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전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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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내용을 가만히 보면 호박잎을 둘러 싼 흙, 해, 비, 바람, 트럭, 노점 할머니, 나의 노고가 각각 오백 원씩이니 모두 합치면 삼천오백 원이나 되는군요.
거기에 호박씨 값과 농부와 아내의 노고를 더한다면 족히 두 배쯤 될거구요.
우리는 가끔 '본전 생각난다'고 하면 처음 투자한 돈, 혹은 노고에 비해 손해 봤을 때 쓰는 말인데 여기선 반대의 뜻이 담겼습니다.
분명 이익도 커다란 이익이기에 입이 찢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전원주택에서 약간의 농사짓는 한 친구는 비닐하우스 설치, 이웃 농부에게 밭정리 부탁 등을 고려하면 경제적 지출이 꽤 되지 않느냐고 물으면, 취미활동의 일환이라고 대답합니다.
골프 라운딩 하면, 미술 물감 사려면, 악기를 사려면 돈이 안 들겠냐면서 농사짓는 취미에 돈 좀 들어가면 어때 하면서 말입니다.
가끔 우리 사는 세상에는 더하기 빼기로는 계산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본전 따지지 않아도 되는 수많은 땀과 정(情)이 우리를 살맛나게 만듭니다.
24.10.20.일.
본전 생각/최영철
파장 무렵
집 근처 노점에서 산 호박잎
스무 장에 오백 원이다
호박씨야 값을 따질 수 없다지만
호박씨를 키운 흙의 노고는
적게 잡아 오백 원
해와 비와 바람의 노고도
적게 잡아 각각 오백 원
호박잎을 거둔 농부의 노고야
값을 따질 수 없다지만
호박잎을 실어 나른 트럭의 노고도
적게 잡아 오백 원
그것을 파느라 저녁도 굶고 있는
노점 할머니의 노고도 적게 잡아 오백 원
그것을 씻고 다듬어 밥상에 올린
아내의 노고도 값을 따질 수 없다지만
호박잎을 사 들고 온 나의 노고도 오백 원
그것을 입 안에 다 넣으려고
호박쌈을 먹는 내 입이
찢어질 듯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