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단식’이란 말이 유행이다. 단식은 일부러 밥을 굶는 것이다. 대개 단식은 다이어트나 체내의 독소를 제거하기 위해서 하고, 가끔은 정치적 주장이나 종교적 수련을 위해 결행하기도 한다. 이 시대에 왜 디지털 단식이 필요할까? 디지털 과식이 도를 지나쳐 폭식증 같은 중독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제 디지털 중독 현상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박하시인
일례로 필자가 아침마다 가는 헬스장에도 있다. 20대 후반의 한 아가씨는 운동하는 내내 손바닥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심지어 런닝머신(tread mill)에서도 열심이다. 허리를 한쪽으로 잔뜩 구부린 채 왼쪽 팔을 받침대에 얹고, 오른손으로는 연신 묘기를 부린다. 주객전도(主客顚倒)를 넘어 심각한 디지털 중독이다. 또 있다. 어떤 청년은 데이트 중에 길거리 전봇대와 박치기를 했다고 한다. 그 청년은 단지 스마트폰 안에서 목적지를 찾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전봇대가 자기 이마를 때렸다고? 얼이 빠지면 전봇대조차 사람을 무시하는 법이다.
어른들 중에도 사고를 치는 분들이 있다. 얼마 전에 들은 얘기가 있다. 50대 중반의 어떤 분은 유럽여행 중에 계단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식물인간이 되었다고 한다. 그 분은 계단에서 ‘카톡’을 확인하다가 발을 헛디뎌 곤두박질을 쳤고, 불행하게도 돌계단의 모서리에 머리를 크게 다쳤던 게 원인이라고 한다.
스마트폰 의존도 갈수록 심각하다. 불과 이삼 년 전까지만 해도 전철 안의 손금보기(?) 열풍을 두고 ‘요즘 젊은 것들은 쯔쯔쯔’하던 오십대 어르신도 변절한지 오래다. 이제 폰이 주인이고 사용자는 숫제 폰의 노예 같다. 멱살이 잡혀 질질 끌려가는 형국이니 말이다.
필자 역시 '얼리버드(early bird)'라고 자처한다(또래 친구들 중에서!).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폰 때문에 큰 사고를 친 적이 있다. 몇 년 전에 일주일 넘게 친구들과 외국여행을 갔던 적이 있다. 으레 가까운 사이는 온갖 논쟁이 난무하기 마련이다. 나는 친구들 앞에서 ‘잘난 체’ 한답시고 시도 때도 없이 폰을 꺼냈다. 그때마다 램프의 요정! 나의 지니(Genie)가 해결사였다. 우쭐했던 기분도 잠시 후폭풍 벼락이 나를 덮쳤다. 다름 아닌 무려 70만원이 넘는 이용요금이었다. 그 다음부터 그 버릇이 사라졌을까? 아니다. 궁금한 것은 못 참는 성미 때문에 또 다른 묘수를 발견했던 것! 해외여행 시는 ‘일일 9천원 정액제!’ 그때 이후 요금 공포는 깨끗이 사라졌다. 하지만 어느새 나는 충직한 요정, 지니의 노예로 변해 있었다. 그때 이후 트위터니 페북이니는 개점휴업! 정신을 차리고 나름대로 원칙을 정했다.
첫째, 시계를 늘 차고 다닌다. 시계를 차고 있으면 폰을 훨씬 덜 보게 마련이다. 폰은 일단 켜기만 하면, ‘주인님!, 부르셨습니까?’ 하고 불청객 요정, 지니가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둘째, 신문을 정기구독 한다. 눈 뜨자마자 조간을 펼치는 기분? 새벽같이 차려진 정보의 밥상! 그 시간만큼 지니의 사슬에서 벗어난다. 시나브로 균형 잡힌 정보감각도 얻는다.
셋째, 산책은 빈손으로.... 멀티태스킹도 좋지만 해방감은 더 좋다. 산책할 때는 그냥 빈손으로 나서라. 그 시간 동안 시들었던 당신의 상상력이 파릇파릇 자라날 것이다.
넷째, 귀가하면 무음 모드로 바꾼다. 집은 따지고 보면 불통일 때 더 평화롭다. 소통이 낮이라면 불통은 밤이다. 낮만 계속 된다면 세상은 사막으로 변할 것이다. 불통의 시간이야말로 소중한 재충전의 시간이 아니던가. 따지고 보면 그리움은 불통의 시간에만 고이는 샘물 같은 것이다. SNS를 끄면 끌수록 그대 그리움도 자랄 것이다.
단식은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다. 단식을 함부로 하다가 단백질 결핍으로 머리숱이 뭉툭 빠질 수도 있다. 극약처방 보다는 우선 시도 때도 없이 찾는 디지털 간식부터 줄여라. 특히 소통 강박증에 걸린 우리 젊은이들에게 강추! 하는 바이다
첫댓글 한번 길들어진 입맛 그게 마음대로 안되니 문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