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주 석장리(石壯里)유적(국가 사적) 입문
▲ 활짝 열린 석장리유적(석장리박물관) 정문 |
공주종합터미널에서 금강수목원으로 가는 공주시내버스 580번을 타고 금강 북쪽에 닦여진 금 벽로를 10분 남짓 가니 석장리유적이 마중을 나온다. 이때쯤 겨울비가 그쳤는데 이날이 평일 이고 날씨까지 잔뜩 흐린 상태라 거의 강바람 소리가 전부일 정도로 적막하기 그지 없다. (공주종합터미널에서 공주시내버스 570, 571, 573, 580번이 1일 10여 회 운행, 단 방학기간에 는 감회 운행)
석장리유적 정문에 이르니 정문 옆구리에 붙은 매표소가 나의 빈약한 호주머니를 애타게 바라 본다. 석장리유적과 박물관은 유료(有料)의 공간이라 돈을 지불해야 들어갈 수 있어 입장료를 흔쾌히 치루고 구석기유적의 성지, 석장리유적으로 들어선다. (성인 입장료 3,000원, 청소년 과 군인 2,000원, 어린이 1,000원 / 매월 마지막 수요일은 무료 개방) |
▲ 석장리유적 정문에서 바라본 금강과 강변 풍경
▲ 구석기 사람들의 사냥 장면 구석기 사람 3명이 창과 돌로 매머드를 잡고 있다. 저들은 지금 인류가 먹을 수도 없는 매머드 고기로 근사하게 회식을 했을 것이다. |
정문을 들어서면 구석기시대를 재현한 다양한 모형들이 들어선 박물관 뜨락이 나타난다. 뜨락 남쪽에는 금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고 강변에는 산책로가 닦여져 있는데, 강변까지 거의 석장 리유적으로 보면 된다. 수많은 구석기 유물과 구석기 역사를 내놓던 현장은 유적 보호를 위해 흙과 잔디, 수풀, 건물(석장리박물관, 야외 구석기생활전시장 등) 등으로 고스란히 덮어놓았 다. |
▲ 구석기시대 움집과 그 시절 사람들의 생활 모습 움집(막집)은 구석기 후기에 처음 등장하여 신석기 때 크게 유행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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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기를 떼는 시커먼 피부의 석장리 슬기슬기사람 모형과 구석기 석기들 | ▲ 석장리박물관 |
금강 북쪽에 위치한 석장리유적(석장리 선사유적)은 이 땅(한반도 외에 잃어버린 땅은 제외) 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구석기유적이자 우리나라 학자들이 처음 조사한 구석기유적이다. 이 땅 에는 연천 전곡리(全谷里)유적과 단양 수양개유적, 청주 두루봉동굴 유적, 웅기 굴포리(屈浦 里)유적, 상원 검은모루동굴 등의 굵직한 구석기유적이 있으나 그들은 모두 석장리유적 이후 에 깨어났다. 그러니 석장리유적이 우리나라 구석기유적의 명실상부한 1번지가 된다.
석장리유적이 처음 발견된 것은 1964년 5월이다. 연세대 객원학자로 있던 미국인 엘버트모어 (Albert Mohr)와 그의 부인 샘플(L.L Sample)이 부산(釜山) 동삼동 패총(조개더미유적)을 발 굴하고 금강을 찾아 홍수가 스쳐 지나간 석장리 강변을 살펴보다가 강둑 주변 무너진 층에서 10여 개에 뗀석기를 발견하니 그것이 석장리유적의 첫 세상 데뷔였다. 우리나라 선사시대에 관심이 많았던 앨버트모어 부부는 그 석기를 구석기시대 것으로 생각하 고 서울로 올라가 연세대 사학과 손보기(孫寶基, 1922~2010) 교수에게 이를 보고했다. 뗀석기 에 제대로 매료된 손보기는 5월 21일 그들을 이끌고 석장리를 찾아 쌓임층이 무너진 곳에서 석기를 여럿 찾았고 예삿 장소가 아님을 직감했다. 허나 그곳은 툭하면 홍수가 터지는 강변이라 방치하다가는 유적이 손상될 우려가 있다. 하여 정부에 서둘러 발굴허가를 요청했고, 허가를 받아 그해 11월 22일 연세대대학원 사학과를 이 끌고 본격적으로 발굴조사를 벌였다. 1964년부터 1974년까지 연세대박물관 발굴단에서 10회에 걸쳐 조사를 했으며, 1990년과 1992 년에는 한국선사문화연구소에서 11/12차 조사를, 2010년에 13차 조사를 벌였다. |
▲ 1964년 5월 석장리유적이 발견되다 (1964년과 2017년 석장리의 모습) |
손보기 교수의 예감처럼 석장리유적은 예사로운 곳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선사유적과 달리 무려 50년 가까이 13번이나 조사를 받았으며 발굴을 위해 파놓은 구덩이에는 번호가 매 겨지고 유물이 발견되면 구덩이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조사를 했다. 이렇게 확인된 유적의 면 적은 54,595㎡로 제1지구와 제2지구로 구분되어 있다. 제1지구는 구석기 후기 집터층에서 2.8만년 전 문화층(文化層)이, 그 밑에서는 3,6만년 전의 문화층이 나왔으며, 제2지구에서는 절대연대가 밝혀진 것은 없으나 여러 층위(層位)에서 사람 들의 흔적이 나왔다. 또한 외날찍개와 양날찍개, 이른 주먹도끼, 발달된 주먹도끼, 격지긁개, 돌날석기, 새기개, 좀돌날 등 다양한 시대의 석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조사 결과 이곳 유적은 구석기 초기부터 후기까지 형성된 곳임이 밝혀졌으며, 맨 아래층의 외 날찍개 문화층은 암반층인 석비레층 위에 바로 쌓인 층으로 제2빙하기인 55~45만년 전 사이에 다져진 층이고, 2문화층은 제3빙하기인 35~32만년 전 사이, 3~4문화층은 21만년 전(제3빙하기 뒤쪽), 5문화층은 18만년 전 빙하기, 6문화층은 제3간빙기인 12만년 전으로 여겨진다. 구석기 중기의 성격을 지닌 자갈돌찍개 문화층은 따뜻한 기후 아래 이루어진 것으로 그 아래 쪽의 찰흙층에서 산화철(酸化鐵)이 굳어서 이루어진 뿌리테가 나왔다. 이 층에서는 아슐리안 식 주먹도끼, 돌려떼기 수법의 몸돌, 격지돌 등이 나와 6~7만년 전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8~9문화층은 제4빙하기에 이루어진 5~6만년 전으로. 10~11문화층은 2~3만년 전으로 각 각 보고 있다. 또한 여기서 나온 꽃가루를 통해 이곳에 소나무, 전나무, 오리나무, 단풍나무, 백합, 목련 등 다양한 식물이 있던 것으로 밝혀졌고, 지금과 비슷한 온대성 기후였음을 알려 주고 있어 그 시절 자연환경을 파악하는데 크게 도움을 주었다. |
▲ 구석기시대 스타일로 석기를 만드는 구석기 사람 |
구석기 집터와 화덕자리 등 구석기시대 흔적 뿐만 아니라 중석기시대(中石器時代)와 신석기시 대, 청동기시대 유물도 풍부히 쏟아져 나왔다. 하여 구석기부터 옛 조선(고조선)이 천하를 지 배하던 청동기시대까지 긴 시간 이곳에 사람들이 살았음을 알려주고 있다.
석장리유적이 나오기 전까지 이 땅의 선사시대는 저평가를 받고 있었다. 식민사관 쓰레기들의 영향도 있지만 구석기유적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땅은 7,000년 역사로 어거지로 못박혀 있었으나 석장리유적의 시원스런 등장으로 3만 년 이상으로 역사가 늘어났으 며, 이곳을 통해 이 땅에도 구석기 고고학이 뿌리를 내리게 된다. |
▲ 석장리에서 발견된 주먹도끼 |
지금이야 석장리유적 앞으로 4차선 도로가 있어 접근성은 좋으나 1990년대까지 길이 영 좋지 못해 금강 남쪽에서 배를 타고 들어왔다. 석장리 사람들은 주로 나무 땔감을 팔거나 농사를 지었는데, 부업으로 석장리유적 발굴 조사에 참여해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수 고비를 후하게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조사에 참여했고, 조사에 참여한 10대들은 역사와 고고학 에 마음이 가면서 대학교 역사학과로 진학한 이들도 많았다. 또한 손보기는 구석기 유물의 용 어를 순우리말로 지었는데, 찍개, 주막도끼, 긁개 등이 그때 나온 용어이다. 이들 용어는 손 보기 교수와 제자들, 발굴팀, 석장리 사람들이 같이 머리를 맞대고 지어낸 것이라 그 의미가 크다. 어쨌든 석장리 유적은 이 땅의 선사시대 역사를 새로 쓰기도 했지만 석장리 사람들에게 도 많은 긍정적인 변화를 주었다.
1990년 금강 북쪽으로 36번 국도(금벽로) 건설이 추진되자 석장리유적 보존 문제가 대두되었 다. 하여 공주군(현재 공주시)은 석장리유적 전시관을 세우기로 하고 문화재청과 협의해 9년 에 준비 끝에 1999년 12월 전시관 건축이 완료되었다. 그리고 2000년 12월 주차장 등의 부대 시설이 착공되었다. 2005년 전시관에서 박물관으로 업그레이드 하고자 전시관 설계와 구조를 변경했고, 2006년 2 월 1종 전문박물관으로 등록되어 2006년 9월 26일 이 땅 최초의 구석기 전문박물관인 석장리 박물관이 문을 열게 된다. 이후 2009년 5월 파른 손보기 기념관을 그 옆에 개관하여 지금에 이른다.
석장리박물관은 박물관의 중심인 전시관을 비롯해 파른 손보기기념관, 선사공원, 체험학습장, 처음 발굴이 시작된 곳, 세계구석기막집촌을 지니고 있으며, 어린이와 중고등학생, 가족 단위 에 맞는 교육 체험행사를 많이 벌이고 있다. 그리고 매년 5월 '공주 석장리 구석기축제'를 열 어 이곳이 천하 구석기 유적의 성지임을 크게 어필한다. 또한 석장리유적과 이곳에서 발견된 유물, 구석기시대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50년 가까이 진 행된 발굴 이야기, 발굴에 참여한 마을 사람들까지 세심하게 다루고 있는 점이 이곳의 특징이 자 매력이다.
* 석장리박물관(석장리유적) 소재지 : 충청남도 공주시 석장리동 98,118,137-3 (금벽로990, ☎ 041-840-8924) * 석장리박물관 홈페이지는 ☞ 이곳을 흔쾌히 클릭한다. |
▲ 옛날 석장리의 모습 (1960년대) 석장리박물관 자리에 있던 마을과 금강 건너에서 바라본 마을 모습
▲ 1960년대 석장리유적 발굴 현장 사진 |
이곳은 홍수에 취약하여 비가 많이 오면 석장리박물관 자리까지 물에 잠겼다. 하여 금강 범람 을 막고 유물층을 보호하고자 가마니에 모래를 넣어 둑을 쌓았다. 이곳에 켜켜히 숨겨진 구석 기 역사를 캐내는 것이 시작부터 매우 어려웠던 것이다. |
▲ 석장리 발굴 시작과 마을 사람들 (1960년)
▲ 발굴 현장 단체사진 발굴에 참여했던 마을 사람들과 같이 찍은 것이다. |
윗 사진은 유물층을 보호하고자 둑을 쌓은 이후에 찍은 마을 사람들의 단체 사진(1970년대)이 고, 아랫 사진은 1990년대 초에 찍은 것으로 저들 중에는 젊은 시절(1960~70년대)부터 발굴 조사에 참여한 마을 사람들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