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주의”라는 표현에 관한 짧은 소고
흔히 성경(기록된 하나님의 계시)에 기록된 바 바리새인들처럼 행하는 것이 율법주의라 말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될 때 경계하고자 언급하게 됩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 “율법”이 가지는 의미와 중심은 사라지고 그저 행함과 보여지는 열심을 경계할 때 쉽게 차용하여 쓰는 표현이 “율법주의”가 되었음을 봅니다.
이러므로 지체들이 어떠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가? 어떠한 신앙과 중심으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며 봉사하고 수고하는 가?를 생각하기 전에 그저 무언가 열심히 하고 섬기는 모습을 보면 쉽게 언급하게 되는 표현 중 하나가 “율법주의”인 것입니다. 이처럼 저 성도, 저 지체는 너무 율법주의적으로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닌 가? 하나님 주신 은혜가 아니라 자기의로 열심하는 것이 아닌 가 단죄하며 비교함으로 쓰여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율법주의라 부르는 바 “주의”라는 단어를 쉽게 갖다 붙여 쓰는 경우가 많지만 정작 주의 앞에 붙는 “율법”에 관한 주요한 고찰과 생각 없이 가져다 쓰고 어떠한 마음과 태도로 하나님 앞에서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는 지 잘 알지 못하면서 열심히 한다하면 쉽게 “율법주의”라는 말로 판단하고 쉬이 말하게 되는 것은 아닌 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보여지는 부분, 열심들을 보고 쉽게 “율법”주의라고 말하는 것, 혹은 표현되는 것은 한편으로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그가 주신 책무와 법도와 규례와 명령을 항상 지키라
신 11:1
또한 그 율법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무엇이 죄인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행실이 무엇인가? 깨닫게 되며, 율법이 있기에 그리스도 십자가의 죽으심과 어떻게 연결 되어져 구원이 임하는 가?를 알게 되도록 돕는 것이 율법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 3:20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하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갈 3:19,21~22
이러므로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데 함에 얻게 함에 유익합니다.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갈 3:23~24
그러므로 열심히 행하는 것, 보여지는 열심만을 경계할 때 쉬이 사용하여 그것은 “율법주의‘야 라고 말하기 전에 먼저는 ”율법“이 가리키고 가르치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성경(기록된 하나님의 계시)을 통하여 배우고 알게 된 바를 따라 때와 정황에 따라 합당하게 사용하여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보여지는 바 열심히 섬기며 수고하는 성도, 지체들이 있다면 그 마음에 하나님을 경외함과 은혜를 따라 행하고 있는 바를 본 받되 혹 그러하지 못하다면 은혜와 사랑 안에서 권하는 것이 덕이요 쉬이 ”율법“주의라는 표현으로 함께하는 성도, 지체들의 섬김, 수고와 봉사를 판단하여 낮게 여기고 언급하는 바를 주의하여 삼가야 할 것입니다.
글. 배병두 집사(대구 서문교회 사랑부 교사) 2024.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