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후4:1-22절) 말씀의 종의 사명 전에 목사에 대한 직업의 인기를 조사한 결과, *이발사 다음이었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정말 목사님의 보수가 적었고, 사회적인 인식도 높지 못했기 때문에 가난하고, 힘든 직업이었습니다. 특히 목회자의 자녀들은 아버지가 돈을 벌지 못하시고, 교회에서 사람들에게 시달리고 고생하는 것만 보았기 때문에 목사의 직업이라고 하면, 고개를 흔들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요즘 목사에 대한 인기 조사를 한다면, 옛날보다는 상당히 높게 나타날 것입니다. 특히 도시의 대형교회 목회자들이나 한창 부흥하고 있는 이름 있는 유명한 교회의 목회자들은 웬만한 인기 있는 직업보다 더 높은 인기와 보수를 받을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이 그만큼 변한 것입니다. 디모데는 2,000년 전에 목회자로 부름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때는 정말 목회자라고 하면, 이발사 다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목사가 도대체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시대이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일본에는 목회자는 교회가 주는 생활비로는 도저히 생활이 되지 않아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 교인들이라고 해봤자 몇 명 되지도 않고, 그나마 모두 노예들이거나, 가난한 부인들인 이런 교회에서 목회자에 대한 인식이나 대우라는 것은 정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한 수준이었을 것입니다. 특히 그 당시에는 사회적으로 아테네 같은 도시의 대학에 유학하는 사람들이라야 지식인으로 알아주었을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돈이 많고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큰 소리를 치는 세상이었습니다. 이런 시대에 그야말로 가난하고 세상 지식도 없는 디모데 같은 목회자야말로 세상에서는 거의 미미한 존재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힘차게 전도인의 일과 목회자의 일을 잘 감당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 앞에서 가장 위대한 일을 맡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Ⅰ.목회자의 사명 4:1-2절)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목회자에게 가장 힘든 것은 자신의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을 때일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무엇인가 분명히 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교수라든지, 변호사라든지, 의사라든지, 무엇인가 분명히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목사라는 것은 이 세상의 직업이 아닙니다. 그래서 일단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목회자라고 하는 사람이 도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알 수가 없고, 목회자 자신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하여 많은 혼란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목회라고 하는 것은 세상의 직업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직업입니다. 특히 목회는 오직 한 권의 책(聖經)을 위해서 부름을 받은 직업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가장 엄숙한 명령을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재림과 그의 영원한 나라를 두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목회자라는 직업이 이 세상에는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고, 무시를 당하고, 천시를 당한다 할지라도 영원하신 하나님 앞과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는 하나님을 대리하는 사자(使者)의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는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자입니다. 이미 사도 바울은 3:16절)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목회자는 다른 일을 위하여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오직 성경책 한 권에 자신의 모든 지혜와 열정과 믿음을 다 바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부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자가 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다*는 확신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즉 목회자는 사람을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목회자는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할 때마다 *내가 하나님 앞과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이 말씀을 전한다*는 하나님의 임재의 느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으면, 속이 타서 죽을 것 같은 불이 있어야*합니다(렘20:9). 그래야만 목회의 길을 끝까지 감당을 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에게 가장 신비로운 것은 설교를 할 때, 내가 하나님 앞과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한다는 하나님의 임재(臨在)의 느낌을 갖는 것입니다. 즉 *지금 내가 설교를 하는데, 눈앞에 하나님이 앉아계시고, 그리스도가 그곳에 임재 해 계시는 느낌이 들어야* 합니다. 만약 어떤 학생이 다른 학생 앞에서 무슨 발표를 하는데, 그 앞에 아주 권위 있는 세계적인 학자가 앉아계시고, 지도교수가 앉아 계신다면, 기분이 어떨까? 아마 한편으로는 너무나 두려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나 짜릿하고, 신이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주신 축복중에서 가장 최고의 축복은 바로 이 성경(聖經)책입니다. 성경을 설교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보물을 캐내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어떤 지식이나, 어떤 지혜를 가지고는 사람들의 영혼을 고칠 수 없습니다. 아무리 하버드 대학이나 옥스퍼드 대학이라도 그곳에서 영혼이 변하고, 성령님의 임재하시는 강의는 없습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3:16절)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영혼을 치료하는 책이요, 사람을 변화시키는 말씀입니다. 단지 세상 사람들이 그 가치를 알아주지 않을 뿐입니다. 이것을 목회자는 각오해야합니다. 그래서 *나의 사명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그의 재림과 그의 나라를 위해서 특별한 일*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목회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목회자를 세우신 이유가 오직 이 한 권의 책을 위해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특히 목회자에게는 할 일이 많습니다. 즉 교인들의 심방과, 행정적인 일과, 여러 가지 모임에도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목회자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의 죄를 치료하고, 성령의 능력이 임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회자의 일은 철저하게 외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먼저 자신이 서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그것을 자신이 먼저 먹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외로운 작업입니다. 이것은 마치 비유를 들면 석유를 파내기 위해 기술자들이 아무도 없는 사막이나 혹은 바다 위에 있는 시추선위에서 몇 달식 있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남들이 퍼 올린 기름을 가지고 드라이브를 해서 달리는 것은 좋아하지만, 혼자 외롭게 기름을 퍼 올리기 위해서 유전에서 고생하는 기술자는 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목회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퍼 올리지 않으면, 결국 사람들의 영혼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목회자의 사명은 마치 외로운 등대지기가 사람들을 다 뒤로 하고, 등대위에 가서 불을 밝히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모여서 술을 마시거나 어울려 놀기를 바라지만, 등대지기는 등대를 밝혀야만 배(船)들이 암초에 부딪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로 그냥 나오지 않습니다. 이 말씀 속을 깊이 파고 들어가야만 합니다. 그래서 말씀의 보화를 캐내어 교인들에게 나누어주면, 교인들은 그 말씀을 먹고, 험하고 어지러운 세상에서 힘을 내고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목회자는 계속 어두운 갱 속에서 말씀을 캐내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싫어서 그만 두면, 결국 교인들은 모두 말씀에 굶주리게 되고, 세상도 암흑기가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 목사에게 2절)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심령 부흥은 하나님의 말씀의 씨를 뿌리는 것을 통해서 나타나게 됩니다. 처음에는 씨를 뿌리면, 아무것도 나오지 않고, 괜히 씨만 허비한 것 같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서 비가 오고, 온도가 올라가면, 땅을 뚫고, 싹이 쏙 올라오게 됩니다. 그리고는 엄청난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반드시 말씀을 선포하는 목회를 해야만, 부흥의 결실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여기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라는 것은 말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좋아서 정상적으로 목회를 할 수 있을 때든지, 아니면 처음 교회를 개척하거나 혹은 다른 곳에서 설교를 해야 할 때든지, 항상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선포하는 목회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정말 눈물로 씨를 뿌리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알아주지도 않고, 나타나는 결과도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놀라운 변화와 부흥의 축복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하면서 오래 인내를 해야 합니다. 2절)...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말씀을 전하는 자는 오래 참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뿌리진 씨가 금방 열매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씀은 하나이지만, 가르치는 방법은 다양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네 가지가 나타나는데, 목회의 아주 중요한 기법들입니다. 즉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대개 교인들이 세상에서 겪는 것은 어려운 일을 당해서 낙심하는 경우도 있고, 길을 몰라서 방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혹은 죄를 지어서 어려움에 빠진 경우도 있고, 정신적인 문제로 고통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미리 *필수 과목*으로 교육을 잘 시키면, 탈선이나, 위험에 빠지는 것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잘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업의 실패나 질병으로 낙심해 있을 때는 *심방*찾아가서 잘 권면해주면, 힘을 냅니다. 그리고 죄에 빠졌을 때는 따끔하게 책망을 해주어야 합니다. 그러고 정신적인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을 때는 주의를 주고, 심한 경우에는 정신 치료도 겸하여 받게 해야 합니다. 이 네 가지 경우가 사실 목회의 가장 중요한 기법입니다. 5절)그려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목회자가 근신한다는 것은 죄를 멀리하고, 어떻게 하든지 자기 자신의 영혼이나 삶을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진리는 모두 목회자의 인격을 관통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아기를 가진 엄마는 모든 것을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아기에게 그대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만약 아기 엄마가 술을 퍼 마시면, 아기에게 그대로 영항을 주게 될 것입니다. 또 젖을 먹이는 엄마가 커피를 많이 마시면, 아기는 흥분이 되어 잠을 잘 자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엄마가 담배를 피우면, 아이에게도 그대로 영향을 줄 것입니다. 만약 목회자의 영적인 상태가 깨끗하지 못하면, 교인들에게 오염된 말씀을 먹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교인들은 모두 병들게 되고, 목회자 자신도 병들게 됩니다. 그리고 고난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일단 세상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자체가 고난이 될 수도 있습니다. 목회자도 인간이기 때문에 세상에서 유명해 지고 싶은 욕망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과 싸우는 것이 고난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교인들이 성숙(成熟)할 때까지 그 모든 아픔과 갈등을 함께 겪어야 하는 것이 고난입니다. 예를 들어서 교인 한 명이 아파도 그 아픔은 그대로 목회자에게 전달되고, 또 교인들이 힘들게 할 때도 그 고난은 혼자서 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탄의 무서운 공격이 있는데, 이것도 잘 감당해야만 목회의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전도인의 일을 해야 하고, 자신의 직무를 잘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Ⅱ.목회의 암초 목회라는 것은 교인들과 함께 배(船)를 몰고, 험한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즉 작은 배(船)를 타고, 큰 바다를 항해하다보면, 많은 어려움들이 있을 것입니다. 대개 목회자들이 목회를 하다가 중간에 실망하게 되는데, 가장 큰 이유가 아마 목회의 열매가 없는 경우일 것입니다. 즉 죽으라하고 설교하고, 전도하는데도 교인들이 전혀 늘지 않을 때, 그때는 중간에 포기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자기 자신에게 사명감이 없거나, 혹은 심한 핍박이나, 반대가 있을 때도 낙심하여 포기하려고 할 것입니다. 혹은 동역자간의 오해나 갈등으로 인하여 중간에 포기하게 될 때도 있을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사도 바울이 2,000년 전에 이미 이런 것들에 대하여 모두 성경에 기록하여 놓았다는 사실입니다. 첫 번째가 목회에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3-4절)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사도 바울은 앞으로 교인들이 바른 말씀을 좋아하지 않을 때가 올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사람*은 안 믿는 사람도 있지만, 믿는 사람도 포함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느 정도 똑똑해지고 살만하면, 바른 교훈(생명의 양식)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바른 말씀은 거의 죄를 책망하는 말씀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을 들으면, *자기가 야단을 맞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설교들을 좋아하고, 허탄한 이야기들을 좋아합니다. 즉 간증이라든지, 혹은 누가 성공한 그런 이야기들을 참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이야기들은 전혀 부담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면, 온 신경을 다 집중시켜야 하는데, 늘 그렇게 하기는 힘이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목회자들이 사람들의 인기를 따라가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성공하는 것은 고전3:12절)...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불에 타는 집을 짓는”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성공한 것은 시험의 불이 오면, 금방 타서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됩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목회를 해야만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믿음의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말씀으로 마음의 성전을 짓기만 하면, 솔로몬이 받았던 것을 능가하는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복이 무궁무진하게 쏟아 부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반대하는 사람의 무지막지한 핍박입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반드시 사탄의 가시와 같이 애 먹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니면 외부에서 아주 무식하게 댓글로 공격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구리 장색 알렉산더*라는 가시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14절)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는 구리로 우상(偶像)을 만드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우상(偶像)장사니까 복음(福音)을 좋아할 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우상장사는 아주 심하게 사도 바울을 대적하고, 공격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람이 있으면, 목회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국 목회는 믿음의 파워(power)입니다. 즉 이런 대적하는 사람을 이기지 못하면, 중도 하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마가는 사도 바울의 일차 전도 여행에서 엘루마 라는 박수(남자무당)가 바울을 대적하는 것을 보고, 자신감을 잃고, 선교 여행을 포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다른 목회자들의 오해나 갈등 흑은 시기심이나 섭섭한 마음 등으로 상처를 입고 중도하차 할 수도 있습니다, 9-10절)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6절)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이지 않기를 원하노라”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히니까 주위의 인심이 많이 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사도 바울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갔고, 심지어는 처음 공판할 때, 분위기가 너무나 무시무시했는데, 아무도 거기에 나오지 않아 사도 바울 혼자서 공판을 받기도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완전해서 다른 아무 사람의 도움이 필요 없는 줄 알지만, 그도 위로가 필요했고, 격려가 필요했고, 때로는 동료들의 지원사격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성도의 교제가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만일 이것이 끊어져버리면, 아무리 신앙이 좋은 사람도 맥을 추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데마는 사도 바울이 참으로 아꼈음에도 불구하고, 아예 신앙을 버리고, 세상으로 가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레스게와 디도는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때 사도 바울은 아주 외롭고, 힘들었던 것입니다. 특히 구리 장색 알렉산더나 일차 공판은 너무나도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17절)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사도 바울은 그런 경험들을 *사자(獅子)의 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힘들었지만, 주님이 옆에 계셔서 사도 바울을 지켜주시고, 복음(福音)을 잘 설명할 수 있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요한 웨슬레나 찰스 웨슬레 형제 같은 경우는 한창 부흥을 일으키고 있다가 이성적인 문제로 형제사이가 나빠지면서 거의 결별하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때로는 목회자가 건강악화나, 혹은 유혹에 넘어가 죄에 빠짐으로 중간에 도중하차할 수도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부패한 정부, 막가파 토개공의 횡포로 중도하차 하게 되었습니다. Ⅲ.사도 바울의 결산 이제 사도 바울에게는 죽음이 거의 임박해오고 있었습니다. 즉 사도 바울은 이제 자기가 지금까지 달려왔던 복음전하는 일을 그만 두어야 할 때가 왔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의 믿음의 길에 대하여 이렇게 결산을 합니다. 6-8절)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사도 바울은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이 세상에서 주님이 주신 사명을 끝까지 완수한 사람으로 자신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마치 그는 마라톤 경기를 끝내고, 드디어 결승점에 도달한 마라톤 선수처럼 자신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두 가지로 표현을 하고 있는데, 하나는 제사때, 쓰는 표현이고, 다른 하나는 여행에 쓰는 표현입니다. 6절)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여기서 *전제(奠祭)*라는 것은 제물(祭物)을 다 태우고 난 후에 마지막으로 그 위에 포도주를 붓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물이 타고 난 후에 포도주 타는 향기가 진동하게 됩니다. 이것은 일증의 제사의 클라이맥스(climax)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인들은 죽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고, 잘 죽어야 합니다. 죽을 때, 향기가 나야지, 죽을 때 잘못 죽으면, 평생 수고한 것들을 다 수포로 돌아가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죽음 중, 최고의 죽음은 역시 순교(巡敎)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떠날 시각이 가까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멋진 여행을 위해서 배(船)가 출발할 준비가 다 되었다는 뜻입니다. 죽음은 주님께로 가는 멋진 여행입니다. 우리들도 죽는 것은 멋진 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습니다. 참으로 신나는 경험일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역에 대하여 먼저는 전투적인 의미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자기는 *선한 싸움을 다 싸웠다*는 것입니다. 즉 복음을 가지고 끝까지 마귀와 싸우고, 죄와 싸우고, 끝까지 충성을 다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믿는 자들은 모두가 예수님의 기사들입니다. 끝까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멋진 죽음을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달리기 경기*에 비유하면서 먼 마라톤 경기를 잘 달려 왔다고 고백합니다. 보통 마라톤 경기는 세 시간 정도 쉬지 않고, 달리는 것입니다. 마라톤은 자기 자신과의 긴 싸움입니다. 달리기를 하다보면,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많이 생기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경주는 이십년 삼십년을 쉬지 않고 달리는 장거리 경주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멋진 결산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마지막 부탁은 너무나도 소박한 것이었습니다. 13절)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을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이제 겨울이 오고 있습니다. 특히 겨울의 감옥은 몹시 춥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월동을 할 수 있도록 겉옷을 갖다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나머지 인생을 두루마리에 적힌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생을 마치기 위해 *성경책을 가져오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각 셀(cell)가족 공동체도 주님이 주신 이 선한 싸움을 끝까지 잘 마치고, *의(義)의 면류관*을 다 받아야 할 것입니다.아-멘 찬송가 595장*나 맡은 본분은* 진리의 복음 다음카페 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카톡선교회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