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마애삼존불/김현자
석공의 손재간에
돌부처가 따라 나와
백제의 고운 숨결
금시라도 전해줄 듯
온화한 미소를 띠고
대중 앞에 나와 섰다.
이 ‘삼존불상’ 바로 앞에 서 있으면 돌부처님의 부드러운 음성이 귀에 들릴 것만 같다. 돌부처는 석공이 만들어 낸 예술품이다. 그러나 작가는 지금 석공의 손재간을 따라 나온 부처로 상상하면서 초장을 끌어낸다. 석공의 손재주가 얼마나 섬세했으면 시대를 거슬러 백제로 돌아간 듯할까?
초장을 끌어낸 글재주가 비범하다. 석공이 바위에 돌부처를 새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바위 속에 살고 있던 돌부처가 석공의 손길이 닿는 순간 그 손을 잡고 세상으로 나왔다고 상상하는 심상(心象)이야말로 비범하지 않을 수 없다.
중장은 초장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전통적 수사법이다. 초장 말미를 ‘와’라는 연결어미로 마감하여 중장에서 어떤 행위를 하도록 만들어 준다. 여기에 쓰인 ‘와’는 and의 개념이 아니라 ‘와서’라는 연결어미로 쓰인 것이다. ‘와서’ 무엇을 어떻게 하였는지를 보충하는 내용이 중장을 만든다. 즉, 초장의 행동이 중장의 행동을 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연결어미로 음수를 맞추기 위해 ‘서’를 생략한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중장의 ‘백제의 숨결’이란 낯선 표현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다. 화자가 말하는 ‘숨결’은 백제시대의 문화적 융성과 백성들이 느끼는 평화스러운 삶을 모두 아우르는 말로 이해된다. 화자는 마애불상 앞에서 AI가 인간을 지배하는 현재를 살고 있는 게 아니라, 천년을 거슬러 올라가 백제의 공기를 마시는 백제인의 눈으로 천상 세계를 전할 듯한 불상과 마주하고 있다.
종장은 돌부처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결의가 엿보인다. 즉 화자의 결심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서산 마애 삼존불상>은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국보로서 일명 “백제의 미소”라 불리기도 한다. 백제를 살아가던 백성들의 순박하고 평화로운 모습을 닮았다 하여 ‘미소’라는 별칭을 붙이지 않았을까.
돌부처는 대중 앞에서 서서 지금 곧 입을 열어 말할 듯하다 하니 얼마나 생동감 있게 표현했는지 실감이 간다. 대중은 마애불상을 구경하러 온 관객일 것이다. 설법하기 위해 입을 열 듯 대중 앞에 서 있는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하였다.
이 작품은 시조의 맥을 그대로 이어받은 순혈주의를 보는 아름다움이 있다.
운율과 문장 짜임이 물이 흐르듯 부드럽다. 미학적으로 말하자면 우아미(優雅美)가 매우 돋보이는 작품이다.
구(句)와 장(章)의 의미 단락이 분명하고 작가의 감정이 절제된 작품이다.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느낌이다.
첫댓글 ‘나와’는 동사 ‘나오다’의 연결형입니다. 정확히는 ‘나오- + -아 → 나와’입니다. 따라서 “‘와서’에서 ‘서’를 음수 때문에 생략했다”고 단정하면 안 될 것같습니다. ‘나와’ 자체가 정상적인 연결어미 구성으로 완전한 문법형이기 때문입니다.
시조 평설 배람합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