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ont color=gray size=2 face=바탕체>
가을 아침의 안개...
안개는 일교차가 10도 이상 날경우 발생한다고 한다.
공기중의 수증기가 노점(露点)온도 이하가 될 경우 피어난다고 한다.
대기를 가득채울 듯 피어오르는 안개를 보고있노라면
마치 대지가 수심에 가득찬 얼굴로 한줄기 담배연기를 뿜어대고 있는 것같다.
안개하면 떠오르는 소설이 김승옥의 무진기행 [霧津紀行]이다.
몽환적이고 탈속적인 상징으로서의 무진...그리고
잡다한 세상의 일상적인 번잡함을 가려주는 안개
미로와 같은 생의 앞길을 가로막고 서있는 안개.
흘러간 가수 정훈희의 노래 또한 동시에 입가에 맴돌곤 한다.
-나 홀로 걸아가는 안개만이 자욱한 이 거리
그 언젠가 다정했던 그대의 그림자 하나...
생각하면 무엇하나 지나간 추억, 그래도 못잊어 그리는 마음
....바람이여 안개를 걷어가다오....
지난 가을밤 자유로에서 만났던 안개를 잊지 못한다.
안개가 얼마나 자욱하게 끼었던지 바로 앞에가는 자동차의 후미등이
뽀얗게 입김을 뿜어낸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희뿌연 그림자처럼
보이게 만들던 안개...
주황색 나트륨등의 불빛의 빛줄기가 그대로 짙은 안개에 투영되어
마치 어두운 극장의 영사실에서 나오는 빛줄기처럼 보인다.
잘차려 입은 병사가 주황색 조명을 받으며 길가에 도열해 서있듯이
가로등은 어둠이 짙게 깔린 자유로를 저 홀로 밝혀주고 있었다.
그 지독한 안개속에서 언제 앞차가 튀어나올지 몰라 조마조마하게 운전을 하노라면
차라리 뜨문뜨문 보이는 앞차의 후미등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던 안개 자욱했던 길...
아직도 그 까만 아스팔트 길에 짙은 담배연기처럼 흐르던 안개가 눈앞에 생생하다.
그래서 오리무중이라 했던가.
인생길 중간쯤에 던져진 내 앞길도 갈수록 안개만 더 짙어가는 듯 싶다.
이제는 그 끝을 짐작할 수 있게 옅어지기라도 할 때가 됐으련만...
살아가면 살아질 수록 더 짙어만 가는 안개같은 인생길.
세월이 지나도 다듬어 지지 못하는 혜안과 어설픈 아집(我集)으로 인하여
어쩌면 내 스스로 내 앞길에 안개를 더 짙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가운데 서서 오도가도 못하고 방황을 하는 내 인생길의 종착역은 어디인가.
이제 아침길을 나서면 또 다시 강물이 뿜어내고 있는 담배연기 같은
아침 안개속에 파뭍혀 보잘것 없는 내 하루를 소비하려 하고있다.
보일 것 같으면서도 보이지 않고, 잡힐 것 같으면서도 잡히지 않는 인생
차라리 시리도록 차가운 하늘을 바라보며 담배연기 같은 입김을 뿜어
내 살아 있음만도 감사하게 생각되어지는 겨울 아침이 그리운 날이다.
세상에 보이고 느껴지는 모든 것들이
어쩌면 그 사물들의 실체가 아니라 그것을 가리고 있는 안개속에 투영된
그림자 일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