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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고찬훈 함평군 농업기술사 |
자나깨나 국화 생각만 하는 그에게 '국화박사'를 허하라 숭례문·거북선 등 튀는 작품들 만들어 2008국향대전 완전히 뜨게 한 주인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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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중학교 2학년 때, 미래의 꿈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적었다고 했다. 그가 태어난 완도군 소안도를 다 사서 과수원을 지어 봄, 여름, 가을, 겨울 쉴 새 없이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가는 그 아름다운 광경들을 배를 타고 섬을 뱅뱅 돌면서 만끽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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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당시 농어촌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잡지인 ‘새농민’을 즐겨 보면서 농업의 길을 설계해나갔다고 했다. 그가 학창시절부터 외쳤던 ‘농업은 나의 꿈, 국화는 나의 인생!’은 매년 전남 함평에서 열리는 ‘대한민국 국향대전’을 가을철 전국의 명품축제로 확고히 자리매김하게 했으며, 결실이 맺어지기까지는 그의 지극한 국화 사랑이 있어 가능했다.
갸름한 외모와는 달리 엄청난 추진력과 쉴 새 없이 연구하는 노력파에 닉네임 또한 국화의 달인, 명인, 박사라는 칭호가 붙어 다닐 정도로 국화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최고의 전문가인 함평군 농업기술센터 고찬훈(36) 농촌지도사가 그 주인공이다. 대한민국 대표 가을 명품축제를 표방한 '2008 대한민국 국향대전'이 33만여 명의 관람객이 다녀가는 대성황을 이룬 가운데 2008년 11월 막을 내렸다. 유료 관광객과 입장수입만도 40% 이상 증가세를 보이며 명실상부한 전국 축제로서 확고한 자리매김을 할 수 있었던 건 그의 국화사랑과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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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광섭 계장님과 최선희 농촌지도사가 도와주셔서 가능했습니다.” 인터뷰 내내 겸손을 보인 그는, 한 악기로는 아름다운 음악이 나올 수 없는 진리를 인용하여, 개발팀의 노고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고 했다. 2004년 12월 조직하여 국화축제를 기획, 연출, 조경, 동호회 육성 등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함평군농업기술센터 어메니티개발팀은 앞에서 언급한 3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 국화팀은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매년 일본, 중국 등 국화축제 선진지를 벤치마킹할 수 있도록 함평군(이석형 군수)에서 지원해주고 있으며, 국내의 국화축제 관련된 어느 곳이든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다니면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한다. 벌써 5년 동안이나 함께 동고동락했다는 이 팀은 평소 머리를 짜는 기획으로 열띤 토론과 아이디어를 서로 공유하며 더 새롭게 발전된 국향대전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아울러 전국적으로 축제의 일인자인 이순영 소장의 지도력과 임 계장 특유의 조직 관리와 예산 확보 능력은 함평군 내에서도 소문이 자자하며, 최 지도사 역시 함평군농업기술센터 최초로 2007년 종자기술사에 합격하여 함평군의 위상 제고와 평소 독특한 발상과 적극적인 일 추진으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고 고씨는 전했다. 이처럼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금방 알 수 있을 정도로 환상의 드림팀을 이루고 있는 이들을 이 군수는 ‘삼총사’라 부를 정도로 그들의 단합과 기획, 그리고 추진력을 인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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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향대전은 단순히 국화축제에 국한한 것이 아닌 함평한우, 먹거리 장터, 기타 국화 관련 상품 등의 홍보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아름답게 펼쳐진 드넓은 국화들녘과 국화와 가을 곤충들을 소재로 어우러진 품격 높은 전시, 체험 행사장에는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행사기간 내내 이어졌다. 특히 400m에 이르는 국화 만리장성, 가로 31m에 높이 8m 규모의 마법의 성, 에펠탑, 피라미드, 거북선, 첨성대 등의 세계 풍물기행 기획 작품도 국향대전만의 명품 볼거리로 주목을 받았으며, 무엇보다 귀인, 환희 등 20여 품종의 국화 3천 주로 제작된 숭례문(남대문)은 고씨의 야심작으로 최고의 히트 아이템으로 관광객의 발길과 시선을 멈추게 하였다. 이 작품은 고씨가 2년 전부터 기획한 작품으로, 그의 신선하고 폭발적인 아이디어와 앞서가는 계획성이 놀라웠으며, 내년에도 이미 그의 머리에 작품이 그려져 있다고 하니, 상상을 초월한 그의 추진력에 거듭 놀라웠다. 이 군수도 숭례문 복원, 지도로 보는 한국사 등의 테마가 있는 축제로 차별화되고 교육적인 행사 내용이 타 축제와 차별화를 이뤘다는 점에서 관광객들에게 높은 점수를 얻게 된 것 같다며 내년에도 더욱 새롭고 발전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하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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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국화와 인연을 맺은 계기는 1993년 전남대학교 원예학과에 입학하면서 접한 국화연구반이라는 동아리였으며, 그곳에서 너무도 아름다운 국화분재 사진을 발견한 것이다. 선배들이 재배한 작품으로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안타깝게도 일본 국화분재 작품사진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보다 더 멋진 작품을 만들어 우리나라의 자존심을 회복하겠으며, 국화의 달인이 된다'는 당찬 마음으로 동아리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기에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전국의 국화 관련 전문가를 찾아다니며 국화에 대한 자료수집과 국화축제 관련 전문가 과정의 체계를 밟아왔던 것이다.
축제도 축제지만, 대한민국 국화동호회 활성화의 목적으로 2005년 200여 명으로 시작한 것이 전국적으로 현재 2천800여 명으로 늘어나 국화분재와 특수 작품을 만들어 전시의 장을 만들며 비교하며 스스로 개작할 수 있는 계기인 국화교실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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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008년 11월 군의 도움으로 일본 스꾸바산을 비롯하여 유시마까지 4일간 국화전 견학을 통하여 많은 정보와 연출 등을 스크랩했으며, 러일전쟁이후 분열되었던 일본의 주민감정을 하나로 모으고자 국화전시회를 열어 올해로 101회 째인 '카마사' 전시회를 보면서 국화전시회가 단순하지 않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엄청난 힘을 부여한다는 것을 느꼈다고 견학 소감을 밝혔다.
지금의 국향대전의 밑거름은 그가 동아리 회장을 맡아오면서 광주의 백화점 등에서 전시회를 통하여 얻은 경험이 노하우가 되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또 다른 것이 있었다. 그것은 정열과 노력이었다. 오직 국화를 하기 위해 60:1의 공무원 경쟁을 뚫었으며, 오직 함평군에서만 근무하겠다며 공무원 합격 후 2년 6개월을 기다린 굳은 의지력이 우리가 그를 국화박사라 부르게 하지 않았을까! *홈페이지 : 국화마을, http://kukhw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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