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주간지 「시사IN」(2007년 11월3일자)의 기사 내용이다.
<지난 5월 자신의 로펌에서 쫓겨난 金 변호사는 경기도 양평에 있는 컨테이너에서 기거하며 고추·상추 등을 가꾸고 있었다고 한다. 이때 잠을 이루지 못해 수면제 신세를 지기도 했다>
「金勇澈 변호사가 컨테이너집에서 살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후에, 月刊朝鮮으로 독자들의 문의 전화가 쏟아졌다.
『삼성에서 7년 동안 100억이 넘는 돈을 받았다는 사람이 왜 컨테이너집에서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정말 그가 살고 있는 집인지 의심스럽다』
『경기도 양평에는 호화별장이 많은데, 혹시 호화별장을 컨테이너집이라고 거짓말하는 것이 아니냐』
金勇澈 변호사는 특수부 검사 출신으로, 삼성 구조조정본부에서 7년간 102억원의 연봉과 성과급을 받았다. 삼성 퇴사 후에는 법무법인에서 변호사로 일했으며, 3년 동안 삼성에서 고문료 명목으로 7억9200만원을 추가로 받았다. 폭로 기자회견 후에 모 주간지와 인터뷰를 하면서, 그는 삼성 시절을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용궁에 갔다가 몸 버리고 나왔다. 한 개인이 벌 수 없는 엄청난 돈과 권력을 줬다. 한때 삼성에서 10억원이 넘는 연봉을 받았다. 사치를 했고, 재산을 좀 모았다. 삼성은 더 많이 주려고 했다. 타워팰리스나 수서 아파트도 준다고 했지만 받지 않았다>
자신의 입으로 「엄청난 돈」을 받았다던 金勇澈씨는 정말 컨테이너집에서 살고 있을까. 만약 살고 있다면 金씨는 왜 컨테이너집에서 사는 걸까.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 金씨의 컨테이너집을 찾아보기로 했다.
언덕 위의 컨테이너집
金勇澈 변호사의 양평집. |
지난 11월10일 오전 양평으로 이어지는 6번 국도를 따라,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청계리에 도착했다. 마을 입구에서 만난 주민 朴모씨에게 『金勇澈 변호사의 집이 어디냐』고 묻자, 왼쪽에 있는 언덕을 가리켰다.
「마을 주민들이 金勇澈 변호사에 대해서 알고 있을까」라는 걱정과 달리, 그는 대번에 金씨의 집을 알려줬다. 그가 일러준 언덕에는 컨테이너 두 대가 포개져 있었다. 金勇澈 변호사가 지난 10월부터 삼성의 감시를 피해 숨어 살았다고 주장하는 「컨테이너집」이다. 언덕을 따라 올라가자 金씨의 컨테이너집 전체를 볼 수 있었다. 金씨의 집인지 확인하기 위해 우편함을 살펴봤다.
우편함에는 金씨 이름이 아닌 아들 이름이 적혀 있었다. 집 둘레는 녹색 철제 펜스가 둘러쳐져 있었으며, 사람은 없는 듯했다. 대문은 안쪽에서 걸어 잠그고 다시 자전거용 열쇠로 채워져 있었다. 마당에 있던 개 두 마리가 인기척을 확인하고 짖어 댔다.
金勇澈 변호사의 양평집 정원. 대지면적이 990m2인 양평집은 땅값만 3억원이다. |
100여 평은 넘을 듯한 마당 한쪽에 컨테이너 두 대가 2층 형태로 자리 잡고 있었고, 기역(ㄱ)자 형태로 컨테이너 한 대가 더 붙어 있는 구조였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는 원통 형태의 바비큐용 그릴이 놓여 있었다.
대문 우측에는 파라솔이 딸린 테이블과 흰색 의자가 보였고, 그 아래 어린이용 유모차가 있었다. 지난해에 아이를 낳은 金씨의 큰아들이 가끔 이 집을 찾는 듯했다. 마당 왼쪽에 자리 잡은 작은 비닐하우스가 눈에 띄었다. 「일반 가정집에 웬 비닐하우스인가」 싶어 자세히 들여다보니 각종 盆栽(분재)들이었다. 하우스 안의 온도를 맞추기 위해 보일러가 설치돼 있었다.
컨테이너집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반대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金씨의 집은 언덕 위에 있기 때문에 반대편으로 가기 위해서는 다시 언덕 아래로 내려가야 했다. 언덕을 내려가자 철제 펜스 아래 편에는 커다란 돌로 담벼락을 만들어 놓았다. 어림잡아 몇십t은 돼 보이는 바위들이 약 4m 높이로 쌓여 있었다. 마치 성벽 같은 느낌이었다. 공사가 중단된 주차장 건물 계단을 통해 컨테이너집 가까이 갈 수 있었다. 집 안에 인기척은 없었고, 창에는 커튼이 쳐져 있었다.
金勇澈 변호사의 집을 알려 준 주민 朴모씨와 金씨 집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에 따르면 金변호사의 컨테이너집 전체 면적은 990㎡(300평)이다. 매입한 시기는 10년 전쯤이며 지난 5월 무렵 내려와 컨테이너 건축물을 설치하고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8000만원이 들어간 컨테이너집 돌담
정원 안에 분재를 기르는 비닐하우스가 있다. |
―공사가 중단된 상태던데요.
『봄부터 담벼락 공사를 하고, 컨테이너집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일단 조경과 주차장 공사를 하고 나서 집을 짓는다고 하더군요. 공사를 잘 하더니, 비자금 폭로 기자회견 이후에 공사가 중지됐어요』
―金勇澈 변호사가 자주 왔습니까.
『추석 때까지는 자주 내려와서 며칠씩 머물다가 올라갔어요. 부인이 가끔 함께 왔어요. 어떤 때는 부인, 아들과 함께 지프를 타고 왔다가 따로 가기도 했지요. 얼마 전에 내려왔는데 지난 주부터 안 보여요』
―金변호사가 여기에 별장을 짓는다고 하던가요.
『그럼요. 별장을 안 지으면 저 엄청난 공사를 왜 합니까. 이 앞에 있는 돌로 만든 담벼락 공사만 8000만원 들었어요. 주차장 공사만 해도 4000만원 이상 들었다고 하던데요.
마을 주민은『담벼락 공사비로 8000만원이 들었다』고 말했다. |
컨테이너집을 만드는 데 6000만원 정도가 들었다고 합니다. 집을 제대로 짓지 않으려면, 왜 저런 공사를 하겠어요. 여기 땅값만 해도 평당 100만원이 넘는데요. 땅값만 3억원인 거죠』
朴씨는 金勇澈 변호사에 대해서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는 성벽 같은 돌담을 가리키며 『저런 바위를 어떻게 가져왔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제가 전에 조경업체에서 근무를 했습니다. 저런 바위들은 산이나 계곡에서 캐와야 합니다. 그런데 속된 말로, 이 정도 바위들은 盧武鉉 대통령이 허가를 내도 못 캐는 바위예요. 이 바위를 보세요. 이끼가 껴 있죠. 그 얘기는 공사현장에서 굴러다니는 바위가 아니라, 자연에 있는 것을 캤다는 얘기입니다. 어떻게 가능했는지 몰라요. 법을 잘 아는 분이라서, 다른 방법이 있나 봐요』
―마을 주민들이 金변호사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남의 일이니까, 뭐 별 다른 얘기합니까. 하지만 회사 다니는 사람들은 좋게 말 안 하죠. 일반 직장인들이 평생 뼈빠지게 일해도 1억~2억원 만질까 말까 하는데. 그 양반 얼마 챙겼다고요? 100억원이 넘잖아요, 100억원. 아이구, 그게 어디 함부로 말이나 할 수 있는 돈이유. 그런 돈을 받아서 호의호식하고 담벼락 공사에만 8000만원을 쓰는 사람이 자기 회사 뒤통수를 친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 양반이 정말 정의를 위한다면, 자기가 먹은 돈 다 토해 내야 되지 않겠어요. 자기 말로 불법을 저질러서 번 돈이라면서요. 내 말이 틀려요?』
金변호사가 살고 있는 컨테이너집은 별장을 짓기 위해 임시로 지어 놓은 야전막사로 보는 게 타당했다. 그는 『삼성에서 근무하는 동안 흥청망청 살았기 때문에, 가정이 파탄 났다』고 인터뷰에서 말해 왔다. 하지만 비자금 폭로 이전부터 아내와 아들, 손자 등 가족들이 함께 양평집에 내려와서 생활했다.
특수부 검사 생활
양평에 있는 金씨의 컨테이너집을 확인하고 나서 金勇澈 변호사가 어떤 인물인지 더욱 궁금해졌다. 그의 말은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혼란스러웠다. 그는 어떤 심정으로 자신의 친정인 검찰과 삼성에 「대못질」을 하고 있는 걸까. 그의 말처럼 삼성의 진정한 발전과 대한민국의 정의를 위해서일까. 서울에서 올라와서 그의 인적사항을 찾아봤다. 朝鮮日報 인물 DB에 나와 있는 그에 대한 인적사항이다.
<1958년生. 광주제일高-고려大 법대-同대학원 卒業. 1983년 제25회 사법시험 합격. 해군 법무관을 거쳐,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검사. 인천지검 부천지청 검사.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법무팀 이사, 재무팀 상무이사, 법무팀장(전무이사), 법무법인 서정, 現 한겨레신문 편집국 기획위원. 부인 양모씨와 2男>
그는 1989년 2월 인천지검에서 검사생활을 시작해서 1997년 8월 인천지검 부천지청 검사로 옷을 벗을 때까지, 9년 동안 검사 생활을 했다. 9년이라는 길지 않은 검사 생활 가운데 1994년부터 약 3년간 중앙지검 특수부에서 근무했다. 특수부는 과거 공안부와 함께 검찰의 양대 산맥으로, 각종 부정부패와 비리 사건을 수사하는 부서다. 특수부 검사들은 사회의 「巨惡(거악)」을 척결하는 「정의의 수호자」라는 긍지와 자부심이 높기로 유명하다.
특수부 검사를 거쳐, 부천지청에 부임한 지 5개월 만에 그는 돌연 사표를 썼다. 잘나가던 검사 생활을 접은 이유가 뭘까. 그는 「시사IN」(지난 10월29일자)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全斗煥(전두환) 비자금 수사를 하다가, 김석원 前 쌍용그룹 회장이 관리하고 있는 비자금을 찾아냈다. 그런데 YS가 수사를 하지 말라고 했다고 했다. 그래도 굽히지 않았다. 바로 부천지청으로 좌천성 발령이 났다. 일은 그만하고 德(덕)을 쌓으라고 했다. 검사에게 수사를 하지 말라니, 나가라는 소리 아닌가>
수사를 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넣은 상부에 반발해서 검사 생활을 접었다는 얘기였다. 당시 상황을 알고 있을 검사 몇 명에게 金변호사가 수사와 관련한 외압에 반발해서 검찰을 떠났는지 확인을 부탁했다. 현직에 있는 검사들은 『자칫하면 金씨를 자극할지 모른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그의 상관이었던 검사 출신 모 변호사에게 확인을 요청했다. 익명 보도를 요청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좀 오래된 이야기인데, 金변호사의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全斗煥 비자금 수사와 별도로 진행됐던 盧泰愚(노태우) 비자금 수사 때 이미 김석원씨가 관리했던 비자금 200억원의 실체가 드러났어요. 그런데 그가 찾아낸 61억원을 YS 정부가 막을 이유가 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金勇澈 변호사의 대학 후배인 L변호사는 이런 얘기를 했다.
『특수부에서 만 3년 가까이 있었으면 보통 다른 부서로 이동합니다. 그런데 金변호사가 부천으로 발령을 받아서 심란해하더군요. 서울에서 다시 지청으로 가는 건 코스인데, 본인 생각으로는 그게 자존심이 상했나 봅니다. 어느 날인가 후배들에게 「내 검사 생명은 끝났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더니 옷을 벗더군요』
자존심 강한 金勇澈 변호사
L씨에 따르면, 金勇澈 변호사는 자존심이 매우 강한 사람이라고 했다.
『金勇澈 선배는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가 매우 높습니다. 자존심이 매우 높고, 자신이 매우 잘났다고 생각해요. 물론 사법고시에 붙은 판·검사들이 대부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金선배는 남이 자신이 잘난 것을 인정해 주지 않으면 참지 못해요. 그래서 항상 자신에 대해서 자랑하고 자신을 꾸밉니다. 다른 사람과 얘기를 시작하면, 대부분 자기 자랑으로 이어져요』
―같은 검사들 사이에서 특별히 자기 자랑을 할 만한 일이 있나요.
『대개 이런 식이에요. 「어떤 사건을 맡았는데, 선배 검사가 일을 잘 못해서 내가 다 처리했다」, 「상부에서 압력이 들어왔는데 내가 결사적으로 막아서 수사를 마무리했다」
金선배가 검사 생활을 접고 삼성에 갔는데, 처음에 재무팀 이사 명함을 주더군요. 회계를 모르는 사람이 재무팀에서 일하는 게 이상하기도 하고 어색하잖아요. 그런데 「내가 재무팀에서 엄청 일을 잘 한다」고 자랑을 하더군요.
그래서 후배들이 「선배가 회계와 재무관리에 대해서 뭘 아느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내가 밤새워 공부를 해서 웬만한 회계사보다 더 많이 안다」고 반박을 하는 겁니다. 삼성에 간 지 몇 개월 안 됐는데, 어떻게 회계사보다 많이 알겠어요』
「삼성에서 일하고 싶다」고 해
1997년 8월 金勇澈 변호사는 삼성에 입사했다. 그는 처음에 「회장비서실 법무팀 이사」로 補職(보직)을 받았다. 그는 변호사 생활을 하지 않고, 왜 삼성에 입사했을까. 金변호사는 「시사IN」(지난 10월29일자)과 인터뷰에서 아래와 같이 이유를 밝혔다.
<초임 검사 시절 변호사를 수사한 적이 있는데, 수주 과정이 너무 지저분했다. 부하들에게 뇌물 주고 사건을 수임하고, 판·검사에게 일이 있을 때마다 인사해야 하는데 난 그런 짓 못 하겠더라. 그래서 삼성으로 가게 된 것이다.
내가 지원했다. 국가 다음으로 망하지 않고 월급이 나올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그런데 삼성에 들어간 것은 내 인생의 가장 큰 실수였다>
삼성 측에 따르면, 金勇澈씨는 당시 삼성그룹 모 고문 변호사에게 직접 「삼성에서 일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 고문 변호사는 당시 비서실 인사팀장이었던 李又熙(이우희·61) 前 에스원 사장에게 金씨의 지원서를 넘겼다. 李又熙 前 사장은 金변호사를 면담하고 나서 『법률 지식, 충성도 등 여러 측면에서 괜찮은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결국 그는 李又熙 사장의 결정으로 삼성 회장비서실 법무팀에 입사할 수 있었다.
10년 후 金勇澈 변호사는 자신을 입사시켜 준 李又熙 前 사장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지난 11월12일 金씨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과의 기자회견에서 『李又熙 前 사장이 임채진 검찰총장 내정자에게 떡값 뇌물을 전달한 장본인』이라고 주장했다. 李 前 사장은 다음날인 11월13일 즉각 이를 부인하고, 서울중앙지검에 金勇澈 변호사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재무팀에서 실력 인정 못 받았다』
1996년 1월12일 全斗煥 前 대통령 비자금 수사결과 발표 모습. |
삼성에 입사한 金勇澈 변호사는 얼마 후 법무팀이 아닌 재무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검사 출신 변호사인 그가 왜 재무팀으로 갔을까. 前 구조본 재무팀 관계자의 얘기다.
『입사 6개월 후에, 어느 정도 교육이 끝나자 金씨가 「기업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싶다」며 재무팀으로 부서를 옮겨 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1998년 4월부터 2002년 1월까지 4년 가까이 재무팀에서 근무했죠』
―재무팀에서 어떤 일을 맡았습니까.
『구조본 재무팀에는 「社」 담당이라는 직책이 있어요. 社 담당은 각 계열사에서 신규투자나 대규모 再투자를 할 때, 이를 다시 「리뷰」하는 자리입니다. 계열사 사장이나 임원들이 당장의 실적을 위해서 투자를 하는 건 아닌지, 중복투자나 과잉투자를 하는 건 아닌지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金씨는 「삼성중공업」 담당이었는데, 삼성중공업의 투자결정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재무·회계 지식과 함께 全세계 조선업 현황을 꿰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선행돼야 삼성중공업의 투자결정의 효율성 여부를 평가할 수 있지요.
그런데 金씨가 법률가라서 여기에 대한 센스가 부족했어요. 실력이 다른 임원에 비해 많이 달렸죠. 이 때문에 내부에서 힘들어했고, 자신도 흥미를 잃었죠. 결국 2002년 1월 법무팀장으로 가게 됐습니다』
삼성 측 주장은 金勇澈씨가 자신의 후배 검사들에게 말했던 것과 반대되는 이야기였다.
大選자금 수사 때 입지 줄어들었다
李鶴洙 삼성 전략기획실장. |
金勇澈씨가 법무팀장을 맡고 난 지 1년 후인 2003년, 삼성은 2002년 大選자금 수사를 받게 된다. 당시 李鶴洙(이학수·62) 구조조정본부장 등 그룹內 주요 인사 몇 명이 검찰에 출두해서 조사를 받았다. 법무팀장이었던 金씨는 李鶴洙 본부장이 검찰에서 조사를 받기 전에 검찰청을 자주 드나들었다. 그룹內 인사들의 수사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다. 『그가 검찰청을 드나든 게 오히려 逆효과를 가져왔다』고 당시 大選자금을 수사했던 검찰청 수사계장 한 명은 얘기했다.
『金勇澈씨는 검사 시절부터 말을 함부로 했습니다. 또 자기 자랑을 많이 해서 「거들먹거린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 사람이 검사를 할 때는 계장들이 「검사니까 더러워도 참는다」는 심정이었죠. 그런데 이 사람이 사기업에 간 뒤에도 검찰청에 와서 똑같이 행동하는 겁니다. 수사 계장들이 다른 검사들 얼굴 봐서 크게 면박은 안 줬지만, 다들 「삼성 관계자들 들어오면 가만히 안 놔둔다」고 「씩씩」댔죠.
동료 계장은 李鶴洙 본부장이 들어와서 기다리는데 「金勇澈 그 ×× 지가 검사 출신이면 출신이지. 아직도 검사인 줄 아나. 어디 와서 검사 노릇이야」 라고 욕을 했어요. 李鶴洙 본부장 들으라고 한 얘기였죠』
모 로펌에 있는 검사 출신 변호사 B씨의 얘기다.
『아무리 검사 출신이라도 변호사 신분으로 검찰청에 들어가면 공손해야 합니다. 현직이 아닌데 국가기관인 검찰에서 자신의 전직을 내세우면 안 돼요. 변호사들이 검찰청에 왜 갑니까. 결국 로비 아닌 로비하러 가는데. 거들먹거리는 건 主客(주객)이 轉倒(전도)된 겁니다. 金변호사가 당시 후배 검사들에게 너무 「가오」를 잡아서, 후배 검사들이 욕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2003년 大選자금 수사 이후, 회사內에서 金勇澈 변호사의 입지는 크게 줄어들었다. 그룹內에서는 金씨가 「법무팀장으로서 제대로 역할을 못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金씨는 2003년 말부터 大選자금 수사 관련 업무에서 제외됐다. 시사주간지 「한겨레 21」(지난 10월30일자)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2003년 말부터 大選자금 수사가 진행되는 6개월 동안 회사가 나와 의논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삼성 구조본은 검사 출신으로 김&장의 변호사였던 李鍾旺(이종왕·61)씨를 2004년 7월 구조본 법무실장으로 영입했다. 삼성 구조본에서는 법무팀장이었던 金씨에게 삼성화재 부사장급 법무팀장으로 자리를 옮길 것을 권했다.
金변호사는 삼성의 권유에 응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李鍾旺 前 법무실장에게 밀렸다고 생각했다. 그가 知人(지인)들에게 했던 말이다. 검사 출신 변호사 C씨의 이야기다.
『삼성이 DJ 집권 직후 호남 출신인 나를 데려다 잘 써먹고는 참여정부가 들어서자 李鍾旺을 데려다 놓고 나를 팽시켰다』
金변호사는 결국 2004년 8월 삼성에서 퇴사했다. 그는 자신의 거취를 놓고, 몇 개월 동안 고민했다고 한다. 변호사 C씨의 이야기다.
『李鍾旺씨가 법무실장으로 영입되자, 金변호사가 어쩔 줄 몰라 했어요. 자기가 밀렸다는 인식을 한 거죠. 삼성에서는 金변호사가 예상과 달리 계열사行을 거부하자 당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金변호사는 「대학 선배인 李鶴洙 본부장이 장기 여행을 가도 좋으니까, 삼성화재로 가서 籍(적)만 걸어 두라고 했다. 내가 왜 거길 가느냐, 나는 안 간다」고 하면서 화를 내더군요』
『良心이 움직여서 삼성을 그만뒀다』
李鍾旺 前 삼성 법무실장. |
金勇澈 변호사는 자신이 삼성에서 퇴사한 이유에 대해서 언론들과 인터뷰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삼성을 그만둔 이유는 임시로 입은 옷은 내 몸에 맞지 않았다. 여러 번 출근을 안 하고 도망도 가봤다. 하지만 자식 등록금도 내고 생활비도 벌어야 했다. 공범이 되고자 노력도 많이 했다. 같이 술도 먹고 그런데 그게 잘 안 되더라.
특히 李健熙 회장을 神格化(신격화) 하게 만드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李健熙 회장의 語錄(어록)과 지시 사항은 社內(사내)에서는 헌법과 같았다. 신념으로 받아들이는 게 내게는 무리였다. 삼성의 실체를 깨닫고 良心(양심)이 움직였다>
그의 말대로 金변호사는 양심이 움직여서 삼성에서 그만뒀을까? 金변호사와 함께 일한 적이 있는 검사 출신 모 변호사의 이야기다.
『검사들, 시민단체들, 정치인들이 삼성의 고마움을 모른다』
金大雄 법무법인「서정」대표. |
『양심이라… 허허 참, 삼성의 실체를 깨닫는 데 7년이나 걸렸답니까. 그러면 7년 후에 바로 실체를 깨닫지, 퇴사 후 3년 동안 7억원을 받고 나서 뒤늦게 양심이 발동한 이유가 뭐랍니까. 삼성에서 3년 동안 7억원 넘게 고문료를 받을 때는 그 실체가 다가오지 않았나 보죠?
金勇澈 변호사가 삼성에 있을 때 후배 검사들에게 와서 뭐라고 말한 줄 아세요.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요새 그 양반 하는 거 보면… 그 양반이 이럽디다.
「너희들 삼성이 얼마나 대단하고 좋은 조직인지 모른다. 나도 검사 생활 해봤지만, 너희들은 너무 일을 안 한다. 삼성이 일하는 것에 비하면 너희는 새 발의 피다. 대한민국에서는 삼성 외에 일하는 조직은 하나도 없다.
이런 삼성을 대한민국에서 전부 뜯어 먹으려고 난리다. 검사들, 시민단체들, 정치인들 왜 삼성을 가만히 두지 않는가. 삼성이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데 고마움을 모르는 것 같아 너무 화가 난다. 너희들 검사들만이라도 삼성에 잘 해라」』
―金勇澈 변호사가 지난 11월12일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은 검사라며, 검찰총장 내정자, 국가청렴위원장 등 세 명을 지목했는데요.
『자기가 떡값을 전해 줬다는 검사 명단부터 공개하라고 하십시오. 언론 인터뷰에서 「나도 죄인이다. 나도 처벌해 달라」고 했잖아요. 자신이 떡값 전해 준 검사들은 잘 알고 있을 것 아닙니까. 자기가 돈 준 사람 명단을 공개만 하면, 金 변호사 소원대로 처벌해 줄 겁니다. 그런데 왜 공개 안 하겠어요. 자기도 검사 출신인데, 자기가 떡값을 전해 준 검사 얘기를 공개하면, 곧바로 뇌물증여죄로 처벌받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金변호사가 삼성에 일할 때 李健熙 회장이나 삼성에 대해서 불만을 터뜨린 적이 없었나요.
『돈 많이 주고 대우 잘 해준다고 얼마나 자랑을 했는 줄 아세요. 한 달에 400만~500만원 월급받는 후배 검사들 앞에서 자기 돈 많이 번다고 자랑하면서 「너희같이 일하고 그 월급받는 건 많이 받는 것」이라는 얘기까지 했어요. 후배 검사들이 정말 그와 상종하기 싫어했습니다. 1년에 15억원씩이나 받아 먹은 사람의 입에서 나올 소리입니까』
2004년 10월 金勇澈 변호사는 지분을 내고 법무법인 「서정」에 파트너 변호사로 일을 시작했다. 「서정」의 대표 변호사인 金大雄(김대웅·63)씨는 前 광주고검장 출신으로 金변호사의 광주제일高 선배다. 「서정」 측의 얘기다.
『金勇澈 변호사가 검사 출신에 삼성 구조본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것을 인정했습니다. 당시 「서정」은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 로펌이어서, 金변호사의 경력이 필요했죠. 삼성 측의 송사를 金변호사가 가져올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어요. 초기에 金변호사는 삼성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金勇澈 변호사가 「서정」의 파트너 변호사로 업무를 시작한 후, 삼성 계열사는 2004년부터 「서정」과 고문계약을 맺고 2007년 9월까지 3년간 매달 2200만원(부가세 10% 포함)씩 고문료를 지불했다. 金씨가 퇴임 이후 3년간 7억2000만원을 삼성에서 받았다는 것은 이 고문료를 말한다. 삼성은 고문료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저희가 굳이 「서정」 측과 고문계약을 맺을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金변호사의 요청이 있었고, 저희도 전직 법무팀장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서정」과 계약을 한 겁니다』
―고문료가 「서정」의 계좌로 입금됐다고 하던데요.
『金변호사가 법인 소속 변호사로서 개인사업자등록증이 없는데다, 본인이 「서정」 법인계좌로 송금해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서정」에서는 세금과 사무실 임대료 등을 제외한 나머지를 金변호사에 줬다고 했습니다』
삼성 측에 따르면, 金勇澈 변호사는 2004년 가을 『「서정」이 삼성의 특허 업무를 맡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삼성은 실무 협의를 거친 후, 2004년 12월부터 삼성중공업의 특허 업무를 「서정」에 맡겨 지금까지 3억5500만원을 지급했다. 이 가운데 일부는 金씨의 몫으로 배당됐다.
이후에도 金변호사는 삼성 측에 『더 도와 달라』고 부탁해 왔으나, 삼성 측은 이에 응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金勇澈 변호사는 3년 가까이 삼성의 지원을 받은 사실과 관련해 「시사IN」(11월7일자)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주장을 했다.
<그런데 이렇게 조직에 고분고분했던 내가 삼성을 떠나면서 휴대전화를 바꿨다. 삼성제품에서 다른 회사 제품으로. 삼성에 관련된 사람도 만나지 않았다. 삼성 계열사 제품도 쓰지 않았다. 식구들이 너무 심하다고 할 정도였다. 삼성이 미워서 그런 건 아니다. 다만 삼성을 떠올리기 싫어서 그랬다>
돈 받으면서 삼성 욕하기 시작
삼성제품을 쓰기도 싫었던 사람이 퇴사 후 3년간 삼성 지원금을 받은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삼성에 관계된 사람을 만나지 않고, 고문계약은 어떻게 맺었을까?
법무법인 「서정」에서 파트너 변호사 생활을 하는 동안 그는 삼성에 대한 증오심을 더욱 키워 온 것으로 보인다. 金勇澈 변호사가 한겨레신문의 기획위원이라는 직책을 맡은 것은 2005년 9월 무렵이었다. 법무법인 「서정」 변호사들의 이야기다.
『「서정」에 들어오자마자 주위 사람에게 삼성 욕을 시작했습니다. 삼성에 있을 때 상부 지시로 검사들과 국세청에 떡값을 줬느니 말았느니 하더군요. 7년 동안 삼성에 있을 때 그렇게 삼성 칭찬을 하던 사람이 갑자기 안면을 바꾸니까 당황스러웠습니다.
언젠가는 「삼성이 부실 계열사에서 30억, 40억, 50억원을 빼서 비자금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니 제대로 된 기업도 아니고 부실 계열사에서 돈을 빼서 비자금을 만드냐」고 흥분하더라고요.
그래서 「삼성에 있을 때 그렇게 칭찬을 하더니 왜 지금 와서 그러냐」고 했어요. 그랬더니 들은 척도 안 하고 「그게 문제가 아니다」라고 화를 냈던 기억이 납니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건 고문계약으로 삼성에서 돈을 받고 있으면서, 그런 식으로 욕을 하는 겁니다. 돈이나 받지 말던지요』
―삼성 측에서는 金勇澈 변호사가 「서정」에 대한 지원을 더 많이 해달라고 했다던데요. 삼성 측에서 이를 거부해서 더욱 화가 났던 건 아닐까요.
『파트너 변호사들은 일감을 자기가 따와야 합니다. 그런데 金勇澈 변호사는 對人(대인)관계가 원만하지 않아요. 술을 거의 안 마시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고 다양한 화제가 있어야 하는데, 자기 자랑 외에는 거의 화제가 없어요. 그러니까 오로지 삼성에만 목을 맬 수밖에 없죠.
삼성 입장에서 金변호사를 계속 밀어 줄 수는 없지 않겠어요. 金변호사가 삼성을 증오하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봅니다. 金변호사의 부인이 삼성에 보낸 편지에서 돈 얘기가 나오지 않습니까』
지난 11월5일 삼성은 金勇澈 변호사의 비자금 조성 의혹설을 부인하는 반박문을 발표했다. |
金勇澈씨 前妻의 편지
金勇澈 변호사의 前妻(전처)인 양모씨는 지난 8월 삼성전략기획실(前 구조본) 고위 임원과 회장실 앞으로 자필 편지를 보냈다. 양씨는 이 편지에서 『이 달 8월로 金변호사에 대한 대우(고문계약)가 끝나나요』라고 언급을 했다. 이어서 양씨는 『세상 사람 다 알도록 하나하나 짚고 넘어가죠. 난 많이 참는 사람이지만 보복은 철저히 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삼성 측에 따르면, 양씨의 편지에 대해서 삼성은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前妻인 양씨가 편지를 보내고 난 지 몇 달 후에, 「金勇澈 변호사가 모 언론사에 찾아가 삼성에 대해서 뭔가를 터뜨릴 준비를 한다」는 말이 나돌기 시작했다. 현재 金씨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함께 터뜨린 삼성 비자금 조성의혹은 이때부터 준비한 것으로 추측된다.
金勇澈 변호사의 前妻인 양모씨는 이 편지를 시작으로 삼성전략기획실에 편지 세 통을 잇달아 보낸다. 삼성 측에 따르면, 편지에는 과거 삼성 재직時 金변호사가 인연을 맺은 임직원들의 實名(실명)을 거론하며 이들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삼성 전략기획실은 양씨의 편지 세 통을 공개하지 않았다. 지난 11월5일 「金勇澈 변호사 주장에 대한 삼성의 입장」이라는 반박문에서 일부 내용을 언론에 알렸을 뿐이다. 이혼한 前妻가 어떤 이유로, 협박성 편지를 보냈는지 알고 싶어 삼성 측에 편지 全文(전문) 공개를 요청했다.
삼성 전략기획실은 全文 공개에 대해서 신중한 입장이었다. 전략기획실은 『내부 논의를 거쳐 全文 공개 여부를 결정하겠다』며 『며칠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양씨의 편지 내용에 대해서는 뒤에서 좀더 자세히 살펴보겠다.
金升淵 회장 비판한 한겨레 칼럼
양씨가 삼성 전략기획실에 편지를 보내기 석 달 전인 지난 5월, 金勇澈씨는 한겨레신문에 칼럼을 게재했다. 金씨가 게재한 칼럼의 제목은 「범행 처벌은 사법부 몫이지만, 현행범 체포는 누구나 가능하다」였다. 그는 칼럼에서 당시 사회적으로 논란을 빚었던 金升淵(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폭행사건을 거론했다.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金升淵 회장을 시민들이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다는 논리로 이해할 수 있다.
金勇澈 변호사의 칼럼이 게재되자, 법무법인 「서정」은 곤혹스러웠다. 당시 「서정」은 한화건설과 관계된 사건을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정」 측의 이야기다.
『金勇澈 변호사가 칼럼을 썼던 시점이 金升淵 회장 폭행사건으로 사회가 들끓을 때였어요. 그런데 저희 파트너 변호사가 金회장을 직접 거론하며, 체포해도 된다는 칼럼을 썼으니 한화 측이 얼마나 당황했겠어요. 물론 저희 변호사들도 황당했습니다. 가뜩이나 金변호사가 회사에서 골칫거리였는데, 기름을 끼얹은 것이죠』
―金변호사가 법무법인 안에서 문제를 일으켰나요.
『사람들과 융화가 안 되고, 일을 제대로 못 했어요. 파트너 변호사는 일감을 가져와야 하는데, 대인관계가 원만치 않으니 여의치 않았죠. 삼성에서 그나마 일감을 주는데, 주위에 대고 삼성 욕을 끊임없이 하는 겁니다. 여러 가지 문제로, 윗분들과 마찰이 잇달았습니다. 그런 와중에 회사의 고객인 한화그룹 회장을 공개적으로 비판했으니, 金변호사에 대한 회사 변호사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죠.
그런 상황에서 金변호사가 돈 사고를 쳤어요. 회사의 법인카드로 상품권을 4800만원가량 구입했더군요. 본인 입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아마 상품권을 싸게 팔아서 현금으로 바꾼 모양입니다. 회사에서 당연히 문제를 삼았고, 金변호사가 퇴사하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였어요』
이 사건으로 인해 법무법인 「서정」 안에서 金勇澈 변호사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이런 가운데. 金변호사가 회사를 나가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는 외부에서 제공됐다. 이는 결과적으로 삼성에 대한 그의 증오가 폭발하게 된 계기가 됐다. 「서정」 측 모 변호사의 이야기다.
『金勇澈 변호사가 쓴 한겨레신문 칼럼이 나가고 나서, 외부에서 金변호사에 대해 비판을 많이 해왔습니다. 이 가운데 중앙일보 모 논설위원이 金大雄 대표 변호사에게 金勇澈 변호사를 비판한 것 같아요. 그 얘기를 전해 듣고, 金勇澈 변호사가 엄청나게 화를 냈다고 합니다. 金변호사가 자기 잘못이나 실수는 생각하지 않고, 「또 삼성이 나를 죽이려고 하는구나」라는 식으로 생각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웬만하면 데리고 있어 달라』(삼성)
『절대 함께 일 못 한다』(「서정」 측 변호사)
金勇澈 변호사는 결국 회사를 나가게 됐다. 이후 그는 여러 언론과 인터뷰에서 『자신이 회사를 나가게 된 것은 삼성의 압력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5월에는 삼성의 한 인사가 한겨레신문 기사를 트집 잡아 내가 일군 로펌에서 날 내쫓았다. 그 삼성 인사는 나에 대한 조처를 요구하면서, 「가볍게 듣지 말라. 다른 기업에 反기업적인 변호사가 근무하는 로펌이라고 일러서 영업을 못 하게 하겠다」고 했다. 로펌에 복귀하려면, 삼성에 가서 각서를 받아 오라고 한다. 내 회사 내가 다니는데 삼성에서 각서를 받아오라고?>(주간지 「시사in」10월29일자)
金변호사의 주장에 대해서 삼성과 법무법인 「서정」은 『사실 무근』이라고 했다. 삼성 측의 반론이다.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金勇澈 변호사가 「서정」에서 거의 쫓겨날 위기에 있다고 해서 저희 李鍾旺 前 법무실장이 「서정」의 金大雄 대표 변호사에게 「데리고 있어 달라」고 부탁까지 했어요. 생각해보십시오. 한겨레신문의 기획위원으로 反기업적인 칼럼을 쓰면서 공공연히 삼성을 비난하는데, 「서정」에서 쫓겨나면 金勇澈 변호사가 어떤 행동을 하겠습니까.
삼성이 아니라 다른 기업이라도 오히려 사퇴를 말려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겠어요. 金勇澈 변호사의 주장은 사실이 아닐뿐더러 상식에서 벗어나는 이야기입니다』
「서정」 측도 같은 얘기를 했다. 서정의 모 변호사 이야기다.
『李鍾旺씨가 저희 대표 변호사에게 전화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간부들 몇 분이 회의를 했습니다. 金大雄 대표는「웬만하면 함께 가자」고 설득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머지 분들이 「웬만하지 않다. 金勇澈과는 절대 함께 일 못 한다」고 완강히 거부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나가게 됐습니다.
金변호사가 법인을 나가면서 「출자지분 환급소송」까지 내서, 달라는 대로 돈을 다 줬습니다. 그런데 나가자마자 삼성 욕에 이제 우리 법무법인 욕까지 싸잡아서 하고 다니더군요. 과거 검사할 때는 저 지경은 아니었는데, 사람이 왜 저렇게 막 가는지…』
金勇澈씨 前妻의 편지 내용
金勇澈 변호사에 대한 취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삼성 전략기획실에서 연락이 왔다. 앞서 金변호사의 前妻인 양씨가 삼성에게 보낸 편지 全文 공개를 요청한 것에 대해, 『全文 공개는 불가능하다』고 알려왔다.
―공개가 불가능한 이유가 있습니까.
『우선, 편지에 삼성 고위 임원들과 법조인들의 實名(실명)이 들어간 비난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편지를 공개할 경우, 이분들의 명예가 훼손될 수 있어요. 삼성은 추후 편지 공개 여부를 결정할 겁니다. 저희 입장을 이해해 주십시오』
여러 경로로 양씨가 보낸 편지를 확보하려고 했으나, 결국 구할 수 없었다. 지난 11월5일 발표한 「金勇澈 변호사 주장에 대한 삼성의 입장」이라는 공식 반박문에서 내용 일부를 요약했다. 편지의 내용과 삼성의 보강 설명을 그대로 싣는다.
<1. 김변(金勇澈 변호사: 記者 注)이 내게 해한 죄, ○○○라는 창녀 같은, 개처럼 충성하고 일해서 번 수십억을 함께 쓰고 훔쳐간 여러 창녀들이 또 있군요.
2. 삼성에 관한 좋지 않은 정보들을 공개해서 (삼성 간부들의) 명예를 우리가 당한 만큼 밟아 줘야 한다면 그건 제가 할 겁니다. 지금도 김변호사 이름으로 주식도 통장도 있겠죠. … 김용철은 왜 검찰에, 금감원에 고발하지 않을까? 왜 그냥 내 주식이라고 우기지 않을까? 이 달 8월로 김에 대한 대우가 끝나나요. 김의 이름으로 된 주식도 처분했다죠. 세상 사람 다 알도록 하나 하나 짚고 넘어가죠. 난 많이 참는 사람이지만 보복은 철저히 합니다.
(삼성의 보강설명) 편지에는 존경받는 중진 법조인의 실명을 거론하며 그가 김변호사를 두 차례나 배신했다고 비난하고 있고, 고위공직자인 다른 선배가 부하 부인들을 상습적으로 성희롱해 문제가 되었을 때 김변호사를 해결사로 동원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법조계 인사라면 누구나 이 주장이 터무니없이 황당한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삼성의 공식 반박문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양씨의 편지에는 「자신이 삼성 임원에게 감시, 희롱을 당했다」는 내용과 「金勇澈 변호사가 삼성 때문에 타락해서 가정이 파탄 났다」는 내용 등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번 이혼했지만 함께 살고 있는 부부
2층이 金勇澈 변호사의 부인집. |
金勇澈 변호사와 前妻 양씨의 혼인 관계는 복잡하다. 金씨는 22세인 1979년 양씨와 결혼해 아들을 두 명 낳았다. 하지만 金씨 부부의 관계는 원만치 않았다. 金勇澈씨의 知人 변호사의 이야기다.
『金변호사는 어떤 일이 있어도 부인의 전화는 받습니다. 金변호사가 전화를 안 받으면, 난리가 납니다. 부인이 여자 문제를 의심했습니다. 부인이 삼성에 보낸 편지에도 그 부분이 나와 있다고 들었습니다. 金변호사가 언젠가 「우리가 워낙 많이 싸워서 아이들이 부모에 대해 큰 애정이 없는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金勇澈 변호사 부부는 2005년 8월 합의 이혼한 뒤 2006년 5월 재혼했지만, 지난 1월 다시 이혼했다. 앞서 金씨의 양평 별장에 갔을 때, 이웃들은 金씨 부부가 함께 내려와서 생활했다고 했다. 金변호사는 삼성이 양씨의 편지에 대해 비판하자, 『삼성이 우리를 부부 공갈단으로 몰고 있다』며 반발했다.
올해 초 다시 이혼한 이 부부는 도대체 현재 어떤 관계일까. 다시 金勇澈 변호사의 知人 변호사의 말이다.
『金勇澈 변호사와 부인 관계는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어요. 金변호사는 평소 「나는 내 마누라가 해달라는 대로 해주고 살아. 조강지처를 어떻게 버리나. 이혼해 달라면 이혼하고, 다시 합치자면 합치고 그렇게 살 거야」 했어요. 여자들이 들으면 감동하겠지만, 일반인들의 기준으로는 이해가 안 가는 얘기죠』
金勇澈씨 소유였던 노래방
참여연대와 민변은 지난 11월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민원실에 삼성그룹 및 총수 일가 불법행위 관련 고발장을 제출했다. |
金勇澈 변호사의 前妻 양씨를 만나기 위해 그녀가 살고 있는 잠실의 한 아파트에 찾아갔다. 그의 집 초인종을 눌렀으나,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30여 분을 서성대자, 같은 아파트 주민 한 명이 『양씨 취재하러 왔느냐』며 관심을 보였다. 그는 『양씨를 못 만날 것』이라고 했다.
―요새 여기서 살지 않습니까.
『아니오, 양씨와 막 제대한 둘째 아들이 살아요. 장사하는 곳이 멀어서 새벽에 들어오거나, 가게에서 며칠씩 잘 때가 많아요』
―어떤 장사를 하는지 아세요.
그는 말하기를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단란주점인지, 노래방인지를 한다고 해요. 남편이 변호사인데, 왜 그런 걸 하면서 새벽에 다니는지 이해가 안 가요. 두 곳을 운영하는데, 한 곳은 서울이 아니라고 하던데요.
언젠가 아파트에서 들리는 말로는, 도우미를 썼다가 벌금인지 영업정지를 먹어서 아주머니가 화가 이만저만 났던 게 아니었어요. 동네에서 그런 얘기를 왜 하는지, 나 같으면 노래방 운영해도 그런 얘기 안 하겠다』
月刊朝鮮에 들어온 제보에 의하면, 양씨가 운영하는 노래방 한 곳은 부천시 원미구에 있다. 金변호사 前妻인 양씨가 운영하는 「V」 노래방은 지난해 4월4일 주류판매를 한 것이 적발돼 부천지청으로부터 벌금형을 받았다. 부천지청은 金변호사가 검사였을 때,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곳이다. 이 노래방은 2005년 3월 인수할 때는 金勇澈 변호사 명의였으나, 2006년 9월에 양씨 앞으로 명의가 변경됐다.
金勇澈 변호사 부부가 노래방을 운영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문득 金씨의 칼럼이 떠올랐다. 金씨가 金升淵 한화 회장을 비판했던 지난 5월 한겨레신문에 게재한 칼럼이다. 칼럼의 첫 내용은 이렇게 시작된다.
<얼마 전 지방에 문상하러 갔는데 한밤중에 노래방을 운영하는 지인한테서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를 받았다.
『어떤 술 취한 남자가 갑자기 들어와 다짜고짜 소방시설을 점검한다더니, 화재 비상벨을 누르지 뭐예요. 전기가 끊기고 경보가 울리는 바람에 노래하면서 놀던 손님들이 대피하느라, 아수라장이 됐어요. 어떻게 해야죠』 (중략)
『먼저 범죄 사실과 진술 거부권, 변호인 선임권을 알려 주고 노끈으로 손목을 묶은 다음, 112에 신고하면 돼요』>
金변호사는 이 사례를 들면서, 金升淵 회장도 일반인들이 체포를 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칼럼을 마무리했다. 金씨가 자신이 운영하는 노래방의 사례를 칼럼에서 소개한 것은 아닌지 궁금해졌다. 그를 만나면 물어보고 싶었다.
『삼성에 대한 애정이 증오로 변했다』
이혼했지만,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 부부는 왜 노래방을 운영하고 있을까. 金씨의 前妻 양씨는 삼성에 보낸 편지에서 「金변호사는 무일푼의 환자일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양평집, 잠실의 아파트 등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무일푼은 아니었다.
특히 金변호사의 양평집 인근에서 만난 이웃 주민은 『金씨가 다른 별장에서 쓰일 단풍나무를 구해 달라고 했다』며 『金씨가 원하는 단풍나무는 가격이 수천만원대에 이른다』고 했다.
법무법인 「서정」 변호사들은 이렇게 말했다.
『金勇澈 변호사가 평소 「마누라와 두 번 이혼하면서 위자료 주고, 아이들한테 30억원씩 증여해서 난 무일푼」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혼한 부인과 함께 살고 있고, 아이들에게 돈이 있는데 왜 무일푼입니까. 말이 안 되는 얘기입니다』
삼성에 대한 愛憎
全聖喆 前「김&장」변호사. |
그동안 취재한 것을 종합하면, 金勇澈 변호사는 9년간의 검사 생활을 하면서 별다른 굴곡이 없었다. 스스로 검사복을 벗고 들어간 삼성에서 지금까지 10년간 109억원의 돈을 받았다. 「서정」에서 근무할 때, 삼성계열사와 관련된 계약을 따냈다. 삼성 때문에 파탄 났다는 가정은 서울 근교에 별장을 만들어서 함께 생활할 정도로 무난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삼성과 검찰에 대못질을 하고 있을까. 그의 검사 후배는 그에 대한 얘기를 들려 주면서, 이렇게 결론 내렸다.
『앞서 말했지만, 金勇澈 변호사는 삼성에 푹 빠져 있었어요. 정말 삼성이 대단하다고 여겼고, 삼성의 헤드쿼터(수뇌부)에서 법무팀장을 하는 자신이 너무 대단해 보였겠죠. 그래서 충성을 다하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자기가 원할 때까지 삼성에서 근무할 수 있다고 봤겠죠. 金변호사는 대학선배인 李鶴洙 본부장을 「롤 모델」 삼아, 자신도 저기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이진강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
그런데 갑자기 자기를 내치려고 하는 거예요. 가뜩이나 자존심이 강했던 사람이 도저히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겠죠. 결국 지난 7년간 자신이 삼성에 쏟은 愛情(애정)이 갑자기 憎惡(증오)로 변한 겁니다. 「서정」에서 일할 때, 삼성을 바라보면서 「나에게 더 많은 것을 주겠지」 기대했다가 꺾였죠. 이제 과거의 愛情은 깡그리 없어지고, 憎惡만 남게 된 겁니다.
물론 다시 돌아가고 싶은 삼성이니까, 전체 조직을 욕할 수는 없겠죠. 결국 자신이 증오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겠죠. 누구겠어요. 삼성을 좌지우지하는 李健熙 회장, 李鶴洙 본부장 등 현재 삼성의 수뇌부가 그의 타깃이 된 겁니다』
金勇澈 변호사는 지난 11월7일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과 가진 인터뷰에서 삼성에 대한 愛憎을 이렇게 말했다.
<거듭 말하지만, 삼성은 분명히 자부심을 가져도 좋은 기업이다. 우리나라에 삼성전자와 같은 기업이 지금보다 많이 생겨야 한다. 그리고 이런 훌륭한 기업이 李健熙 一家(일가)와 몇 명 家臣(가신)들의 부당한 영향력에서 벗어나서 계속 발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김용철에 대한 징계논란
金勇澈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의혹에 관한 폭로가 이어지면서, 대한변호사협회(회장 이진강)는 金씨에 대한 징계 문제를 거론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1월5일 대한변협에서 열린 상임이사회에서 「자신 자신이 일하던 삼성의 내부 비밀을 폭로한 金변호사의 행위가 징계 사유에 해당되는지」를 놓고 찬반 논란이 일었다.
변호사법 제26조(비밀유지 의무 등)는 「변호사 또는 변호사이었던 자는 그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한변협의 모 임원의 얘기다.
『변호사가 의뢰인의 비밀을 공개할 경우 「비밀유지 의무 위반」에 해당하기 때문에, 金勇澈 변호사의 행위는 징계 사유에 해당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하지만 검찰 기소나 판결이 내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변협이 나서서 징계를 논의한다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다수를 이뤘어요. 아직은 金변호사 징계와 관련된 논의를 하지 않기로 결론 내렸습니다』
대한변협에서 金勇澈 변호사에 대한 징계 논란이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시민단체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측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송호창 변호사(민변 사무차장)가 모 전문지와 가진 인터뷰 내용이다.
<金勇澈 변호사의 행위는 징계사유가 될 수 없고, 비밀도 아니다. 변호사 윤리장전 제23조는 변호사의 비밀준수의무를 규정하면서 「공익을 위해서 필요한 경우(변호사 업무상 알게 된 의뢰인의 비밀을) 최소 범위 안에서 공개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金변호사는 공익을 위해 범죄행위를 신고한 것으로 비밀준수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없다>
金勇澈씨에 대한 대한변협과 민변의 상반된 해석에 대해서 全聖喆(전성철·59) 前 「김&장」 변호사에게 의견을 물어봤다. 全변호사는 미국 뉴욕州 변호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대한변협에서 金勇澈 변호사를 징계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민변과 시민단체를 의식해서 변협이 강하게 나오지 못했을 겁니다. 변호사는 회사 임원이든 로펌 소속이든 자신의 변호인을 보호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金변호사는 자신의 의뢰인의 비밀을 공개해 버렸습니다. 그가 공개한 내용이 사실이든 아니든, 자신의 입으로 삼성에서 있었던 일을 공개한 것은 변호사로서 기본적인 책무를 망각한 겁니다.
미국에서는 절대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만약 金변호사 같은 사람이 나타났다면, 그 사람이 공개한 내용의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공개한 변호사를 형사범으로 처리합니다. 그 변호사는 法의 근본적인 원리를 무너뜨렸기 때문이에요.
만약 시민단체들과 민변이 金변호사에 대한 징계를 반대한다면, 법과 법률가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이 잘못된 겁니다』
이 기사에 대해 金勇澈 변호사의 反論(반론)을 듣기 위해 지난 11월15일 이메일과 팩스로 기사 全文을 金변호사 측에 보냈다.
11월16일 오후까지 金변호사의 反論을 기다렸지만, 아무런 답변이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