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21일 수요일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예수님을 따랐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9-13
그때에 9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10 예수님께서 집에서 식탁에 앉게 되셨는데, 마침 많은 세리와 죄인도 와서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11 그것을 본 바리사이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12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13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성찬에 초대 받은 너는 복되단다.
나는 음식을 전혀 가리지 않았습니다. 정말 많은 음식을 먹어도 보았고, 별미도 맛보았습니다. 미식가들을 쫓아다니면서 정말 싸고 맛있는 음식도 먹어보았습니다. 외국의 야시장에서 이상한 음식도 맛 볼 수 있었고, 혐오식품도 구경하였습니다. 한 번은 중국에서 전갈 볶음도 먹어 보았고, 모기 눈알 요리도 개구리 튀김도 맛보았습니다. 그러나 원숭이 골을 먹는 사람들을 보면서 토할 뻔도 하였고, 뱀탕이나 뱀 요리나 악어 등 파충류 요리는 어쨌든 기회가 많았지만 먹어보지 못하였습니다. 굼벵이나 바퀴벌레도 못 먹겠고, 옻을 심하게 타서 옻닭을 먹어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그 독소를 없애버린 옻닭이 나와서 요새야 겨우 옻닭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어려서 어머니는 할머니를 대접하느라고 아주 귀한 음식을 많이 장만하였었는데 그런 음식을 만드시는 어머니를 도와드리면서 아주 귀한 요리도 맛보고, 만들어도 보았습니다. 누룩도 만들고, 술도 담으며, 식혜도 만들고, 두부나 강정이나 엿을 만들 줄도 안답니다. 아주 희귀한 요리도 어머니는 만들어 내셨습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에 와서 요리를 배우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도 입으로는 모든 요리를 다 할 줄 안다고 자랑도 하고 다녔습니다. 외국을 여행하면서 양식도 최고급으로 대접 받아 보았고, 중국음식과 일식 음식도 즐겨 보았습니다. 보신탕을 먹기도 하고, 달팽이 요리도 먹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언제나 제일 먹고 싶은 것은 김치와 된장찌개 그리고 매운 고추와 고추장입니다. 짜지는 않게 먹지만 매운 것을 너무 좋아해서 어떤 때는 배 속이 쓰리기까지 하면서도 매운 청양고추를 고추장에 찍어서 잘 먹습니다. 그런데도 눈물 4의 닭튀김은 정말 매워서 혼이 났습니다. 아무리 매운 것을 좋아한다고 하여도 정말 자신이 없는 음식은 사천 닭볶음하고 눈물 시리즈 3,4번인 것 같습니다.
혈압이 높고, 심장이 나빠진 다음에는 음식을 아주 조심한답니다. 육류보다는 생선을 좋아하고, 생선도 기름진 것보다 온 몸이 흰 생선을 더 좋아합니다. 비린내가 나는 생선이나 누린내가 나는 고기는 된장을 넣거나 술을 넣어야 그 냄새가 가신답니다. 매운탕을 끓일 때에는 맥주를 적당히 넣으면 생선의 비린 맛이 없어지고, 매운탕 맛이 아주 좋아진답니다. 그래서 어려서 보신탕을 끓일 때도 된장을 넣어서 끓였기 때문에 개장국이라고 하였고, 누런 황견을 보면 ‘된장을 바른다.’고 했나 봅니다. 우리 교회의 큰 어른이셨던 노기남 대주교님은 보신탕을 아주 좋아하셨다고 합니다. 순교자 성월에 우리들은 보신탕을 먹으면서 순교 선조들의 삶을 생각하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에 묶여 고기를 먹을 수 없을 때 깊은 산골에서 개를 잡아먹을 수밖에 없었던 순교 선조들을 기억합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식사를 하면서 큰 된장 뚝배기에 사람들의 수저가 부딪치고, 김칫국에도 숟가락이 같이 파묻혀가며 침을 묻혀도 전혀 더럽지 않다고 느끼는 것이 우리의 밥상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이 음식을 나눈다는 것은 무조건 삶을 공유하고, 정을 더하며, 의리를 굳힌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옛날에 중국에서는 의형제를 맺거나 어려운 일을 같이 헤치며 살자는 의미로 결의할 때는 혈맹이란 것을 하는데 약지나 소지를 칼로 조금 베어 술잔에 서로 피를 조금씩 흘려 넣고, 같이 마시는 일도 있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마태오를 부르시며 당시에 죄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과 세리들과 식사를 같이 하십니다.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주님은 우선 그들과 식탁에 같이 앉으십니다. 먹는 것은 친해지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하나의 방법입니다. 같은 음식을 같은 자리에서 먹는 방식도 같게 먹는다는 것은 그의 모든 것을 함께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병이 걸려도 같이 걸리고, 식중독을 일으켜도 같이 일으키며, 삶과 죽음을 같이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의사가 될 수 있으며, 사제관계가 성립되는 것이며, 영원한 동행이 되는 것입니다. 동행하다보면 같이 식탁에 앉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영성체할 때는 주님을 같이 나누어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미사에 참례하는 것도 말씀과 성찬을 같이 나누는 식탁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오는 주님과 완전히 동질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신부님의 영명축일이나 교회의 잔치 때, 신부님과 본당 회장들을 위해서 상을 별도로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일부러 상석을 만드는 것은 교회의 오래된 관습이지만 별도로 음식을 구분한다면 위화감이 생길 수 있을 것입니다.
마태오는 주님께서 당신을 따르라고 하시는 한 말씀에 주님을 따라나섭니다. 이제 모든 것을 다 버린 것입니다. 그는 주님과 동행을 원하고, 평생을 주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았고, 지금도 주님의 곁에서 영복을 누리며 살 것입니다. 주님과 같은 식탁에 있었기 때문이고, 주님과 같이 먹고 마셨기 때문이고, 주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부귀와 권세를 버린 것입니다. 당신을 따르라고 하시는 주님을 따른 상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세워 주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4,1-7.11-13
형제 여러분,
1 주님 안에서 수인이 된 내가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2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3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4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5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
6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
7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은혜의 양에 따라, 우리는 저마다 은총을 받았습니다.
11 그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어떤 이들은 목자나 교사로 세워 주셨습니다.
12 성도들이 직무를 수행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는 일을 하도록, 그들을 준비시키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3 그리하여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서 일치를 이루고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
축일9월 21일 성 마태오 (Matthew)
신분 : 사도, 복음사가, 순교자
활동 연도 : +1세기경
같은 이름 :마두, 마태우스, 마테오, 마테우스, 매튜
마태오 복음서의 저자인 성 마태오(Matthaeus)는 이스라엘 북부 갈릴래아 호숫가에 있는 카파르나움(Capharnaum)에서 로마 제국을 위해 세금을 걷는 세리였으나, “나를 따라라.” 하시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마태 9,9) 당시 세리는 로마 제국을 대신해 동족에게 세금을 걷었기 때문에 멸시의 대상이자 죄인으로 취급받았다. 그런데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마티야’에서 유래한 마태오라는 이름처럼, 어느 날 세관에 앉아 있던 성 마태오는 주님의 부르심 속에서 자비를 체험하고 열두 사도의 하나가 되었다. 그는 갈릴래아 태생인 듯하며 마르코 복음에 의하면 알패오의 아들로 원래 이름은 레위였다(2,14). 시몬에게 베드로(Petrus)라는 이름을 주신 것처럼, 레위 역시 예수님으로부터 마태오라는 새 이름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루카 복음은 레위라는 세리가 부르심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5,27). 복음서마다 조금씩 다르게 언급하면서 마태오와 레위 사이의 관계에 대해 몇몇 주장이 있었으나 대체로 교회 전통은 둘을 동일 인물로 보아 왔다. ‘예수님의 고을’(마태 9,1)로 불리는 카파르나움과 그 인근에서 세관원으로 일했던 성 마태오는 이미 예수님에 관해 많은 소문을 들었고 어쩌면 제자로 불리기 전에 예수님을 먼저 뵐 기회가 있었을 수도 있다.
열두 사도 중의 한 명인 성 마태오는 일찍이 초대 교회부터 마태오 복음서의 저자로 알려져 왔다. 그는 특별히 유대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히브리어 또는 아람어로 복음서를 저술했다고 한다. 에우세비우스(Eusebius)의 “교회사”에 따르면 그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12년 동안 먼저 동족인 히브리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후에 다른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Clemens)는 그가 은수자로서 채식만 하면서 생활했다고 주장했다. 전승마다 차이는 있지만, 성 마태오 사도는 유대 지방을 순회하다가 “로마 순교록”에 따르면 에티오피아로, “예로니모 순교록”에 따르면 페르시아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순교 장소 또한 전승에 따라 에티오피아와 페르시아로 알려졌고, 순교 방법 또한 칼에 찔리거나 화형 또는 돌에 맞아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로마 순교록”은 성 마태오가 에티오피아에서 순교한 후 그곳에 묻혔다가 10세기경 이탈리아 남부의 항구도시인 살레르노(Salerno)로 옮겨져 공경을 받고 있다고 전한다.
교회 미술에서 성 마태오는 성경(에제 1,10; 묵시 4,7)에 언급된 ‘살아있는 네 생물’에서 유래한 상징에 의하면 날개 달린 사람(천사)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는 성 마태오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로 복음서를 시작하면서 구세주의 인간성을 강조한 것에 착안해 네 생물과 복음서를 일치시킨 리옹의 주교이자 교부인 성 이레네우스(Irenaeus, 6월 28일)의 선택이었다. 사도 성 마태오 복음사가는 세리였던 경력으로 인해 특별히 은행원과 장부 기장자, 회계사와 세무 직원들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그래서 교회 미술에서도 장부를 펼쳐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를 많이 표현하고 있다. 동방 교회에서는 그의 축일을 11월 16일에 기념하고 있다.
오늘 축일을 맞은 마태오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