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복음] 사순 제5주일- 부활의 영광 예고하신 예수님
오늘 복음의 시작에서 몇 명의 그리스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보고 싶다고 예수님의 제자인 필립보에게 말했습니다. 그들은 유다교로 개종한 다른 민족, 또는 유다교에 호의를 가진 이교인들로서 파스카 순례에 동참하려고 예루살렘에 와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참된 하느님을 경배하려는 열망으로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직접 만나주지 않으셨고 대신 제자들을 향하여 자신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영광에 대하여 예고하십니다.
땅에 떨어져 죽는 밀알의 삶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많은 수확을 내기 위하여 죽어가는 한 알의 밀알은 부활과 그에 이은 영원한 행복에 대한 표상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겪게 될 수난과 죽음은 유다인들과 다른 민족들을 메시아 시대의 한 공동체 안으로 모아들이는 풍요로운 결실을 맺게 되고, 모두가 영원한 생명을 희망할 수 있는 구원의 실현으로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섬기고 따르려는 이들도 ‘땅에 떨어져 죽어서 많은 결실을 맺는 밀알’의 삶에 동참해야 하는 것입니다.
죽음을 앞두고 고뇌하시는 예수님
풍요로운 결실을 위한 예수님의 죽음을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요한 12,23 참조)라고 말합니다. 십자가에 들어 올려지는 예수님의 죽음은 하느님 구원 계획이 완전한 실현의 단계에 이르렀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께서 아무런 고뇌도 없이 그러한 죽음을 맞이하셨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 제 마음이 산란합니다.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합니까? ‘아버지, 이때를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하고 말할까요?”(요한 12,27) 이 말씀대로 예수님께서는 임박한 죽음 앞에서 깊은 번민과 고통을 겪으셨고 그러한 자신의 마음을 하느님께 간절한 기도를 통하여 솔직하게 표현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인간적인 모습이 믿지 않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의 모습으로는 너무 나약하게 비춰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러한 모습이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고 그분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초기 신앙인들과, 그들의 증언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이들은 임박한 죽음을 앞두고 고뇌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고통받는 인간과 함께 아파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보게 되었고, 그를 통해 큰 위로와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시다
한편 고난의 시간을 면하게 해달라는 예수님의 번민의 기도는 하느님께 대한 깊은 신뢰의 기도로 변화됩니다. “그러나 저는 바로 이때를 위하여 온 것입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요한 12,27-28 참조)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계획과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기억하면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깊은 고뇌와 절망 가운데서도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시며 그분의 뜻을 따랐던 예수님의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하느님께 대한 완전한 순종과 의탁, 철저한 내어 맡김의 모습에 하느님께서 응답해주셨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예수님의 경외심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기도와 탄원을 모두 들어주셨습니다.(히브 5,7 참조)
우리도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땅에 떨어져 죽는 밀알의 삶’을 살아가게 될 때, 크고 작은 형태의 십자가를 짊어지게 되고, 때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을 만나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 묵상을 통해 그러한 순간에도 하느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홀로 버려두지 않으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예수님처럼 온전히 하느님께 의탁하며 자신을 내어 맡기는 기도를 지속적으로 바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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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