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래자삼배後來者三杯
- 박민혁
어떤 불길함은 간혹 징후만으로 그친다
생이 예상보다 길어지자
일찍이 신이 내 삶 곳곳에 뿌려놓은 복선을
그만 까맣게 잊고 말았다는 듯
열차가 사람들을 싣고 강을 건넌다
음악이 뭉텅뭉텅 잘려 나가고 있다
창밖으로 배열을 조정하며 새떼가 날아간다
아득히 먼 곳에서 돌아본다면
나는 어떤 역사의 허구 인물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지독한 현실에서는
행복한 꿈이 이득인가
현실보다 불행한 꿈이 이득인가
두 가지 감정이 늘
이인삼각 경기하듯 발걸음을 맞추고 있다
어떤 날은 사나흘 연거푸 살아버린 느낌이다
엉뚱한 생각을 했는데 문득 오류가 없다
그러나 애초에 이월된 삶이란 걸 모를리가
깊고 어두운 터널이 펼쳐진다
음악이 순조롭게 흐르기 시작한다
ㅡ 《상상인》(2023, 1월, 통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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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한 장소(특히 술자리)에 어쩌다 조금 늦게 참석하면 받게 되는
벌칙 중에 '후래자삼배'라는 게 있습니다
사람마다 취하는 정도가 다르더라도 최소한의 출발점을 같이 하자는 뜻이지요
그렇게 출발점을 엇비슷하게 잡아도 도착할 때 쯤이면 엉망이 되기 십상입니다
사람살이가 사나흘 앞당겨 살아지지 않듯이
그 어떤 삶도 이월되지 않고 시간의 강줄기를 휘감아 돌아갈 뿐이지요
오늘도 우리의 감정은 제각 이인삼각 경기하듯 비틀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