될 걸 약속드릴게요. 꼭 그렇게 될 수 있게 하나님께서 저희 마을을 지켜주세요.’
그렇게 기도를 마치고 나니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어요. 저는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않고,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공중에서 회오리치던 실바람이 휘이익 하고 지나가더니 하늘에서 무슨 음성이 들려오는 것이 아니겠어요? 깜짝 놀라 귀 기울여 자세히 들어보았어요. 그랬더니 그 음성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답니다.
“예분아, 걱정하지 말거라. 모두 네가 원하는 대로 될 것이니라.”
분명히 하나님 음성이었어요. 문득, 제 귀를 의심했어요. 그러나 그 소리는 확실히 하늘에서 들리는 음성이었고, 분명히 하나님의 음성이었어요. 벌떡 일어나 여기저기 바라보며 하나님을 찾으려고 분주하게 뛰어다녔어요. 그러나 그 곳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기분이 무척 좋았어요. 하나님께서 마치 제 소원을 들어줄 것만 같았어요. 답답하던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습니다.
“형님. 형님, 이리 좀 나와 보세요. 이 신문 좀 보세요.”
“…… 으응, 뭔데?”
희철 아빠가 신문을 들고 저희 아빠한테 달려왔습니다.
“오늘 읍내에 나갔다 왔는데, 이런 반가운 소식이 있네요.”
저도 무척 궁금하여 아빠 옆에서 신문을 보았어요. 그런데 제 눈이 의심할만한 기사가 보이지 않겠어요? 저희 산골마을의 모습이 커다란 사진과 함께 조그만 지도가 있었고,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내용이 씌어 있었어요. 저희 산골마을을 ‘수몰 지구’로 하지 않겠다는 소식이 실려 있더라고요. 아빠와 저는 서로 마주보고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큰 소리를 질렀답니다.
“이야, 됐다 됐어. 이젠 된 거야! 우리 마을이 이제 다시 살아나게 된 거야!”
아버지와 저는 부둥켜안았어요.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나 간절히 바라는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정말 처음이었어요. 눈에서 눈물이 펑펑 솟아났습니다. 저는 밖으로 나왔습니다. 무서운 배씨 할아버지가 천천히 저희 집 쪽으로 오시더군요. 그러나 할아버지가 무섭다는 것도 잊고 큰 소리로 인사를 드렸지요.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우리 마을 이제 걱정 안 해도 된 대요.”
“오냐, 오냐. 우리 예쁜이로구나. 이 할배도 알고 있단다. 허허허.”
할아버지도 기분이 좋으신지 저에게 예쁜이라고 부르시지 않겠어요? 할아버지는 기분 좋으실 때만 그렇게 불러 주신답니다. 할아버지의 그런 기분 좋은 모습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이었어요.
‘2013년 8월 1일, 목요일, 날씨 맑음.
무척 기분 좋은 날이다. 우리 마을이 신문에 실리고, 대통령께서 우리 마을을 ‘수몰 지구’로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 전국에 그렇게 알리셨으니 확실히 우리 마을에서 계속 그냥 살아도 되겠지? 그런데 참 이상하다. 내가 전에 이사 가고 싶었을 때는 모든 일에 짜증을 많이 냈고, 우리 마을이 아름답긴 하지만 미웠고, 우리 집이 나를 괴롭히는 것 같아 싫었는데, 막상 우리 집이 그냥 그대로, 우리 마을이 예전처럼 그대로 있는데 왜 더 그렇게 기분이 좋은 것일까? 그리고 신기한 것은 과연 나의 소원을 정말로 하나님께서 들어주신 걸까?
첫댓글 제밌게 읽으며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