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승의 날 有感
스승의 날은 1958년 충남 강경여고의 청소년적십자 단체에서 병환 중인 선생님을 위문하고 봉사하는 선행이 알려지면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충남 지역을 중심으로 9월11일, 또는 5월26일 등을 ‘은사의 날’로 정하여 사은행사를 갖던 것이 1965년부터 5월15일을 ‘스승의 날’로 정하여 전국적인 행사로 발전하였다. 그러던 것이 치맛바람 등의 이유를 들어 1973년 서정쇄신 차원에서 박정희 정권에 의하여 폐지되었다. 폐지된 지 9년 만에 한국교총 등의 끈질긴 부활 건의를 받아들여 전두환 정권은 1982년 5월 ‘스승의 날’을 국가지정기념일로 정식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1960년대에는 스승의 날이 있었는지 기억이 없다. 하지만 복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맞은 80년대 초반의 스승의 날의 기억은 생생하다. 아이들이 직접 만든 카네이션을 가슴 가득 달고, 아이들이 정성스럽게 쓴 편지를 읽으며 흐뭇해했던 기억을. 오전 수업을 마치고 학교를 찾아온 학부모들과 배구시합을 하거나 윷놀이를 하며 막걸리를 마시던 즐거운 추억을 잊을 수가 없다.
금년 스승의 날에는 반 이상의 학교가 휴교를 했다고 한다. 교육부에서 되도록 휴교하지 말고 스승의 날에 적합한 학교행사를 갖도록 권고한 공문을 발송했다는데도 이 정도이니 그 속사정을 알만하다. 나도 현직에 있을 때 휴교를 찬성한 사람이다. 가장 학교에 가기 싫은 날이 스승의 날이었으니까. 왜 스승의 날이 이렇게 왜곡되었을까?
물론 스승의 날을 즈음하여 지나친 선물이나 촌지를 주고받거나 이를 빌미로 학생들을 불평등하게 대하여 지탄을 받는 교사나 학부모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이런 일들이 매스컴을 통하여 알려지면서 마치 교직사회 전체의 일로 착각하게 만든다.
내가 최근에 퇴직한 학교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빙 둘러 아파트 숲 가운데 자리한 우리 학교는 학교 전체가 노출되어있다. 아파트 베란다에 앉으면 학교 전체가 손바닥 보듯 훤하다. 망원경이나 성능 좋은 카메라를 가지면 교실 안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 학교에 안 좋은 감정을 가진 학부모가 스승의 날 학교에 들어오는 화분들과 선생님들이 들고 가는 선물 가방 등을 낱낱이 사진으로 찍어 교육청에 제보한 일이 있었다. 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서 별탈은 없었지만 이 사실을 알고 정말 허탈했다. 그 선물 가방이란 게 뭔가? 기껏해야 양말, 손수건, 화장품 따위 아닌가.
이번 스승의 날에는 흐뭇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행복했다. 25년 전 내가 복직을 하고 처음으로 6학년을 맡아 가르쳤던 제자들과의 만남이 있어서이다. 떠들썩한 모임이 아니라서 더욱 좋았다. 달랑 일곱이서 횟집에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며 옛날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선생님이 너무 보고 싶어 멀리 성산포에서 그리고 남원에서 달려 온 아줌마 제자들의 꾸밈없는 모습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 녹음 우거진 성불오름에서
지난주와 비슷한 상황이 계속된다. 날씨와 이산가족까지. 어제는 비, 오늘은 갬. 오늘은 목요일이니까. 오월의 신록이 눈부시다. 나는 이런 오월을 제일 좋아한다.
대천동 사거리에 12명이 모였다. 이젠 참석률에 신경을 안 쓰기로 했다. 나오는 사람이나 못 나오는 사람이나 다들 사정이 있는데 주관하는 사람이 참석률에 신경을 쓰다보면 괜한 부담만 갖게 되고 서로에게 스트레스다. 몇 명이 되었든 우리 C오동은 꾸준히 목요일 마다 모이고 있으면 된다는 생각이다.
앞장을 따라 태왕사신기 촬영 세트장으로 향했다. 성불오름 바로 못미처 난 포장도로를 따라 세트장에 도착했다. 그러나 일반인에게 공개하지 않고 있어서 들어 갈 수가 없었다. 관리인에게 사정을 해 보았으나 자기 목이 잘린 판이라는데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우리는 오름에 올라가서 멀리서 보기로 하고 오름으로 향했다.
먼저 출발한 앞장과 햇살이 성불오름 승마장에 차를 세웠으나 뒤따르던 일행이 앞차를 못보고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지난주에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 지금도 내가 정신을 못 차리는 모양이다. 다행히 이번에는 금방 전화해서 되돌아 올 수 있었다.
승마장 뒷뜰에서 검도 수련을 하고 철책을 넘어 오름으로 향했다. 목초가 자라 이삭을 패고 있어서 바람에 움직이는 모양이 물결처럼 부드럽다. 뒤에 보이는 비치미와 개오름이 어제 내린 비에 말끔히 머리를 감고 산뜻하게 앉아 있다.
오름 기슭에 자리를 잡았다. 초감제를 지내고 오전반을 보내기 위한 자리다. 아침에 칼칼한 목을 막걸리와 비아그라라 불리는 오가피로 씻으니 전신이 녹진하다. 다음 주 산행을 의논하고 단체 사진을 찍고 오전반과 작별했다.
성불오름 굼부리에 난 길을 따라 오름을 오르기 시작했다. 계곡에는 양에 순이 뾰죽뾰죽 올라오고 있어서 여학생들의 발길을 잡는다. 봄철에 올라오는 양에의 새순은 식중독 예방에도 좋은 영약이란다. 앞장이 안내하는 길이 작년과 달라 나는 동쪽 능선에 있는 성불암 쪽으로 가기를 은근히 기대했으나 결국은 중간 봉우리에 도착하였다. 하긴 지금쯤 성불암 주위에 핀 철쭉도 다 지고 볼 것도 없을 것이다.
정상에 오르자 한라산을 비롯한 남쪽의 경관이 눈이 부시다. 연초록으로 뒤덮인 들판과 바로 앞에 대록산 소록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오름 사이에 짓고 있는 골프장 방갈로가 눈에 거슬린다. 태왕사신기 세트인 고구려의 고성을 나무로 재현해 놓은 모양도 친환경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주변에 있는 대형 조립식 건물 때문인지도 모른다.
소나무 그늘에 둘러앉았다. 지난번 체오름에서 뜯은 쑥으로 만들어 온 산하네 떡이 단연 인기다. 빙떡에 쑥떡에 정성이 대단하다.
선달의 결석으로 은하수가 유머 강사로 나섰다. 이젠 제법 교안까지 마련하는 성의를 보였다. 선달이 빠지면 유머 강의가 없어서 서운했었는데 이제는 걱정을 안해도 되겠다. 본격적이 첫번째 강의 치고는 꽤 성공적이었다.
3,6,9게임을 하기에는 장소가 좁아 내려가다가 좋은 장소를 잡기로 하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서북쪽 능선을 따라 내려가는 길은 삼나무 숲이 우거져 시원했다. 거의 다 내려 와서 계곡 옆에 자리를 잡고 신나는 웃음과 3,6,9게임과 오름song을 목청껏 부르다 내려왔다. 바쁜 사람도 있고 해서 저녁은 생략하기로 했다.
녹음 우거진 성불오름에서 오늘도 즐거운 하루를 보낸 것에 감사하며 다음 주를 기약한다. 2007. 5. 17.
첫댓글 햇살님 !스승의날 맞아 옛 제자를만나서 회포를 풀었군요.~~ 스승의날! 이시점에서생각해보니 부끄럽고, 괴롭고 ,가책같으것을 느껴 반성을 해봅니다.과연 감동을 주는 언행을 몇번이나 해주었을까?~!! 자질 부족한 자가 너무 오래한것같아서 부끄럽기만 합니다. 횡설 수설 죄송합니다
가끔 글 가운데 교사시절 후회가 나오는데 너무 자책하는 건 아닌가? 그 시절 교수방법은 사실 누구나 좀 강압적이었거든. 그래도 지금보다는 열정이 있었지 않은가?
그래, 참석자 수에 연연해 하지 말자. 사정이 있어 불참하는데 괜히 미안해지잖나. 적으면 적은대로 오붓해 좋고, 많으면 많은 대로 시끌법석 좋지 않은가? 성불오름 옆에 꿩엿공장이 있는데 다음번엔 한번 들러보게나.
은하수,나 대신 속았저 그 기술 아무한테나 말해주지 말라.수고. * 양애의 표준말은 양하(襄荷)인듯 감사합니다 .
4주만에 오름 오르니 햐 ! 조오타. 우거진 숲속을 많이도 걸어다녔고, 티없이 맑은 공기도 흠뻑 들이마셨다. 역시 목요일은 최고다.
스승? 공간적인 존재이다. 스승이 선생이나 교사, 교원과 크게 다른 점이다( 선생이 면적, 교사(교수)가 선적, 교원이 점적인 존재라면). 생계로서의 교원, 지식 전달로서 교원, 경험 전달로서 선생이라면 스승은 지혜 전달이라고 해야 한다. 또 스승이 나머지 셋과 크게 다른 점은 "머리 속을 채워주는 일"이 아니라 반대로 "머리 속을 비워주는 일"을 한다는 점. 옳지 못한 지식, 경험, 생활을 벗겨내고 씻겨주는 일이다. 스승이 되야 비로소 제자가 생긴다. 교원 앞에는 처자식이, 교원 앞에 학생이, 선생 앞에는 사람들이 있듯이. 스승의 날이라고 해놓고 교원의 날로 생각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스승은 하고 안에 있는 것만이 아니다.
교사 ,교원, 교수어떤,형태이든 어떤 역활을 했던 전통적인 관념(?)이 하루를 배웠어도 우리의 정서가 스승님으로대접하고 싶은의도에서 실시되는 행사의주체로서 감사받을 만한 존재 였었나 하고반성해보는거지요 교원의날로생각한다는것에는견해의 차이가 있네요......감사합니다
교육당국, 일부 학부모들이 "교원의 날"로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선생, 스승이라는 고급 가치도 많은데 그걸 싹뚝 잘라내고 그저 "생계를 유지하는" 하위 가치로만 교사를 인식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는 말입니다. 또 한가지. 내가 말하는 교원, 교사, 선생, 스승 등의 명칭은 단지 이해를 위한 것이지 어떤 형태로 굳어진, 가치 등급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귀한 스승과 제자는 하늘 뜻이 있어야 되지만 좋은 스승과 좋은 제자는 땅 뜻으로도 됩니다. 학교 안이든, 밖이든 서로 오랫동안 만들어가는 일로 가능하니까요. 나는 만들어가는 일도 제대로 못하는 자입니다. 관수 씨. 오해 없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