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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자의 쉼터 #1
체르니 일행의 첫 목적지는 기사 제국 카를로스의 수도에 있는 '성지 카이단'이다.
카이단은 전쟁의 신 케이른의 첫 대신관인 다이몬이 케이른에게서 직접 '전쟁의 서'를 하사받은 곳으로 유명하다.
카이단에 대한 체르니의 설명을 들은 마로니크가 물었다.
"너희들은 아레엘의 신관 아냐?"
"응. 맞아. 그건 왜?"
"근데 어째서 전쟁 신의 성소에 가는거지?"
베르온의 물음에 체르니는 역시 안되겠다는 듯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말했다.
"역시 폭력 오빠야. 무식이 하늘을 찌르는구만!"
빠지직.
"관심이 없을 뿐이다."
마로니크가 모르는 것이 나오자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샤르니가 잽싸게 끼어들었다.
"흠, 흠, 그건 제가 설명드릴께요 마.로.님."
"마로가 누구지?"
"마로니크님이요."
"..."
"..."
굉장하다는 표정의 체르니와 어이없다는 표정의 마로니크를 제쳐두고 샤르니는 어깨를 쭉-펴고 말했다.
"호호호- 어때요? 방금 생각해낸 애칭인데, 귀엽지 않나요?"
"하아-. 됬고, 설명해봐."
"네! 물론 저흰 생명의 여신 아라엘님을 섬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신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건 아녜요. 이 세상은 여러 신들이 조화를 이룰 때에만 비로소 균형이 맞춰지는 법! 그런만큼 저희는 다른 신관들과 끈임없이 교류하고, 다른 신들 또한 신성시해요. 때문에 순례 여행 또한 '아라엘 여신의 성지'를 순례한다기 보다는 '여러 성지'를 돌아다니는 여행인거죠. 그러다보니 카를로스 제국에서 수도 이름을 '카이단'이라고 할 정도로 유서 깊은 성지 카이단은 필수 코스 중에 하나인 거예요. "
"그렇군."
신.수.인 주제에 신에 대한 샤르니의 설명을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고 있던 루시는 체르니의 뒤에 앉아 말을 몰고 있는 마로니크를 못마땅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체르니에게 물었다.
"그런데 체르니야."
"응?"
"그러고 보니 넌 어째서 저번 마을에서 말을 안산거야?"
"헤헤, 오빠랑 같이 타는 편이 좋은걸?"
마로니크는 깜짝 놀라 볼에 홍조를 띄웠지만, 그 모습을 보지 못한 체르니는 등을 뒤로 젖혀 마로니크에게 바짝 기대며 말을 이어나갔다.
"히히. 이렇게 등받이로 쓸 수 있잖아"
빠지직.
콩!
"아야! 왜 때려, 이 폭력 오빠야!"
"크르릉!"
"벌이다."
"우씨!"
땅콩을 먹이며 뚱한 표정을 짖고 있는 마로니크와 씩씩대는 체르니를 본 샤르니는 소리내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두분은 정말이지 사이가 좋으시네요?"
"전혀."
"절대로!"
"난 허락 못 해!"
동시에 비슷한 말을 소리치는 두 남매와 발끈하는 루시.
샤르니로 하여금 입가에 절로 미소가 걸리게 끔하는 사이좋은 모습이였다.
...
"흐음.. 으음... 끄으으응..."
자기만한 세계지도를 바닥에 펼쳐놓고 한참을 끙끙대는 체르니.
그런 그녀를 보다 못한 마로니크가 끼어들었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 어딘데?"
"음.. 그걸 찾고 있었어.. 헤헤.."
"..."
"..."
"비켜봐."
체르니의 자리를 뺏은 마로니크는 잠시 지도를 들여보더니 손가락으로 짚으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자, 봐봐. 여기가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야. 그리고 볼케이노 산맥 중간에 다른 곳들과는 달리 연한 갈색으로 표시된 곳이 보이지? 이 연한 갈색이 해발 300m정도 밖에 안되는 고도가 낮은 곳을 뜻해. 여기를 넘어가면 곧장 카를로스 제국으로 들어갈 수 있을꺼야."
"호오.. 과연.."
"아아- 마로님. 똑똑하기도 하셔라-"
"마로라고 하지마."
"싫-지ㅡ롱ㅡ-."
빠지직.
...
숲의 밤은 빠르다.
어느덧 저물어가기 시작한 햇님은 완전히 모습을 감추기 전, 마지막 힘을 짜내어 하늘을 붉은 빛 노을로 물들였지만, 숲 속
체르니들까지 비쳐주기엔 힘이 모자란듯 보인다.
다른 사람에겐 싫은소리 한번 할줄 모르는 체르니였지만 시도 때도 없이 자신에게 태클을 걸어대는 마로니크만은 예외였다.
점점 어두워지는 주변 풍경에 체르니가 투덜거렸다.
"뭐야, 제대로 본거 맞아?"
"무식하게 세계지도를 가지고 온 네 잘못이다."
"그게 어째서!"
"보나마나 접이식이라고 신기해해며 가져왔겠지."
뜨끔.
"바보. 마녀."
"우씨! 몰라! 알아서 해!"
결국 체르니는 앞서가는 마로니크를 따라갈 수 밖엔 없었다.
뒤에 따라오는 체르니와 루시, 샤르니가 걸어가기 편하도록 삐져나온 나뭇가지를 베면서 앞으로 나아가던 마로니크는 덤불
사이로 나타난 좁은 길을 보곤 잠시 멈칫했다.
"흠, 방향은 이쪽이 아닌데.."
"앗! 오빠, 저기 불빛이 있어!"
신성 마법으로 시력 보강을 한 체르니의 눈에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희미한 빛이 들어왔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주변엔 벌목되어 밑동만 남은 나무들도 있다.
"마을이 있나봐!"
...
"읏."
"우웁."
"..."
체르니의 말대로 숲 저편엔 마을이 있었다.
하지만 외박을 면했다는 기쁨도 잠시, 체르니들은 마을의 참혹한 풍경에 할말을 잃었다.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는 시체들..
싸움이 벌어졌던 것일까.
역겨운 냄새가 나는 초록색 피를 뒤집어 쓴 시체들은 눈조차 감지 못한채 쓰러져 있었다.
'초록색 피?'
피의 주인은 온몸에 지저분한 털이나 있는 초록색 피부를 가진 오크들이였다.
오크에게 당한 동료들의 시신을 치우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생기가 하나도 없었다.
체르니는 자꾸만 나오려는 헛구역질을 간신히 참고는 말했다.
"도와드릴까요?"
몬스터인 오크가 제대로 된 장비를 갖추고 있을리가 없다.
단단한 몽둥이, 돌 도끼, 돌 화살같은 재래식 무기에 당한 사람들은 그야말로 처참한 모습이였다.
머리통의 한쪽이 으스러진 상태로 비명을 지르다 죽은 사람, 부러진 돌 창이 배에 박힌 상태로 뻗은 사람, 한쪽 눈이 으스러
진 채로 피눈물을 흘리는 사람.....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구토가 나오려 했지만 그녀는 신관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한발자국 씩 다가갔다.
갑작스런 외지인의 방문에 놀란 마을 사람들이 물었다.
"누.. 누구시죠?"
체르니는 조용히 왼쪽 소매를 걷어 올려 손등의 스티그마를 보여주었다.
"생명의 여신 아라엘님을 섬기는 종입니다."
...
"신관님! 이 사람도 부탁드립니다!"
"...!! 눈이 완전히 망가졌어요. 다행히 늦진 않았습니다. 금방 끝날테니 조금만 참으세요. ......... 리커버리!!(Recovery)"
흑발에 흑안을 가진 아라엘 여신을 닮은 소녀이기 때문일까?
체르니는 어린 나이임에도 뛰어난 신성력을 가지고 있었다.
마을의 규모가 워낙 작았던 탓에 부상자도 몇명 없었던 이유도 있지만 도저히 회생 불능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던 으스러
진 오른쪽 눈에 체르니가 회복 마법을 쓰자 검게 굳어가던 핏덩어리들이 사라지며 남자의 상태가 호전되었다.
"붓기가 빠지면 눈을 뜨실 수 있을거예요. 처음엔 잘 보이지 않겠지만 잘 챙겨 먹으시고 푹 쉬시면 시력도 금세 회복될 겁니다.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 완전히 회복시켜 드리곤 싶지만, 다른 분들도 있으니 이해해 주세요."
극심한 고통에 눈물을 흘리던 아까와는 달리 남자는 자신에게 오히려 양해를 구하는 체르니의 모습에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정말로 감사합니다. 신관님. 흐윽.. 흑.."
...
오크들의 습격을 받고는 절망하고 있을 때 나타난 신관.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는 희망의 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절망의 늪에서 빠져나온 그들은 동료들의 죽음에 뒤늦게 찾아온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지만, 체르니들이 도착하기 전에 비하면 활기를 되찾은 것이다.
시신을 묻는 속도가 빨라졌고, 무너진 담장도 열심히 수리하기 시작했다.
심각한 부상으로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가 기적적으로 회복한 부상자들이 체르니가 치료하는 것을 도와주겠다며 나서는 바
람에 다친 사람끼리 마주보며 서로의 붕대를 감아주는 웃지 못할 일까지 벌어졌다.
...
체르니가 환자들을 치료하느라 정신 없을 때, 마로니크와 샤르니는 마을의 촌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휴우- 저희도 이런 산속에서 살고 싶어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어두운 표정으로 한숨을 쉬는 촌장을 본 샤르니가 물었다.
"그럼.. 어째서죠?"
"저희는 원래 수도 클레이단 근처 고릴다 후작님의 영지, 델파이령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6년 전부터인가... 하아.. 저희 농노들에 대한 착취가 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남자들은 영지병을 키운다며 하루종일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다가 밤 늦게야 돌아왔죠.
그래도 저희 늙은이들과 아낙내들이 밭에서 농사를 지으며 세금을 꼬박꼬박 냈습니다만, 그것도 점점 심해져 농지에서 나온 것들은 모두 세금으로 바치고 저희는 풀뿌리를 캐먹어야될 정도가 되었습니다. 세금을 안내면요? 그러면 영주성에 끌려가 하루종일 매를 맞다오니 저희가 어찌하겠습니까.. 빚이라도 내서 세금을 내야죠.
하지만 빚을 내는 것도 한두번이지 점점 쌓여만가니 저희 마을사람들은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아.. 그러다 결국엔.. 3년전에 마을 사람들이 단체로 이곳으로 도망오게 된 겁니다. ...힘 없는게 죄지, 죄야.. "
촌장의 한숨 섞인 말을 들은 샤르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마로니크의 멱살을 잡고는 마구 흔들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마로님! 마로니이이임!"
"귀 안먹었어. 작게 말해."
"아르셀 공작님께 말씀드려서 그 몹쓸놈의 고릴라인가 뭔가하는 후작을 혼쭐내주죠, 우리!"
"하아.. 그건 곤란해. 그리고 넌 남의 이름을 네 편한대로 부르는게 취미냐?"
"어째서죠? 공작이 후작보다 높다는건 젖먹이들도 다 아는 사실인데!!!!"
"크음, 일단 이것 좀 놓지."
"!!"
그제서야 자신이 마로니크의 멱살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샤르니는 황급히 손을 뗐다.
"죄송해요.. 그치만! 왜! 도대체 왜에에에! 안되는건데요!! 입이 있으면 말해봐요오오오!!"
목소리는 전혀 줄어들지 않는 샤르니였다.
"영지 내에서의 영주는 왕이야. 아무리 황제라 하더라도 영주가 꼬박꼬박 세금만 내면 영지 내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간섭하기 힘들어. 더군다나.. 황태자파인 아버지와는 대립하는 가이라 황자파의 고릴다 후작이 아버님의 말씀을 들을 리가 없잖아."
"그.. 그치만..."
"그만! 더이상 그 건에 관해선 듣지 않겠어. 그나저나 촌장."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서 마로니크가 공작가의 아들이란걸 알게된 촌장은 습관적으로 깍듯이 예를 취했다.
"예. 말씀하십시요."
"오크는 모두 쓰러뜨렸나?"
"아니요. 보시는 바와 같이 저희는 마을을 지키는 것만해도 힘들었습니다. 반수 정도의 오크는 도망쳤죠. 이 정도의 피해로 끝난 것에 감사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마로니크는 왼손으로 자신의 붉은색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생각에 잠겼다.
'오크가 사냥감을 앞에 놔두고 도망을 갔다고?'
오크는 인간을 좋아한다.
물론 방금 말한 좋아한다는 것은 친구나 연인사이의 감정이 아닌 사냥꾼이 사냥감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좋아한다는 것이다.
인간 중에는 오크가 절대로 감당 할 수 없는 강력한 검사나, 마법사가 있음에도 오크들이 인간을 즐겨찾는 이유는
바로 그들이 사용하는 '도구' 때문이다.
돌과 나무로된 도구만 만들 줄 아는 오크들에게 강철로된 검과 갑옷은 인육만큼이나 매력적인 것이다.
"다시 오겠군."
"뭐?!"
"네?!"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던 마로니크가 서서히 눈을 떠감에 따라 그의 빨간 눈동자가 선명해진다.
"오크는 뛰어난 지능을 가진 몬스터야. 그런만큼 그들은 인간이 사용하는 무기를 쓸 수 있어. 철제 무기는 죽은 동료들로 인해 감소한 전투력 쯤은 가볍게 메꾸고도 남아. 그런 그들이 인간을 눈앞에 놔두고 도망갔다고? 아니, 동료들을 데리러 간 것이겠지."
"!!"
"숲속에서 이렇게 인간이 모여있을 줄은 몰랐겠지. 가져갈게 많잖아? 사람부터 시작해서 무기까지. 아니다, 아예 이 마을로 이사오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네."
오크가 물러간 뒤로 안심하고 있던 촌장은 날카로운 마로니크의 지적에 어쩔 줄 몰라했다.
고작해야 20마리도 안되는 오크들에게도 마을을 빼앗길 뻔했다.
만약 그들이 정말로 동료들을 끌고 온다면...
촌장은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귀족들의 착취 때문에 평생을 살아온 고향을 버리고 떠나왔다.
그리고 정착한 산속의 마을.
이제서야 정도 들고, 살만하진 마을을 이번엔 몬스터들 때문에 버리고 떠나야 한단다.
촌장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턱을 타고 피가 흘렀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젊은이들을 모아.. 항전할 것입니다."
결의에 찬 촌장의 모습에 마로니크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피곤하군. 며칠 묵고 가도록하지. 촌장, 괜찮겠지?"
촌장은 고개를 들었다.
무뚝뚝한 표정의 마로니크.
하지만 든든했다.
백만 대군의 오크가 몰려온다 하더라도 변함없을 든든한 그의 모습을 본 촌장은 자신들을 괴롭히던 귀족들과는 다른 마로
니크의 모습에 마음 한켠이 짠해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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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화가 16일만에 올라온 것이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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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면목 없습니다. ㅠ
그래서 과제를 잠시 뒤로 미루고
20화를 쓰게 되었네요
다음화도 되도록이면 빨리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해요 ㅠ
독자분들 다시 돌아와주세요~
첫댓글 담편이 기대되요
컴백 축하 드려요~
우왕 감사드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