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는 1994미국월드컵에서 진짜 실력이 아닌, 체력 덕분에 졸전을 면했다는 것이 지난 칼럼의 요지였습니다. 칼럼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한국축구는 94미국월드컵 이후 급변을 겪게 됩니다.
스피드와 투지, 체력이 특징이었던 한국축구는 비쇼베츠 감독 부임 후 서서히 체격조건과 파워가 좋은 선수들 중심으로 바뀝니다. 최윤열 이상헌 이경수 등 대표선수들의 평균신장은 거의 180cm에 달했습니다.
윤정환 최성용 이기형 등이 비교적 작은 선수들 축에 들었지요.이러한 특징은 차범근 감독의 98년 월드컵대표팀에서도 이어집니다. 특히 비쇼베츠 감독은 3_6_1시스템을 고수하는 등 극도의 수비강화 전술을 고수했습니다.
플레이메이커 윤정환 한 명만 전담 마크맨이 없었을 뿐 모든 선수들이 상대선수를 철벽 같이 마크하는 수비전술로 많은 재미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96년 올림픽 본선서 1승1무를 기록한 비쇼베츠 감독은 마지막 이탈리아전서 소극적인 수비전술로 일관하다 그만 일격을 맞고 8강진출에 실패, 귀국길에 오릅니다. 이후 한국축구는 상당한 좌절기를 겪게 됩니다.
96년 아시안컵서 박종환 감독이 이란에 2_6으로 참패한 뒤 중도 하차했고 대권은 차범근 감독에게 넘어 갑니다. 97세계청소년선수권서는 브라질에 3_10으로 대패하며 한국축구는 외국언론과 전문가들에게 '창의력이 실종된 로봇축구'라는 수모까지 받게 됩니다. 당시 축구협회는 계속되는 외환(?)에 대책을 마련하느라 부산했습니다.
아무튼 이 부분에 대해서는 후일 다시 쓰기로 하고 본론으로 돌아갑니다.
차범근은 아마 한국축구 불세출의 스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만큼 그에게 거는 기대가 컸습니다. 그러나 사실 지도자로서는 그리 후한 점수를 줄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차 감독은 대표팀 감독이 된 뒤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팀의 전술은 딱 3가지다. 측면돌파에 의한 센터링, 기습적인 중거리슛, 세트플레이에 의한 득점이 그것이다." 사실 이 3가지는 전술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인데 신기하게도 당시 월드컵아시아 최종예선서 우리 대표팀의 득점은 거의 이 3가지 패턴에서 나왔습니다.
차 감독의 축구는 한마디로 많이 뛰고, 많이 부딪쳐야 하는 축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경기내용으로 볼 때 약점이 많았지만 차범근 감독은 아시아 최종예선서 승승장구하며 일찌감치 본선진출을 확정해 연일 인기 상한가를 쳤습니다. 언론이나 전문가들 중에서는 차 감독 체제에 대해 불안을 느끼는 사람이 꽤 많았지만 성적이 워낙 좋아 어떤 지적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마 프로팀 울산 현대의 사령탑 시절부터 차 감독의 이러한 전술스타일은 굳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차 감독이 요구하는 축구는 워낙 체력소모가 많았고, 이 때문에 고참선수들과 불협화음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차 감독의 뒤를 이은 고재욱 감독이 프로리그서 우승했을 때 일부 선수들은 "차 감독 시절 체력훈련을 많이 한 결과"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잘 나가던 차범근 사단의 한계는 아시아 무대까지였습니다. 월드컵 본선 첫 경기서 하석주의 중거리슛으로 먼저 골문을 열었지만 곧바로 하석주의 퇴장으로 3골을 내주며 무너졌고, 네덜란드전서 0_5의 참패를 당한 뒤 대회가 끝나기도 전에 중도하차의 불명예를 겪게 됩니다.
당시 대표팀에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또 그가 경질된 이유에 대해서는 후일 쓸 기회가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우리축구는 세계수준에는 아직도 한참 뒤져 있다는 사실이 또 한번 입증됐습니다. 더욱 안타까웠던 것은 당시 대표팀은 이미 심리전에서도 지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뒤에 98월드컵을 참관했던 대한축구협회 관계자에게 들었던 말입니다. 한국대표팀은 네덜란드전을 하루 앞둔 98년 6월19일 연습예정 시간 30여분 전에 프랑스 마르세유의 연습경기장에 도착했습니다. 그 때 히딩크 감독의 네덜란드 팀은 슈팅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뻥뻥 내지르는 그들의 강슛은 정말 위협적이었나 봅니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일은 연습시간이 다 끝나 가도록 자리를 내주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선수단은 아무 소리도 못하고 네덜란드팀의 연습광경만 지켜봤다더군요.히딩크 감독이 한국 사령탑으로 부임한 뒤 축구협회 관계자는 당시를 회상하며 그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자리를 비켜 주지 않은 것은 고의였다. 한국선수들이 도착할 무렵 우리 선수들에게 한국선수들이 겁을 먹도록 가급적 강슛을 날려라고 지시한 것도 작전이었다. 아마 한국선수들은 네덜란드 선수들이 강슛하는 모습을 보고 겁을 먹었을 것이다. 연습시간이 됐는데도 자리를 비켜 달라고 요구하지 않은 것이 그 증거이다."
심리전의 대가인 히딩크 감독은 이 때 이미 네덜란드 팀의 대승을 짐작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축구는 기술은 물론, 전술과 심리전에서 세계수준과 큰 격차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정말 90년 월드컵에 비견할 만한 졸전이었습니다.
마지막 벨기에전서 혼신의 힘을 다한 육탄방어로 가까스로 1_1로 비겼지만 우리축구는 결코 월드컵 1승을 이루기에는 아직 부족한 그 무엇이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그것이 바로 고질적인 '뻥축구'때문이고, 그 '뻥축구'는 98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과 본선에서 전성기를 구가했다고 생각합니다.
뻥축구는 목적이 없이 우왕좌왕하는 축구를 말합니다. 공을 잡으면 일단 앞으로 길게 내차는 축구, 목적 없이 뛰어다니고 목표없이 패스하고 슛하는 축구가 뻥축구입니다. 그러나 뻥축구를 극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기술은 물론, 개인전술과 팀전술이 모두 갖춰져야 비로소 팀 플레이를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축구는 어떻게 2002년 월드컵서 4강까지 올라갈 수 있었을까요. 히딩크 감독의 비결은 무엇인가요. 다음 칼럼에서는 히딩크 감독의 비법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겠습니다.
첫댓글 요즘 한국축구팀이 왜 이런담? 아시아 최강 자리를 내 주면서... 빨리 다시 전성기로 돌아가야 되는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