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행(僥倖)
冷靜斟酌我自身-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 자신이
此瞬間至生神奇-이 시간까지 살아 있는 것이 놀랍다
能力保有不足我-능력도 가진 것도 부족한 이 몸이
自我能力到現在-내 스스로 힘으로 이 자리에 있겠는가.
猫鼠機敏險世上-고양이와 쥐같이 약삭빠른 세상에
偶然有時僥倖存-어쩌다 보니 요행스럽게 살아있는 것이다
농월(弄月)
하루 하루를 “요행(僥倖)”으로 산다 !!
“요생행면(僥生倖免)”이라는 고사(故事)가 있다.
이 고사(故事)에서 “요행(僥倖)”이라는 말이 나왔다.
우리가 “요행(僥倖)”이라는 말은 많이 쓰지만 실제로 이 한자(漢字)는
많이 쓰이는 한자가 아니다.
그러니까
아름다운 우리말 많이 쓰고 한자어(漢字語) 쓰지 말아야 한다.
“요행(僥倖)”은 뜻밖에 얻어지는 행운(幸運)을 말한다.
어원(語源)은 임금의 수레(御駕)가 머무는 곳을 “요행(僥倖)”이라한다.
임금(天子)이 거둥(擧動)하는 곳에는 그때 그때 일시적 선심(善心)으로
백성이 그 은혜를 입어 행복해진다는 데서 쓰인 말이다.
車駕所至 臣民被其德澤以僥倖 故曰幸
임금의 수레가 백성들이 있는 곳으로 오면 그 기념으로 백성들에게
여러 가지 기념 혜택을 주므로 요행(僥倖)으로 그 덕택을 입게
되는 것이다.
이 시대에도 대통령이 어느 곳을 가면 기념으로 흔적을 남길 때가
있다.
따라서 “요생행면(僥生倖免)”은 약속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특별한 기회나 운명적(運命的)인 상황으로 인해 살아남거나
행운(幸運)을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쉽게 보는 절이나 관광지의 연못이나 바위에 동전을 던지는 것도
“요행(僥倖)”을 바라는 행위다.
수필가(隨筆家) 김상립(金相立)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오래 전 내가 로마에 갔을 때 동전을 한 번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오게 되고 두 번을 던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을 간직한
트레뷔 분수(Trevi fountain噴水)를 찾아가서 이곳에 다시 오게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빌며 등 뒤로 동전을 던졌다.
정말 행운이 왔는지, 전설이 사실로 되었는지 바로 다음해에
좀 더 여유 있는 일정으로 로마를 볼 수 있었다.
(2010.01.23. 23 조선일보)】
이런 동전 던지기가 어찌 트레뷔 분수(Trevi fountain噴水)에서
만의 일일까?
사찰 주변의 연못이나 관광지에는 여러 가지 신비스런 이야기 속에
동전을 던져볼 대상을 쉽게 볼 수 있다.
겉으로는 웃으며 짐짓 재미로 던져본다고 말은 가볍게 하지만
던지는 사람의 속내는 꼭 무엇인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만약 내가 목표로 삼았던 곳에 동전이 꼭 떨어지면,
생각지도 못한 행운이 올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은근한 기대를
가지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18세기 후반기 대표적인 조선 실학자(實學者) 박제가(朴齊家)가 있다.
박제가의 처남 이몽직(李夢直)은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후예(後裔)다.
하루는 남산에 활을 쏘러 갔다가 다른 사람이 잘못 쏜 화살에 맞아
절명(絶命)했다.
누가 쏜 화살인지도 모른다.
박지원(朴趾源)은 손위처남이 비명에 죽자 “이몽직애사(李夢直哀辭)”
라는 조사(弔辭)에서
夫人一日之生 可謂倖矣이라
대체로 사람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은 “요행(僥倖)”이라
말할 수밖에 없다고 썼다.
▷한 관상쟁이(觀相家)가 어느 여자에게 말했다.
“당신은 쇠뿔에 받혀 죽을 상(像)이요. 외양간 근처도 가지 마시오.”
며칠 후 여자가 방안에서 문에 기대어 귀이개로 귀지를 파고 있는데
갑자기 밖에서 방문을 확 밀치는 통에 귀이개가 귀를 찔러 죽었다.
살펴보니 귀이개는 쇠뿔을 깎아 만든 것이었다.
위는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세상 살아가는 데는 예상치 못한 일이 수시로 일어난다.
세상사는 일이 내 의지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북한 간첩 김현희(金賢姬1962년 4월 15일~)가 대한항공을 폭파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사해(세상四海)가 저처럼 크다 해도 사람 개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발 들일 틈조차 없다. 하루 중에도 그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경험(證驗)해보니 요행(僥倖)으로 살고 요행(僥倖)으로
면하지(僥生倖免) 않음이 없다”
방에 틀어박혀 있는 다고 쇠뿔의 불행을 면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어찌할까?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으로 그 이름이 역사에 길이 남아있는
고려 학자 이규보(李奎報)의
“이불 속에서 웃다(衾中笑)”의 시(詩) 6수 연작(連作)이 있다
밤중에 이불 속에서 세상의 웃을 만한 일들을 떠올리며 혼자 낄낄대고
웃는 시 내용이다.
그중 네 번째 시가 아래와 같다.
笑中第四是予身-웃는 중에 네 번째는 바로 내 자신이니
涉世無差僥倖耳-세상살이 잘못 없음은 요행(僥倖)일 뿐이라네.
直方迂闊人皆知-곧고 모나고 모자란 것 모르는 이 없건만
自謂能圓登此位-원만해서 이 자리에 올랐다고 말할 수 있나
세상이 험해 요행 아닌 것이 없지만,
어찌하겠는가?
밖에서 오는 환난이야 어찌해볼 도리가 없으니
그래도 우직하게 내 마음자리를 중심 잡아 조심스럽게 살아갈 수밖에--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