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편에 이어...
송: 아 그랬군요. 아마도 이 경기가 강만규 선수의 족구 인생에 '터닝포인트'와 같은 경기가 아니었나 싶네요. 그리고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인데요, 강만규 선수는 앞서 말씀하셨듯이 방송 경기, 특히 소양강배에 상당히 강했습니다. 2008년 제1회 소양강배에서 우승을 차지하셨고요, 이후 2회 소양강배에서 하이닉스ENG, 현재 이천시청에게 4강에서 덜미를 잡혀 우승을 놓친 것을 제외하면 3,4회 대회를 모두 우승하셨습니다. 그런데 1회 소양강배 대회까지만해도 사실 1인자의 아우라는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최강팀은 개인적으로 이천시청으로 평가되거든요. 저는 강만규 선수의 전성기를 2009년 부터 보고 있습니다. 아까 말씀하셨던 그 경기에서 족구에 새롭게 눈을 떠 기존의 강공에 연타, 페인트를 적절히 섞으면서 강만규 선수의 그 강공에 날개를 달아주었죠. 그래서 2009년 부터 무게의 추가 이천시청에서 서서히 현대파워텍으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주저리 얘기했는데 혹시 본인은 이 부분을 인정하시나요?
강: 네! 그랬던 것 같습니다.
송: 그런데 저보고 강만규 선수의 경기 중 명승부를 꼽으라고 한다면 두 경기를 꼽는데요. 두 경기 모두 강만규 선수가 아니 현대파워텍이 패한 경기입니다. 사실 이긴 경기에서는 명승부가 기억이 나지 않아요. 왜냐하면 이긴 경기의 대부분이 강만규 선수가 확실하게 압도한 경기였기 때문이죠. 속된 말로 상대를 밟을 때는 제대로 밟으셨습니다.(둘 다 웃음) 한 번 기세를 타면 도무지 걷잡을 수가 없어서 점수차가 상당히 벌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만큼 강만규 선수의 전성기 시절에는 그야말로 넘볼 수 없는 절대자의 위용을 보여주었습니다. 경기가 끝날 때 스코어가 15대 12 혹은 15대 13으로 끝나는 경기들은 상대가 잘 했다기보다는 강만규 선수가...
강: (말을 끊으며)막판에 실수를 좀 많이 하기는 했죠.(웃음)
송: 네 맞습니다. 그럼 앞서 말씀드린 제가 뽑은 강만규 선수의 명승부 두 경기는요. 먼저 제2회 소양강배 4강, 바로 이천시청과의 경기였습니다. 현대파워텍이 출전했던 소양강배 대회 중 유일하게 우승을 놓친 대회인데요, 저는 사실 이 경기 당연히 현대파워텍이 이길 것이라고 판단을 했던 이유가요, 앞서 언급했듯이 절대강자의 무게의 추가 이천시청에서 현대파워텍으로 넘어가던 시기였고요, 당시 경기장이 실외 경기장이었지만 그래도 관중석이 있었기 때문에 공간이 한정되어 있어서 상대적으로 강세구 선수보다 공격 비거리가 더 길었던 강만규 선수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거든요. 그런데 이천시청의 수비수 왕갑철 선수, 정말 맨바닥에 떨어지거나 말거나 펜스에 부딪히거나 말거나 몸을 사리지 않았던 그 인생경기(?) 때문에 패하신 것이 첫 번째이고요, 또 다른 명승부는 바로 지난 해(2015년) 벌어졌던 영월동강배 4강, 하이트진로음료와의 대결이었습니다. 저는 이 경기를 '빗속의 대 역전극'이라고 표현을 했는데요. 여기서 제가 정말 궁금했던 것은요, 3세트 8대 2로 이기고 있었던 상황에서 코트 체인지를 했습니다. 그리고 강만규 선수의 강서브가 네트에 걸리면서 8대 3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민경철 감독님께서 작전타임을 요청하셨습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결과론이지만 이때부터 하이트진로음료팀이 기세를 타서 결국은 거짓말과 같은 대역전극의 희생량이 되셨는데요. 이 날 패인이 바로 이 작전타임을 쓴 그 타이밍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때 왜 굳이 작전타임을 쓴건가요?
강: 아! 그 경기 기억나네요. 당시 김동휘 선수가 경기에 나설 수 없어서 장동향 선수가 경기를 뛰었었고, 8대 3이 된 상황에서 작전타임 이후 상대팀이 기세를 타서 역전패한 경기잖아요. 그 작전타임은 제가 요청했습니다. 당시 비가 오다보니 바닥이 미끄러워 발이 밀리다보니 제 무릎에 통증이 오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래서 '이 타이밍에 좀 쉬어가야겠다'싶어서 제가 감독님께 작전타임을 요청했던 것입니다.
송: 아! 그랬군요. 어쩐지 '민경철 감독님과 같은 명장께서 이런 실수를 하실 리가 없는데'라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그랬네요. 잘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강만규 선수의 라이벌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볼 텐데요. 정말 라이벌들 많았습니다. 그만큼 오랜 시간 정상의 자리에 계셨기 때문에 그러셨을 텐데요. 먼저 상대하기 가장 힘들었던 팀은 어디였나요?
강: 13년 동안 족구를 하면서 정말 많은 팀들과 경기를 해봤습니다. 팀 별로 전성기가 있었는데요. 제가 손꼽는 최고의 팀은 1번 현대자동차 백경환, 김용호, 여상수, 임종일, 2번 한세대학교 이광재, 이승호, 권혁진, 김동휘, 3번 이천시청 강세구, 김종일, 박종빈, 왕갑철, 배창현, 4번 마산로봇랜드 장한빈, 박성진, 천유빈, 김광훈인데요. 다른 좋은 팀들도 있었지만 위의 팀들에 비해 많이 부족했습니다. 위 팀들 중 한 팀만 고르라고 한다면...음...어렵네요.(웃음) 그래도 2번 하겠습니다. 역대 가장 힘든 팀이었던 것 같습니다.
송: 상대하기 가장 까다로웠던 공격수는요?
강: 이 질문 더 어렵네요. 워낙 많아서요. 제가 생각하는 역대 최고의 공격수들은요, 백경환, 김현우, 이광재, 강세구, 김종일, 장한빈 선수인데, 다 대결해 보았지만 한 선수만 꼽기가 너무 힘들군요. 사실 공격수가 까다로웠다기 보다는 그 선수들이 속해있었던 그 팀이 (상대하기)까다로웠던 것이었거든요. 한 사람 고르기는 어려워서 20대 때는 광재, 30대 때는 한빈이 이렇게 하겠습니다.
송: 그럼 상대하기 가장 까다로웠던 수비수 혹은 수비라인은요?
강: 일단 어려웠던 수비라인이라면요. 여상수, 임종일 / 권혁진, 김동휘 / 왕갑철, 배창현 / 천유빈, 김광훈 / 황희망, 신진이를 꼽는데요. 이것도 참 어렵네요.(웃음) 그래도 골라야 한다면 권혁진, 김동휘 하겠습니다. 이 친구들은 정말 환상의 조합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세대의 전성기를 화려하게 열어준 친구들이죠.
송: 가장 어려웠던 팀, 공격수, 수비라인 모두 이광재 선수가 소속되어 있었던 1기 한세대학교 팀이네요. 정말 많이 쌓이셨었나봐요.
강: 네, 맞습니다.(웃음) 이 친구들이 저를 정말 많이 힘들게 했어요. 아까 언급했듯이 대우에 있을 때 2006년 sbs대회 결승전에서 이기고 나서 다른 대회에서는 또 졌습니다. 이겼다 졌다 그랬죠. 그리고 현대파워텍으로 이적한 후에는 많이 졌습니다. 아까 힘들다고 했었던 것은 현대파워텍으로 입사를 한 것이 결국 회사에서 저의 생업의 길을 열어준 것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저 역시 거기에 보답을 해야 했고, 그 방법이 바로 대회에 나가서 우승을 하는 것이었는데 항상 우승의 문턱에서 우리를 가로막았던 팀이 바로 이 팀이었습니다. 제가 현대파워텍에 들어갈 당시 팀이 세대교체를 하고 있었던 시기이다보니 선수들끼리 조직력이 잘 갖춰지지 않았던 반면 한세대학교는 그 네 선수가 함께 합숙하면서 생활하다보니 조직력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었거든요. 그래서 많이 졌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상대 공격수가 광재니까 광재와 라이벌 의식을 가질 수 밖에 없었는데요, 광재한테 많이 져서 집에 돌아가 샤워하다가도 패한게 분하고 억울해서 많이 울기도 했습니다.(웃음) 정말 광재한테 이겨보려고 엄청 연습했거든요. 그리고 이 말은 꼭 편집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나중에는 광재는 제 밥이었습니다. 아시죠?(웃음) 어쨌든 광재가 있었기 때문에 저 역시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라이벌 관계가 형성되었던 것 같습니다.
송: 그런가요? 그런데 예전에 이광재 선수와 인터뷰를 햤을 때 안그래도 강만규 선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이광재 선수는 '딱히 라이벌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그냥 주위에서 라이벌이라고 해서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라고 대답하던데요.
강: 그래요? 그럴 리가 없는데요. 당시 경기 전 선수들끼리 악수를 할 때 광재가 제 손을 꽉 잡으면서 정말 아프게 했거든요. 물론 평소에는 서로 웃으면서 농담도 하면서 대화하기도 했지만 경기를 하기 전 광재의 눈빛에서 느껴졌어요. '형 한테는 절대 질 수 없어.', '가만두지 않겠어.', '용서하지 않을 거야.' 등등의 무언의 메시지가 눈빛을 통해 제게 전달되었어요. 물론 저도 절대 지고 싶지 않았고요.(웃음)
송: 아 그렇군요. 그럼 이렇게 정리가 가능하겠네요. 사실 아까 '라이벌이라고 해서 그냥 그런가보다 했습니다.'라는 대답 이후에 '지금은 제가 실력이 한참 모자라 라이벌이라고 하기 민망합니다.'라는 대답이 이어졌습니다. 아마도 당시 이광재 선수가 '조이킥스포츠'를 준비하면서 최강부에서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던 시기였고, 또 한세대학교가 당시 성적이 좋지 않아서 본인이 이제 '난 만규형보다 한 수 아래다.'라는 것을 인정해서 그런 대답을 한 게 아닌가 싶네요. 아마도 그때 당시 그러니까 이광재 선수가 강만규 선수의 손을 아프게 했었던 시기에 인터뷰를 했었더라면 아마도 다른 대답을 듣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강: 네 그랬을 것 같네요. 어쨌든 그때 정말 손이 많이 아팠습니다.(웃음)
송: 알겠습니다. 그렇게 이광재 선수가 강만규 선수의 이른바 밥이 된 이후 2010년대 들어 장한빈이라는 걸출한 신예가 나타나죠. 그때부터 강만규 대 장한빈의 라이벌 구도가 형성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아쉬운 것은 이 시기가 강만규 선수의 무릎상태가 좋아지지 않았던 시기라는 것이었습니다.
강: 네 그렇죠. 한빈이는 정말 잘 하는 후배입니다. 게다가 좋은 팀원들을 만나서 날개를 달았죠. 제가 무릎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던 시기, 2012시즌부터로 기억하는데요, 이 친구한테 이겨보려고 너무 무리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페인트 수비하랴, 공격하랴, 병원비 청구라도 할까봐요.(웃음) 어쨌든 이광재, 장한빈 이 둘이 제게 상대하기 가장 까다로웠던 공격수들 이었습니다.
송: 네!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2013시즌을 시작하기 전, 지금 감독님으로 계시는 민경철 감독님과 성우석 선수, 이경수 선수등 선배들이 은퇴를 했습니다. 팀의 막내였다가 한 순간에 맏형 그리고 주장이 되셨는데, 심경의 변화가 있지는 않았나요?
강: 제가 공격수이다보니 사실 이것저것 신경 쓸 것도 많았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주장완장까지 찼고요. 그렇게 동생들과 한 팀에서 뛰게 되었는데요. 처음에는 조금 힘들었습니다. 서로가 운동을 했었던 환경이 다르다보니 이것을 맞추는 것이 조금 힘들었어요. 그런데 이건 어느 팀이나 팀 내에서 변화가 생기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것들을 마음속에 담아두는 성격이 아니다보니 이게 아니다 싶으면 선수들과 개인적으로 치맥이나 식사 혹은 차 한 잔 씩 마시면서 편안하게 터 놓고 대화하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형으로써 먼저 다가가려고 했었던 것이죠. 왜내하면 어쨌든 함께 같이 가야하는 팀원인데 서로 마음이 안 맞으면 아무것도 안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많은 소통을 하려고 했고, 지금은 잘 지내고 있습니다.
송: 주장으로서도 정말 모범이 되는 주장이셨네요. 우리 족구에서 주장이 담당해야 하는 것이 바로 그런 역할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현대파워텍은 항상 느끼지만 후보 선수가 없습니다. 항상 네 명의 선수가 함께 다니시는데요. 자체적으로 연습을 하기가 쉽지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강: 네 맞아요. 현대파워텍이 있는 서산 지역은 최강부 팀도 없고, 일반부 팀들 중에서도 전국에 정상급의 팀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마땅한 스파링 파트너를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주위 동호회를 찾아가 연습게임을 하곤 했습니다. 그곳에서 게임을 할 때는 전위와 후위를 서로 바꿔서 경기를 많이 했습니다. 저랑 (김)종세가 전위, 그리고 동호인 분들이 후위를 맡으시고, 반대편에는 (김)동휘와 (천)유빈이가 후위에 서고, 동호인 분들이 전위에 서서 시합을 하는 방식이었죠.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원정을 떠나 연습을 했었어요.
하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