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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길
윤 정 모
김 신부는 천천히 수저질을 했다. 하루 꼬박 아무것도 먹지 못했음에도 식욕이 동하지 않았다. 신부가 설렁탕을 저어 기름기 빠진 고깃점을 떠 넣고 우물우물 씹고 있을 때 식당 문이 열리면서 한 떼거리의 손님이 들어왔다. 손님들은 신부의 맞은편, 그러니까 요섭의 등 뒤 자리에 몰려 앉았다. 전투복을 입은 경관들이었다. 신부는 요섭을 쳐다보았다. 그는 숟갈질을 멈추고 자신의 음식물로 시선을 빠뜨렸다. 이마와 귀밑으로 흘러내린 더부룩한 머리와 멋대로 자란 수염, 창백한 안색 이 유리판에 던져진 동전 소리로 신부의 가슴에 울려왔다.
“요섭아, 얼른 먹고 가야지.”
요섭이 숟갈로 국밥을 떴다. 비로소 신부는 입속에 머물러 있던 고깃점을 꿀꺽 삼켰다.
“특히 총기를 가진 놈들이 들이닥칠 때 조심해야 돼.”
경관들이 음식을 주문한 후 그렇게 두런거렸다.
“그럼, 남쪽으로 간 놈들이 북쪽으로 진로를 바꾸었단 말입니까?”
누군가가 물었다.
“주모자 놈들이 쥐새끼처럼 빠져나갈지도 모르니까.”
요섭이 다시 수저질을 멈추었다. 그의 눈길이 국물에 뜬 당면 사이로 빠른 빛살처럼 헤집고 다녔다.
“요섭아, 미사 시간 늦겠다.”
요섭의 눈이 가만가만 다가왔다. 신부는 그의 시선을 외면하고 가방을 들었다.
“그만 가자꾸나.”
신부는 요섭을 앞세워 식당을 나왔다. 무언가가 뒷덜미를 잡는 것 같았다. 그것은 그 어떤 시선이 아니라 식탁에 남겨놓고 나온 자신의 거짓말이었다. 신부는 지금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성당으로 가는 길이 아니었다. 더욱이 오늘은 일요일도 아닌 월요일이었다. 요섭이 담뱃가게로 가는 사이 신부는 잠깐 멈춰 서서 로만 칼라*와 십자가를 만졌다.
요섭이 담배 두 갑을 사더니 길 건너 버스 터미널을 바라보았다. 신부도 그의 곁으로 다가가 터미널 쪽으로 몸을 돌렸다. 지는 햇살이 그 건물 유리창에 황사처럼 누렇게 번지고 있었다. 요섭이 담배 한 갑을 내밀었다. 신부는 그것을 받아 넣으며 이태 전 그가 하던 말을 떠올렸다.
―신부님, 정말입니까? 목사는 장가를 드는 대신 담배는 안 되고 신부는 독신으로 봉사해야 하니까 담배를 허용한다는 것 말예요.
그런 걸 물어올 땐 늘 싱얼싱얼 웃는 애숭이 대학생이었다. 무슨 멋인지 신사복도 아닌 검은 작업복을 빳빳하게 다려 입고 성당엘 왔었는데……
요섭의 눈이 한 지점에서 떠날 줄 몰랐다. 터미널 안에 뭔가 있는 모양이었다. 신부도 좀 자세히 보려고 눈길을 모았다. 그러나 눈이 나쁜 탓인지 잘 보이지 않았다.
“걷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요섭이 말했다. 신부는 고개를 끄덕이며 상점 골목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담양으로 갈 걸 잘못했나? 신부는 가방을 왼쪽 어깨로 옮기며 생각했다. 자가용을 내주던 변호사는 말했었다. 아무래도 장성 쪽이 교통편이 나을 거예요. 동운동까지 가서 얻어 탄 승용차는 험한 길을 한 시간쯤 달려 장성 터미널 부근에 세워졌고 거기서 내렸을 땐 신명을 내는지 들까부는지* 알 수 없는 여가수의 노래가 전파상의 확성기를 깍깍 울려댔다. 신부는 지나는 행인을 살펴보았다. 모두가 너무나 태평한 모습이었다. 요섭도 그것이 이상한지 멍한 얼굴로 이 사람 저 사람을 쳐다보았다. 우선 저녁이나 먹자. 신부가 요섭을 일깨워 식당으로 향해 갈 땐 서녘의 해가 구름 속에 있었다.
상점 골목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꺾어 돌았다. 요섭은 한 번 시계를 보았을 뿐 부지런히 걸었다. 어두워지기 전에 국도 변으로 나가야 한다. 신부는 그 생각이 지워지기도 전에 어느 집 대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신부는 등나무를 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찬찬히 등나무 줄기를 따라가다가 바닥에 떨어진 하얀 등꽃에 머물렀다.
―신부님, 신부님, 난리가 났대요. 빨갱이들이 쳐들어왔대요.
성당지기 박 씨 아들이 달려오며 소리쳤었다. 마침 지난밤의 비로 인해 무참히 떨어진 자색 등꽃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얘야, 우리나라엔 빨갱이가 못 들어온다. 지금 그런 장난을 할 때가 아니란 걸 너도 알잖니.
방금 전에 예수 승천 대축제의 최초 미사를 끝낸 지금, 아이가 그런 말을 한다는 게 신부는 언짢았지만 꼬마에게 무안을 준 것 같아 농담의 갈피를 바로잡아 주었다.
―알겠니? 오늘 같은 날은 빨갱이가 아리라 로마 군이 몰려온다고 말해야 어울리는 거란다.
“신부님.”
요섭이 불렀다. 그래, 어서 가자꾸나. 신부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 입에서 주여! 하는 소리가 나직이 새어나왔다. 그날 아침 최초 미사를 끝내고 나왔을 때 맨 먼저 눈에 띈 것이 바닥에 널려 있는 등꽃이었다. 신부는 까닭 없이 애가 탔고 꼬마가 달려왔을 땐 공연히 심장이 툭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불길한 예감이었다는 것은 몇 시간 뒤에야 깨달았다. 오전 열한 시경 환갑을 맞은 신도의 어머니를 축복하기 위해 곡성으로 향했을 때 신부는 보았다. 차단된 도로에 곤봉을 든 그들, 로마 군이다. 신부의 눈에는 분명 그렇게 보였다.
긴 보리밭을 가로질러 국도로 올라섰다. 열사흘 달걀 달이 성큼 떠올라 요섭과 함께 걷고 있었다. 이틀 전만 해도 시름시름 앓느라 잘 나오지 않던 달이었다. 신부는 묵묵히 앞만 보고 걸었다. 서로 몸 부딪던 가로수 잎이 일시에 숨을 죽였다. 등 뒤에서 커다란 불빛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트럭이었다. 신부는 개울둑으로 방향을 틀었다. 요섭도 말없이 뒤를 따랐다. 트럭이 지나가자 신부는 개울둑에 웅크리고 앉았다.
“좀 쉬었다 가자.”
요섭이 조금 간격을 두고 털썩 주저앉았다. 신부는 담배 두 개비에 불을 붙여 하나를 요섭에게 건넸다.
“오늘 밤만 걸으면 차편을 이용해토 될 게다.”
요섭은 대답 없이 담배만 빨아들였다. 담배연기는 달빛을 향해 최루가스처럼 펴렇게 피어올랐다. 그 속으로 한 어린 소년이 뛰어들었지. 주먹만 한 돌을 쥐고서…… 우리 형아 살려내라! 우리 형아…… 그러자 웬 노파가 달려 나가 그 꼬마를 등 뒤로 감싸며 소리쳤었다. 병정들아, 여긴 전쟁터가 아니다! 너희들이 잘못 안 거야. 돌아가라. 어서! 사람들은 울고 있었다. 가스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노래를 불렀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참 이상하지요?” 요섭이 흘낏 달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도 달은 떠오르니 말예요.”
해는 안 떠올랐느냐. 서럽게 비가 내린 것 외엔 태풍도 불지 않았어. 요섭이 담배를 개울에 던지고 엉덩이를 일으켰다. 신부도 끙 몸을 일으켰다. 요섭은 국도 쪽으로 허적허적 걸어 나갔다. 그의 그림자가 개울물에 푹 빠져 있었다.
“요섭아!”
왈칵 어깨라도 잡아챌 듯이 그를 불렀다. 요섭이 뒤돌아서서 무슨 일이냐는 듯 신부를 쳐다보았다.
“아니다.”
신부는 고개를 저었다. 잠깐 시체 안치소를 떠올렸구나. 엎어진 채 실려 온 그 시신 말이다. 신원 파악을 할 수 없어 애를 태우던 젊은 몸뚱이……
“그 가방 제가 메고 가지요.”
요섭이 손을 내밀었다. 가방 속엔 일기장과 홍보반 청년들이 넘겨준 필름 두 통이 들어 있을 뿐이었다. 신부는 무겁지 않다고 사양하려다 그의 손에 건네주었다. 요섭은 가방을 걸어메고 빠르게 국도를 나갓다. 젊은이라 아직도 그 걸음엔 힘이 있었다. 신부는 자칫 허물어질 것 같은 무릎 관절에 힘을 주려고 또박또박 자신의 그림자를 밟으며 걸었다.
등 뒤에서 경운기 소리가 들려왔다. 딸딸 지축을 울리고 오는 그 소리는 마치 총소리같이 달빛에 취해 있는 국도 주변을 소스라쳐 깨어나게 했다. 요섭 이 길가로 비켜났다.
“신부님이시군요. 어디까지 가시지요?”
경운기가 그들 옆에 세워졌다. 농민 세 사람이 타고 있었다. 아마도 늦게까지 모심기를 하다가 돌아가는 농부들인가 보았다.
“우리 저 산 너머 마을까지……”
신부가 대답했다.
“우린 새텃말까지 갑니다. 거기까지 라도 타고 가시렵니까?”
뒤에 탄 농부들이 서로 좁혀 앉으며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신부는 요섭을 건너다보았다. 요섭은 그러지요, 라고 대답했고 그들은 나란히 경운기에 올랐다. 경운기를 몰던 사람이 발동 피대*를 돌렸다. 경운기는 몇 번 퐁퐁거리더니 움직이기 시작했다. 걸을 땐 몰랐던 바람이 세차게 뺨을 할퀴었다.
“신부님, 빛고을*에 난리가 났다면서요?”
한 농부가 경운기 소음 때문인지 큰 소리로 물었다.
“글쎄요, 그렇다곤 합니다만…….”
“사람들이 많이 상했대요.”
“뉴스에 나왔습니까?’’
불쑥 요섭이 물었다.
“웬걸요. 소문만 돌고 있지요.”
살생을 단죄한 석가탄신일이었다. 십자로에서 금남로에서 충장로에서 도청 앞에서 남동 상공에서 사격이 가해졌다. 그것은 죽음의 면허탄이었다. 누구든지 죽을 수가 있었다. 은행 앞에서 호텔 앞에서 차 속에서 거리에서 병원에서 주검은 단죄를 비웃었다. 그날 김 신부는 일기장에 “그렇다. 그렇다. 아니다. 아니다”라고 기록했다. 그것은 「마태오」 5장 37절이었다.
“주여……”
신부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목숨 보존에 대한 특허를 따낸 사람들은 있었다. 이국인들…… 그들은 그 패찰을 휘두르며 셔터를 누르고 무비 카메라를 돌리며 이쪽과 저쪽을 누비고 다녔다. 어제 상황실에 와서는 진압군들을 맘껏 능멸했었지. 마치 자기들에겐 당연히 그럴 자격이 있다는 듯이. 그러자 홍보반의 한 젊은이가 점잖은 영어로 충고를 했었다.
―― 욕설을 삼가시오
―무슨 뜻?
카메라를 만지던 푸른 눈의 사나이가 되물었다.
ㅡ어쩠든 그들도 내 동족이란 말이오.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푸른 눈의 사나이는 한참이나 젊은이를 쳐다보았다. 젊은이가 다시금 대답했다.
―하긴 이해하기 힘들겠지. 당신처럼 여러 인종이 모여 사는 나라 사람들로선……
“우리는 이쪽으로 갑니다.”
경운기가 세워졌다. 요섭은 일어날 생각도 않고 무슨 말인가 하려고 머뭇거렸다. 신부가 재빨리 고맙다는 인사말을 남기고 요섭의 등을 밀었다.
그들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경운기는 미루나무 개울 저쪽으로 달빛 바다를 헤어* 가는 통통배처럼 멀어져 갔다.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분들에게…….”
요섭이 말했다. 그는 자신의 그림자를 내려다보며 걷고 있었다.
“그래…… 그러나 다 부질없는 짓이다.”
요섭이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농부들에겐 알려줄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까?”
넌 그저 알려주고 싶기만 했던 게 아니었잖니? 동원대가 되어 화순, 함평으로 돌 때처럼…… 그러나 신부는 말머리를 돌렸다.
“언젠가는 다 알게 된다.”
요섭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구름이 밀려와 서서히 달을 먹어갔다.
하얗게 도드라지던 국도에 어둠이 내렸다. 요섭 이 어둠 저쪽을 응시하며 말했다.
“신부님, 추기경을 만나고 수도 사람께 알리고 정부 요인에게 면담을 요청 한다고 해석 어떤 해결점이 얻어질까요.”
그래, 요섭아. 그건 나도 알 수가 없단다. 그래도 우린 가야 해. 가기 위해 출발했으니까.
달이 다시 얼굴을 내밀었다. 이제 달은 그들의 뒤를 밟고 있었다. 국도의 비포장도로가 삽시*에 숨을 죽였다. 주변이 망을 보는 자의 은밀한 눈빛 같았다. 신부는 얼핏 요섭의 어깨에 걸린 가방을 살폈다. 그때 맞은편에서 차가 오고 있었다. 요섭이 뒤돌아섰다.
“산길로 가지요.”
“그게 좋겠구나.”
두 사람은 논두렁으로 내려갔다. 차가 지나갔다. 택시였다. 빗발같이 날아오는 총탄을 향해 도청을 향해 헤드라이트를 켜고 클랙슨을 울리면서 돌진해 가던 기사들이, 뇌엽(腦葉)* 갈피갈피에 숨어 있던 그 비장한 얼굴들이 불시에 툭툭 튀어나왔다. 신부의 몸이 휘청 기울어졌다. 자칫 못자리판으로 발이 빠질 뻔한 것이었다.
“조심하세요.”
요섭이 돌아서서 신부를 부축했다.
“괜찮다.”
그들은 다랑이* 논의 봇돌*을 건너 산 자드락길*로 접어들었다. 막 자라기 시작한 상수리나뭇잎들이 겁없는 아이처럼 저마다 달을 향해 꼿꼿이 고개를 쳐들었고 어디선가 산개구리 울음소리가 구울구울 들려왔다.
초이레 밤이던가, 그날 도시인들은 아무도 잠들지 못했다. 잠을 잃은 시민들은 자꾸만 도청으로 모여들었고 건물을 점거한 진압군들은 신호탄과 최루탄을 번갈아 쏘아댔다.
―최루탄을 쏘지 마세요. 우린 맨주먹입니다.
한 여성이 확성기로 말했다. 저지선에 막혀 주위를 빙빙 돌던 사람들은 마치 후렴을 달듯 쿠울쿠울 기침을 했다. 다시금 예광탄이 밤하늘로 치솟았다. 별안간 시민들은 저지선을 넘어 도청 건물 쪽으로 나아갔다. 흡사 바람에 밀리는 물결 같았다. 우박 소리가 허공을 때렸다. 총소리였다. 많은 사람들이 쓰러졌다. 바닥에 몸을 뉘지도 못하고 바리케이드에 걸려 있던 그 주검…… 진압군들이 달려 나와 시신들을 끌어갔다. 사람들은 갑자기 잠든 듯 망연하게 서 있었고 조각달은 자정을 향해 먹구름 속으로 곤두박질쳤다.
좋은 세상 온다더니 / 잡은 손을 뿌리치고
비겁자가 아니라며 / 좋은 세상 온다더니
어미보다 먼저먼저 / 저세상을 가는구나
그 거리에 새벽이 기웃거렸다. 어미들은, 아낙들은 시름시름 노래를 부르고 남정들은 매운 눈물을 흘리며 화염병을 만들었다. 또 한차례의 신호탄이 올랐다. 총탄이 새벽을 죽였다. 아니, 거리를 죽였다. 자색 등꽃으로 떨어진 주검들이 여기저기 검은 피가 되어 둥둥 떠올랐다. 신부는 눈을 부릅뜨고 성경 구절을 읊조렸다. 「마태오」 10장이었다. 26, 27, 28절…… 그때 누군가 소리쳤다.
―세무서를 불태웠소! 무기고에 총이 있소. 카빈*이 있소! 남자들이 그쪽으로 달려갔다. 신부는 문득 자신을 보았다. 성경 구절이나 뇌고* 있는 자신의 모습은 바리새⁕인 그것이었다.
해가 떠올랐다. 잠깐 동안 초파일의 햇덩이는 해맑아 보였다.
―신부님, 시민들이 차를 몰고 와요. 저것 좀 보세요.
함께 거리에서 밤을 새운 한 소녀가 말했다. 어디서 어떻게 획득했는가. 장갑차와 군용 트럭, 고속버스가 시민들을 태우고 천천히 굴러왔고 도청에서는 군 헬기 몇 대가 이착륙하고 있었다.
― 해산하라! 요구 조건을 들어주겠다. 어서 돌아가라!
저공을 날던 경찰 헬기에서는 다급한 목소리로 방송을 했고 그즈음 이미 시민의 차는 저지선을 돌입하고 있었다. 아아, 햇덩이를 조각내던 LMG* 소리…… 그 소리에 떨어진 수많은 이삭들……
요섭이 길섶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신부는 얼른 그를 잡으려다가 손을 멈추었다. 피곤한 모양이구나. 하긴 그럴 만도 하치. 근 열흘간 잠인들 제대로 잤을까. 신부도 말없이 요섭 곁에 앉았다.
“신부님, 이 산을 돌아가면 장성호가 나올 거예요. 거기만 지나면 국도로 빠져도 검문은 없겠지요?”
요섭이 물었다. 꿈속인 듯 푹 젖은 목소리였다.
“그래도 차를 얻어 타려면 노령까지 가야 할 게다.”
신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이 머리 꼭대기에서 음험한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개구리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바람도 없었다. 그런데도 산은 소리 없이 이술을 뿜어내고 있었다.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수습위들은, 무기는, TNT*는, 시민들은……
“신부님, 조금 전에 제가 비틀거리면서 걸었지요?”
요섭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글쎄…….”
요섭이 담배를 붙여 신부에게 내밀었다. 신부는 고개를 저었다.
“깜박 졸았던 모양이에요. 아버지를 봤거든요.”
요섭은 담배를 뻑뻑 빨아들인 후 길게 토해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술만 취하시면 곧잘 족보 자랑을 하셨어요.”
“족보…….”
“우리 집 안엔 대대로 비겁자가 없었다…… 그게 아버지의 자랑이었지만 저에겐 그렇지가 못했어요. 강진서 도예공이셨다는 몇 대조 선조가 임진란 때 자문(自刎) 한* 것으로 비롯해서 동학군에 가담해서 현감을 징치*했다는 죄목으로 옥사를 했다는 증조할아버지, 왜놈 집만 골라 도둑질을 하거나 그 집 안방에 몰래 독사를 잡아넣었다는 당대 할아버지…… 어릴 때 그 이야기만 나오면 부끄럽고 창피해서 정말이지, 죽고 싶었어요. 어째서 우리 선조는 다른 애들이 내세우듯 영의정이나 판서나 양반이 없는가…… 대학에 와서야 아버지를 이해했어요. 그것은 소외당한 땅에서 스스로 멍울뚜 진 자존심 같은 것…… 견훤 이후 신라나 고려로부터 버림받기 시작한 땅…… 객땅…… 개땅쇠…… 아니지요. 그 이전부터 정벌만 당해온 땅이었어요.”
초아흐레였다. 신부는 수습대책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도청 서무과로 향했다. 막 지방에서 돌아온 트럭이 광장에 세워졌고 거기서 태극기와 카빈을 둘러멘 요섭이 내렸다. 땀과 먼지로 코언저리가 새까매진 요섭이 싱얼싱얼 웃으며 뛰어왔다.
―신부님, 정말이군요. 화순에서 도청을 탈환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믿지 않았거든요.
―그래, 그들은 어제 저녁에 철수했단다.
―우린 티엔티를 가져왔어요. 실탄도 무기도 아주 많아요.
그때 신부는 일러주고 싶었다. 요섭아, 니가 총을 메고 있다는 것이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구나. 그러나 며칠 사이에 10년은 자라버린 요섭은 무기 반납을 강요받을 때, 다시금 진압군이 좁혀올 때의 늙은 추장처럼 말했었다.
―피가 모자란다면, 지금까지 흘린 그 피로도 충분치 않다면, 그렇다면 이젠 우리 모두가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까지 이렇도록 슬픈 땅…….”
요섭이 자신의 담뱃불을 지그시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젖과 꿀을 약속받은 가나안 땅에서도……”
신부가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찾으며 말했다. 요섭은 담뱃불을 좀더 눈 가까이로 가져갔다.
“신부님…… 제가 정말 신부님을 따라 이렇게 와야 했을까요?”
그 목소리는 하도 깊어서 땅속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건 너의 뜻이 아니었잖니.”
“그래요, 동지들이 날 보냈어요. 신부님과 가깝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보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런데 내가…….”
요섭은 담배를 던지구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신부가 그의 어깨를 잡았다.
“요섭아.”
“남아 있어야 했어요. 제가 떠나온 까닭이 뭐죠? 신부님 호위? 아니에요. 신부님이 걸을 수 없거나 길을 모르시는 것도 아닌데, 신부님 혼자 가시면 오히려 안전한데, 그런데 왜 제가 따라왔죠?”
요섭의 어깨팍이 푸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는 울고 있는가. 요섭아, 그렇다면 요섭아, 남아 있어야할 사람은 네가 아니라 나였단다. 그것으로 끝이기만 한다면 우리의 탈출은 브끄러울이어야 할 것이다. 신부는 담배를 도로 집어넣고 달을 쳐다보았다. 오늘 새벽. 상황실 창에 걸린 달도 꼭 저런 모습이었다. 철야한 수습태책위원들은 그 달을 보지 않으려고, 어디엔가 숨겨져 있을 실마리를 훔쳐라도 오려고 한사코 책상만 노려보았다. 누구의 시계에선가 다섯 시를 알리는 발신음이 삐삐 울렸다. 그러자 무기를 지키던 요섭이 달려왔다. 순찰대, 홍보반, 치안대, 환자 수송반 청년들도 차례로 달려왔다.
―장갑차가 오고 있습니다. 최후의 순간이 오면 차라리 티엔티를 폭발시켜 전원 자폭합시다! 주여, 힘을 주소서. 지혜를 주소서……
―전차가 오고 있다면 우리가 먼저 나가셔 그 탄알을 맞이합시다. 한 수습위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그 역시 신부였다.
―젊은이들은 여기 남아 있어야 합니다.
목사가 말했다.
―우리도 여기서 그저 죽음을 맞고 싶진 않습니다. 앞장서겠습니다.
청년들은 항의 했다.
―젊은이들은 남아서 여기를 지켜야 합니다.
결국 무장한 청년들은 남고 17명의 수습위원들은 전원 입구로 나갔다. 모두들 말이 없었다. 그들은 그저 앞으르 앞으로 걷기만 했다. 해가 떠올랐다. 시민들이 뒤를 따랐다. 처음에는 한둘에서 수십, 수백 명…… 마치 자석에 끌린 쇳조각처럼 그들은 겹겹이 꼬리를 물었다. 거대한 침묵이 더운 숨결로 고리를 이으면서 10리 길이나 꿈틀꿈틀 움직여 갔다. 저만치 진홍원이 보였다. 별안간 해가 난폭한 변태자가 되어 거리를 낱낱이 벗겼다. 2층 창가에서, 옥상에서, 인도에서 기관총은 숨을 죽이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부는 묵묵히 나아갔다. 포문을 뻗치고 있는 장갑차를 향해, 바리케이드를 향해……
“신부님, 지금쯤…… 지금쯤·…‥”
요섭이 더듬거렸다. 신부는 그의 어깨를 가만히 안았다. 요섭아, 아적은 아닐 게다. 적어도 열두 시까지는…… 신부는 시간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차라리 세계의 시간이 모두 죽어버릴 수만 있다면 신부는 그렇게 해달라고 야훼*께 간원하고 싶었다. 열두 시…… 열두 시…… 신부는 바리케이드로 다가갔다. 한 사람의 소령이 굳은 표정으로 그들을 맞았다.
―곧 부사령 관님이 오실 겁니다. 여기서 기다려주십시오.
아홉 시가 지나자 검은 세단 차가 왔다. 장군이 내렸다. 장군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걸어왔다. 고개를 숙이고 온다. 장군이! 부끄럽다는 것인가, 아니면 회복의 가능성을 머리에 담고 오는가. 장군이 멈춰섰다.
―계엄사령부에 가서 이야기 합시다.
장군이 뒷짐을 지고 군화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수습위원들은 잠깐 의견을 나누었다. 학생 대표를 포함, 11명이 선발되었고 그들은 곧 상무대로 갔다.
―우리는 더 이상 피를 흘려선 안 됩니다. 나라를 위해서도 생명을 아껴야 합니다……
타협 회의장에 앉자마자 신부가 입을 열었다.
――동감이오. 그러자면 어서 무기를 회수, 군에 반납하시오. 그렇게 하면 경찰로 하여금 치안을 회복케 하겠소.
장군이 대답했다.
― 먼저 진압군을 철수해야 합니다.
―그건 안 돼요. 며칠씩이나 참으면서 후퇴까지 했소. 이건 사기 문제란 말이오. 아시겠지만 군인은 이겨야 하오. 언제나 이겨야 한단 말이오.
―당연한 말이오. 하지만 여긴 이겨야 할 장소도, 장갑차가 와야 할 곳도 아니란 걸 장군께서 더 잘 아시잖소.
―군인도 여럿 죽였소, 전우를 잃은 젊은 군이들…… 평소의 교육으로 그 분노를 잠재우고 있소.
―부탁이오. 경찰에 치안을 맡기고 철수해주시오. 그래야만 수습이 됩니다.
―무기를 반납하고 해산하시오. 그러면 철수하겠소.
네 시간 반 동안 협상은 절대로 만날 수 없는 기차 선로였다. 신부는 마지막 카드를 내놓았다.
―그럼 시간을 주시오. 시간이 필요하오.
―오늘 밤 열두 시까지 수습하시오. 이게 최후통첩이오.
장군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무위였다. 긴 시간이 허탈 하나로 뭉청* 잘려 나갔다. 신부도 수습위원들도 몸을 일으켰다. 장갑차는 올 것이다. 밤 열두 시까지는 오고야 말 것이다. 우리가 무슨 힘으로 시민을 설득할 것인가. 설득이 아니라 호소를 해보자. 죽음을 각오하고 애원해보자. 장군이 지프를 내주었다. 지프가 공단 입구 쪽으로 갔다. 파헤쳐졌던 길이 말끔히 정리되어 있었고 시외 도로도 개통되어 있었다.
―시민들이 야채를 구입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도로를 보수했습니다.
묻지도 않았는데 운전병이 말했다. 신부는 공단 입구에서 내렸다. 시민들은 주의 깊게 왕래했고 가끔씩 택시도 지나다녔다. 군의 작전을 위해 도로를 복구했구나. 그렇다면 그 최후통첩은 미리 예정된 시간? 신부는 급히 가톨릭센터로 갔다. 오후 네 시였다. 많은 시민들이 센터 앞에 모여 있었다. 또 모이고 있었다. 신부는 다시 방향을 바꾸어 도청으로 갔다. 부지사실에는 외신 기자들과 많은 인사들이 신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눈길이 동시에 몰려왔다. 신부는 쓰러지듯 의자에 앉았다.
― 난 장군을 설득시키지 못했어요.
그리고 신부는 눈을 감았다. 몸과 마음이 심연*으로 떨어져갔다. 심연에는 예정된 진혼제가 있었다. 아직 죽지 않은 사람들이, 한참이나 더 살아야 할 생명들이 명부* 위에 어른거렸다. 신부는 번쩍 눈을 떴다. 안 돼. 그런 진혼제는 안 돼…… 신부는 떨리는 손으로 호소문을 쓰기 시작했다.
―신부님, 김 신부님!
YMCA에서 청년이 달려왔다.
―지금 곧 수도로 가시라는 전언입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도 열두 시까지는 시간이 있다.
―아닙니다. 방금 입수된 정보에 의하면 그들은 출동을 위해 돼지고기 파티를……
―그렇다면 내가 왜 여길 떠나야 하지?
―가서 누명을 벗겨주십시오. 우리는 불순분자도 폭도도 아니라는 사실을 세상에 알려주십시오.
신부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누명을 두려워할 때가 아니다.
조 신부가 김 신부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지금은 그것이 필요한 때입니다.
뒤이어 요섭이 들어왔다. 그 애는 이미 떠날 채비를 하고 왔다. 주님이여, 성모님 이여, 부디 이곳을, 이 생명들을 지켜주십시오. 신부는 그곳을 떠나오면서 출애굽*인가, 정녕 그러한가, 자신에게 반문했다.
“신부님, 사실은 아까 깜박 졸았을 때 아버지를 본 게 아니었어요.”
요섭이 천천히 고개를 들면서 말했다.
“동지들의 얼굴이었어요. 신부님, 동지들의 얼굴이요!”
그래, 요섭아. 나도 그 얼굴들을 보고 있단다.
“그들은 죽었어요. 모두가…… 그런데 난 비겁자가 되었잖아요. 족보에도 없는 비겁자…….”
“우리에겐 아무도 비겁자가 없다. 요섭아, 그만 일어나자.”
“아무 의미가 없어요. 나의 탈출은…….”
“어서 일어나거라. 너의 임무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어.”
신부는 요섭을 안아 일으켰다. 요섭은 한참 만에 무겁게 일어났다. 신부는 그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걷기 시작했다.
요섭아, 우리도 지금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고 있는 게 아니란다. 거기에도 장벽은 있다. 그 장벽을 깨뜨려달라는 임무가 우리에게 주어진 거야. 우린 그걸 해내야 돼. 행여 이 밤길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해도 이젠 서둘러야 한다.
12인 신작소설집 『슬픈 해후』 (창비 1985); 『봄비」 (풀빛 1994)
윤정모(尹靜慕)
1946년 경북 월성에서 태어나 서라벌 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81 년 『여성중앙』 중편소설 공모에 「바람벽의 딸들」 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냉전적 반공의식이 야기한 비인간화 현상과 일상화된 폭력, 민족적 자율성과 계급적 차별, 여성 문제 등 우리 시대의 첨예한 사회정치적 문제들을 형상화했다.
소설집 『가자, 우리의 둥지로』 『밤길』 『님』 『빛』, 장편소설 『고삐』 『들』 『그들의 오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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