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다리를 건너며(步過危橋) 百步危橋高百尺-백 보나 긴 위태로운 다리 높이가 백척인데 搖搖欹板俯難憑-기우러진 다리판 흔들흔들 굽어보니 아찔하다 將乘馬度旣無奈-말을 타고 건네려도 어찌해 볼 길 없어 欲倩人扶猶不能-붙잡고 걸으려 하나 오히려 할 수 없네 亂眼昏花方黯黯-어지러운 눈 어찔하다가 눈앞이 캄캄하고 遍肌寒粟悔淩淩-온몸이 덜덜 떨려 후회가 밀려온다 過來始覺吾身在-지나고야 비로소 살아 있음 깨달으니 灔澦人間果有徵-출렁대는 인간 세상 이것과 다름없네! 윤현(尹鉉) ※보과위교(步過危橋)-위태로운 다리를 걸어서 지나다
가수 윤항기 남매 험한 세상 걸어온 길 큰 축복이다!!
필자는 가수 윤항기씨가 TV 화면에 나오면 그 프로그램 내용을 끝가지 본다.
필자의 눈에는 “윤항기 가수처럼 저렇게 나이 많으면서 편하게 보이기도 어려운데~~” 하는 생각이 윤항기씨를 볼 때마다 느낌이다. 항상 여유롭고 평화로운 모습으로 보인다.
이유는 윤항기 윤복희 형제가 윤항기가 10세, 윤복희가 6세 때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가셔 천애고아(天涯孤兒)가 되었지만 험한 인생의 파도에서 살아남아 건강하게 살고 있으며 무섭게 흔들리는 인생의 다리를 건너면서 신앙생활과 가수 활동을 계속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내 최초로 국제가요제 대상을 받았다.
그 험악한 세상을 살아오면서도 속으로는 어떤지 모르지만 얼굴에 구김살 없게 보이고 항상 평화로운 웃음을 잃지 않은 모습이다.
성인(聖人)이 별사람 아니다. 윤항기가 성인(聖人)이다.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을 극복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성인(聖人)이다. ※천애고아(天涯孤兒)-주위에 돌보아 줄 핏줄 하나 없는 아이.
그리고 윤항기씨가 폐결핵으로 죽음직전까지 갔을 때 부인의 지극정성 간호로 오늘날 82세의 윤항기가 있게 된 인생이라고 한다. 물론 이 세상에는 윤항기 윤복희 형제보다 더 어려운 인생을 산 사람들도 많다.
천애고아(天涯孤兒)의 인생을 극복하며 82세의 윤항기씨가 개신교 목사가 되어 설교하는 모습과 TV 화면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의 역경을 축복으로 전환시킨 윤항기 본인의 심성(心性)이 선(善)하고 굳은 의지와 신앙의 은혜로 생각된다.
필자도 윤항기 윤복희에 대하여 자세한 것은 모른다! 신문기사를 보고 하는 소리다.
아래는 윤항기 가수에 대한 신문기사 모음이다.
▶윤항기 목사, 작곡가 출생- 1943년 9월 15일 데뷔-1959년 노래 “정든배 1960 그룹 “키보이스” 멤버
▶윤항기(67) 목사가 ‘노래 인생 50주년, 목사 성역 20주년’을 기념한 자서전 ‘노래하는 목사 윤항기의 여러분’(성안당)을 냈다. 서울 명동 YWCA 강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윤항기 목사는 “노래하는 목사로 살아온 지난 20년은 더없이 귀하고 소중하다. 주님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며 정말 행복했다”고 말했다.
당대 악극 스타였던 아버지 윤부길의 마약중독으로 무용가였던 어머니 성경자와 동생 윤복희가 힘겹게 살았던 시절도 밝혔다. 그는 “아버지의 치료비와 자녀 양육비를 벌기 위해 어머니는 무대에서 공연을 해야 했고 공연 도중 쓰러져 돌아가셨다. 아버지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목사 안수를 받는 날 아버지를 용서했다”고 말했다. (2010-04-15 국민일보)
▶“1950년대 겨울, 서울에는 칼바람이 매섭게 몰아쳤어요. 시장 좌판 아래 떨어진 떡 몇 점을 주워 먹으며 겨울을 났죠. ‘이대로 죽는 걸까’ ‘차라리 내일 아침 눈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어요. 열몇 살짜리 꼬마가 말이죠.”
‘한국 그룹사운드 1세대’ 윤항기 씨(73)가 기억하는 동생인 가수 윤복희 씨(70)와의 어린 시절이다. 부모를 여의고 죽을 고비를 수백 번 넘겼지만 동생 때문에 살아야만 했다. 윤항기 “전쟁통에 부모 여의고 거지생활, 동생 윤복희 때문에 질기게 살아” 윤항기씨는 말했다 ‘생명은 소중합니다’ “지금 이 순간을 행복하게 사세요” (2016-10-27 동아일보)
▶윤항기 “전쟁통에 부모 여의고 거지생활, 동생 윤복희 때문에 질기게 살아” 3년 뒤면 데뷔 60주년이에요. 이 나이가 되니 앞으로의 계획보다는 오늘의 삶에 충실하게 됐죠. 지금 이 순간을 행복이라 여기는 마음의 중요성을 모두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2016-10-27 동아일보)
▶윤항기 "폐결핵 시한부 선고, 아내 없었으면 죽었다" 아내는 나를 살려준 천사다. 윤항기는 “부모님이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우리 남매가 어려서 고생을 많이 했다. 한국 전쟁 직후 부모님을 여의고, 어쩔 수 없이 원치 않게 당잘 잘 곳도 없고 먹을 것도 없어서 청계천을 배회하게 됐다” 고 밝혔다. (2022-02-17 동아일보)
▶윤항기·윤복희 남매의 우애 윤항기는 이날 폐결핵 말기 판정을 받았던 때를 회상한다. 아내와 가족들 덕분에 약 1년 만에 건강을 되찾았다고 한다. 아내에 대한 미안함으로, 아내만을 위해 사는 그의 삶이 방송에서 공개된다. (2023.07.22.조선일보)
▶1979년 MBC 서울국제가요제 실황 음반 초판본 표지에는 가수 윤항기·윤복희 남매가 부둥켜안고 오열하는 사진이 담겨 있다. 윤복희가 작사하고 윤항기가 작곡한 노래 '여러분'이 대상을 타며 세상의 빛을 처음 본 순간. 경기도 용인시 자택에서 최근 만난 윤항기(82)는 "대상 호명 순간, 아무 기반도 없이 우리 남매가 스스로 생존해왔던 모든 순간이 복받치듯 떠올랐다"고 회상했다. (2024.04.23. 조선일보)
▶경기도 용인시 자택에서 최근 만난 윤항기(82)는 윤항기가 10세, 윤복희가 6세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5년 후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며 어려움이 찾아왔다. "어릴 적부터 가수 생활을 한 동생은 미8군 무대로 향하며 친척과 부모님 친구들의 도움으로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나는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됐다"고 했다. "청계천 인근 피란민들 밀집 지역에서 넝마주이들하고 지내다가 인근 교회를 통해 고아원으로 옮겨졌죠. 약 3년 후 경기도 오산의 외삼촌댁에 겨우 연락이 닿으면서 복희와도 다시 만나게 됐습니다."
윤복희와 대상 타고 오열했던 서울가요제 음반… '여러분'은 영원한 위로곡 1979년 MBC 서울국제가요제 실황 음반 초판본 표지에는 가수 윤항기·윤복희 남매가 부둥켜안고 오열하는 사진이 담겨 있다. 윤복희가 작사하고 윤항기가 작곡한 노래 '여러분'이 대상을 타며 세상의 빛을 처음 본 순간.
"대상 호명 순간, 아무 기반도 없이 우리 남매가 스스로 생존해왔던 모든 순간이 복받치듯 떠올랐다"고 회상했다. (2024.04.23. 조선일보)
▶1959년 대한민국 최초의 록 음악 밴드라고 할 수 있는 키 보이스(Key Boys)의 일원으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1960년대 당시 한국 대중음악의 주류 장르가 트로트였던 것에 반해 윤항기는 당시 사람들에게 생소한 음악 스타일인 그룹사운드(group sound)를 했었다.
1960년 8월 해병대 병 110기로 입대하여 군악대로 복무하였고, 이후 키 브라더스(Key Brothers)를 거치며 그룹사운드 생활을 하다가 1974년 솔로 가수로 데뷔하였다. 〈별이 빛나는 밤에〉, 〈장밋빛 스카프〉, 〈이거야 정말〉,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어떡하라고〉등의 히트곡을 발표했다. 1975년에는 영화 《나는 어떡하라고》의 주연으로 영화배우 데뷔하기도 하였다.
▶윤복희와 대상 타고 오열했던 서울가요제 음반… “여러분”은 영원한 위로곡
1979년 MBC 서울국제가요제 실황 음반 초판본 표지에는 가수 윤항기·윤복희 남매가 부둥켜안고 오열하는 사진이 담겨 있다. 윤복희가 작사하고 윤항기가 작곡한 노래 '여러분'이 대상을 타며 세상의 빛을 처음 본 순간. 경기도 용인시 자택에서 최근 만난 윤항기(82)는 "대상 호명 순간, 아무 기반도 없이 우리 남매가 스스로 생존해왔던 모든 순간이 복받치듯 떠올랐다"고 회상했다.
"곡 발표 전후 나는 폐결핵 말기 선고를 받았고, 동생도 말 못할 개인적인 아픔을 겪고 있었어요."
농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