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시대 (時代),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프레임의 오만이다 🔯
♡ 프레임의 오만 ♡
인간의 갈등과 비극은 대부분 사실의 부족이 아니라 관점의 오만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흔히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진실이라 믿지만, 실상 그것은 수많은 해석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이처럼 사물을 바라보는 생각의 틀을 "프레임 (frame)" 이라 부른다.
문제는 이 프레임이 고착될 때 이해는 사라지고 단정만 남는다는 점이다.
“기도중에 담배를 피워도 되느냐? " 는 질문과 “담배를 피우는 중에 기도를 해도 되느냐?”는 질문은, 같은 행위를 두고 전혀 다른 답을 이끌어낸다.
여대생이 밤에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말과, 술집에서 일하는 여성이 낮에는 학교에 다니며 공부한다
는 말 또한 사람들의 평가를 정반대로 바꾼다. 사실은 같지만 질문의 틀, 즉 프레임이 판단을 바꾼 것이다.
이러한 프레임의 오류는 개인의 삶을 넘어 사회 전체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매일 지각하는 학생을 불성실하다고 단정한 교사는, 병(病)든 아버지를 휠체어에 태워 요양원에 모셔다 드리느라 늦었던 학생의 사정을 뒤늦게 알고 통렬한 자책에 빠진다.
타고르는 지각한 하인을 해고하려다,
딸의 장례를 치르고 왔다는 말에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깨닫는다.
알래스카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 역시 그렇다. 피투성이가 된 개를 보고 아이를 해쳤다고 단정한 아버지는,
그 개가 맹수로부터 아이를 지키다 죽었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다.
버스 안에서 울음을 멈추지 않던 아기를 향한 승객들의 분노도, 아이 엄마가 청각장애인 이라는 사실 앞에서 부끄러움으로 바뀌었다.
공자(孔子)조차 안회의 행동을 오해했다가, 자신의 눈과 생각조차 완전히 믿을 수 없다는 깨달음을 제자들에게 전한다.
이 모든 사례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사실을 확인하기 전에 결론부터 내려버린 프레임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AI 시대의 위험이 시작된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놀라운 속도로 답을 제시한다.
그러나 AI는 질문하지 않는다. 질문은 인간의 몫이다.
편향된 질문, 성찰 없는 전제, 오만한 프레임은 AI를 통해 오히려 더 빠르고 더 강력하게 확대 재생산된다.
AI는 중립적이지만, 인간의 선입견에는 충실하다.
그래서 AI 시대일수록 인간에게 더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겸손이다. 더 빨리 판단하는 능력이 아니라, 판단을 유보할 줄 아는 용기다.
“저 사람에게는 분명 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을지 모른다!”는 한 문장의 여백이, 돌이킬 수 없는 오류를 막는다.
지금 우리 사회는 너무 쉽게 분노하고, 너무 빨리 낙인찍으며, 너무 간단히 편을 가른다.
그러나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함께 사는 법"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상대의 입장이 되어보려는 상상력, 내 프레임이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는 성찰, 그것이 AI 시대를 지탱하는 마지막 윤리다.
프레임을 의심할 수 있는 사람만이, AI를 지배할 수 있다.프레임에 갇힌 사람은, 결국 기술의 노예가 된다.
< 최인식/ AI 융복합 실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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