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달 [배한봉]
생전 그가 좋아하던 목련이었다. 저녁 가느다란 바람
속에서 하얗게 빛나던 그것은
뿌리 끝에서 몸통을 타고 올라온 음계가, 떨면서 입을
열고 심연의 침묵을 나무 끝에 매달아 흔드는 것 같았다.
그는 이제 남양주 봉인사의 지장전에 잠들어 있다.
그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올 때
창원행 고속버스 유리창을 뚫고 들어오려 안간힘 쓰던
햇빛의 언어들,
말하려 해도 침묵의 움푹 파인 목구멍으로 미끄러져
이내 흐느낌이 되던 생각들,
입 다문 그대로, 또 다른 심연에서 어둠 껍질을 벗기며
하얗게 떨리는 음계로 피어나고 있었다.
이름 부르면 조금 느리게 돌아보던 몸짓, 출판사 일 마
치고 부천행 급행전철을 타러 종종걸음 치던 뒷모습처럼
생생하게
오늘도 어스름 저녁을 흔드는
흰 목련.
마음 끝에 울컥, 솟구쳐 걸리는 흰 달처럼
생전 별 말 하지 않고 말하던 그가 불쑥 요렇게 찾아
와 말 걸 때도 있다.
- 육탁, 여우난골, 2022
* 한달에 한번 뜨는 보름달이지만 추석에 뜨는 달은 유난히 밝게 느껴지고 따뜻하다.
자주 만나지 못하는 가족을 만나고 작은 정성으로 서로를 보듬으며 온기를 느끼는 까닭이다.
조상에게 절을 하고 생전에 좋아하시던 음식을 나누고
보름달 쳐다보듯이 그리운 가족을 생각하는 날.
뽀얗고 하얀 목련이 딱 떠오르는 것이다.
가만가만 불러봐도 좋을 그 이름들이 다정다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