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하나가 면을 이루는 보길도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의 아름다운 바다에 에워싸인 그림같은 산이다. 육지의 관광명소들은 장소에 구애없이 인파로 들끓고 있지만 보길도는 어렵사리 찾게 되는 곳이어선지 한결 조용하다. 아직도 이 섬은 일부 낚시꾼과 이곳의 은밀함을 즐겨온 소수 단골 탐방객을 제외하고는 찾는이가 드문 편이다. 물을 떠나 바다 한 가운데에 격리된 해방감이야말로 보길도의 자랑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섬 풍광이 아름답다. 배로 건너야 하는 어려움 덕에 지금의 고요함과 아름다움이 지켜진 셈이다.
보길도는 완도에서 남서쪽으로 32km 떨어져 있고, 해남반도 땅끝에서는 남으로 12km 떨어져 있다. 동서 12km, 남북 8km에 면적이 32.98제곱km인 섬 전체가 온통 상록수림에 덮혀 있다. 섬 중앙에는 대형 운동장을 연상케 하는 분지가 형성돼 있고, 분지 한가운데에 부용리 주민들의 식수원인 수원지가 자리하고 있다.
보길도는 사방 해안이 낚시의 명당이지만, 분지 남쪽에 솟아있는 격자봉(430m)도 명산이다. 격자봉은 지금까지 이 섬으로 계속 탐방객을 유혹해온 고산 윤선도(1587~1671)의 유적지를 산자락에 품고 있는 산이다. 고산은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8세 때 큰집에 양자로 가게 되어 해남 윤씨 집안 대종을 잇는다.
그는 30세 되던 해 이이첨 일파에 대한 탄핵으로 함경도 경원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고, 이때부터 유배와 은둔으로 이어지는 일생을 보낸다.
51세 되던 해(1637년) 왕(인조)이 청나라에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통분하여 세상을 등지고자 재주도로 향하던 중 보길도의 수려한 풍광에 매료되어 이곳에 정착하기로 하고 부용동 정원을 꾸미기 시작했다.이듬해 난이 평정된 뒤에도 그동안 고초를 겪은 왕에게 문안드리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경북 영덕으로 유배되었다가 1년만에 풀려나기도 했다.
고산은 자연과의 친화를 통해 많은 문학작품을 창조했고, 풍수지리, 천문, 음악 등에도 매우 박식했다. 85세로 격자봉 산자락인 낙서재에서 일생을 마감하였으며 자신의 문학적 토양이었던 문소동 골짜기에 몸을 뉘였다.
격자봉은 멀리서 바라보면 산세가 마치 황소가 드러누운 듯 부드럽고 완만하다. 그러나 산속으로 들어서면 황소머리에 뿔이 돋은듯이 고만고만한 거리를 두고 기암이 나타나고 그 기암마다 독특한 모양을 뿜내며 발길을 멈추게 한다.
주능선과 정상에 올라 사방을 휘둘러 보는 파노라마도 시원시원하다. 정상에서 북으로는 분지를 이룬 부용리와 동천석실, 승룡대, 석전대 등이 샅샅이 내려다보이고, 바다 건너 멀리로는 해남 땅끝과 달마산이 가물거린다.북에서 오른쪽으로는 노화도, 뒤로 완도 상황봉이 하늘금을 이룬다. 동쪽으로는 예작도, 당사도, 소안도가 수반위의 수석처럼 자리한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이 한 폭 그림을 이룬다. 남쪽으로는 맑은 날이면 추자도와 제주도가 시야에 들어온다.
보길도의 관문인 청별나루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이르면 고산 윤선도의 사적비(사적 제368호)인 세연정이 반긴다. 세연정은 우리나라 조경유적중 특이한 곳으로, 고산의 독특한 발상이 잘 나타난 곳이다. 개울에 보(일명 굴뚝다리)를 막아 논에 물을 대는 원리로 조성된 세연지에서 어부사시사가 창작되었다. 연못 가운데에 있는 정자는 1992년에 복원된 건물이다.
세연정에서 보길초등학교 앞을 지나 남서쪽으로 이어지는 포장길을 따라 약 1km 거리에 이르면 부용리사무소가 나타난다. 사무소 앞에는 '낙서재 0.7km, 동천석실 0.5km, 곡수당 0.65km'라고 쓰인 이정표가 있다. 이정표 앞에서 남쪽 낙서재로 들어서는 수렛길로 발길을 옮겨 5~6분 거리에 이르면 왼쪽 계류가에 안내판만 세워져 있는 곡수당터가 나타난다.
곡수당은 고산 윤선도의 아들 학관이 기거했던 곳으로 지금은 옛모습은 사라지고 논밭으로 변해있다. 세연정보다는 규모가 작은 정자였다고 한다. 곡수당터를 뒤로하고 약 100m 더 올라가면 낙서재터에 닿는다.
낙서재는 윤선도가 살았던 집터이다. 초가로 집을 지었다가 나라에서 송금령(松禁令)으로 소나무를 못베게 하자 잡목으로 집을 지었고, 낙서재 뒷편(남쪽)에 있는 소은병이라는 너럭바위에 걸터앉아 사색에 잠겼다고 한다.지금은 낙서재 집터에는 새월의 무상함을 말해주듯 잡초만 무성하다.
낙서재에서 격자봉으로 가는 길은 일단 서쪽 방향으로 약 200m 거리를 이동하면 나타나는 산신당골 산길로 올라간다. 낙서재를 보지 않고 산신당골에 이르려면 부용리사무소 앞에서 곡수당으로 가다가 오른쪽 마을을 경유해 산신당골 입구에 이르면 된다.
산신당골 입구에서 남쪽 사면으로 올라가는 산길은 뚜렷하다. 초입부터 상록수림 숲터널이다. 숲터널을 오르노라면 바람결에 실려온 새콤한 동백꽃 향기가 감미롭다. 숲길 바닥에는 떨어진 새빨간 동백꽃이 즐비하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어둠침침한 숲터널을 따라 1시간이면 벌써 누룩바위가 반기는 격자봉 정상이다. 격자봉은 어느 방향에서나 주능선까지 오르는데 1시간 안팎이면 족하다. 육지의 여느 산과 달리 격자봉은 주능선이 상록수림으로 뒤덮여 있기 때문에 정상과 돌출된 바위가 아니면 바다를 내다볼 수 없다.
하산은 대개 동릉으로 20분 거리인 안부에 이른 다음, 북쪽 낙서재로 내려선다. 이 코스가 가장 짧다. 동릉을 더 타고 나아가 큰길재에 이르러 부용리나 예송리로 내려서는 코스도 괜찮다. 정상에서 서릉을 타고 30분 거리인 뽀래기재에 이른 더음, 북동쪽 모중골을 경유해 보길수원지로 내려서는 코스도 많이 이용되고 있다. 건각인 경우에는 뽀래기재에서 북릉으로 발길을 옮겨 선창리재~남은사~안산을 경유해 동천석실을 구경하고 부용리사무소 앞으로 내려서도 된다.
동천석실을 두고 윤선도는 부용동 제일의 절승이라 했다. 이곳에서 해 질 무렵에 차를 끓이는 연기가 선경처럼 보였다하여 석실모연(石室募烟)이라 하며 부용동 8경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