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본 메세지] ---------------------
웬지 갑자기 이 영화가 보고 싶었다.
아마 올 여름 피서 한 번 변변이 못간 내 자신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
이런 식으로 나타난 것 같다.
그러나 이번 여름은 워낙 작업이 밀려서 도저히 짬을 낼 수 없었다.
오래된 영화라서 비됴삽 진열대에서 찾는 데 시간이 꽤 걸렸고
집에 와서는 고장난 비됴를 고치느라 다시 몇 시간을 소비해야 했다.
그리고나서 오늘까지 10번 보았고 특히 마지막 부분은 한 30번은 보았는데 그리고 나니 피서에 대한 갈증은 깨끗이 해소되었다.
단돈 500원으로 여름을 나는 것.
괜찮은 방법이다.
줄거리는 평이하다.
동생 폴(브래트 핏)은 티나토스적 욕망를 쫓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형 노먼(크레이그 셔먼?)은 열심히 살아서 성공한다.
그러나 에토스적 인간 노먼은 끝끝네 폴의 카리스마와 파토스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하지는 못한다.
영화문법으로 보아도 그렇게 대단한 영화는 아닌 것 같다.
A가 B를 매개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C가 회고하는 평이한 구성이다.
요즘 환타지니 미스터리니 하면서
우리 머리를 쥐나게 하는 영화들과 비교할 때 오히려 초라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여기에 개인적인 비판을 보태자면,
헐리우드에서 온 제시 오빠의 이야기는 굳이 들어갈 이유가 없었고
제작비가 더 들더라도 제시역에 좀 더 투자를 했어야 한다.
아름다운 거얼이 나오지 않는 영화..... 용서할 수 없다.
그러면서도 이 영화가 우리를 감동시키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섹시가이, 브리드 피트가 A의 역할을 맡았다는 점이다.
'가을의 전설' 이래로 계속 실망을 안겨주고 있지만,
여기서만큼은 남자인 내가 봐도 입안에 침이 고일 정도로 싱싱하다.
인디언 아가씨와 멋지게 춤추는 장면,
물고기와 싸우다 계곡 속에 빠져들어가는 장면 등은
우리는 지금 헛살고 있다는 느낌을 자꾸 들게 한다.
이야기를 회고하는 있는 노먼(C)의 대사 역시 일품이다.
전공이 문학이라서 그런지 한 마디 한 마디가 탄성을 자아낸다.
아버지의 설교와 노먼의 부탁을 거친 목소리로 툭,툭 받아내는
폴의 대사도 우리를 충분히 흥분시킨다.
노만 : 폴, 우리 시카고에 함께 가자. 넌 거기서 더 멋진 자리를 얻을거야.
폴 : 나는 몬태나를 떠나지 않을거야. 형.
아버지 : 폴, 넌 정말 훌륭한 낚시꾼이 되었구나.
폴 : 아니에요. 아직도 물고기처럼 생각하려면 3년은 더 있어야 해요.
그러나 역시 이 영화의 최고 매력은
낚시질(B)이라는 매개를 통하여 자연의 모습을 여여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일게다.
실제로 이 영화가 수상한 유일한 아카데미 상은 촬영 부분이다.
영화 속에는 이렇다할 기암괴석이나 심산유곡은 없고
그저 평범한 미국의 어느 시골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감독인 로버드레드포드는 자연의 장엄함보다
인간과 함께 호흡하는 '환경'에 촛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카메라 앵글 속에 담긴 매 장면들은
지루하지 않고 황홀한 정도로 아름답다.
웬만한 까페 가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영화포스터를 한 번 보라.
낚시줄은 4박자의 리듬 속에서 10시방향과 2시방향 사이로 날라간다.
일단 주인의 손아귀를 벗어나면,
낚시줄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자신만의 비행을 시작하는데
이때 허공에서 낚시줄이 빗어내는 비정형의 곡선들은 우리의 상상을 자극한다.
사막에서 S자로 질주하는 뱀을 연상시키기도 하며
뒷간의 똥쥐가 똥무덤, 휴지, 콘돔 사이로 돌아다닐 때
일정한 간격을 두고 몸뚱이를 계속 따라다니는
긴 꼬리가 보여주는 메스꺼운 곡선이기도 하다(은희경의 '새의 선물' ?)
낚시줄이건 뱀이건 똥쥐 꼬리이건 하여간 모두
의식이 배제된 상태에서 우연이 만들어 내는 액션페인팅이다.
활강을 마친 낚시줄은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수면 위에 한줄기 포물선을 은빛으로 자신의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몇분 혹은 몇시간이 지나면 낚시줄은 송어 한 마리를 엮으면서 팽팽한 직선으로 재도약할 것이다.
목사이신 폴 아버지의 말씀에 따르면,
자연은 절대자의 섭리 속에서 탄생되었고
풀 한포기, 바위 한덩이, 그 밑으로 흐르는 한 줄기 시냇물, 그리고 그 시냇물이 만들어 내는 소리
이 모두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신의 질서 속에 있다.
그러나 결국 폴은 코스모스적 질서에 편입되지 않고
무의지, 무목적적으로 날라가는 낚시줄 같은 삶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낚시줄이 은빛 포물선을 그으며 생을 마감했듯이
폴 역시 은빛 궤적을 그으며 죽음을 맞이한다.
아름다운 곡선을 빚어내고 사라지는 낚시줄의 1초인생을 보면,
우리의 80년 인생이 초라하게 보인다.
목표를 정해놓고 성실히 정진해 나가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목표를 이탈해서 정처없는 탈주행각을 벌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