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를 시작하면서 작년도 휴가는 꿈도 꾸지 못하다가 5월 첫 주 큰 마음 먹고
휴가를 내었다.
5월 첫 주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고교졸업 30주년 기념 수학여행 때문
이었다. 학교 다닐 때 내 단짝이던 재욱이 그리고 초등하교부터의 동창 여러 명, 모든
애들을 두루두루 다 보고 싶었다.
우리는 동강으로 피닉스파크로, 이박삼일의 여장을 조금도 낭비하지 않게끔 알차게
시간표를 짰고 80여명의 졸업생 가운데 이박삼일의 여행엔 150여명이 참석했고, 열일
곱 분의 옛 스승을 모시는 저녁식사 때는 253명이 참석했다. 생각하면 놀라운 세월이
다. 30년!
결혼하고 나서 혼자 나와 외박을 하는 게 처음이라는 동창도 꽤 여러 명이었고 서
울이 아닌 먼 곳에서 열일 제치고 심지어는 가게문을 아예 닫아걸고 온 친구도 여럿이
었다. 외국에서 우리나라에 나온 게 25년 만이라는 친구, 이미 남편을 여의고 아이들
억척으로 기르면서 열 사람 역할을 해내 온 친구, 아직도 독신인 친구-. 참으로 얼굴
생김만큼 다양한 인생이 250편의 장편 대하드라마 보는 것처럼 찐하게 마음에 와 닿았
다.
숙소에서의 첫날 밤, 나는 어린 날의 친구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모처럼 목이
메어 음정조절이 잘 안되는 무대였고 노래를 듣는 친구들도 다들 줄줄 손수건을 꺼내
어 눈물을 찍어내고 있었다. 그렇다! 내 노래의 고향은 언제나 그녀들이엇다. 친구들
은 어린 날 우리 집안에 불고 지나가는 큰 바람들을 다 아는, 그래서 노래하는 내 모
습을 애틋하게 격려해 주었다.
점심을 먹는데 중학교 때 친했던 숙용이가 나를 부르더니 꼭 해줄 이야기가 있다면
서 진지한 노래평을 시작했다.
"얘, 옛날의 네 노래는 맑고 거침없고 힘 있고 시원했잖아. 그런데 요사이 네 노내
는 세월과 나이가 보이면서 그렇게 따듯하고 잔잔한 게 외려 옛날보다 더 깊어져서 참
좋다. 왜 다들 나이가 들면 안쓰러울 정도로 높은 음에서 기운이 부치잖니? 그런데 넌
안 그래. 너 노래 공부 많이 하지?" 하는 것이었다.
"그래. 나 너희들 앞에서 노래하던 날의 감동을 되찾으려고 정말 연습 많이했어.
노래가 직업이 되면서부터 별 감동 없이 가슴 없이 부를 때도 있었고 그래서 늘 죄책
감에 시달려 왔었어. 이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
이박삼일의 여행과 마지막 날 저녁식사까지의 시간 중에 내 마음을 때린 것은 중,
고교 시절의 사진을 아이들로부터 받아 모아서 재편집한 흑백 영상물이었다. 자기 아
이들보다 더 어린 모습의 친구들과 이미 타계한 동창들의 교복 입은 졸업사진들이었
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는 자막과 함께.
열 여덟 살의 앳된 모습이 비교적 한 사람 한 사람 오래오래 머물렀다. 여기 저기
서 "어머, 어머" 안타까움의 한숨이 흘렀다.
나는 앞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하고 살 작정을 했다. 거침없어 보이는 내가 이
런 말하는 게 이상하달 수도 있지만 사실 집이 우선이었고 또 일이 그 다음이었다. 내
가 좋아하는 많은 일들을 지레 알아서 유보하고 산 세월이다.
그렇지만 어린 날하고 조금도 변함없는 친구들을 보면서 서로가 하나도 안변했다는
거짓말을 그냥 해대는 이유는, 우리가 살면서 겉보다는 어떤 사람의 심상을 읽고 사는
거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 사람의 이미지. 뭔가 그 사람이 그 사람다울 수 있는 그것은 마음이 절대 불변
이기 때문이고, 나 역시 어린 날의 순수와 여린 감수성, 그리고 친구들이 알고 있는
나를 보는 동안 살 면서 때가 낀 나를 벗겨낼 수 있었다. <여성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