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빌립보를 떠나 데살로니가와 베뢰아로 갔다. 데살로니가는 깡패들을 동원해서 바울을 쫓아냈던 곳이고, 베뢰아는 수용성이 좋은 신사적인 도시다.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지만, 말씀을 뿌려진 곳에서는, 상황과 조건에 관계없이 열매가 있다. 그러므로 확신을 가지고 말씀을 증거하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사40:8) 헛된 것을 추구하는 것은 풀이나 꽃과 같다. 이것들은 시들어 없어져 버리는데 말씀은 영원히 남는다. 바울이 지나간 자리에 말씀이 남아 있더라는 것이다.
데살로니가는 마게도냐의 수도로 당시 인구가 20만이 넘는 큰 도시였다. 바울이 그곳에 머문 시간은 3주 정도다(2). 그런데 박해 속에서도 교회가 세워질 정도로 사역이 강렬했던 것은 오직 예수, 십자가와 부활만 증거했기 때문이다(3). 바울은 ‘내가 전하는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고 핵심을 선포했다. 그가 우리의 구원자시고, 방법이 십자가와 부활이다.
구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그림자이고 예표다. 구약의 흐름에 두 가지 큰 사건이 있는데 출애굽과 바벨론 사건이다. 야곱의 자손들은 애굽의 노예였다. 그때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애굽으로부터 건져내신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서 70년 동안 죽을 고생을 한다. 그때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신다.
우리는 죄의 종인데 예수께서 십자가로 구원해 주셨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 살아서 역사하고 계신다. 이게 기독교의 본질이다. 우리가 어떠한 좌절과 낙망과 죽음의 상황에 놓였다 할지라도 예수님이 오시면 생명을 주시고 구원을 주신다. 이게 바울의 메시지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부흥에 대한 단서가 데살로니가전서에 나온다.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살전1:5) 복음이 말로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증거하면 성령이 역사하셔서 능력과 큰 확신이 임하여 흔들림이 없다(1:8).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기 시작할 때 그 말씀이 일하기 시작한다(살전2:13). 그러니 말씀을 전하는 자는 오직 예수만 증거해야 한다.
베뢰아는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더 신사적이었다(11). 'more noble'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다는 것은 사람의 말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날마다 성경을 묵상했다. 복 있는 사람은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이다(시1). 말씀을 묵상하고 붙드니까 능력이 있다.
베뢰아교회는 균형 잡힌 교회다. 말씀에 대한 지식도 있고 뜨거움도 있다. 크리스찬들에 대한 아쉬움은 뜨거움이 있는 사람들은 지성이 없고, 지성이 있는 사람들은 뜨거움이 없다. 마틴 로이드 존스의 'Logic on fire' 불붙은 논리가 있어야 한다. 이 양자의 영성을 다 가진 교회가 베뢰아다.
베뢰아교회는 '남자가 적지 않았다'(12). 그래서 더 신사적이었다고 표현한 것 같다. 당시에도 여성이 주류였다는 것이다. 여성은 감성적이지만 남성은 논리적이다. 그래서 남자는 경계심이 많다. 뱀이 먼저 꼬신 것도 여자다. 남자는 잘 안 넘어가는데 또 여자한테 약하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를 조심해야 하고 여자는 뱀을 조심해야 한다.
남성적인 교회의 특징은 설득력이다. 어느 순간 주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이라는 선물을 주신다. 믿음으로 순종하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설득된다. 말씀에 설득이 돼야 균형이 잡힌다. 설득 없이 믿음으로만 나가면 감성에 빠질 수 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에베소서 2:8) 선물로써 믿음이 오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는데 행위나 공로가 아니라 그의 은혜로써다. 믿음의 스위치를 눌렸을 때 구원이 주어진다. 이렇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 두 교회를 통해서 결국 지나고 보니 말씀이 남는다는 것이다.
데살로니가에서 박해가 있었다. 깡패들을 동원해서 죽인다고 베뢰아까지 추격해 와서 방해했다. 그런데 사역 중에 박해와 방해가 있다면 그 의미가 있을 것이다. 바울을 박해하던 사람들은 바울의 설교를 듣고 핵심 두 가지를 파악했다. “발견치 못하매 야손과 및 형제를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가로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야손이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6,7)
'the world upside down' 저들은 세상을 뒤집어엎는 자들이고 당시 황제를 표현하는 말이 ‘주’인데 크리스찬이 ‘주님’ 그럴 때 속지 말라. 저들은 황제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임금 예수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의 왕은 예수라고 정확히 파악하였다. 예수님을 우리 왕으로 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것을 전하지 말라는 것이다.
지금도 세상은 예수님을 증거하고 예배드리는 것을 막는다. 장학금 주고 구제하고 문화 활동하는 것은 얼마든지 하라고 한다. 마귀가 하지 말라는 것을 붙드는 것이 핵심이다. 예수님이 우리 왕이다. 이런 사람이 가는 곳마다 세상을 뒤집어 놓는다.
우리나라에도 복음이 들어와서 불합리하고 말도 안 되는 것들을 바꿔놓았다. 조선은 자기 민족을 노비로 삼는 나라다. 유교로 나라가 망했다. 여성들도 인간 취급을 못 받고 살았다. 복음이 들어오고 난 다음부터 여성 교육이 시작됐다. 술도 항아리 채 갖다 놓고 마셨다. 담배도 피웠다 하면 줄담배를 피운다. 열심히 일하다가 겨울만 되면 투전판에 간다. 그래서 술과 담배와 도박을 금지 시켰다. 복음이 들어가면서 변화의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고난을 통해서 핵심을 붙들게 되고 인내와 연단을 통해 더 강하게 된다. 이것들이 공동체가 있으니까 가능한 것이다. 공동체가 가니까 선교도 쉽다. 공동체와 함께 움직이면 열매를 맺는다. 공동체가 있으니까 훈련도 가능하다. 훈련이 있으니까 끝까지 가는 것이지 마음만 있으면 오래 못 간다. 훈련하면 위기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고 계속할 수 있다.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에서는 기적이 없었다. 기적이 없어도 버티고 열매 맺는 힘이 말씀에 있다. 말씀이 뿌리내리는 게 더 가치 있고 최후 승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