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당한 전쟁은 가능한가?
새로운 밀레니엄의 시작은 왠지 평화와 동떨어져 보인다. 1999년 ‘인도주의적 개입’을 내세우며 미국과 나토는 유고슬라비아를 일방적으로 폭격하였다. 미국의 심장부를 강타한 9 ․ 11 테러는 무려 3,500여 명의 인명을 앗아갔다. 미국은 테러에 대한 보복을 빌미로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그리고 이라크에 대해 전쟁을 수행하였다. 이 모든 폭력에 대해 당사자들은 ‘성전’ 또는 ‘정당한 전쟁’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 세기 참혹한 세계대전의 경험, 그리고 그 결과 만들어진 인류의 평화에 대한 합의가 점차 잊혀 지면서 21세기에 전쟁과 폭력은 다시금 대외정치의 수단으로 복귀하는 듯하다. 그러나 도대체 정당한 전쟁은 가능한가? 그것이 가능하다면 어떤 경우에 가능한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왜 정당한 전쟁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안 되는가? |
‘정당한 전쟁은 가능한가.’라는 질문은 ‘정당한 살인은 가능한가.’라는 질문과 유사한 성격의 것이다. 전쟁은 수많은 인명을 직접 살상한다는 점에서 집단적 살인에 다름 아니며, 또한 인간의 생존기반인 경제적 토대와 사회 하부구조를 무참히 파괴한다는 점에서 간접적 살인이기도 하다.
전쟁, 국가들 사이의 살인행위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가 상상했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bellum omnium contra omnes)’의 자연상태가 다행스럽게도 인간의 이성에 의해 극복된 이래, 살인은 사회적으로는 물론 윤리적으로도 경멸의 대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사회에서든 살인은 일어났으며, 주지하듯이 정당한 살인은 한 인간이 긴박한 살해의 위협 속에서 이를 회피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 최후의 자기방어로서만 인정된다. 정당한 살인은 물론 당사자의 자기주장으로는 성립되지 않으며, 극단적인 자기방어가 선택될 수밖에 없는 명백하고 객관적이 상황이 재구성될 때만 인정될 것이다.
전쟁은 국가들 사이에 일어나는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살인행위이다. 국가세계에서도 전쟁은 혐오되었지만 반복해서 일어났고, 따라서 불가피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프로이센의 군사전략가인 폰 클라우제비츠(von Clausewitz)는 전쟁을 ‘적에게 우리 뜻의 실현을 강제하기 위한 폭력행위’로 정의하면서 ‘단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으로 이해하였다. 클라우제비츠가 살았던 19세기의 유럽은 강대국들의 전형적인 권력정치의 장이었고, 자국의 영향력과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유럽 대륙은 물론 세계 곳곳의 식민지에서 무수한 전쟁이 일어났던 세기였다.
그런데 20세기 들어 전쟁은 질적으로 변모하였다. 이전의 전쟁이 군대와 군대 간의 싸움을 의미했고, 민간인의 희생은 절제되었던 반면, 20세기의 전쟁은 목표의 달성을 위해 민간인들을 의도적으로 살해하는 잔혹한 모습을 띠었다. 바야흐로 ‘학살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민간인과 군인의 구별 없이 인간을 무차별적으로 살상하는 공습, 그리고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를 절멸시키는 가공할 핵폭탄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파괴적 상상은 끝이 없어 보였다.
전쟁은 20세기 들어 지구적 모습을 띠면서 두 번의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무려 7천에서 8천만의 인명이 단 두 번의 세계전쟁을 통해 희생된 것으로 추산된다. 급기야 핵폭탄까지 투하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이제 전쟁은 누가 보아도 ‘정치의 연속’이라기보다는 ‘파국’이자 ‘인류문명의 종언’을 의미했다. 20세기 전반기에 인류가 경험한 이 극단적 파국은 이후 전쟁을 회피하기 위한 중대한 합의가 성립하는 역사적 배경으로 작용한다.
유엔이 인정하는 두 가지 형태의 전쟁
1945년 4월 25일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미국과 소련을 비롯한 47개국의 대표들이 참가한 유엔 창립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 합의되고 나중에 좀 더 세부적으로 개정된 유엔 헌장은 같은 해 6월 25일 위의 참가국들에 의해 인준되었으며, 드디어 10월 24일 유엔이 탄생하였다.
주지하듯이 유엔의 창립은 참혹한 세계전쟁에 대한 국가세계의 반성이자 평화에 대한 인류의 합의였다. 따라서 유엔 헌장의 제1조가 유엔의 목표를 ‘세계평화와 국제적 안보의 수호’라고 정의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유엔 헌장의 제2조는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원칙들을 제시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제2조 4항의 일반적 폭력 금지조항이다. 이에 따르면 모든 국가는 국제관계에서 폭력을 사용해서도 폭력에 의존해서도 안 된다. 폭력금지는 평화의무에 의해 보충된다. “모든 회원국들은 국제적 분쟁을 세계평화와 국제적 안보, 그리고 정의가 위협받지 않도록 평화적 수단에 의해 해결하여야 한다.”(제2조 3항) 유엔 헌장은 전쟁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며 평화적인 방식의 갈등해결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현대 국제법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 간 폭력사용의 금지는, 그러나 두 가지 예외를 인정한다. 그러기에 합법적인 폭력사용, 또는 달리 표현해 정당한 전쟁은 오직 다음과 같은 두 경우에서만 가능하다. 첫째, 유엔 헌장의 7장에 따라 안전보장이사회는 합법적인 강제수단의 사용을 결의할 수 있다. 둘째, 유엔 헌장 51조는 국가들로 하여금 “무장공격을 당했을 경우 개별적 ․ 집단적 자기방어를 위한 자연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 자위권은 “안전보장이사회가 세계평화와 국제적 안보의 수호를 위해 필요한 조치들을 강구할 때까지”만 인정된다. 유엔 헌장은 자기방어를 위한 폭력의 사용에 있어서도 개별국가들에게 관대하게 권한을 부여한 것이 아니라, 안전보장이사회의 역할을 우선시함으로써 유엔에 의한 폭력의 독점을 명시하고 있다.
우리가 정당한 전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국가들 사이의 폭력사용은 특정지역의 안정과 세계평화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사태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강제수단의 사용을 결의했거나, 침략전쟁에 대한 자기방어의 경우에만 가능하다. 유엔 헌장이 정당한 전쟁을 이와 같이 협소하게 정의한 것은 전쟁수행의 권리가 한 국가 또는 몇몇 국가들의 동맹체에 의해 침탈되는 것을 방지하고 안전보장이사회의 회원국들을 통한 타협과 이해조정의 중요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또한 20세기 초반의 참혹한 세계대전이 전쟁을 ‘정치의 연속’으로 이해한 19세기 권력정치의 궁극적 소산이었다는 사실을 전후국가세계가 간파한 결과이기도 했다.
위협받고 있는 원칙들
유엔을 통해 합의된 정당한 전쟁의 원칙은 평화의 수호 및 평화의 강제와 관련해서도 대단히 중요한 것임에 두말할 나위가 없다. 평화적인 수단에 의해서만 평화가 확보되지는 않는 것이 오늘날 세계의 불행한 현실이라면, 정당한 전쟁의 원칙은 불가피한 최후의 선택으로 존중되고 지켜져야 한다. 그런데 이 원칙이 최근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2003년 3월에 시작한 이라크 전쟁, 2001년 10월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1999년 4월의 유고슬라비아 전쟁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전쟁은 유엔 헌장에 의해 정당화되지 않은 침략전쟁들이다. 특히 심각한 문제는 이 침략전쟁들이 냉전체제 종식 이후 유일 초강대국으로 살아남은 미국에 의해 계획되고 수행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미국은 이 모든 전쟁에서 나름대로의 명분을 내걸었다. 유고슬라비아 전쟁의 경우 코소보 지역에서 일어난 세르비아계 주민들의 알바니아계 주민들에 대한 억압이 명분으로 등장하였다. 그러나 ‘종종청소’의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고, 오히려 미국과 나토의 공습 시작과 함께 거대한 난민의 행렬이 발생하였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는 9 ․ 11 테러에 대한 탈레반 정권의 지원이 문제되었지만, 이 지원의 구체적 증거는 여전히 오리무중에 쌓여있다.
최근의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의 전쟁명분은 흥미롭게도 여러 차례 변모하였다. 처음에 미국은 이라크가 국제 테러리즘, 특히 빈 라덴과의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비난하였지만, 이 역시 신빙성 있는 증거로 뒷받침되지 않은 자기주장에 불과했다. 이후 전쟁의 명분은 이라크가 주변국들에 대한 위협임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였고, 후세인 정권의 독재와 폭악성이 강조되면서, 후세인은 종종 히틀러와 비교되기조차 하였다. (수백만 명을 체계적으로 학살한 히틀러에 비하면 정적 수백 명을 죽인 후세인은 거의 ‘유순한’ 독재자일 것이다.) 2002년에 들어 이라크가 ‘악의 축’으로 부상하면서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이 전쟁의 ㅁ여분으로 등장했으나 이라크 전쟁이 끝나고 몇 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고, 미국 및 영국정보부에 의한 대량살상무기 정보의 체계적 조작이 오히려 문제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테러와 전쟁의 차이점
주지하듯이 부시 행정부는 9 ․ 11 테러에 대한 응징과 대응의 차원에서 미국의 공격전쟁들을 정당화하고 있다. 그러나 9 ․ 11 테러가 아무리 충격적이고 잔혹한 결과를 낳았을지라도, 이는 결코 전쟁을 의미하지 않는다. 전쟁이란 국제법적인 행위로서, 국가들 사이 또는 국가와 국제적으로 인정된 조직-예컨대 인종분리주의 시기의 남아공화국의 아프리카민족호의(ANC)와 같은 -사이의 국제법에 기초한 무력충돌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탈레반이든 알 카에다이든 이들 조직은 국제적으로 인정된 조직이 아니며, 또한 네 대의 민간여객기를 납치해 대도시의 인구밀집지역에 자살공격을 감행한 것이 국제법에 상응한 전쟁선언을 의미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기에 이 테러에 대한 처벌 역시 군사 적 수단이 일정한 역할을 수행한다 하더라도 전쟁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범죄자에 대한 처벌을 ‘전쟁’으로 이해하는 것은 잔혹한 테러 행위를 ‘성전’으로 포장하는 테러 집단의 논리를 궁극적으로 인정하는 격이다. 9 ․ 11 테러가 범죄라고 규정된다면, 이에 대한 대응 역시 범죄에 대한 처벌의 원칙에 기초하여야 한다. 즉 범죄행위의 명백한 증거가 범죄집단의 처벌에 앞서 공개되어야 하며, 처벌의 대상 역시 범죄집단에 한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9 ․ 11 테러의 배경에 대한 철저한 규명보다는 자신의 공격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한 계기로 이 사태를 의도적으로 오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주고 있다.
미국과 나토는 유엔의 위임 없이 유고슬라비아를 공격하였고,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국은 유엔의 동의를 묻지 조차 않았다. 이라크 전쟁 역시 유엔 헌장을 철저히 무시한 전쟁이었다. 이러한 미국의 전략은 지구화된 시대의 세계정치의 장으로서 유엔이 발전하는데 결정적 장애일 뿐만 아니라, 지난한 역사적 과정을 거쳐 구축된 인류의 평화에 대한 합의를 깨뜨리는 심각한 도전을 의미한다.
결론
강대국의 이해와 전략 때문에 전쟁이 허용된다면 21세기의 세계질서는 유엔과 국제법 이전 시기의 ‘힘의 논리’로 후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아무리 지난한 과정이었을지라도 인류의 역사는 ‘권력이 강한 자’또는 ‘힘 센 자’의 자의적 지배를 제한하려 노력해온 과정이었고, 사회적 합의와 법에 기초해 권력을 통제하는 것을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정착시켰고 여전히 정착시키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좀 더 더디기는 했지만 국제관계에서도 일어났으며, 유엔과 국제법은 그 변화의 소중한 결과물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바로 이 점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 없이 전쟁을 수행한 미국의 논리는, 법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폭력을 행사하는 깡패집단의 행동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특정국가가 자의적으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권한을 주장한다면, 도대체 누가 정당한 전쟁을 결정할 것인가? 만약 또 다른 국가가 미국의 행동을 흉내 낸다면, 무슨 논리에 근거해 그 국가를 비난하고 제재할 것인가? 정당한 전쟁의 원칙을 지키는 것은 전쟁이 다시금 대외정치의 수단으로 복귀하고 있는 21세기 벽두에 평화를 지향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중대한 과제이다.
■ 더 생각해볼 문제들
1. ≪문명의 공존≫이라는 저서를 통해 우리에게도 이름이 알려진 독일의 저명한 평화학자
하랄트 뮐러는 <평화보고서 2000>에 기고한 논문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로 오늘날 세계
질서에서 미국의 위상을 진단하고 있다. “세계는 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문제는 바로 미국이다.” 미국이 왜 문제인가? 부시 행정부가 보여준 일련의 행동-교토 의정서에의 참여 철회, 소형무기의 불법거래를 제한하려는 유엔의 노력에 대한 방해, 국제형사재판소에 대한 반대, 선제 핵공격을 위한 소형핵무기의 개발, 예방적 전쟁 독트린 선언 등등-이 협력적 세계질서의 실현에 어떻게 장애가 되는지 생각해보자.
2. 1970년에서 1990년 사이 세계총생산은 4조 달러에서 23조 달러로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기간 빈곤층의 숫자 역시 20% 이상 증가했다. 가장 빈곤한 인류의 1/5은 1960년만
하더라도 세계소득의 4%를 점유했지만, 이 비율은 1990년 1%로 줄어들었다. 반면 지구의
초특급부자 358명의 재산의 합은 인류의 거의 절반에 달하는 25억 명의 전 재산을 합친
것과 비슷하다. 이러한 부의 불평등은 새로운 위협으로 지목되는 테러와 같은 조직화된
폭력이 등장하는 사회적 배경이기도 하다. 제3세계에 대한 적극적인 원조 ․ 개발정책 및
지구적 이윤의 균등한 분배의 실현 없이 평화로운 세계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 오늘날
지구화된 세계의 현실이다. 지구적 불평등은 어떻게 완화될 수 있을까? 공정한 세계의
실현에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가 왜 중요한가?
|