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씨에게
산대놀이란 탈을 쓰고
큰길가나 빈 터에 만든 무대에서 하는
복합적인 구성의 탈놀음을 말하며
바가지, 종이, 나무 따위로 만든 탈을 쓰고
소매가 긴 옷을 입은 광대들이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며 몸짓, 노래,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고려 시대에 발생하여
조선 시대까지 궁중에서 성행하였으나
후에 민간에 전파되어
탈놀음 중심의 평민극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조선조 후기의 한양과 경기 일원에서
활약한 산대놀이 패로서는
녹번리산대, 애오개산대, 사직골딱딱이패,
노량진산대, 퇴계원산대 등이 있었으나
현재는 전승이 거의 단절되었고
양주별산대놀이, 송파 산대놀이 등이 전승되고 있습니다.
퇴계원산대놀이는
서울로 통하는 물류의 중심지였던 퇴계원에서
1930년까지 활발히 전승되었던 문화유산이었습니다.
퇴계원산대놀이가 벌어졌던 곳은
현재 퇴계원의 군부대가 자리 잡고 있는 곳으로,
예전에는 홍수로 인하여 생긴 큰 모래밭이었다고 합니다.
산대를 놀게 되면,
멀리는 강원도 원주, 평창, 함경도지방, 봉산탈꾼으로부터
가깝게는 양주탈꾼, 송파탈꾼 등
수천 명이 운집하였다고 합니다.
퇴계원산대놀이는 주로 농한기인 4,5월에 열렸으며
탈춤이외에도 줄타기, 씨름, 소리 등
백중놀이 형태의 행사가 10여 일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이러한 퇴계원산대놀이도
일제강점기에 민족문화 탄압책의 일환으로 위축되었다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거의 명맥이 끊긴 것을
1990년 초에 민경조, 김봉준씨 등이
복원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그들이 주축이 되어
춤사위는 퇴계원산대놀이에 참여하였던
백황봉, 최사윤, 서동근씨 등으로부터
시연과 진술을 토대로,
탈은 현재 서울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퇴계원 산대놀이의 나무 탈을 근거로,
대본은 백황봉, 최사윤, 서동근씨 등의 진술과
서울대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채록연희본인 ‘산대도감극’을 참고로 하여
퇴계원산대놀이의 원형을 복원하고,
보존회를 결성하여
현재까지 원형보존과 전승에 힘써 왔던 것입니다.
퇴계원산대놀이는
양주 별산대놀이와 같은
경기도 문화권내에 있기 때문에
탈, 의상, 춤사위, 대본 등이 유사하지만
양주는 바가지탈을 사용하는 반면에
퇴계원은 나무 탈을 사용하며
양주 춤은 부드럽고 춤사위가 적지만
기교적인 춤사위를 추며
정리된 느낌을 주는 반면
퇴계원산대의 기본 춤은 씩씩하고 춤사위가 큽니다.
의상도 쾌자, 왜장녀의 의상 등에도
차이점을 보이고 있으며
12과장 신할아비 과장에서
양주는 누이가 무당역할을 같이 하지만,
퇴계원은 누이와 무당이 별도의 배역으로 연행을 합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원형의 복원 및 전승에 헌신한
민경조, 김봉준 씨를 비롯한
퇴계원산대놀이보존회 회원들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