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 이래 자연은
그렇게 존재해 왔다
/梅谷堂 김 경숙
어렵게 들머리를 찾아든다. 토
요일이라 예정시간보다 많이
늦어진 시간, 애초에 황새터를
들머리로 잡았으나 시간 관계상
오를 수 있는 만큼 올라 강원대
학교(삼척 제2캠퍼스)에 하차하
였다.
도착 시간 1 ; 10, 강원대 캠퍼스에서 내려다 보이는 삼척 앞바다가 시원스럽다. 이렇게
좋은 곳에 대학 캠퍼스가 자리하고 있다니, 접었던 만학의 꿈을 이곳에서 실현하고픈
마음이 새롭게 꿈틀거린다. 공부야 어디갔던지간에 날마다 이런 곳에서 생활할 수 있는
이들이 한없이 부러워진다.
* 산행코스;황새터-강원대학교 삼척 제2캠퍼스-육백산-1112m봉-절터-큰말-
이끼폭포(용소폭포)-국시재-소재말(광산)(6시간)
전체사진 한장 찍자 하는데도 마음들이 급한지 그대로 산행길에 오른다. 몇명 안되는
사람들끼리 기념사진 촬영을 하였다.
언덕위로 자유롭게 피어 하늘거리는 화초양귀비꽃이 동해바다와 잘 어울리는 곳을
지나 급하게 들머리를 찾아드는 중, 멀지 않은 거리나마 잠시 알바를 하는 착오를 일
으킨다.
개망초꽃 흐드러진 공터를 좌측으로 두고 소나무가 울창한 숲길로 접어들면서 본격
적인 산행길에 올랐다.
초복을 이틀 앞두고 여물대로 여물어진 무더위에 그것도 한낮 끓어오르는 불볕아래
그늘진 숲길이어도, 몸에 감겨오는 열기는 차오르는 숨을 턱밑까지 끌어올린다. 얼마
나 올라야 시원함을 맛볼 것인지, 강원대 삼척 제2캠퍼스가 700m고지라 하니 육백산
1,244m 고지를 향하여 안간힘을 다해본다.
줄지어 오르는 일행들의 모습에서 삶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엿본다.
오랜시간 휴식년제에 묶여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였던 육백산은 말 그대로 오지산의
형태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 온 산을 가득 메우고 있는 우람한 나무들과 눈길
닿는 곳마다 산딸기며 마가목 열매가 푸르를대로 푸르른 숲에 화려한 빛을 더하고 있
었으며, 각종 야생화들이 지천에 꽃을 피워내고 있었기에, 힘든 오르막길을 오르면서
도 정상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점점 더 신비감에 싸여만 가고 있었다.
30분 정도를 올라 마차가 지나갈 수 있을만한 임도가 나있는 곳에서 길을 가로질러
정상을 향하였다.
하늘을 찌를 듯 우뚝우뚝 솟아있는 낙엽송들에서 육백산의 깊이와 남성스러움을 엿본다.
숲길 좌측으로 육백산 1.0Km란 작은 푯말이 꽂혀있다.
일행들이 오르다말고 점심상을 펼친다. 시간이 꽤 흐르고 있으니 시장기도 느낄만한
시간이다. 2시가 다되어 가는 시간, 육백산 정상 800m정도를 남겨두고 간단히 점심을
해결한 후, 정상부근에서 후미를 기다리고 있을 선두 생각을 하며 부지런히 자리에서
일어나 발걸음을 옮겨본다.
삼척시 도계읍과 노곡면의 경계에 자리하고 있는 육백산은 해발 1,244m로 육백지맥이
지나는 산으로, 주위에 많은 천연기념물과 문화유적을 간직하고 있다. 가칭 '육백지맥'
은 낙동정맥 백병산에서 동쪽으로 1km쯤 되는 1074봉에서 낙동정맥을 분기하여 좌측
으로 오십천을 끼고 신리재-육백산-핏대봉-삿갓봉-안개산-돌입재-선구산-근산-석탄
산을 일으키고, 오십천이 동해 바다와 만나는 곳까지 도상거리 약 50km 가까이 이어지
는 산줄기이다. 아무튼 육백지맥은 삼척시 최대의 오지지역을 지나가고 있다는 것이 매
력이라 할 수 있겠다.
이곳 육백산은 특히 삼척너와마을의 주 소득원을 제공하는 동시에 마을 주민들의 마음
의 고향으로 인식되고 있는 명산이기도 하다. 산새는 다른지역보다 평탄하여 막상 정상
갈림길에 다다르고 보니 이곳까지 오르막의 부담을 안고 숨가쁘게 올라왔던 발걸음이
무색할 정도로 정상부근은 평탄하고 너른 평지와 같았다.
'이럴줄 알았으면 편안한 마음으로 올랐어도 되었을 것을....'하고 슬그머니 미소를 지
어보았다.
삼거리에 배낭을 내려두고 정상을 향하여...
10분이라면 너무 짧지 않을까? 15분? 300m를 오르니 육백산 정상 표지판이 걸려있다.
정상이라고 보기에는 싱겁다고나 할까? 아무튼 조망이 안되는 정상이고 펑퍼짐한 산봉
우리이다 보니 우리가 늘 힘들게 올라 가슴 후련함을 맛보던 그런 정상의 분위기는 전혀
아니다.
오래 머무를 이유도 없이 사진 몇장 찍은 후 삼거리까지 되돌아 내려와 배낭을 다시 메
고 선두를 쫓았다.
육백산의 고스락은 넓고 평평한데, 산 이름은 고스락의 평평한 넓이가 육백마지기나 된
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또 서속(黍粟, 기장과 조) 씨를 육백섬이나 심을 정도로 넓다는
데서 생겨났다고도 한다.
정상의 산능이 워낙 평평하다 보니 임도만 따라 산행을 하다보면 육백산 정상이 마루금
에서 살짝 벗어난 것처럼 생각이 되어지지만, 하산길에 들어보면 마루금은 오를때의 능
선과 내려가는 능선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된다.
탄광이 생겨나면서 형성된 도시인 도계는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으로 광산들이 다 문을 닫
은 상태다. 육백산은 석탄산업이 성하기 전 화전민들이 화전을 일궈 농사를 짓던 산이다.
지금도 화전민들이 생활하던 그때의 너와집이 육백리 남쪽 신리문이골에 생활용구와 함
께 잘 보존돼 중요민속자료 33호로 지정되어 있다.
5-6월에 이곳을 장식하였을 동자꽃과 개승마꽃..... 지금은 이미 거의가 져버리고 푸른
잎사귀들과 간간히 뒤늦게 피어난 꽃송이가 하나씩 듬성듬성 남아 화려하였던 얼마전
의 일을 이야기 하는 듯 하였다. 또한 4월 중순부터 5월초까지 2만평 이상의 엘레지 군
락지와 육백산 대표 나물인 곤드레를 채취할 수 있다고 하니 과연 육백산이 오지산으로
서 자랑할 만한 너른 품과 다양한 자원을 지녔다 할만 하다. 꽃송이가 우아하고 아름다
워 바람난 꽃으로 알려져 있는 엘레지가 2만평씩이나 군락을 이루고 있다면 그 모습이
어떠할지 상상을 하여 보았다. 또한 정상의 가을 단풍 구경은 다른지역과 다른 이색적
인 공간이 연출되어 촬영지 또는 연인들의 정을 쌓는 좋은 장소가 될 것이라 하니, 육백
산은 어느 계절에 찾든 오지산으로서의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리라 생각
이 된다.
육백산 정상에서 국시재방향으로 향하는 길은 넓은 임도로 이어진다. 오래 묵어있어서
푹신한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 잡풀들이 무성한 임도를 따라가다 보면 길가 옆으로 지천
으로 피어 있는 야생화들을 만나게 된다.
임도 옆에서 자주 눈에 띄는 꿀풀과 모처럼 만에 싱싱한 모습을 만난 터리풀꽃이다.
군락을 이루고 있는 터리풀꽃과 섬초롱꽃도 눈에 띄고... 터리풀꽃은 이미 때를 지나
거의 시든 상태이다.
임도를 따라 원시림속에서 편안한 산행을 즐기고 있는 우리 일행들.....
이곳에서도 마가목열매가 자주 눈에 띈다. 드물게 멍석딸기도 보이고.....
아, 잊을뻔 했다. 그거..... 잠자리!! 무지무지하게 많다. 이곳은 잠자리의 천국이다.
이들은 사람이 무섭지도 않은가 보다.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미는데도 날아갈 생각을
않는다.
육백산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예전에 이곳에서 감자농사를 짓던 한
사람이 감자를 벗겨 방망이로 두드려서 떡을 만들고, 집에서 생산한 꿀에 찍어 먹었
더니 맛이 참 좋더란다. 그래서 '이렇게 좋은 음식을 최고 별미로 여기고 혼자 먹을
것이 아니라 나랏님께 갖다 드려야 겠다.' 생각하고 꿀 한병과 감자떡 한 코리를 해
서 짊어지고 한양을 향했다. 한양까지 가려면 거리도 있었거니와 감자떡을 짊어지고
가는 동안 식고 문드러져 맛이 없어짐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한양에 당도하여 대궐에 들어가려고 하니 문지기가 내쫓고 내쫓고 하여 말하기를 "나
는 나랏님께 음식을 대접하려고 이곳까지 왔다"고 해도 허락을 하지 않았는데,마침 임
금님이 이것을 보시고는 "들여보내라"하였다. 임금이 묻기를 "어디서 왔는가?" 하니
"강원도 삼척에서 감자농사를 하고 벌을 치는데 벌이 수십통되고 이래서 감자떡을 해
꿀에 찍어 먹으니 맛이 하도 좋아 내 혼자 먹을 수 없고 나랏님께 좀 갖다 드릴려고 이
래 갖고 왔습니다" 하였다. 그래 임금이 감자떡을 먹어보니까, 맛은 별로 없지만 그 사
람 정성이 하도 지극해서 상을 줘야겠다 생각 하였다. "그래 자네 소원이 무엇인가?"
하고 물으니 "저에게는 소원이 하나 있습니다. 삼척에는 밭이 육백 마지기가 되는 산이
있는데, 그 것을 제 이름으로 하여 주시면 소원이 없겠습니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
사람 앞으로 육백마지기를 해주니 소원대로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하여 산 이름이
감자밭 육백 마지기란 이름을 빌어 육백산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하여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육백산 정상은 도계에서 신리로 넘어가는 재로서 문의치라고도 불리워진다.
태백산맥의 지맥에 솟아 있는 높이 1,244m의 육백산은 주위에 두리봉(1,072m)·응봉산
(1,267m)·사금산(1,092m)·백병산(1,259m) 등이 연이어 있어 고산지대를 이룬다. 산정에
는 육백산면이라 불리는 넓은 고위평탄면이 나타나는데, 과거에는 화전으로 이용되었
으나 현재는 숲이 조성되었다. 이러한 지형은 신생대 제3기에 일어난 융기운동의 결과
로 나타나며, 한반도 지형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서쪽 사면에서는 백병산에
서 발원한 오십천이 심하게 곡류하면서 삼척시를 가로질러 동해로 흘러들고, 남쪽 사면
에서는 가곡천의 지류가 발원한다.
육백산 남쪽 사면의 신리를 지나 가곡면 동활리까지 가곡천의 상류에 해당하는 협곡은
경치가 매우 수려하다. 영동선과 삼척-태백을 잇는 국도가 오십천계곡을 지나며, 남서
산록의 정거리치(停車里峙)로는 지방도가 지난다. 신리에는 중요민속자료 제33호로 지
정된 너와집과 민속유물 10점이 보존되어 있으며, 서쪽 도계리에는 삼척도계읍의 긴잎
느티나무(천연기념물 제95호)가 있다.
애초에 점심식사를 모여서 하기로 약속하였던 육백산 안내도가 서있는 장군목이다.
들머리에서 늦게 산행이 시작되었기에 중도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지만, 예정 시간대로
산행이 진행되었더라면 이곳에 와서 점심을 먹었으면 좋았겠단 생각이 들었다.
앞서가던 일행 몇분이 장군목삼거리에서 오른쪽길을 택하여 응봉산방향으로 갔다가 되
돌아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산하여 들었지만 일행중 발빠른 분들 세분이 응봉산
을 찍고 왔다는 이야기이다.
장군목삼거리에서 우리 일행은 좌측으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갈 수록 숲은 점점 더 깊
어만 가고, 빽빽하게 들어선 수풀림속은 마치 어둠이 내린 숲속처럼 어두침침하다. 마
치 정글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들만큼 사람의 손길 한번 주어지지 않은 나무들이, 밑
에서 올려다보면 마치 죽어있는 나무들처럼 아래쪽에 시커멓게 삭정이를 그대로 달고
서있다. 나무 끝부분을 올려다보면 파랗게 살아있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인다. 말 그대
로 태초의 산의 모습이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산등성이는 건장한
남성의 육체미를 연상케 한다.
이 길을 걸으며 얼마나 행복한 생각이 들던지..... 흙위엔 묵은 낙엽송의 잎이 떨어져
덮여있어 폭신폭신하다.
1,112봉을 오르며.....
듬직한 나무들을 보면 괜스레 마음이 흐뭇하여진다. 그리고 부러운 마음도 든다. 좋
은 환경에 나서 별 어려움없이 쑥쑥자란 귀공자 타입이다. 보기만 하여도 가슴이 후련
하여지는.....ㅎ
모처럼만에 갈매기난초꽃(?)도 눈에 띈다.
어두운 정글속에서도 화려함을 자랑하는 산나리꽃, 비비츄, 아기나리,단풍취꽃이다.
몇번의 작은 오르내림이 반복된 후 20여분 된비알을 올라 4시경에 1,112봉에 올랐다.
산봉우리라고 해봐야 오를 때는 힘들어도 막상 오르고 보면 밋밋한 소잔등같아 이곳
이 봉우리가 맞는가 싶을 정도이다.
또 다시 내리막길이다. 급경사는 아니지만 꽤나 경사면이 있어보이면서 비가 온 뒤라
흙이 젖어있었기에 미끄럼 주위를 요하는 구간이다.
경사면을 내려선 모습이다. 이런 길을 다소 미끌거리며 15분 정도 이어 걷게 된다.
1,112봉을 내려가고 있는데 고덕아찌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다가 갈림길에서 은
하수방향표시지를 살펴보고 오라는 전갈이다.
또 다시 20여분의 오름길을 올라 도마재에 이르렀다. 그곳에 오르고보니 좀 전에 전
화로 이야기하던 고덕아찌님의 말이 이해가 갔다. 은하수바닥지는 좌측으로 향해 있
었다. 까딱하다가는 우측길로 내려서기 십상팔구(十常八九)인 장소이다. 울산에서
왔다는 다른 산악회 회원 대부분이 그 곳으로 내려가 아래쪽에서 소리를 질러 확인
을 해오기에 되돌아와 좌측길로 오라 소리를 지르고는 뒤를 쫓고 있는 우리 일행들
에게도 살펴보고 오라 소리를 지른 후 좌측길로 향하였다.
앞에 산악매니아님과 무한사랑님이 절터로 향하는 경사면을 따라 내려가고 있는 모
습이다.
하산길은 급경사인데다 꼬불꼬불 뱀처럼 길이 휘어져 있어 한참 어려움을 겪으며 내
려야만 하였다.
한참만에 아기 오줌줄기만한 물줄기가 흐르는 실계곡을 건넜다. 물은 흐르지 않아도
흙이 젖어있어 여간 미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조심에 조심을 하여가며..
우리 일행들의 뒷모습이 보인다.
작은 계곡을 건너 편안한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니 우리가 목표하였던 폐가가 나타
났다. 지도상으로는 이곳이 절터로 표시되어 있다. '전설의 고향'에서나 나올법한 으
시시한 분위기이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리면 이끼폭포로 바로 내릴 수 있는 지름
길이 있으나 위험하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길을 자세히 알지 못하니, 직진하여 안전
한 길로 향하였다.
절터를 지나오니 뒷쪽에 도라지밭이 보인다. 오래간만에 흐드러진 도라지꽃을 보니
그냥 지나쳐 가기가 싫었다. 사진 몇장 찍고서야 겨우 그곳을 내려갔다.
육백산엔 들머리에서부터 날머리까지 숲의 공간이 있어지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 개
망초꽃이 흐드러졌다. 도라지밭을 지나며 내리막길에도 온통 개망초꽃 군락지이다.
내리막길에 잘 자라 우뚝 솟아있는 금강소나무의 모습이다. 참말로 잘 생겼데이~
좌측 계곡 맞은 편 산등성이 한쪽이 모두 금강송의 군락지이다.
도라지밭 맞은 편 우뚝 솟아있는 봉우리가 1.086봉이다. 우리가 여태 걸어온 육백지
맥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그 너머에 있을 테지만.....
먼저 내려간 일행들이 손을 번쩍 들고 사진 한장 찍어달라 소리를 지른다. 벌목하여
앞이 확 트인 작은 산봉우리이다. 그 밑으로 내리면 이끼폭포가 있는 용소골이다.
벌목을 하여 전망대 역할을 하는 곳에 오르니 큰말의 집들이 내려다 보이고 성황골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른쪽 하단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향하는 길이 이끼폭포로 향하는
길이다.
삼거리 직전 좌측으로 길이 휘는 산모퉁이에도 개망초꽃이 만발해 있다.
삼거리에서 20여분 급경사길을 어렵게 내려서니 그토록이나 갈망하며 먼 거릴 달려오게
한 무건리 이끼폭포가 시원한 물소리를 내며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성황골 이끼폭포
멀리도 내려와 앉았구나
태고의 신비를 더하기 위하여
넌 햇살도 내리지 않는
깊고도 어두운 계곡 구석진 자리
그렇게 쭈구리고 앉아
그리움을 부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눈두덩이 시퍼렇게 부르트도록
그리움에 절어
가슴을 쓸어내리고
주옥같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면서
마음속에 들어가 앉을
그 누군가를 기다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잊으려고 해도 잊혀지지 않는
네가 사랑하던 이의
이름을 목메여 부르면서(09.07,11)
개방된지 얼마나 되었기에 이미 이끼는 많은 손상을 입고 있는 듯 하였다. 생각보
다는 이끼가 성한편은 아닌 듯 하였다. 상단폭포가 더 신비로울 것 같았는데, 좌측
에 매여져 있는 사다리가 부실하고 매우 위험해 보였기에 위로 올라볼 생각은 엄
두도 내지를 못하였다.
폭포 위에 있는 빨간 티셔츠의 남정네가 잠시 후에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다 밑으로
추락하여 헤엄쳐나왔다는 이야기를 고덕아찌님을 통하여 들었다. 정말 위험한 순간
을 넘겼던 것 같다.
올라가 보지는 못하였지만 상단에도 이미 이끼는 많은 손상을 입고 있다는 이야기
를 들었다. 개방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산객들에 의해 자연이 훼손되고 있는 것 같
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상단폭포의 신비로움을 빌려온 사진을 통하여 보기로 하겠다.
용소굴과 이끼폭포..
폭포 위에서 내려다보고 찍은 사진이다. 우리 일행들의 모습도 보인다.
이곳의 물빛은 온통 우유빛이다. 석회암지대라 그런가 보다. 폭포물에 알탕을 즐기
시는 산님들도 있던데 건강에 문제가 없을 것인지 의심스럽다.
폭포 우측으로 흐르는 또 다른 폭포의 줄기이다.
상단폭포 있는 곳에서 알탕을 즐기고 내려오는 코도라님의 모습이 카메라에 들어
왔다. 우리 일행들 중에는 유일하게 상단폭포를 올랐을 것 같은.....ㅎ
급하게 폭포있는 곳까지 내려오기도 하였지만 상단폭포까지 오르는 것은 꿈도 꿀 시
간조차 없었기에, 사진 몇장 겨우 찍는둥 마는둥 하고서 부랴사랴 되돌아 내려갔던
길을 올라오고야 말았다. 장롱 속 고이 간직한 옥가락지 처럼 깊은 산중에 숨어 태고
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는 이끼폭포가 행여 산님들의 발걸음에 귀한 모습이 상할까
조심스러운 마음을 내려두고서.....
이끼폭포에서 오름길은 내림길 보다는 숨은 좀 가빴어도 위험성은 덜어졌기에 큰 어
려움은 없이 오른 듯 하다. 내리고 오르고 40여분은 소요된 것 같다.
삼거리까지 되돌아 나와 임도 오른쪽에 있는 샘터에서 갈증을 해소하고 비워진 물병
을 채운 후 다시 급한 발걸음을 놓았다.
넓은 임도를 따라 걷기에는 편하였으나 꽤나 먼 거리를 내리자니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다. 1시간 20여분을 걸어 내려왔는가 보다. 국시재에 도착하였다. 오른쪽 위로
집 한채가 외롭게 앉아 있다. 아주머니 한분이 집을 지키고 외롭게 사시는 듯 하다.
이곳에서 계곡따라 오르면 핏대봉이다.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내려오다 동네 이장님댁 앞 도로차단기를 빠져나왔다. 다리에
힘이 빠지려 할 때쯤 석회석탄광을 지났다. 5갱 3갱을 지나 "태영 EMC" 앞까지 오
는 동안 갑자기 불어닥친 시원한 바람에 '이게 웬 바람인가?'하였더니만, 지하 갱도
에서 불어나온 바람이었네나. 잠시나마 더위를 잊는 즐거움을 맛보았다.
겨우겨우 은하수차 있는 곳까지 내려오다 보니 계곡물은 온통 석회질 성분으로하여
뿌연 빛이었기에 손조차 씻지를 못하고 차에 올라야 했다. 하산시간 6 ; 57, 8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에야 수원으로 향할 수가 있었다.
함께 하셨던 은하수님들 무더위속에 고생들 많으셨습니다.^^(09.07,11)
* 사진 - 1,112봉을 오르며(위, 무한사랑님), 1,112봉을 오르며(아래, 무한사랑님)
첫댓글 우연히 아침에 시간이나는 바람에 첫번째독자가되었네요.. 오늘가려했는데 사람수가 모자라 취소되어 이리시간을보내며 좋은글 감상하고있음니다...아니다녀와도 다녀온걸로 쳐야겠네요,,,
박향기도 영광입니다요. 글을 넣자마자 이렇게 따끈따끈한 댓글을 내려주시니....., 오늘은 산행이 이뤄지지를 않아 계획하셨던 육백산을 못가셨군요. 서운하셨겠습니다. 때마침 산행일기라도 읽으시게 되어 다녀오신걸로 치신다니, 미뤄왔던 글을 늦게나마 올리게 된 것을 잘하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한 마음을 전하면서 멋진 하루 보내시옵길 바랍니다.
매주 산행을 하시고 이렇게 좋은글로 남겨 주시니 아직 그곳을 다녀오지 못한 저는 박꾳향기님을 따라 그 길을 다녀 온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지난주는 이런 저런 일로 산행을 못하여 아쉬웠는데 이곳에 와 육백산 다녀 온것으로 해야겟습니다...ㅎㅎㅎㅎ
장맛비 때문에 산행길 떠나보기가 어려워지네요. 이럴 땐 가까운 곳에서 아쉬움을 달래볼 수밖에요..... 저도 요즈음은 가끔씩 동네산을 찾곤 한답니다. 육백산은 가을산도 좋을 듯 하니 더위가 좀 가신 뒤에 다녀오시면 좋을 듯 합니다. 언제 한번 뵈어야 할텐데 그 날이 언제가 되려는지 모르겠네요. 건강히 여름 잘 나시고 좋은 날 기회가 되면 그 땐 멋진 산행길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육백산의 유래와 이끼폭포의 시를 보면서 "공부를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드네요...항상 좋은 글과 그글로 인하여 "마음의 풍요"를 가져다 주셔서 고맙습니다.
코도라님은 모든 일에 열정적이신 모습이 보기가 좋습니다. 산행에서도 다른 사람을 생각해 주는 모습에서도, 그리고 자식사랑하는 모습도 각별하여 옆에서 보는 이들로하여금 가슴에 감동을 안겨주시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모습 많이 보여주시길 바라면서.....
고독아찌님 멋쪄
덕분에 감상 잘 하였습니다,
무더운 여름 잘 지내고 계시지요
그대의 마음 제가... 오지의 신비를 가득 머금은 육백산에 든 여러분들이 부럽습니다. 그 부러움의 중심에 있는 박꽃님은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쓰면 칭찬이지요? ㅎㅎ
늘 좋은 말씀으로 격려와 위로 감사드립니다. 그 품안에 품지 못할 어떤 일이 있겠는지요 자주 뵙지 못하더라도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한 나날 되시길 바랍니다.
花香千理 情香萬理 ~그리운 사람 찾아가는 발거름 바로걸어도 바르지않구나~~~
올여름이 다른 일들로 좀 바쁩니다. 자주 들리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잘 지내고 계시지요
찰영 맨이군요,,,,잘나오고, 멋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